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말안하면뻘짓,말하면노답)
전라남도 중서부에 위치한 시. 전라도에서 라에 해당하는 곳이다. 전라남도 내륙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 화순군과 경계하고 서쪽으로는 함평군, 강을 건너 무안군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영암군과 접하고 영산강이 있으며 북쪽으로 광주광역시와 접한다.
조선시대에도 나주목이었으며, 전라도에서 전주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당시만 해도 이웃 광주는 나주보다 작은 도시였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동학군이 점령하지 못한 도시가 나주였다.
그 정도로 양반의 세가 강했던 곳이었으며, 자연히 전라도 남부 행정 중심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895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23부제로 개편할 시 나주부가 있었을 만큼 전남 지역에서는 가장 큰 도시였다.
고려-조선 때 이렇게 나주가 번성했던 이유들 중 하나는 그 지리적 입지 때문이었다. 곡창 지대인 전라도 내에서도 특히 손꼽히는 농업 생산력을 자랑하는 나주 평야의 중심지였고, 여기에 서남해안의 해운 및 영산강 수운을 동시에 장악할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나주는 전라도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던 것.
일각에서는 나주시 쇠퇴의 주 원인을 철도와 도로의 발달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근대 이전의 모든 국가의 물류는 수운이 주류였고, 산세가 험한 한반도는 더욱더 그랬기 때문에 수운이 번성했을 때는 영산강과 호남 최대의 내륙 항구 영산포를 끼고 있는 나주도 번성했었다.
결국 광주가 지금과 같이 발전한 데에는 전라남도의 중심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도청이 광주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도청이 계속 나주에 있었다면 나주시는 전주시처럼 전남 지역의 중심지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며, 광주광역시 대신 나주광역시로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을 수 있다.
1986년 금성시는 나주시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1995년 나주군과 통합하며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2014년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면서 금천면과 산포면에서 빛가람동이 분리되었고, 이후 인구 10만명 선을 회복하였다.
시역의 동쪽에는 나름 산지가 형성되어 있어 높이 300m가 넘는 산들도 있다. 이러한 지형을 이용해서 나주댐이 건설되었다.
2022년 12월 인구수 116,456명
산업화와 반비례해서 인구가 감소하였으며, 한때 인구 8만명 선이 무너질 정도로 쇠락한 시골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가 빛가람동 일대에 조성되면서 다시 인구 10만명 선을 돌파한 상태.
전형적인 농촌도시이지만, 나주가 시까지 성장하기까지는 조선 시대의 해상 운송로의 중요 항구였던 영산포항의 존재가 크게 기여했다. 영산포항이 어느정도였냐면,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내륙의 항구였지만 등대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이 외의 산업시설은 LG화학 나주공장 하나 뿐이었으나 2005년 7월,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공동으로 혁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합의하였고, 그 해 11월 장성군·담양군과의 경합 끝에 나주시가 혁신도시 유치에 성공했다. 그 결과로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 혁신도시)가 조성되었고 한국전력공사, 한국농어촌공사,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이 입주하였다.
전통상권은 크게 '3대' 5일장이 있으며, 목사골시장 주변에서 열리는 나주장, 영산포농협 하나로마트 옆 풍물시장에서 열리는 영산포장, 그리고 남평농협 앞 길 주변에서 열리는 남평장이 그것이다. 도시쪽에서 살지 않고 읍면쪽에서 사는 어르신들이 하나로마트를 뒤로 하고 주로 찾는다.
혁신도시의 개발이 진행되면서 혁신도시 주민들이 여가나 기타 활동을 하러 나주 구시가로 나가는 일도 차츰 사라지고 있다. 혁신도시가 광주광역시와도 멀지 않은 관계로 그 쪽으로 나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공공기관·공기업이 들어서면서 생긴 일자리, 영화관 같은 문화시설·상업시설, 공원과 같은 여가시설,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동신대학교 캠퍼스 등 새로운 시설들이 모두 혁신도시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혁신도시 주민들은 나주 구시가지로 잘 나가지 않는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그대로 나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2022년 11월 기준 빛가람동 인구가 39,129명, 빛가람동을 제외한 나주시내 동 지역 인구가 30,273명으로, 이미 나주 구시가지의 인구를 넘어선 지는 오래고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져 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주 관광은 크게 후삼국 이후 서남권 거점도시로 위세를 떨친 나주권과 마한 유적이 분포한 반남권으로 나눌 수 있다.
나주권 관광의 핵심은 나주 구시가 한복판에 자리한 구 객사 금성관이다. 금성관 앞에 나주의 명물인 나주곰탕 전문점들이 몰려있어 여기서 식사 한 끼 하고 금성관-문화관-나주내아를 둘러보면 은근히 시간이 간다.
반남면에는 나주 반남 고분군으로 칭하는 영산강 유역 문화권 특유의 대형 옹관 고분들이 분포해있다. 이 중 가장 많은 고분들이 밀집해있는 신촌리에는 국립나주박물관이 있으며, 인근 신촌리-덕산리 일대에만 약 20기에 달하는 고분들을 볼 수 있다.
일반대학
광주가톨릭대학교(남평읍): 4년제 대학이지만 가톨릭 신부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이다. 광주대교구, 전주교구, 제주교구 신부를 양성한다. 가톨릭 신학대학은 엄격한 규율 아래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부+대학원+군대 및 봉사활동 등을 합하면 약 10년 가까이 교육받는다.
동신대학교(대호동)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광주예술대학교(남평읍): 흑역사. 현재는 폐교되고 없다. 아는 사람은 모두 안다는 이홍하 대학교 중 하나이다.
전문대학
고구려대학교(다시면)
특산물로는 배(주로 금천면에서 많이 재배)가 특히 유명하며 멜론(주로 세지면에서 많이 재배)도 많이 나온다. 지역 음식으로는 맑은 국물에 깔끔한 맛이 일품인 나주곰탕과 영산포 홍어가 유명하다. 나주 배는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도 등록되어 있다.
구도심에 나주종합병원(176병상)이 있고, 혁신도시가 조성되면서 빛가람종합병원(192병상)이 들어섰다. 뭐 광주가 가까우니 필요하면 광주로 가면 된다.
'왕건길'이라는 도로명이 있다.
조선에서는 나주의 풍수가 수도 한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경(小京)'이라고도 불렸다. 현재도 서울특별시와 우호교류 관계를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