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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내가 패배자라고 느껴질때 읽어보면 좋을 몇몇 야구선수들 인생사

작성자희비케|작성시간22.01.15|조회수4,468 목록 댓글 9

 출처 : 여성시대 교류직류







내가 패배자라고 느껴지고

앞으로 좋은 일이 더이상 안 일어날 거 같은 느낌이 들 때

나는 이렇게 도태되는 거 같은 느낌이 들 때




몇몇 야구선수들의 인생사를 생각하며 삶을 견딤








시작하기에 앞서 프로야구계의 입단 제도인 "드래프트" 제도를 설명하겠음





매해 약 1000명의 신인이 프로구단에 들어가기 위해 드래프트에 지원함

그중에 1차지명 10명, 2차지명 100명 약 10%의 선수들만 프로에 들어올 수 있음




그럼 나머지 90%는 어떻게 하느냐


1. 고졸자의 경우

- 대학교를 가 졸업한 뒤 다시 지명을 기다림

- 신고선수(연봉을 안 받고 소속팀에 들어가 야구를 배움)로 입단함



2. 대졸자의 경우

- 신고선수로 입단함

- 독립야구단에 입단해 다시 드래프트를 기다림










여기, 드래프트로 구단에 들어가지 못했던 선수가 있음






신일고등학교 출신 김현수

청소년 국가대표로도 뛸 정도로 뛰어난 외야수였지만



안타깝게 2006년 신인 드래프트를 받지 못 하고

두산 신고선수로 입단하게됨









신고선수로 입단한 김현수는 마음을 더 독하게 먹었는지

하루에 1000번씩 스윙연습을 했다고 함




하루는 수비 중 펜스플레이를 하다가 펜스에 크게 부딪혔는데

개의치않고 툴툴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감독 눈에 띄어 2007년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가게 됨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김현수는

그 다음해인 2008년 베이징올림픽 막내로 참하게 되고


금메달을 따고 금의환향 하게 됨








그 이후 승승장구한 김현수는 한국인 최초로 FA로 메이저리그에 진출





현재는 LG TWINS의 주장을 맡고 있음


이렇게 열심히 살았으니 민원24 쓰는법을 모르지...














김현수와는 다르게 운좋게도 프로야구 지명을 받은 선수가 있음






성남고등학교 투수 배제성

배제성의 고등학교 기록은 처참했음




고1때는 7.1이닝, 평균자책점 14.14

고2때는 1.1이닝, 평균자책점 45.00

고3때는 수술로 인하여 경기기록 없음






그런데 평소의 성실함, 좋은 신체조건때문에

롯데자이언츠 9라운드 전체 88번으로 프로에 들어오게 됨

(100명 중 88명이니 거의 문닫고 들어온 셈)




본인도 지명 안될거라 생각했는지 드래프트장에 오지 않은 듯 함

원래 지명받으면 선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하는데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배제성..ㅋㅋㅋㅋㅋ










배제성은 1군등판은 단 한 번도 못 해보고

2군-3군에서 훈련하고 교육받다

트레이드로 kt wiz로 이적하게 됨








물론 그때도 배제성은 주목받지 못했음


오태곤이 kt로 이적하며 딸려온 '쩌리'라는 이미지가 강했음




쩌리는 쩌리답게 역시 2017년에 잠깐 1군에 있다가

2018년에 계속 2군에서 훈련하는 생활을 함








그러다 2019년에 새로 부임한 감독이

2군을 들렸을 때 눈에 띄게 되고


평소 선발야구가 안되던 kt의 선발투수로 뛰기 시작함








배제성은 kt 토종투수 첫 10승 달성이라는 구단의 역사를 쓰게 되고

현재는 근 3년간 최다승 투수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음














2006년은 프로야구 역사상 역대급 드래프트가 있던 해였음


2006년에 프로입단한 선수들 이름만 들어도 억소리 나는 정도


류현진 차우찬 강정호 황재균 원종현 민병헌 김상수 최주환 등등..






근데 여기 그들에 가려져 있던 선수가 있었음



진흥고 양의지(왼쪽)



당시 양의지는 기아 스카우트 팀장에게

"대학을 갔다 오면 지명해 주겠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함


양의지는 그걸 듣고 이 팀이 날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함






반면 두산의 경우 상황이 좀 달랐음



당시 두산의 주전 포수인 홍성흔(아내 연상인거 나중에 안 그사람 맞음)이

잦은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하위라운드에서라도 포수를 한 명 잡자 라는 생각으로


별 기대 없이 2006년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양의지를 뽑았음









양의지는 입단하자마자 경찰청 야구단에 가 병역문제를 해결함

그리고 그곳에서 야구실력을 갈고 닦았음









제대한 양의지는 1군에서 첫 포수 선발경기를 하게 됨

사실 그 경기 이후 2군에 내려보낼 예정이었다는데

그 경기에서 홈런 두 방을 때려내며 두산의 안방마님으로 자리잡음










양의지는 신인 포수 최초, 그리고 유일 20홈런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당당히 신인왕 타이틀을 따내게 됨










이후 양의지는 두산을 통합우승 시키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침


그리고 FA를 통해 4년 총액 125억이라는 프로야구 사상 최고 계약금으로

NC 다이노스에 이적을 하게 되고







2020년, NC의 우승을 견인하며 125억의 가치를 입증하는 중임


여담으로 포수 유일 사이클링히트 기록도 양의지가 가지고 있음











마지막으로 소개해 줄 선수는 삼성라이온즈 박해민임








신일고등학교 소속 박해민은 "이도저도 아닌 선수"였음

주로 내야수를 주로 하지만.. 그러나 뛰어난 것도 없는...









프로에 입단하지 못하고

한양대에 진학한 박해민은 대학에 들어오자 마자 입스가 생기게 됨
(이때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함)

그러던 1학년 말쯤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하게 되고, (정보 잘못돼서 수정했어요 알려준 여시 고맙!!)

쉬는시간마다 개인연습을 하는 등 정말 열심히 야구했다고 함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반등하기 시작한 박해민은

결국 대학교 4학년 때는 0.429라는 최고의 타율을 기록함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박해민은 결국 지명되지 못함







지금의 박해민은 누구나 인정할 대한민국 최고의 중견수지만

두번째 드래프트에 떨어졌을 때는 정말 많이 울었고

야구를 관두려고 했다고 함






그러던 중 삼성과 SK에서 신고선수로 입단하라는 제의가 왔고

야구를 계속 해보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먼저 연락이 온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게 됨 (수정된내용)






2012년,


신고선수였던 박해민은 세자릿수의 등번호를 부여받았는데

그게 너무 부끄러웠었다고 함 (위 사진은 그 이후 사진)



또한 대학생때부터 있던 고질적인 어깨부상으로 인해

공을 못 던질 지경이 되자 선수생활을 관두려고 했었지만


2군 코치님의 설득으로 계속 버텨나갔다고 함









13년, 박해민은 1군에서 주로 대주자로 경기에 나가다가

14년, 포스트시즌 주전 중견수로 활약할 정도로 성장함









컨택도 잘 하고, 특히 수비와 주루에서 날라다니는 박해민은

박해민은 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주전으로 나가 금메달을 따고


삼성라이온즈의 16-20년 암흑기 시절동안 빛이 되어준

프랜차이즈 3인방 '김구박'에서 박 역할을 맡고 있음









이걸 보는 여시들 모두

나의 노력, 나의 성적을 세상이 알아주지 못 한다고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나의 기회가 온다는걸 꼭 기억할것!!






(여시들 으쌰으쌰하라고 쓴 글입니다 맥락없는 혐오는 삼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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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움파룸파족족 | 작성시간 22.01.15 너무 좋은 글이다 우울했는데 아침에 보고 힘났어!
  • 작성자안중열 | 작성시간 22.01.15 아 나는 정훈도 있을줄...! 여기도 인생사 참ㅠㅠㅠㅠㅠㅠㅠㅠ
  • 작성자배고파디짐12 | 작성시간 22.01.15 와ㅠㅠㅠ 글 고마워
  • 작성자뚜루룽루루 | 작성시간 22.01.15 글 고마워…
  • 작성자나는 할 수 있다 | 작성시간 22.01.15 고마워 글 써줘서
    정말 준비하는 자에게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좀 더 힘내봐야지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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