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엔하위키
(원글 : 여성시대 여울가녘)
조선왕조실록이 왜란, 호란 등을 거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철저한 백업정신!!
조선왕조실록은 세종실록 때부터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궁궐 내 춘추관에 보관하는 정초본 외에 활자로 3부를 더 만들었는데
이 3부를
충청북도 충주
경상북도 성주
전라북도 전주
(전주 서고)
춘추관에 있는 것까지 도합 4곳의 서고에 보관하였음
그리고 곰팡이라던지 좀 먹는걸 방지하기 위해
3년에 한번씩 서고에서 실록을 꺼내 말리는 작업도 하였음
이런 철저한 백업과 관리를 받던 실록이
첫번째로 위험에 처하게 된건
임진왜란 때임
임진왜란 속에서 전주 사고에 있던 실록 외의 다른 실록이 모두 소실됨(불탐)
전주 사고본도 안의와 손흥록이라는 두 유생이 사재를 털어 책을 모두 내장산으로 옮겨 살아남았음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때 전후의 그 어려운 시절에도
춘추관, 마니산(강화도), 오대산(강원도 평창), 태백산(강원도 태백), 묘향산(평안북도)에
5대 사고를 마련하여 기존의 실록을 재출판하여 5부의 신록을 만듬
하지만 실록의 위험은 이에 그치지 않았음
실록이 또다시 위험에 처한건
병자호란 때임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춘추관 사고에 있던 실록은 모두 불타서 소실 되었고
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묘향산 사고본은 → 적상산(전라북도 무주)
마니산 사고본은 → 정족산(강화도)
이사를 가야했음
여기서 실록의 수난이 끝나면 좋겠지만
다들 아시자나여 빌어먹을 일본이 남았다는 시실을 ─ ─
일제강점기에도 역시나 우리의 실록은 수난을 받음ㅠㅠ
일본 존간나시키들이 사고를 철폐함에 따라
적상산 사고본은 → 창덕궁 장서각으로
정족산, 태백산 사고본은 → 총독부 → 경성제국대학이 개교하면서 경성제대 도서관으로 강제 이송을 당했고
오대산 사고본은 → 동경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이송을 당했는데
여기서 졸라 빡치는 점은
이 동경제국대학으로간 사고본이
관동대지진때 대출해준 20여권을 뺀 나머지를 대부분을 소실함......
이런 ㅅㅂㄻ
그리고 살아남은 72권도 2006년에서야 반환함
이런 ㄱㅅㄲ
그리고 정말 마지막 고비가 남았으니
6.25 한국전쟁임
적상산 사고본은 6.25 당시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때
김일성의 명령으로 평양으로 이송된 뒤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에서 보관중인 것으로 보이며
이 실록이 북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수차례의 폭격 받을 위기를 넘기고 천운으로 살아남은 실록임ㄷㄷ
그리고 나머지 정족산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태백산본은 부산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되어 있음
어쩜 우리가 실록을 볼 수 있는거 자체가 천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