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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대구광역시 달서구 동이름 유래

작성자averina|작성시간21.08.26|조회수14,968 목록 댓글 22

 

 

 

달서구(達西區)

 

대구의 옛 지명이 '달구벌'이다. 
달서구는 '달구벌의 서쪽에 위치한 구-지역'이라는 뜻에서
"달서구"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이다. 

(達句伐(달구벌) - 넓은 평야, 큰 마을(부락), 큰 성)

 

 

 

 

 

 

갈산동(葛山洞)

 

-뒷산에 칡나무가 많아 `칡뫼'로 불리어 졌는데, 칡뫼가 갈뫼로 다시 갈산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감삼동(甘三洞)

 

-썰1:『경상도읍지』에는 ‘감삼못’이 달서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당못보다도 규모가 더 큰 못이었던 감삼못은 감삼동의 지명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못으로 전해지며, ‘우물제’라고도 불렸던 감삼못은 현 달성고등학교 일대에 있었으나 1970년대 중반 개발로 인하여 없어졌다.)

-썰2: 약 300년 전 어느 날 원님이 이 지역을 지나가다가 시등(柿登, 현 감삼동 69-1번지 일대)에 있는 감나무에 달린 붉은 감을 보고 그 탐스러움을 감탄하였다.

이에 마을에서 인사차 나온 대표가 감을 원님께 대접하면서 마을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더니

감이 매우 달고 맛이 있어 세 개나 먹었으니 ‘감삼동’으로 지어 부르게 했다는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대곡동(大谷洞)

 

-본래 한실이라 불리어 졌는데, ‘한실’이란 큰골, 즉 골이 깊고 크다는 뜻이다.

-‘한’의 뜻은 크다 또는 넓다 로, 한자로 표기하면 大이고, ‘실’의 뜻은 고을 마을이란 뜻으로 한자의 谷이다.

즉 한실은 큰 마을이라는 뜻이므로 한자로 표기하여 대곡이 되었다.

 

 

 

 

 

 

도원동(桃源洞)

 

-골이 매우 깊고 그윽하고 경치가 아름다워서 중국의 무릉도원(武陵桃源)과 같다고 하여 ‘도원골’ 또는 ‘도원리’라 하였다고 한다.

-냇가에 복숭아 잎과 꽃이 떠내려 와서 따라 올라가니 복숭아나무가 많이 있고,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복숭아 도(桃)자를 따서 ‘도원동’이라고도 한다.

 

 

 

 

 

 

두류동(頭流洞)

 

-둥글게 펼쳐진 산의 형세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그 산이 둥글게 펼쳐져 있다고 묘사하여, ‘두리산’으로 불렀다는 이야기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1918년에 제작된 『조선지형도』에도 두류산(頭流山)으로 표시되어 그 유래를 뒷받침하고 있다.

 

 

 

 

 

 

본동(本洞)

 

-조선 중기 이후 대구의 방리로 존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매자동과 취령동, 구암리를 합하여 송현동이라 하였다.

-1987년 본리동 일부를 남구 본동으로 법정동을 신설

-1988년 달서구를 신설할 때 본동을 편입

-1990년 달서구 송현2동을 송현2동과 본동으로 분동

 

 

 

 

 

 

본리동(本里洞)

 

-원래 대구부 감물천면(甘勿川面) 지역

-옛날에는 작촌(鵲村)이라 불려졌다.(까치 작)

-지금부터 150여년 전 현재 본리초등학교가 있는 주변에 까치가 많이 살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감천리(甘川里)와 작촌동(鵲村洞)을 합하여 본리동이라 하였다.

-1988년에는 신설된 달서구에 편입되었다.

 

 

 

 

 

 

상인동(上仁洞)

 

-이 지역에 있는 상인산의 이름을 따서 상인리라 하였다.

 

 

 

 

 

 

성당동(聖堂洞)

 

-본래 상댕이 또는 성댕이라고 불렸다.

-1910년부터 성당동이라 불렸는데 이 지역의 산 모습이 못을 중심으로 하여 용이 승천하는 모양으로 길지(吉地)의 의미를 지닌 성당으로 불렀다.

또 하나의 설로는 천주교 성당이 있었다고 하여 성당동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이 성당은 일제시대때 만들어진 것으로 현 대성사 위쪽(두류산 서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대구지역 독립운동 장소로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의하여 강제 철거, 폐쇄되었으며

1960년 두류산 공원 개발로 순환도로가 개설될때 까지 그 터와 사택이었던 집이 있었다고 한다.

 

 

 

 

 

송현동(松峴洞)

 

-이 지역에 솔고개[松峴]가 있었기 때문에, ‘솔고개’ 또는 ‘송현’이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신당동(新塘洞)

 

-신당지(新塘池)라는 못에서 이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용산동(龍山洞)

 

-용산동은 와룡산 밑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용산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월성동(月城洞)

 

-본래 대구부 조암면의 지역인데, 1914년에 일리와 광수동을 합하여 조암의 위쪽이 되므로 상동(上洞)이라 하여 달성군 월배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달성군 월배면에 편입 되었다가 1957년 대구시에 편입되었는데, 대구시 수성구의 상동과 이름이 같아서 새 이름을 지었다.

이 때 월배면과 달성의 이름을 따서 ‘월성동’이라 하였다.

 

 

 

 

 

 

월암동(月洞)

 

-조선시대 대구부 조암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에 달성군 월배면에 속하였다가 1957년에 대구시에 편입되면서 기존의 명칭과 혼동을 피하여

월배와 조암의 이름을 따서 월암동이라 하였다.

 

 

 

 

 

 

유천동(流川洞)

 

-말 그대로 흐르는 내라는 뜻이다. (흐를 유, 내 천)

-비슬산 동북단에서 시작되어 월배면의 도원동의 상류로 구라동과 유천동 사이를 흐르는 내로서 연장이 11km나 되는데, 이 하천의 이름을 따서 동네이름을 유천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곡동(梨谷洞)

 

-와룡산 밑자락에 있는 마을에 배나무가 많았다 하여 배골[梨谷] 또는 배실이라고 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이곡동으로 하였다.

 

 

 

 

 

 

장동(洞)

 

-본래 장골이라 하였다.

 

 

 

 

 

 

장기동(長基洞)

 

-400여 년 전, 구씨(具氏)와 장씨(張氏)가 마을을 개척하여 구씨, 장씨의 터라하여 구장터라 불렀다고 하며,

그 후 100여 년 뒤 구씨는 대부분 떠나고 장씨가 마을을 이끌어 왔다고 하여 구자(具字)가 빠지고 장씨 터라는 뜻의 장기(張基)로 불려졌다.

 

 

 

 

 

 

죽전동(竹田洞)

 

-원래 이 지역에는 대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예전 50가구 정도의 주민이 농사를 짓고 살았으며,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에 부업으로 대나무 갈퀴를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이들이 만든 대나무 갈퀴는 서문시장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보급되었으며, 이렇게 대나무 갈퀴를 많이 생산하는 곳이라 하여 ‘죽전(竹田)’이라 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도시개발이 이루어지기 전 1970년 만해도 이 마을에 큰 대밭이 있었고, 그 옛날에도 마을 안 빈 집터에 대나무밭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진천동(辰泉洞)

 

-옛날 진천동에는 4개의 자연촌락인 오복촌, 새악단(새각단), 송정동, 용천동이 있었는데, 용천동의 순우리말 표현인 ‘미리샘’을 한자로 변용하면서

‘용 진(辰)’과 ‘샘 천(泉)’을 사용하여 ‘진천’으로 부른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파호동(巴湖洞)

 

-1270년 경 한씨(韓氏), 박씨(朴氏)가 이곳을 개척하여 범어, 강창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창 일부를 파산, 파호로 분리되어 파산(巴山)의 파(巴)와 인근을 흐르는 금호강(琴湖江)의 호(湖)를 따서 '파호동(巴湖洞)'이라고 불렀다.

 

 

 

 

 

 

호림동(狐林洞)

 

-들 한복판에 숲이 홀로 우거져있다하여 홀림(笏林)으로 불리다가, 여우 전설이 있는 동네라 하여 여우 호(狐)를 써서 호림동으로 개칭되었다.

 

 

 

 

 

 

호산동(虎山洞)

 

-1270년 경 한씨(韓氏), 박씨(朴氏)가 이곳을 개척하여 범어, 강창이라 불렀다.

- 그 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강창을 파산, 파호로 분리시켰다.

-파산동의 옛 이름은 머무동또는 머무강창이라고 하는데, 머무동은 금호강으로 올라오던 소금배가 머무는 동네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파산동은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지은 동명인데(파호동도 마찬가지) 파산동과 파호동 사이의 돌무덤에서 많은 뱀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파산'이라는 발음이 기업인들이 꺼리는 단어인 '파산(破産)'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2005년 4월에 동명을 호산동으로 변경하였다.

 

 

 

 

 

 

 

http://www.dalseo.daegu.kr/pages/executive/page.html?mc=1482

아니 동이 왜이렇게 많아 왜이렇게 난이제지쳤어요..

문제시 호다닥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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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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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woo!ah! 우연 | 작성시간 21.08.26 나 애기 때 평리동 살았는데 없어진건가...?
  • 답댓글 작성자021205230712 | 작성시간 21.08.26 평리동은 서구!
  • 답댓글 작성자woo!ah! 우연 | 작성시간 21.08.26 021205230712 아 대박 송현동이 달서구고 평리동이 서구구낰ㅋㅋㅋㅋㅋㅋㅋㅋ 송현동이 서구인 줄 알았어 송현동 여기 있네!!! 한 20년 전이라 헤ㅛ갈렸읔ㅋㅋㅋㅋ 오옹 고마워
  • 작성자문열어라노 | 작성시간 21.08.26 도원동..!!!ㅋㅋㅋㅋ 반갑다 여기서 보다니..
  • 작성자린둥이S2 | 작성시간 21.08.26 월성동 .ᐟ.ᐟ.ᐟ.ᐟ.ᐟ 우리집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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