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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한방울]가정형편이 어려운 전교 꼴찌.jpg

작성자조지아|작성시간22.12.23|조회수13,261 목록 댓글 41

출처 : 여성시대 조지아

 

 

 

모바일배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내어 나는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격려의 잔치)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 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손자민우를 기억하시라 ...ㅋㅋ

 

 

그는 어렸을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그런 그를 꾸짖기는 커녕 감싸주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배웠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것을 배웠다. 내 자식은 고생 안 시켜야겠다는 다짐도 했을터다. 

 

진정한 자식사랑은 잘못을 꾸짖는 것이다. 한때 총장으로 명성이 높았던 그는 결국 죽을때까지,아니 죽어서도 계속 인터넷에서 불명예스럽게 떠돌것이다. 그의 부모님의 잘못된 교육방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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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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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쑥즙존나맛없내 | 작성시간 22.12.23 내눈물 돌려내셈
  • 작성자욱욱걸즈 | 작성시간 22.12.23 헐 내눈물..돌려내
  • 작성자닉넴짓기귀차나 | 작성시간 22.12.24 ㅅㅂ
  • 작성자오늘도 행복한 하루 | 작성시간 22.12.24 내 북마크 돌려내
  • 작성자알앤비광인 | 작성시간 22.12.24 세상에.... 진짜 교훈 맵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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