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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삼국시대 왕들 외모

작성자Re:vale|작성시간22.07.09|조회수2,576 목록 댓글 6

<신라>

1. 혁거세 거서간

- 나이 10여 세가 되자 재주가 특출하고 숙성하였다. -<삼국사기>

 

- 알을 쪼개 보니 형용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있었다. -<삼국유사> 

 

2. 남해 차차웅: 신체가 장대하고 성품은 침착하고 중후하였으며 지략이 많았다.-<삼국사기>

 

3. 탈해 이사금:  장성하자 신장은 9척이고 풍채가 훤하며 지식이 남보다 뛰어났다. …  처음에 고기잡이로 생업을 삼아 어미를 공양했는데 게으른 기색이 전혀 없었다. … 어미가 말했다. “너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고 골상(骨相)이 특이하니 배움에 정진해 공명을 세워라.” 이에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고 아울러 지리(地理)를 알았다. -<삼국사기>

 

4. 파사 이사금:  검약하며 씀씀이를 아끼고 백성들을 사랑하여 나라 사람들이 가상히 여겼다. -<삼국사기>

 

5. 일성 이사금: 처음에 탈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신료들이 유리의 태자 일성을 추대하려 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일성은 비록 왕위를 이을 친아들이나, 위엄과 현명함은 파사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일성은 적통의 자식이지만 위엄과 지혜가 파사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드디어 그(파사 이사금)를 추대했다. -<삼국사기>(주: 인물됨은 일성이 파사에게 못 미쳤다는 이야기?)


6. 아달라 이사금: 키가 7척이고 콧마루가 두터워 진귀한 상이었다. -<삼국사기>


7. 벌휴 이사금: 왕은 바람과 구름을 점쳐 홍수와 가뭄, 그리고 그 해의 풍흉을 미리 알았다. 또 사람의 사악함과 정직함을 알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성인이라고 하였다. - <삼국사기>


8. 나해 이사금: 용모가 웅장하고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삼국사기>


9. 조분 이사금: 왕은 키가 크고 풍채가 뛰어났으며 일을 함에 있어 명철하고 과단성 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하였다. - <삼국사기>


10. 기림 이사금: 성품이 너그럽고 후덕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송하였다. -<삼국사기>


11. 흘해 이사금: 석우로가 임금을 섬기는 데 공이 여러 번 있어 서불한이 되자 용모가 뛰어나고 담력이 있으며 머리가 뛰어나 일을 하는 것이 보통사람들과 다른 것을 보고 제후에게 말하였다. "우리 집안을 일으킬 사람은 반드시 이 아이일 것이다." 이때 이르러 기림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군신들이 의논해 말하기를 "흘해가 어리지만 노련한 덕이 있다"고 하며 이에 그를 받들어 세웠다. -<삼국사기>


12. 실성 마립간: 키가 7척 5촌이고 두뇌가 명철하고 사리에 통달해서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다. - <삼국사기>


13. 소지 마립간: 어려서부터 부모를 잘 섬기는 행실이 있었고, 겸손과 공손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지켰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삼국사기>


14. 지증 마립간
-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삼국사기>


- 왕은 O경의 길이가 1척 5촌이나 되어 훌륭한 배필을 구하기가 어려워 사신을 삼도(三道)에 보내 배필을 구하였다. -<삼국유사>


15. 법흥왕:  왕은 키가 일곱 자였고, 성품이 너그럽고 후하여 사람들을 사랑하였다. -<삼국사기>


16. 진흥왕

-왕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불교를 받들었다. 말년에는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으며, 스스로 법운(法雲)이라고 칭하다가 죽었다. -<삼국사기>
               
-왕은 임종할 때에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운명했다. -<삼국유사>


17. 진평왕
- 왕은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용모였고, 신체가 장대하고 뜻이 깊고 굳세었으며, 지혜가 밝아서 사리에 통달하였다. -<삼국사기>


- 대건 11년 기해 8월에 왕위에 올랐는데 신장이 11척이나 되었다. 내제석궁(內帝釋宮)에 행차하였는데, 돌계단을 밟으니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삼국유사>


18. 선덕여왕: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유명한 '향기 없는 꽃' 일화를 소개한 후) 미리 알아보는 식견이 이와 같았다. -<삼국사기>


19. 진덕여왕: 생김새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가 일곱 자였고 손을 내려뜨리면 무릎 아래까지 닿았다. -<삼국사기>


20. 태종 무열왕
- 왕은 용모가 영특하고 늠름하여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스릴 뜻이 있었다. -<삼국사기>


- 왕은 하루에 쌀 서 말과 꿩 아홉 마리를 잡수셨는데 경신년 백제를 멸망시킨 후에는 점심은 그만두고 아침과 저녁만 하였다. 그래도 계산하여 보면 하루에 쌀이 여섯 말, 술이 여섯 말, 그리고 꿩이 열 마리였다. 성안의 시장 물가는 베 한필에 벼가 30석 또는 50석이었으니 백성들은 성군의 시대라고 말을 하였다.  -<삼국유사>


- 당 황제는 그의 풍채를 보고 칭찬하여 신성한 사람이라 하고 기어이 머물러 시위(侍衛)를 삼으려 했으나 극구 청하여 돌아왔다. -<삼국유사>


- 김춘추는 용모와 자태가 아름다웠으며 담소를 잘했다. -<일본서기>


21. 문무왕: 평소에 맵시가 영특하고 총명하며 지략이 많았다. - <삼국사기>


22. 경덕왕: 왕은 옥경(=19)의 길이가 8치나 되었다. -<삼국유사>


23. 혜공왕: 어린 왕은 이미 여자로서 남자가 되었으므로 돌날부터 왕위에 오를 때까지 언제나 여자들이 하는 장난을 하고, 비단주머니 차기를 좋아하며, 도류(道流)와 어울려 희롱하였다. -<삼국유사>


24. 경문왕


- 왕의 침전에는 매일 저녁이면 많은 뱀들이 모여들었다. 궁인(宮人)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쫓아내려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만약 뱀이 없으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으니 쫓아내지 말라”고 하였다. 언제나 잘 때에는 혀를 내밀어 온 가슴에 펴고 있었다. -<삼국유사>


- 왕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왕의 귀는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의 귀처럼 되었다. -<삼국유사>


25. 헌강왕: 왕은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며,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해 눈으로 한 번 본 것은 모두 입으로 외웠다. - <삼국사기>


26. 진성여왕: 누이동생 만 (曼=진성여왕)은 천품이 명민하고 골격이 흡사 장부와 같으니… - <삼국사기>, 오빠 정강왕의 유조 중


<고구려>

1. 동명성왕

골격과 외모가 영특하고 호걸다웠다. 나이 일곱 살에 영리하고 예사롭지 않아서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삼국사기>

 

골격이나 외양이 영특하고 신기롭게 생겼다. 나이 겨우 일곱 살에 뛰어나게 숙성하여 제 손으로 활과 살을 만들어 1백 번 쏘면 1백 번 맞혔다. -<삼국유사>

 

2, 대무신왕: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지혜가 있었다. 성장하여서는 영웅호걸로 큰 지략이 있었다. -<삼국사기>

 

3. 모본왕: 사람이 사납고 어질지 못하며 나라 일을 돌보지 않아 백성들이 이를 원망하였다. -<삼국사기>

 

4. 태조왕: 왕은 태어나면서 눈을 뜨고 볼 수 있었고 어릴 때부터 뛰어나게 영리하였다. -<삼국사기>

 

5. 차대왕: 날쌔고 씩씩하며 위엄이 있으나 인자함이 적었다. -<삼국사기>

 

6. 신대왕: 예의바르고 영특하며 성품이 인자하고 너그러웠다. 처음에 차대왕이 도리를 어겨서 신하와 백성이 따르지 않고, 화란이 있어 피해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끝내 산골짝이로 피하였었다. -<삼국사기>

 

7. 고국천왕: 왕의 신장은 9척이고 자태와 표정이 씩씩하고 뛰어나며 힘이 능히 솥을 들 만하였고, 일을 함에 있어서는 남의 말을 들어주고 끊어버림과 관대하고 엄격함이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알맞았다.-<삼국사기>

 

8. 동천왕

- 왕은 성품이 관대하고 인자하였다. 왕후(고국천왕과 산상왕의 비 우왕후)가 왕의 마음을 시험해보려고 왕이 다른 곳으로 나가 놀기를 기다려 사람을 시켜 왕이 타는 말의 갈기를 자르게 하였다. 왕이 돌아와 말하기를 “말이 갈기가 없어 어여쁘구나.”라고 하였다. 또 시중드는 사람을 시켜 식사를 올릴 때 왕의 옷에 국을 엎질렀으나 역시 화를 내지 않았다. -<삼국사기>

 

-왕이 죽자 나라 사람들이 그 은덕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가까운 신하들이 자살하여 따라 죽으려고 하는 자가 많았으나, 새 왕이 예가 아니라 하여 이를 금하였다. 장례일에 이르러 무덤에 와서 스스로 죽는 자가 매우 많았다. 나라 사람들이 잡목(柴)을 베어 그 시체를 덮었으므로, 드디어 그 땅의 이름을 시원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9. 중천왕: 예의에 맞는 차림새를 하고 재주와 슬기가 뛰어나며 지략이 있었다. -<삼국사기>

 

10. 서천왕: 성품이 총명하고 도리를 알며 인자하여 나라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삼국사기>

 

11. 봉상왕: 어려서 교만하고 의심과 시기가 많았다. -<삼국사기>

 

12. 미천왕: 몸과 얼굴이 야위고 마르고 의상이 남루하여 사람들이 그를 보고도 그가 왕손인 줄을 알지 못하였다. 이때 국상 창조리가 장차 왕을 폐하려고 먼저 북부의 조불(祖弗)과 동부의 소우(蕭友) 등을 보내 산과 들을 물색하여 을불(미천왕) 을 찾게 하였다. 비류 강변에 이르러 한 장부가 배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몸과 얼굴은 비록 초췌하나 동작이 보통이 아니었다. -<삼국사기>

 

13. 소수림왕: 키가 크고 웅대한 계략이 있었다. -<삼국사기>

 

14. 광개토왕

- 태어나서 씩씩하고 뛰어나며 대범한 뜻이 있었다. -<삼국사기>

 

- 영웅의 위의로 특출한 재주가 있어, 능히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취하였다. -<동사강목>(주: 동사강목은 조선시대의 사료이지만, 광개토왕의 특징을 간결명료하게 표현한 문장이라 생각해서 같이 올려봅니다)

 

15. 장수왕: 몸과 얼굴이 크고 잘 생겼으며 뜻과 기운이 호걸을 초월하였다. -<삼국사기>

 

16. 안원왕: 키가 7척 5촌이고 큰 도량이 있어 안장왕이 그를 사랑하였다. -<삼국사기>

 

17. 양원왕: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지혜가 있었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용맹하고 호탕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삼국사기>

 

18. 평원왕: 담력이 있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였다.-<삼국사기> 

 

19. 영양왕: 풍채와 정신이 뛰어나고 호쾌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삼국사기>

 

<백제>

 

1. 다루왕: 도량이 넓고 명망이 높았다. -<삼국사기>

 

2. 기루왕: 뜻과 식견이 넓고 원대하여, 사소한 일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삼국사기>

 

3. 개루왕: 성격이 공손하고 품행이 단정하였다. -<삼국사기>

 

4. 구수왕:  신장이 7척이고 풍채가 특이하였다. -<삼국사기>

 

5. 사반왕:  왕위를 이었으나 나이가 어려 정사를 잘 처리하지 못하였다. -<삼국사기>

 

6. 책계왕: 체격이 장대하고 의지와 기품이 걸출하였다. - <삼국사기>

 

7. 분서왕: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풍채가 걸출하였으므로 왕이 그를 사랑하여 항상 옆에 두었다. -<삼국사기>

 

8. 비류왕: 성격이 너그럽고 인자하여 사람을 아끼며, 또한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다.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에 있으면서 명성을 떨쳤다. -<삼국사기>

 

9. 계왕: 천성이 강직하고 용맹스러웠으며, 말 달리고 활쏘기를 잘하였다. -<삼국사기>

 

10. 근초고왕: 체격이 크고 용모가 기이하였으며, 원대한 식견이 있었다. -<삼국사기>

 

11. 진사왕: 사람됨이 용맹하며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삼국사기>

 

12. 아신왕: 그가 한성의 별궁에서 태어났을 때 신비로운 광채가 밤을 밝혔다. 장성하자 의지와 기풍이 호방하였으며, 매 사냥과 말타기를 좋아하였다. -<삼국사기>

 

13. 비유왕: 용모가 아름답고 말을 잘 하여 사람들이 따르고 귀중히 여겼다. -<삼국사기>

 

14. 문주왕:  우유부단하였으나 또한 백성을 사랑하였으므로 백성들도 그를 사랑하였다. -<삼국사기>

 

15. 동성왕: 담력이 대단히 컸으며, 활을 잘 쏘아 백발백중이었다. -<삼국사기>

 

16. 무령왕: 신장이 8척이고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민심이 그를 따랐다. -<삼국사기>

 

17. 성왕: 지혜와 식견이 뛰어나고 일을 처리함에 결단성이 있었다. 무령왕이 사망하고 왕위에 오르자 백성들이 성왕이라고 불렀다. -<삼국사기>

 

18. 무왕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고 기상이 걸출하였다. -<삼국사기>

 

- 재기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삼국유사>

(주: 삼국유사에는 서동요의 주인공이 무왕이라고 적고 있지만 사실 서동은 무왕이 아니라는 설도 있지요. 일단 삼국유사의 기록을 따릅니다)

 

19. 의자왕

- 용감하고 대담하며 결단성이 있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서 당시에 해동증자 (海東曾子)라고 불렸다. -<삼국사기>

 

- 영웅스럽고 용맹하여 담력이 있었으며 부모 섬기기를 효도로 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 당시 해동증자라고 불렀다.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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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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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얌체맛백신 | 작성시간 22.07.09 그 당시에도 백제인들 미남이였다며...근데 왜...
  • 작성자둥지를틀어봐 | 작성시간 22.07.09 지금 진짜 얼굴에 콘돔써야되는 것들만 남아버림
  • 작성자날라리리릴리 | 작성시간 22.07.09 근데 왜...지금은...
  • 작성자일찍일어남 | 작성시간 22.07.09 조상님들......
  • 작성자추운날엔핫초코 | 작성시간 22.07.10 쭉정이만 남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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