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꽃화은
가끔 서양풍 로판 소설에 보면
동양의 후궁 제도가 등장하기도 한다.
but...
서양은 일부일처제로서 후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서양의 왕들은 정말 왕비만을 사랑했을까?
정답은 NO다.
서양왕들도 여자 여럿 만나고 다녔다.
대표적인 예로
퐁파두르 부인과 뒤바리 부인이 있다.
이들은 왕의 공식정부(Mistress)로서
후궁이라기보다는 내연녀 느낌이었다.
잉? 그게 그거 아니냐? 라고 생각하겠지만
엄청 다르다.
후궁은 왕실의 일원으로서 대접받았지만
정부는 왕실의 일원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의 자식 역시 취급이 달랐는데,
후궁의 자식들은 왕의 서자이긴 했어도
왕위계승권도 있었고(물론 남자일 경우에만),
왕족으로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
대표적인 조선의 서자는 영조로
그녀의 어머니인 숙빈최씨는 천민이었다.
반면 정부의 자식들은
왕족이 아닌 사생아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왕위계승권은 꿈도 못꿨다.
위의 그림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인데,
윌리엄 4세의 자식들이 전부 사생아였었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에드워드왕자의 적녀였던 그녀가 왕이 된 것이었다.
즉 서양에서는
적남>>적녀>>>>>(넘사벽)>>>서자,서녀
였다고 할 수있다.
심지어 "걔는 내 애 아님"이라며
아예 정부의 자식을 부정하는 왕들도 많았다.
뭐 왕이 직접 "얘는 내 아이 맞다"라고 인정은 해준다 쳐도 사생아인건 똑같았지만 말이다.
오직 왕비에게서 태어난 자식만이 왕족 취급 받을 수 있었다.
뭐 근데 말이 사생아지
사실은 다 왕의 자식들인건 뻔했으므로,
왕도 불편해지고 왕비도 불편해지고 정부도 불편해지는 모두가 찝찝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많은 정부들은 유부녀였는데,
이들이 아이를 낳아도 왕의 자식이 아니라고
둘러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유전자 검사가 있다지만
이 당시에는 그런 것도 없으니
걍 내 아들 아니라면 우기면 됐었다.
그럼
정부의 남편들은 자기 부인을 뺏긴 건데 괜찮나?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왕은 부인을 뺏어가는 것의 대가로
남편에게 막대한 재산과 지위를 줬었기 때문에
남편들은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곤 했다.
(아니면 원래 미혼이었던 정부에게
왕이 직접 남편을 골라주는 경우도 있었다)
동양의 후궁들은 왕의 총애를 입으면
황귀비, ㅇ귀비, ㅇ비, ㅇ빈 등의 작호를 받았는데,
(ex.양귀비, 희빈, 숙빈 등)
서양에서는 이들 남편에게 공작, 백작 등의 작호를 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정부도 공작부인, 백작부인 등으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다.
(뭐 근데 남편이랑 관계없이 그냥 작위를 주는 경우도 있었고, 왕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귀족으로 신분세탁하고 오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뒤바리 부인이 뒤바리 부인인 것도
뒤바리 "백작부인"이여서 그렇다.
한편 모든 남편이 다 세속에 찌든건 아니었는데
마담 퐁파두르의 남편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해서 자신의 부인을 왕에게 뺏긴 것에 매우 슬퍼했었다.
만약 퐁파두르가 다시 남편에게 돌아갔었다면
저 남편은 다시 받아주었을 거라는 추측이 있지만
퐁파두르가 그러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다.
한편 앞서 언급했듯이
왕위계승권은 오직 왕비의 자식만이 가질 수 있었는데, 왕비가 아이를 못낳는 몸이라면 어떻게 됐을까?
동양이라면 후궁을 들였겠지만
서양은 얄짤 없었다.
무슨 경우에서든 정부의 자식은 사생아 취급이었다.
이게 맘에 안들었던 왕이 있었으니
바로 잉글랜드의 헨리 8세였다.
그는 왕비가 낳은 딸 하나가 있었으나,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어했다.
근데 왕비는 애도 못낳는 몸이 되어버렸고...
헨리 : 부인!! 이혼해줘! 나는 아들 낳고싶어
캐서린(왕비) : 개소리ㄴㄴ
가톨릭 : 우리는 왕비편❤
당시 왕비였던 캐서린의 아버지는
가톨릭의 나라인 스페인의 국왕이었다.
헨리 : ㅅㅂ교회가 다들 왕비편만 들잖아?
아오 빡쳐.. 어쩌냐 이제...
헨리 : 종교가 내 편이 아니면
종교를 바꾸면 되겠네!!
이렇게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게된다(..)
물론 실제로는 더 복잡한 문제긴 했지만 대충은 이게 맞다.
그렇게 헨리는 종교까지 갈아치우면서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화했고
'앤 불린'이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놀라운건 앤 불린의 언니인 메리 불린도
헨리의 정부였다는거다...
메리 불린은 왕의 자식일지도 모르는 자식을 두 명이나 낳기도 했다.
이 두 놈이 진짜 헨리의 자식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앤 불린은 자신의 언니가 왕의 총애를 잃어가는 과정을 이미 봤었기에, 왕의 정부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왕비가 되기 전까지는
헨리와의 잠자리를 거절했다.
원하는걸 다 가질 수있었던 헨리에게
앤 불린같은 여자는 처음이었을 거다.
그래서 종교개혁까지 하면서 그녀를 왕비로 만들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앤 볼린 역시 아들을 낳지 못했고
점차 둘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헨리는 온갖 이유를 갖다대면서 그녀를 사형시켰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종종 장희빈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후에도 헨리는 부인을 계속해서 바꿔대서
총6명의 왕비를 뒀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왕비"가 6명인거고,
정부는 또 따로 있었다ㅎㅎ...
이처럼 동양의 후궁과 서양의 정부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완전히 달랐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