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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없는 혐오댓 절대금지!!!
스압주의
2017. 9. 18.
어느덧 33살이 되었다.
여름에는 잠만 자도 살이 쑥쑥 빠졌건만,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라고 여름보다 덜 먹는데도 살이 야금야금 찌는데다 식욕마저 왕성해져서 고통스러운 요즘이다.
최근 1년 반동안 내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것에 대해 한번 기록해둬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인스타나 페북, 트위터 같은 sns는 최근에서야 계정을 만들어 두었고, 그전엔 해본 적이 없을 뿐더러,
한때나마 열심히 활동하고 최근에도 그나마 꾸준히 눈팅하는 곳이 네이버랑 루리웹 정도라 루리웹에 글을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더랬다.
평소 루리웹에 ‘다이어트 성공했어욥~!’라며 올라오는 글을 보며 내심 부러워했는데 내가 저런 ‘다이어트 성공해쩌염~!’하고 글을 올리게 되다니 참 감개무량할 따름.
1. 첫 번째 다이어트 성공 그리고 요요
외가나 친가나 전부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이러한 요소 덕분에 난 어릴 때부터 소아비만 상태였다.
게다가 성격도 조용하고 내성적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또래 남자애들이 점심 먹고 축구 농구를 할 때, 난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그림 그리는 게 취미이자 낙이었다.
이제와 가만 보니 살이 안찌면 이상할 정도였군요?
부모님이 서울에서 자리 잡는 동안 대구 외가댁에서 살다가 유치원 들어갈 무렵, 부모님 따라 서울로 상경했다.
이사도 잦았고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경상도 사투리로 놀림을 받았는데, 이게 소심하고 어린 나이에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언제부터인가 살은 계속 찌기 시작했다.
방학 때 대구 내려온 외손자가 돼지 상태로 등장한 것에 놀란 외할아버지께서 단식원 보내라고 해서 초등학교 4학년 방학 때, 경희대 한방병원에서 입원 단식함.
병실에 묵으며, 관장하고 오로지 감잎차만 마시며 냉탕온탕 사우나를 반복해서 드나들어야 했다.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었다.
저 떫고 신 감잎차를 못 마셔서 탈수증세가 심각해지자 의사가 게토레이를 조금 물에 태워 마시도록 특별처방 지시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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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케이크를 좋아한다.
어느 날, 단식하면서 고통 속에 잠들었는데 꿈에서 미로같은 골목길이 등장했고, 딸기케이크가 눈앞에 있어서 먹으려고 손을 뻗자 갑자기 딸기케이크에 발(!)이 생기더니 잽싸게 도망쳐서 종일 잡으려고 쫓아다녔다고 병실에서 어머니와 이모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어쨌든 고생 끝에 내 생애 최초로 다이어트 성공했고, 마른 몸을 자랑하며 방학 내내 외가집에서 새옷으로 패션쇼를 열었더랬다.
하지만 방학이 끝나고 학기 시작하자마자 받는 스트레스로 슬슬 다시 먹는 걸로 풀기 시작하더니, 결국 원상복구 되어버리면서 내 생애 최초 다이어트는 이렇게 실패하고 만다.
2. 두 번째 다이어트 성공 그리고 요요
초중고와 대학을 올라가면서 착실하게 살을 찌운 난 어느새 140kg가 넘는 거구의 초고도비만인이 되어 있었다.
이제 군대도 가야 하는데.
저때까지도 아직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신념에 부응하고자 난 살을 빼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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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다이어트 계획표
아침 – 관악산 하루 1회 아침 혹은 점심. 부족하다 싶으면, 하루 2회.
저녁 – 서울랜드 호수 산책로 걷기 (기본 1바퀴 혹은 2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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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중학교 뒷문 쪽으로 난 관악산 입구에서부터 올라가는 등산코스였다.
이 때만해도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서 매표소를 설치해서 입장료를 받던 시기였다.
나는 관악산을 매일 1~2번 다니면서 살을 빼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초기에는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심장마비가 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로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연주암까지 못 갈 것 같아서, 제1 약수터까지만 갔다 왔다.
고작 저기 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려서 산을 내려오는 내내 넘어져서 뒹굴까봐 걱정함.
‘난 살이 너무 쪄서 산타다 자빠져서 기절이라도 하면 구급대원 아저씨들에게 민폐지, 암.’
하루 운동하고 나면, 피로가 누적되어서 다음날 기상하는 게 매우 힘들었다.
허나, 생전 처음으로 ‘운동’을 통해 살 빼는 거여서 그런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몸의 변화가 신기해서 후반에는 살 빠지는 재미도 느낄 정도였다.
하다 보니 몸이 적응했는지, 어느새 난 제1 약수터 정도는 가뿐하게 지나가고, 제2 약수터를 거쳐 연주암에 도달한 것이다.
처음 연주암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그렇게 약6달 동안 살을 100kg까지 빼고, 마지막 1달 사이 입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아서 110kg까지 찐 상태에서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논산훈련소에선 당연히 비만소대.
간신히 육군 만기전역을 하고 나왔을 땐,
내 몸무게 79kg였다.
3. 또다른 다이어트 시도와 실패
입대 전에 다니던 대학 학과에 대한 회의감과 장래에 대한 고민으로 일단 휴학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군제대하고 사회로 나온 기쁨으로 인해 난 어느새 정신줄 놓고 폭풍먹방을 찍기 시작했고, 어느새 체중계는 90kg을 넘어서고 있었다.
보다못한 어머니께서 동네아주머니의 아들에게 알바 주선 좀 해달라고 부탁했고,
어머니에게 부탁받은 동네형의 권유로 (하필이면) ‘고등학교 급식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해보는 급식 알바의 일은 괜찮았다.
그러나 제공되는 식사도 무지 괜찮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학생들 점심 배식이 끝나고, 직원들 식사 하는데, 배식하고 남은 돈까스를 4-5개씩 집어먹을 정도니 말 다했다.
맛난 급식에 취해 마구 음식 흡입하다가 결국 입맛이 대폭발했고, 또 요요가 찾아왔던 것이다.
사실 한번 살 빼고 요요 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요요가 와서 또다시 고통스런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 살빼기를 하는 동안 또다시 느끼게 될 주위 타인들의 조롱어린 시선은 처음에 했던 다이어트보다 몇 배로 참기 힘들다.
한번 다이어트를 성공해서 성공의 단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요요는 살 빼려는 의지를 이전 다이어트 때보다 더 빠르게 박살내버린다는 점에서 끔찍하다.
살이 찐 상태에서 어영부영 입학한 두 번째 대학도 ‘학과에 대한 회의감 50% + 과다체중으로 인한 자신감 하락’으로 인해 중도하차하고 만다.
그때쯤부터 아버지와의 불화는 점점 심해져서 자의반타의반 원룸 하나 구해서 독립을 하게 되는데, 원룸에서 들어앉아서 문 밖으로 한발자국도 안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오죽했으면, 원룸 집주인 아줌마와 아저씨께서 걱정되어서 베란다 창문으로 슬쩍슬쩍 내 방안의 상황을 훔쳐보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생필품은 어머니께 전화 부탁해서 인터넷 주문했다.
그래도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오가는 사람들이 적은 밤9시 넘어서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오곤 했다.
배달음식을 거의 매일 시켜먹었다.
1일1치킨은 기본에 3일 동안 연속해서 족발 大자를 시켜먹어서 과다섭취한 염분 때문에 팔과 다리가 퉁퉁 부어서 이틀을 방바닥에 몸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 화장실을 기어가기도 했다.
혈뇨를 보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마치 작정하고 인생 망치기로 한 사람처럼 저렇게 살았었다.
결국 부모님에게 이끌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
어머니의 강력한 의지로 서울 강남 모 병원에서 위밴드 수술을 받게 된다.
위밴드 수술을 받으면서 이렇게 의지력 없이 그것도 어머니와 함께 병원 방문한 어른이.
저게 바로 나였다.
의사도 꺼림칙한지 상담 내내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해 줄 정도였다.
수술 자체는 간단하고 빠른데,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위밴드에 식염수를 넣고 조여주고 풀면서 식단관리와 더불어 살을 빼야하는 건데, 살 빼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난 배고픔을 못 참아 위밴드 수술을 받고 죽을 먹여야 하는데, 며칠도 안되었음에도 혼자 취사해서 일반식을 먹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식염수로 채워서 빡세게 조여진 위밴드 탓에(이렇게 식염수로 세게 조여진 상태를 ‘빡필’이라고 하더라) 음식이 위로 제대로 들어갈리 없었고,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를 반복했다.
종래에는 의사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왜 이렇게 체중감량이 안되냐고 찾아온 나에게 반문할 정도였다.
의사랑 간호사 얼굴 보는 것도 짜증나고 싫어서 병원 가는 건 때려쳤다.
결국 나의 의지 부족으로 인해 위밴드 수술은 실패하고 만다.
(이후, 약 6년이 지난 뒤에 자력으로 다이어트 성공하고 나서 위밴드 상태가 어떤지 병원 가서 살펴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내 이름을 검색해서 진료기록을 본 간호사들이 깜짝 놀라더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약6년이 지나 뵙는 의사선생님의 앞머리카락은 조금 하얗게 새어 있어서 한우물만 파는 사람들 특유의 권위자 냄새가 다분했다.
보통 수술받고 진료포기하는 분들은 다시 원상복구 되던가 오히려 살이 더 쪄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이렇게 살을 뺐냐고 이런 경우는 드물다고 감탄하시더라.
그저 심경에 변화가 생겨서 요 1년간 운동 다니며 뺐다고 했다. 뭐 이게 사실이었고.
밴드 상태를 확인해보니, 밴드는 잘 있고, 밴드를 채우던 식염수가 이미 다 증발해서 밴드의 조임도 다 풀린 상태라 정말 본인의 의지로 살을 뺀 거라고 대단하다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다시 밴드 조이겠냐고 하시길래 안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처진 뱃살을 살피면서 은근슬쩍 처진 살 수술을 권유하시길래 역시 안하겠다고 했다.
나오는데, 쇼파에 대기하고 있던 아주머니2분이랑 어떤 아가씨가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속으로 날씬해지라고 빌어주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4. 방구석 폐인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던 위밴드 수술의 실패로 인해 난 자기혐오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더불어 자기 인생의 오점이나 다름없다고 날 짐승보듯 경멸하는 아버지와도 심하게 사이가 벌어져 있었다.
집 방안에만 틀어박혀서 약 11년 가까이 히키코모리? 방구석 폐인으로 지냈었더랬다.
한달에 한번도 집 밖 외출을 안 하던 때도 있었다.
하루 일과라곤 눈뜨면 컴퓨터 켜서 인터넷 서핑하고 게임하고 먹고 싸고 자는 일이 전부였으니.
가족이 식사를 끝내면, 몰래 밥을 차려서 방안에서 문 걸어 잠근 뒤에 먹곤 했다.
끼니 때마다 물 대신 우유를 마셨던 건 기본.
어머니께서 끓여둔 김치찌개 한 냄비를 혼자 다 뱃속에 털어 넣었다.
도미노 피자? 피자헛? 저딴 비싸기만 하고 작은 피자는 시키지도 않았다.
‘피자클릭’이라고 피자 라지 두판 씩 파는 동네 피자집에서 피자L 2판과 우유 페트병 1.8L 2병씩 앉은 자리에서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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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생활하다보면 알겠지만 동네아줌마들의 눈과 입, 귀만큼 무서운 게 없더랬다.
진짜 동네아줌마들이 날 가지고 씹든지 말든지 그다지 관심 둘 필요가 없는 건데, 저 때만해도 누가 날 24시간 감시하는 느낌이 들어서 낮에 방에 있을 때도 커튼을 다 쳐두고, 빛이 새어나갈까봐 컴퓨터 모니터 밝기도 40이하로 낮추고 게임을 할 정도였다.
내내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니 점점 자신이 미쳐가는 게 나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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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외식하자고 빕스나 애슐리 가자는 것조차 버스정류장까지 갔다가 살찐 내 자신이 너무 혐오스럽고 바깥세상이 무서워서 도망치듯 혼자 다시 집. 방안으로 돌아온 게 생각난다.
암만 폐인이라도 남들은 잘만 드나드는 편의점조차 알바랑 대면해야 하는 것이 껄끄러워 못 갈 정도였으니.
그래도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게임하다가 도저히 배고픔을 못 참으면, 새벽5시 정도에 바람처럼 들어가서 말 한마디 안하고 계산한 뒤, 바람처럼 빠져나오곤 했었다.
요컨대 표현하자면, ‘식욕이 창피함을 잊는 순간’인 것이다.
식욕이 창피함을 잊는 순간이 올 때마다 파리바게뜨나 던킨에 가서 빵을 3-4만원씩 2-3봉지를 꽉꽉 채워서 집에 가져와 말로만 ‘어머니도 드세요.’라고 하곤, 혼자 다 먹었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 게임하다가 또 갑자기 엄습하는 자괴감에 또 스트레스 받고.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예비군 동원훈련은 끔찍했다. 날마다 불어나는 몸뚱이 탓에 맞춤 군복비만 얼마 들었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으로 세상을 보면서 내내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현실의 내가 생각 속의 나보다 안 따라주니까 스트레스 받고, 가장 간단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인 폭식을 하고, 살찌고 또 살찐 것에 열 받아서 또 먹고 악순환.
방에 처박혀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운 한번에 ‘내 인생이 이렇지 뭐!’라면서 또 자괴감에 빠지고. 그깟 던파 도박 항아리가 뭐라고 저런 데이터쪼가리에 ‘내 인생이 무너지고 세워지고’를 반복했던 건지?
5. 대구 두류공원
저렇게 약 11년을 방구석 폐인으로 지내다 대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나마 젊고 싹수가 파란 내 동생은 서울에 원룸을 얻어주었고, 싹수가 노랗다 못해 썩은 게 아닌가? 싶은 나는 부모님을 따라 대구로 내려가야 했다.
어릴 때부터 의아하게도 유독 나를 모질게 여기던 아버지는 대구에 온 이후로 나에 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데에 거리낌이 없으셨고, 나는 그냥 묵묵히 폭언을 하시면 듣고 그렇게 지냈더랬다.
밖에 나가라고. 도서관이든 운동이든 나가서 본인 눈앞에 띄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내가 쓰던 컴퓨터는 아버지께서 일하신다고 써야한다고 가져가시게 된다.
컴퓨터를 못쓰게 된 난 그때부터 핸드폰 게임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폰게임하기도 지루해서 그저 멍하니 창문을 보는데, 한 가족이 지나가더라.
엄마와 아빠 그리고 딸.
심한 경상도사투리. 특유의 욕인가? 싶을 정도의 시끄럽고 떠들썩한 소리를 내뿜으며 걸어가는 3인 가족이 왜 그렇게 보기 좋았는지 모르겠다.
그날부터 그냥 나도 모르게 아버지가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두류공원으로 운동을 나가게 되었다.
이때도 몸무게는 여전히 150kg을 넘었고,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 공포스러웠지만, 막상 운동을 시작하니 나쁘지 않았다.
난 늘 살을 빼는 데 있어서 제일 힘든 게 ‘타인의 시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나 나름대로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생각났다. 예전에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자기는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학생들의 그 수많은 눈이 자신을 쳐다보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그래서 그 시선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집에서 연예인 사진들을 벽에 붙여두고 그 앞에서 이겨내는 수행을 했었다고 한다.
옛날 아버지와의 사이가 그럭저럭 괜찮았던 무렵에 아버지가 조언해주시길, 사람과 대화할 때에 시선처리하기 어려우면, 대화하는 사람의 양 눈 사이 미간을 응시하라고 알려주셨었더랬다.
난 살 빼는 운동시설& 타인의 시선을 이겨내는 훈련장으로 두류공원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름지기 공원이란 사람들이 운동하는 방향이 있기 마련이다.
서울랜드 호수 산책로 방향이 스카이리프트 방향으로 시작해서 코끼리열차 타는 역으로 도는 것이 정방향인 것처럼 두류공원 역시 대구시립두류도서관 쪽으로 올라가서 코오롱야외음악당이 있는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서 두류공원골프연습장 뒤를 지나 대구문화예술회관 앞을 지나서 두류수영장 옆을 지나서 두류야구장이 있는 왼쪽 방향으로 돌아 나오는 것이 정방향이었다.
하지만 난 ‘반대로’ 돌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면 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내 정면으로 다 쏟아지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이겨내는 방법으론 최고가 아닐까? 싶었더랬다.
그리고 실제로 해봤더니, 내가 생각한 범위를 훨씬 넘어설 정도로 상황이 무서웠지만 어쨌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약 4달 가까이 두류공원을 역방향으로 돌면서 수행을 했고 나름 타인의 시선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무감각해지지 않았나 싶다.
(특히 살이 빠진 현재는 밖에 돌아다니면서도 전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내 자신에게 가끔 놀라기도 한다)
6. 서울 상경
154kg 몸무게에서 약4달간 대구 두류공원에서 살을 –28kg 감량했다.
그렇지만 살이 빠졌다고 해서 아버지와의 불화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운동해서 살을 빼는데도 여전히 아버지는 집에서 내가 당신 눈에 띄는 게 못마땅하신 듯했다.
어느 날부터 저놈 밥 주지 말라고 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명령해 밥솥을 치우셨다.
그리고 냉장고가 비워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부모님은 바깥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인 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들기 시작했고, 이전에 한번도 거스른 적 없던 내가 반항하자 열이 받은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뭔 일이 나도 생기겠다 싶었던지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나 못살겠다. 나도 숨 좀 쉬자’고 하셨다.
마침, 서울에서 혼자 사는 원룸 생활에 찌들어서 통통하게 살이 찌기 시작한 내 동생과 여기 대구에 있던 날 맞바꾸기로 하신 것이다.
내가 여기 대구보단 서울이 좋다고 하니까 그냥 서울 올려 보내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냅두자고.
돈은 대줄테니까 그냥 뭐든 너 혼자 알아서 하고 살라고 그러셨다.
그래서 다시 서울로 오게 되었다.
자의반타의반 서울로 온 나였지만, 또 이전처럼 인생을 망칠 수는 없었다.
‘이대로 이렇게 살다가 죽기엔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생각해보면, 문득 들었던 이 생각이 일종의 특별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집 세금 내는 것부터 전화비 내는 법과 기타등등 돈을 지원받는 것 외엔 전부 내가 하나하나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평생 숙원과도 같은 ‘살빼기’
‘그래. 어차피 이젠 마지막이야. 이번 살빼기도 실패하면, 그냥 죽자.’
라는 심정으로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7. 청계산과 서울랜드 돌기(호수 산책길)
관악산은 돌산이라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고, 뭣보다 이미 군입대 때문에 1번 살을 빼 봤던 장소여서 질리니까 이번엔 흙산인 청계산으로 가기로 했다.
산에 운동 다닐 때, 여전히 내 비대한 몸집을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무 계단을 올라가다 힘들어서 중간에 쉬는 나한테 슬쩍 ‘왜 쉬냐?’고 묻길래, ‘힘들어서요’라니까 대놓고 큭큭 웃으면서 ‘고작 여기까지밖에 안 왔는데 벌써 쉬냐’고 말하며 끝까지 웃으면서 지나가는 아저씨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그냥 묵묵히 다녔었더랬다.
산으로 운동 다니며 스트레스 마구 받더라도, 일단 원룸 집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으니, 특히 나에게 너무 숨 막히는 존재인 아버지께서 안계시니 숨통이 트인 게 포기하지 않고 운동을 계속하게 만든 필수요소랄까? 그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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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나이가 있어서 위에서 언급한 군입대를 위한 두 번째 다이어트 계획표처럼 아침, 점심으로 등산하고, 저녁마다 서울랜드 호수 산책길 도는 짓은 무리였다.
그래서 새롭게 좀더 나 나름의 효율적인 다이어트 계획표를 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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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다이어트 계획표
1. 하루 1600 칼로리 식사
2. 하루 최소 1회 배변 (딜레이 최대 2일)
3. 하루 두시간 운동 (청계산 등산 or 대공원 돌기)
4. 하루 한번 ‘플랭크 운동’ & 맨손체조 (근육 유지, 몸매 관리) @좋아하는 fx노래 들으면서!
+ 물 수시로 섭취. 2L씩 마시기 (여름 3L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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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청계산 등산이 정말 힘든데다 식욕도 엄청 땡기지만 가장 확실하게 살이 빠지는 운동이었다.
되도록 청계산 등산을 우선시하고, 정말 힘들 때마다 서울랜드 호수 산책길을 돌기로 마음먹었다.
2016년 5월 30일 월요일.
126kg.
대구 두류공원에서 시작된 다이어트의 유지는 과천 청계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8. 그리고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다이어트 성공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운동을 계속하고, 식사량도 확실하게 조절했다.
시작 : 154kg
대구 두류공원 감량 : -28kg
2016년 4월 30일 서울 도착.
2016, 5, 30, 월 126kg (서울 운동 시작)
2017, 4, 12, 수 76kg
2017, 4, 19, 수 75kg
2017, 5, 21, 일 73.5kg
2017, 5, 29, 월 72.6kg
2017, 6, 5, 월 69.9kg
2017, 7, 5, 수 66.9kg
2017, 8, 13, 일 64.9kg
2017년 8월 13일 일요일.
64.9kg를 찍는 것으로 나의 공식적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다이어트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2017년 9월 19일 화요일.
현재 64.2kg
총 –90kg 살 뺐다.
여기서 축하 샴페인을 터트리면 안 된다.
어차피 내 체질 상, ‘평생 다이어트’를 해야 하니까.
방심하지 말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9. 패션
이번 마지막 다이어트를 하면서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던 것이 있다.
그건 ‘패션’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살에 대한 나의 역사를 쭉 읽어봤으면 알 테지만 난 패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평생 비만인 인생을 살다보니, ‘입는 옷’이 아닌, ‘가리는 옷’을 먼저 접했던지라.
이 뚱뚱한 몸을 가려주기만 하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그러면서 온라인게임 던파 캐릭터들에게는 수십만원씩 들여서 아바타패키지를 풀세트로 몇 십벌씩 사다 입혀주곤 했더랬다.
잠뱅이가 뭔 브랜드인지도 몰랐고, 폴로가 옷 브랜드인지도 몰랐고, 제일모직이니 뭐니, 보세? 디자이너브랜드? 더욱이 명품브랜드는 아는 게 전무했다.
가끔 어머니와 이모들이 샤넬이니 뭐니 해서 고작 지나가는 저 정도 아는 수준?
딱 하나 아는 브랜드가 ‘리바이스’였다.
군입대 하려고 살 뺐던 두 번째 다이어트 성공 때, 뉴코아백화점에 혼자 가서 내 손으로 직접 샀던 청바지.
물론 이번 세 번째 마지막 다이어트 때에도 nc백화점에서 리바이스 청바지를 한 벌 샀다.
(국내 리바이스는 기장이 32로 나오는 탓에 내겐 길어서 이후로는 그냥 기장30짜리 병행수입해오는 리바이스 청바지를 사고 있지만 흡!)
다이어트 중간중간 흔들릴 때마다 이 옷들이 날 다잡아주었더랬다.
154kg일 때는 늘 어머니께서 거인나라에서 옷을 한꺼번에 주문해주시곤 했다.
그나마 사주시는 옷들도 마지못해 한번 입어보곤 그냥 옷장 안에 처박아둠.
4XL를 입던 내가 현재 S사이즈를 입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느새 난 옷에 대해,
‘보는 눈은 다 똑같아서 예쁜 옷은 빨리 품절된다.
그나마 S사이즈가 남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예쁜 옷은 작게 나온다.
그러니 옷에 몸을 맞춰야 된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옷 관리에 대한 지식도 늘었다.
황변 제거부터 다림질까지 할 정도니, 진짜 놀랄 노짜다.
10. 외출. 첫 번째 걸음마와 두 번째 걸음마, 그리고 세 번째 걸음마의 시작
살을 뺀 이후로 난 집 밖.
방 밖으로 나가기를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항상 커튼 친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면서 바깥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항상 방에서 컴퓨터 인터넷을 통해 바라보고 늘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었다.
그러던 것들을 이제 직접 행동하면서 내가 실제로 해보고 있는 것이다.
살 빼는 것이 내 첫 번째 걸음마였고,
패션, 옷을 입는 것이 내 두 번째 걸음마였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걸음마를 시작하려고 한다.
초고도비만 상태로 문 잠그고 방에 처박혀 있을 때는 걱정이 되어도 말도 못하고 있던 주변 친인척들이 이제 ‘남자는 모름지기 일을 해야 한다’고.
넌지시 나에게 취업 얘기를 건네 오는 현재가 정말 신기하다.
아마 세 번째 걸음마는 내 생각, 예상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고.
첫 번째 걸음과 두 번째 걸음조차 깡그리 지워버릴 만큼 엄청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힘내야지.
90kg 살도 뺐는데 뭘. 이번에도 힘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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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소리지만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더라구요.
암만 남들이 시켜도 내가 싫으면 결국 안 되는 것.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라고.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어 정말.
*아래는 제가 이번 다이어트를 하면서 메모해둔 글 전문입니다.
좀더 상세하게 기록했던 글인데, 한참 다이어트에 빠져있던 3월말 경에 망할 갤럭시s6이 갑자기 메모장의 글을 백업시켜버렸더군요.
딱 다이어트에 적은 글 포함 몇몇 중요한 글만 귀신같이 말이에요.
그래서 그 이전에 상세하게 적었던 글을 기억에 더듬어 다시 적느라 좀 김이 새는 감이 있네요.
어지간하면 여과 없이 다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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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오후탈출! 154kg에서 시작하는 나의 다이어트
‘살빼기’ 평생 다이어트. 운동의 1도 모르는 진성 파오후.
한번 사는 인생이니 억울하지 않게.
4XL에서 S사이즈로 (거인나라)
1. 하루 1600 칼로리 식사
2. 하루 최소 1회 배변 (딜레이 최대 2일)
3. 하루 두시간 운동 (청계산 등산 or 대공원 호수 산책로 돌기)
(80kg 진입하면서 밖으로 돌아다니느라, 드물게 가고 있음)
4. 하루 한번 ‘플랭크 운동’ & 맨손체조 (근육 유지, 몸매 관리)
내가 좋아하는 fx 노래 들으면서!
+ 물 수시로 섭취. 2L씩 마시기 (여름 3L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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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 유자차 (설탕 때문에 다이어트 급할 땐,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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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 – 생바나나, 고구마말랭이, 알밤츄, 물
추천 – 방울토마토 (대추방울토마토가 맛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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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변자세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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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앉은 자리에서 ‘피자클릭’피자 라지 두판과 우유2L이상을 같이 먹어치우던 게 나다!
(콜라도 아닌 저 느끼한 조합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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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고 다니기 창피하지 않는 수준’
ㄴ예전 tv연예프로에서 소개팅을 하는데, 안여돼가 맞선 후보로 나오자 소개팅녀가 정색을 하면서 만나보지도 않고 바로 ‘탈락’시켜버리더라.
그 여자가 했던 말이 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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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희대 단식원 – 실패
2. 위밴드 수술 –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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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 빠지면서 느낀 점
1. 대구 두류공원에서 운동하면서 ‘똥 돼지지!’라고 놀린 시골할머니들을 잊지 말자.
2. 똥을 싸려다 xx을 싸게 되는 불쾌한 일이 사라졌다. (변비가 너무 심해서 어떨 땐, 장 속에 가득 찬 변으로 인해 강제로 xx을 싸버리는 경우도 있다)
3. 손목이 한손에 잡힌다.
4. 허벅지 살 쓸림이 사라졌다.
5. 허벅지가 굵어서 옆으로 누워 자다 두다리 사이에 고추가 껴서 부벼지는 통에 심하면, xx을 하기도 했었다.
6. 자느라 오래 누워 있으면, 허리 통증이 심했는데, 살 빼고 나니 바로 사라짐.
7. 예전엔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있으면, 내 옆에 빈자리가 생겨도 사람(특히 젊은 여자)들이 앉지를 않았는데, 살 빼니 저런 일이 없어졌다.
8. 같은 파리바게뜨 매장을 살 쪘을 때와 살 빠졌을 때, 방문했는데, 확실히 종업원의 대우가 달랐다. 살 빼고 가니, 마지막 빵봉지 줄 때, 인사도 해줌.
9. 살 빠지더니 다시 아침 텐트를 치게 되었다.
10. 과민성대장증후군에 만성소화불량이라 변비가 심했는데, 그 빈도가 확 줄었다. 하지만 다이어트 하는 동안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서 증후군 때문에 설사, 변비가 한번씩 심하게 오기도 한다.
11. 매일 피똥 싸다가 이젠 안하게 되었다.
12. 타인의 부당한 요구나 부탁, 명령에 대해 거절하거나 욕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13. 이제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다닌다.
예전에 살 쪘을 때는 남의 시선에 ‘저러니 살찌지.’란 소리 들을까봐 엄두도 못 냈었다.
14. 엉덩이 살이 빠지니 고속버스나 취침 시, 오래 앉아 있거나 누워있으면, 엉덩이 꼬리뼈가 아프다.
15. 늘 배바지 상태였는데, 자연스레 허리에 바지를 걸치게 되었다.
16. 자연스레 옷에 관심이 생겼다.
17. 늘어나고 처진 살가죽은 감수해야 할 부분.
18.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역시 감수해야 할 부분.
ㄴ18a. 닭가슴살을 먹으니, 머리카락 덜 빠짐. 하지만 변비 주의! (닭가슴살과 방울토마토 같이 섭취. 닭가슴살 먹고, 후식으로 방울토마토 먹는 이런 방식NO! 닭가슴살과 동시에 방울토마토 먹거나 아님, 방울토마토 먹저 먹는 방식YES!)
19. 살 쪘을 땐, 내가 잡은 손을 무의식적으로 뿌리쳤던 이모. 내가 살 빼니 먼저 손 잡아오더라.
20. 살 빼고 드러난 갈비뼈. 옆구리 갈비뼈 중에 왼쪽뼈가 약간 툭 튀어나온 걸 처음 알아챘다.
21. 여름에 육수 우려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예전엔 외출하려고 신발 신을 때, 이미 육수 우렸건만!
22. 팔다리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경이롭다!
23. 이제 배부르게 먹으면 불안하다.
24. 예전엔 1일1인1닭은 기본에, 파리바게뜨를 가면, 3~4만원씩 빵을 사다 먹고, 김치찌개 한냄비 끓이면 혼자 다 먹고, 하루 우유 2병씩 식사랑 같이 먹던 내가 지금은 칼로리를 따지게 되었다.
파리바게뜨를 가도 1개 아니면 2개. 치킨은 안 먹은 지, 반년이 넘었고,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은 다이어트 시작하고, 1년이 넘은 지금까지 안 먹고 있다.
(2017, 9, 19, 화. 현재는 우유를 넣은 케이크빵류도 섭취 중. 그러나 우유 자체는 심리적인 문제인지? 거부감이 들어서 마시지 않고 있음)
25. 아저씨나 할배들이 지나가면서 내 배를 보고, 자기 배를 쳐다보거나 자신의 배를 손으로 쓰다듬는 행동을 하더니, 이젠 그런 일이 없다.
26. 살 빠지니까 머리에서 빠진 머리카락이 떨어지다 드러난 쇄골에 얹어지기도 한다. 신기하다.
27. 방심할 때는 ‘옷 패션’을 떠올리자!
28. 인터넷 옷 주문하고, 사이즈가 ‘커서(?!)’ 교환 반품하는 일도 생긴다. 이럴 수가!
29. 변비 때문에 미치겠다!
30. 음식을 먹다가 떨어뜨리면, 항상 배 위에 떨어졌었다. 그런데 이젠 바닥에 떨어진다.
31. 살이 빠지고 나니, 이제야 몸이 내 의지대로 컨트롤 되는 느낌이다.
32. 살이 붙은 날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몸이 찌뿌둥해서 눈치 채게 된다. 비만일 때는 늘 찌뿌둥했는데.
33. 2017, 9, 1. 에 부모님댁 내려가서 3일간 9kg 쪘다.
73.2kg 숨이 거칠어지고, 다리 라인이 사라짐.
팔다리가 저리고, 얼굴 안면이 땡기는 느낌.
아무래도 내 몸무게 최대 마지노선은 70kg인 듯?
34. 가을은 지옥이다. 매년 9월달 쯤 되면 식욕이 땡긴다. 여름보다 살 덜 빠지는 건 이해하는데, 이 미친 식욕은 진짜 못 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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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살빼기 1년이 지난 2017년 6월달 중순에 치팅을 겸해서 처음 뷔페를 가며, 어느 정도 선을 가야 내 몸무게가 유지 혹은 찌는 지를 체크 중이다. 그런데 역시 한두번의 치팅으로는 살이 팍 찌지 않는다.
다만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 때문인지 뱃살은 눈에 띄게 불어버리더라.
치팅은 꼭 필요할 때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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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참치캔 기름이나, 복숭아 통조림 국물 등은 엑기스나 다름없다. 살 뺀다고 이것들을 버리느니, 그냥 아예 안 먹고 말지. 먹을 때는 확실하게 다 먹어야 후회 안한다. 이것저것 따지다간(햄을 끓는 물에 데친다던가, 팥빙수 고명 줄여서 먹는다던가, 스무디킹 설탕 제거해서 먹는 등) 피곤하다. 스트레스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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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한마디로 자기도 모르게 강제로 타인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쓰여 진다는 소리다.
살 빼려고 운동하는 와중에도 지나가는 일반 사람들한테 비웃음 당하며, 감정쓰레기통으로 전락하는 게, 초고도비만인이다.
한가지 일화를 들자면, 군입대를 위해 두 번째 다이어트를 한다고 저녁마다 서울랜드 호수 산책로를 돌고 있는데, 내 등 뒤에서 어떤 남자가 대놓고 ‘저 정도 될 정도로 살찌면 이미 글러먹었다’고 ‘조금이라도 덜 쪘을 때 관리해야지 저건 그냥 망한 거’라고 조롱하더라.
저 때만해도 사람이 무서워서 땅바닥만 보고 운동하던 때인데도, 너무 화가 나서 돌아보았는데, 남자2명과 여자1명 그룹이 있더라.
또 다른 일화도 있다.
대구 두류공원에서 역방향으로 돌고 있는데, 앞에 어떤 까무잡잡한 시골할머니 3-4무리가 오시더라.
그런데 그중 어떤 할머니가 갑자기 소리쳤다. ‘돼지 지나간다!’
이게 뭔 소린가 싶어서 주변에 돼지라도 몰고 가나 두리번거리는데, 그 소리친 할머니는 나를 보고 히죽 웃고 있었다.
얼굴이 굳는데, 소리친 할머니 옆에서 다른 할머니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돼지는 무슨 돼지.’
아, 저 할머니는 착한 분이시구나 싶었는데,
‘돼지는 무슨 돼지. 똥돼지지!’
하면서 할머니들이 다들 낄낄거리면서 웃으시더라.
저 날은 운동이고 뭐고 때려치고 그저 집. 방으로 들어가고만 싶었더랬다.
초고도비만인은 건강하게 살 빼는 것‘보다, 지금 당장 어찌되었건 간에 살이 빨리 빠지는 것을 원한다.
그러니, ‘아침점심을 먹고, 저녁을 빨리 먹거나 적게 먹어요!’니 영양이 건강이 어쩌고 거리는 저 같은 소리들은 상큼하게 무시하자.
애당초 현재 비만인 것부터 이미 배린 몸이다.
급하게 살만 빼면 살가죽이 처진다고?
그래서 얼마나 천천히 건강하게 뺄 건가요?
초고도비만인은 그러다 지쳐서 나가떨어짐.
딱 1년만 죽자고 빼고, 천천히 유지하는 걸로 쇼부봐야함.
아침점심을 굶거나 조금 먹고, 저녁을 많이 먹자!
저녁을 일찍 먹거나 굶어서 그 긴 밤, 잠 설쳐가며 미치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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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체중 – 72kg
현재 2017, 6, 8, 목 – 총85kg 감량 성공?
최종 목표 체중 – 64kg (-90kg)
(@@정상체중 만들고 취직 준비)
*목표
6월 말까지 – 68kg
7월 말까지 – 66kg
8월 말까지 – 64kg
9월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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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 154kg
대구 두류공원 감량 : -28kg
4월 30일 서울 도착
2017, 4, 12, 수 76kg
2017, 4, 19, 수 75kg
2017, 5, 21, 일 73.5kg
2017, 5, 29, 월 72.6kg
2017, 6, 5, 월 69.9kg
2017, 7, 5, 수 66.9kg
2017, 8, 13, 일 64.9kg
2017, 9, 19, 화 64.2kg
2017. 10. 4.
후기.
추석 명절이 돌아왔다.
이번 명절은 10일에 육박하는 긴 연휴였다.
살이 많이 쪄있었을 때에는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명절이 고역이었다.
늘 방에 처박혀 있었지만, 저 날이 오면, 더 열렬하게 소변 마려운 것도 참을 정도로 방에 처박혀 있었더랬다.
그래서 일가친척들이 떠나고 나면, 집안 분위기가 그닥 좋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지!
살도 싹 뺐으니까!
좀더 확실하게 차이를 주기 위해서, 추석 전에 4일간‘똥배’관리도 해주었다. 바나나와 닭 가슴살만 씹어 먹으면서.
그리고 옷도 나름 말끔하게 입었다.
또 친척들이 어떤 난감한 질문& 얘기를 해올지 머릿속으로 예상하면서 마인드컨트롤도 해보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난 너무 즐거웠다.
이번에는 절대 분위기 망치지 않겠다고 달라진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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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이모가 많다.
그 중에 남편과 이혼 소송 중에 있는, 알콜 중독에 우울증 치료 중인 막내 이모가 있다.
나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인생이 불쌍한 이모.
막내답게 결혼하기 직전까지, 아니 결혼하고 나서도, 아니 자식을 낳고 나서도 철이 안들어서 다들 ‘저건 언제 철드나’라면서 혀를 차게 만드는 이모.
가끔 생각 없이 말과 행동을 하는 통에 조카인 나도‘진짜 감당 안 되는 이모니까 최대한 피하자’라고 생각했더랬다.
물론 이번 추석 명절에 저 막내이모도 외가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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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쫙 뺀 내 모습에 다들 놀라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놓고 놀란 표정을 짓고, 방에서 주무시다 일어나신 셋째 이모부는 거실에서 인사하는 내 모습을 보며, 셋째 이모한테 ‘근데 저 거실에 있는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고.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게 느껴져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너무 달라진 내 모습에 ‘어디 아픈 건 아니냐?’고 묻는 이모도 있었다.
안 그래도 나도 살을 너무 많이 뺀 탓에 혹시나 싶어서 건강검진을 받아 봤었는데, 소변에서 요산? 수치가 약간 높게 나온 것 외에는 별 이상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더랬다.
그래서 건강검진 받아봤는데 별 문제 없었다고 답했다.
막내이모가 넌지시 ‘이제 근육만 키우면 되겠네.’라는 소리를 했다.
으레 지나가는 말이라고 생각한 난 그냥 ‘네’라고 답했다.
이때만 해도 난 저 말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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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야, 개콘 봤니? 개콘에 ’그은유육~!‘이라고 나오는데 말이야. 근육을 키워야 먹어도 살이 안 쪄.’
벌써 4번째 저 소리다.
질린 난 ‘이모, 전 지금 이 상태가 좋아요. 근육은 별로 키우고 싶지 않아요.’라고 거절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저녁 11시 쯤 되었을 때,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쇼파형 돌침대에 추석이라 고생한 외할머니께서 tv를 시청하시다 주무시고 계셨고, 그 옆 방바닥에 앉아 쇼파에 기대서 tv를 보고 있던 나에게 막내이모가 슬며시 다가와 앉으셨다.
‘내가 아까 네 엄마가 눈치를 줘서 말을 못했는데 xx야. 남들이 어디 병 걸렸냐? 얼굴이 헬쑥하다. 보기 안좋다라고 말하는 다이어트는 절대 제대로 된 다이어트가 아니야. 그건 ’실패한 다이어트‘야. 괜히 너도 1-2kg 찐 거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니 키에 맞는 적정 체중 유지하면서 어? 근육을 키워야 건강한 다이어트 인 거다?’
여지껏 1년 반 동안 죽을 각오로 뺀 나의 노력이 ‘실패한 다이어트’.
단 두 마디로 일축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5번째에 막내이모의 입에서 튀어나온 ‘실패한 다이어트’라는 소리를 들은 난 눈이 뒤집혔다.
“이모,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해요? 남들이 어디 병 걸렸냐? 묻는 다이어트는 실패한 다이어트라구요?!”
내가 처음으로 화를 내는 모습에 막내이모도 놀랐는지,
막내이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너 왜 언성을 높혀? 아이고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네. 이제 말 안할게. 알았으니까 그만하자.”
라면서 자리를 떴다.
“그만두긴 뭘 그만둬요. 사람 기분 나쁘게 다 해놓고는!”
난 소리를 질렀다.
옆에 외할머니가 소리에 잠을 깨시는 게 느껴졌는데, 난 화가 치밀어서 언성을 낮출 수가 없었다.
당한 건 나였고 피해자는 난데, 마치 개념 없는 조카의 공격에 당한 듯이 이모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더라.
저 모습에 더 열받고 약이 올라 난 화를 주체하질 못했다.
“아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
급기야 화가 난 난 내 생애 처음으로 막내이모를 향해 ‘미친 거 아니야?!’라고 막말을 날렸고, 셋째 이모가 ‘너 화나도 그건 아니지!’라면서 다른 이모들에게 혼났다.
결국 난 ‘내가 너무 화나서 말실수를 했다.’‘다이어트 하느라 감정조절이 안되서 그렇다. 죄송해요.’라고 외삼촌 옷방에 들어간 막내이모에게 먼저 사과했다.
거실로 돌아 나오면서 막내이모에게 먼저 사과를 한 난 분이 풀리지 않아 결국 울어버렸다.
“내가 그동안 살쪄서 명절 분위기 망쳐서 살도 뺐고 이번엔 안 망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살 찔 거 각오하고 여기 내려온 건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다들 외할아버지 깨신다고 그치라고 하더라.
이제 살 뺐으니 취업으로 닦달할 줄 알았지, 다이어트 자체로 왈가왈부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해졌다.
“집에 갈래?”
라고 묻는 어머니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결국 난 또 이번 명절에도 분위기를 망치고 말았다.
살이 쪄도 살을 뺐음에도
내 마음은 여전히 지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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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친척들 못돼쳐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