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유소정 여자 친구
대대로 무신을 배출한 무신 가문에 태어나게 된 여시.
말타기와 사냥을 잘했지만 사격을 더더욱 잘했음.
이미 나라는 어지러운 형국이었고, 외세들이 들어오기 시작함.
백성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짐.
그러던 와중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게 됨.
일부 동학당들은 관리들을 죽이고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해갔음.
개화파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동지들을 모으기 시작함.
여시는 아버지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나섰음.
그들은 나라를 어지럽히고 나라에 불충하니...
나라를 사랑했기에 한 행동이었음.
양반으로 태어났던 여시가 동학의 뜻을 제대로 알 수나 있었을까?
하지만 어느 단체나 안 좋은 인물들은 있었기에
일부 동학당들의 수탈을 견디지 못해 나선 것.
여시의 아버지는 농민군이 버리고 간 쌀 500석을
군량미로 썼다가 정부로부터 반역죄를 씀.
아버지는 정부를 피해 신부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에 숨게 되었고
여시네 가족 모두가 천주교를 접함.
천주교의 교리대로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됨.
을사늑약 이후, 일제에 저항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는데.
국내는 일제의 군대가 주둔해 있는 상황.
그리고
...
여시는 가족들과 상해로 가기로 함.
아버지와 상의를 마치고 홀로 상해로 떠나서 힘이 있거나 잘사는 동포들을
찾아다니며 구국 활동에 나설 것을 설득하지만......
아무도 여시의 말을 들어주지 않음.
연이은 외면에 27살의 여시는 결국 수개월만에 조국으로 돌아오게 됨.
돌아온 여시에게 남은 건 아버지의 부고 소식....
"아버지의 함께 이야기 했던 항일 저항 운동에만 정진하리."
여시는 항구와 가까운 진남포로 거처를 옮김.
여시의 생각은,
동지들을 모아 일제와 싸우기에는 무력도 세력도 마땅치 않았음.
그러니 멀리 내다보기로 함.
항일 운동을 위해 인재를 양성하자.
안씨 가문에 내려오는 논과 밭을 팔기로 함.
하지만 가문의 재산은 형제들과 함께 써야만 했음.
"지금은 우리들이 제 몸과 가족만 돌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나랏일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였다."
"논과 밭을 팔아 학교를 세우고자 하는데, 너희의 뜻은 어떠한가?"
"오라버니의 뜻이 제 뜻과 같습니다."
"형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여시의 동생들은 당연하다는 듯 허락함.
먼 길을 나서기 전 여시는 여시의 어머니와 아내, 아이들을 바라봄.
아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 옆에 꼭 붙어있었음.
여시는 블라디보스톡으로 떠남.
그리고 신문에 독립 운동을 설득하는 글을 실어 동지들을 모았음.
청년 형제들은 결사하여
우리 국권 어서 회복하고
대한제국 만만세를 온 세상이 놀라도록
한마음으로 단결하여 불러보세.
여시의 글을 본 연해주 동포들이 하나 둘 모아들었음.
연해주 항일 의군부대를 조직하게 된 여시.
여시를 따르는 의병은 300명이나 됐음.
홍의동, 신아산 두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를 하게 된 의군부대.
죽지 못한 일본군과 일본인 상인들을 포로로 잡은 의군부대.
의군 부대원들은 총을 포로들에게 겨누었음.
여시는 부대원들과 포로들에게 달려갔음.
"멈추시오!"
"전쟁 포로들을 죽이면 안 된다는 만국공법이 있는 것을 모르시오."
"죽이면 안 됩니다."
영산에서 벌어진 세 번째 전투... 대규모 기습 공격을 당해
대패를 당하고 말았음.
300명 중 20여명만이... 겨우 생존한 참패였음.
그때 여시가 석방한 일본인 포로들이 의병대 위치를 알린 것.
언제까지고 좌절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느낀 여시.
다시 한번 연해주 동포 설득에 나섰음.
여시는 뜻을 같이하는 11명의 동료를 가까스로 모았음.
동료들과 눈을 맞춘 여시는 입을 열었음.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함께 손가락을 끊어 맹세합시다.
이것을 증거로 마음과 몸을 하나로 묶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기어이 우리 목적을 이루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시는 동료들과 단지를 거행함.
여시와 동료들의 피를 모아 태극기에 글을 남김.
대한독립
수많은 동지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신문을 보니 이토 히로부미가 다섯 시에 하얼빈역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어째서요."
"만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토를 처단합시다."
"그 이유는 그가 일본 제국주의의 원흉이기 때문입니다."
"이토를 처단하지 않고서는 결코
대한제국과 동양의 평화를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총구의 과녁은 정해졌음.
이토 히로부미.
여시는 거사를 위해 하얼빈역으로 떠남.
하얼빈에 도착 이후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 여시.
드디어 운명의 날이 다가옴.
낡은 양복과 권총, 그리고 가족 사진을 품에 지닌 채 하얼빈역에 도착함.
경찰들이 탐문수색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여시는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음.
이토 히로부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선 여시는
품속에 있는 총을 손에 쥐었음.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오전 9시, 마침내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기차가 보였음.
1분 1초가 영원과도 같은 지금.
더이상의 선택은 없다.
후우.
여시의 작은 숨.
열차 안에서 이야기를 마친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서 내렸음.
이토 히로부미가 앞으로 나오는 순간,
여시는 조용하게 그에게 다가갔음.
그리고,
탕.
"꼬레아 우라!"
총소리가 끝나자마자 여시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음.
피격을 당한 이토 히로부미는 열차로 옮겨졌음.
여시는 달려드는 헌병들에게 조금도 저항하지 않고 체포에 응했음.
뤼순 감옥으로 옮겨진 여시.
"왜 이토를 사살했는가."
"나는 한국 의병의 참모 중장으로서 독립 전쟁을 하여 이토를 죽였고
또 참모 중장으로서 계획한 것인데,
지금 이 법원 공판장에서 심문을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당황한 일본 재판부는 재판장 안에 있는 방청객을 퇴장시키고
비공개로 돌려버림.
여시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
여시의 사형 선고에 여시의 남동생들은 통곡을 했음.
"형님... 어머니의 전언이 있습니다."
한참을 울던 동생들은 손에 쥐고 있던 십자가를 여시의 눈 위에 받들어 모셨음.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아니하노니,
너는 이후 신묘(神妙)하게 형(刑)을 받아 속히 현세의 죄악을 씻은 후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세상에 다시 나오너라."
여시의 어머니 또한 마지막임을 알았기에
아들들에게 전언을 전해 달라 말씀하신 것이었음.
여시는 동양평화론이라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사형 집행일을 미뤄 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들어주지 않음.
사형일이 다가오고...
여시를 보러 온 동생들에게 유언을 남겼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의연한 표정으로 형 집행장으로 나선 여시.
마지막까지도 품에 안고 있던 건 가족 사진.
이후
동생들은 끝내 여시의 시신을 돌려받지 못함.
뤼순 감옥 어딘가에 묻어버렸다는 것.
"가족의 동의도 없이 시신을 묻어버렸다는 것이 말이 되냐 이 말이오."
"우리 형을 두 번이나 사형하는 것과 다를 게 뭐요!"
하지만 끝내... 여시의 시신이 묻힌 위치를 알려주지 않음.
여시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동포에게 전했음.
"이미 형이 집행되었다니요...."
연락을 전해받고 아이들과 출발했던 여시의 아내는
의거 다음날 도착해서 결국 만나지 못함.
이 글의 '나'는 모두가 눈치챘듯이
안중근 의사의 삶이었어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꼬레아 우라!
참고로 어머니의 편지와 수의는 허위사실이라네.... 소설적 허용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