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흥미돋]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로맨티스트, 낭만을 던지던 카프의 영원한 에이스

작성자KBO 개그콘서트|작성시간23.08.15|조회수9,890 목록 댓글 87

출처 : 여성시대 KBO 개그콘서트













구로다 히로키의 부모님은 오사카에서 스포츠 용품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시민이었음. 자식을 야구 선수로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는 직접 리틀 야구단을 창단해가며 히로키를 투수로 키웠는데, 부모님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히로키는 별 볼 일 없는 선수였음. 고교 시절 최고 구속이 130대라 만년 후보 선수였음.

히로키는 당연히(?)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부모님이 히로키를 설득했고, 히로키는 야구를 더 해보기로 마음 먹고 센슈 대학에 진학함.














센슈 대학은 진구 구장을 썼는데, 여기가 일본 대학 야구의 성지임. 왜 일본 고교야구 = 고시엔 구장인 것처럼ㅇㅇ. 대학교 진학 후 실력이 급 성장해 구속도 150을 넘긴 데다 스카우터가 많이 찾아오는 진구 구장을 쓴 덕분에, 히로키는 여러 프로팀의 주목을 받으며 드래프트까지 감.












히로키가 드래프트에 참여했던 1996년 당시에는 역지명이라는 제도가 있었음. 말 그대로 선수가 구단을 지명하는 거임. 구단이 선수를 지명하면 선수는 다른 구단에 갈 수 없잖음? <선수도 원하는 구단을 선택해 취업할 권리가 있다>는 명분 하에 생긴 제도임.

보통 역지명은 자기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고향팀 or 요미우리 같은 대형+인기 구단을 고르기 마련임. 역지명 제도는 2007년에 폐지 됐는데, 인기 구단이 좋은 유망주를 독점해 리그 편차가 더 심해진다는 게 이유였음.

뭐 쨌든 히로키가 드래프트에 참여할 때는 역지명 제도가 있었고, 히로키는 직접 구단을 고르는데















놀랍게도 히로키의 선택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였음.


왜 놀랍냐 -> 카프는 시민구단이라 존나 가난함. 일본 열두 개 구단 중 제일 돈이 없고, 당연히 성적도 안 나옴. 마지막 우승이 1984년이라 아시아의 모든 스포츠 리그 중 가장 오래 우승을 못해본 팀임. 카프의 연고지는 히로시마인데 히로키는 오사카 사람이라 고향 팀도 아님.







히로키는 왜 돈 없는 카프를 골랐을까

-> 히로키는 고교 시절 만년 후보여서 대학 1, 2년때까지는 스카우터들이 히로키를 주목하지 않음. 본격적으로 구속이 오르고 에이스 역할을 하게 된 3학년부터 프로 스카우터들의 러브콜을 받음.

반면 카프의 스카우터인 소노다 토시히코는 히로키가 저학년일 때부터 재능을 눈 여겨보고, 히로키의 투구를 보기 위해 촌구석까지 따라다녀줬음. 히로키는 ‘카프의 관심이 었었기에 내가 드래프트에 지명 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런 카프를 배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카프를 선택한 거였음.









이렇게 카프에 입단한 히로키는 데뷔전에서 9이닝 완투승을 거뒀고, 꾸준히 성장하며 카프의 에이스가 됨. 카프의 홈 구장은 일본 최고의 타자 친화 구장이라 투수한테 불리한 편인데도 2006년 13승 6패 7완투 평자 1.85의 1선발로 거듭남.

그리고 2006년은 히로키의 커하 시즌이자 FA 자격 취득 시즌이었음. 히로키는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이자 카프의 프랜차이즈 스타고, 팬들은 구단이 히로키를 꼭 잡길 원했음.


BUT 앞서 말했듯 카프는 가난함. 단 한 번도 FA 선수를 잡아본 적이 없었음...카프는 4년 10억엔+은퇴 후 차기 감독직을 제안하지만 요미우리가 4년 16억엔, 한신이 5년 20억엔을 제안한 상태였고 몇몇 메이저 구단도 히로키를 탐내고 있었음.

팬들은 당연히 구단을 욕하며 반발하지만 카프는 정말 정말 돈이 없는 구단이었고, 애초에 10억엔도 카프 역사상 최고액이었음. 결국 팬들은 하나둘 히로키를 (마음속으로) 포기하게 됨.










상황이 이렇다 보니 히로키의 이적이 확실해짐. 다른 구단에서 뛰는 히로키를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카프 팬들은 차라리 메이저에 가길 원했는데, 히로키의 아버지가 암 투병 중이라 2007 시즌은 일본에 잔류할 것 같았음.

2006년 10월 16일,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시즌 최종전이 열림. 카프가 2점 차로 리드하는 9회말 투아웃, 구단은 투수를 교체하고 히로키를 마운드에 올림. 그동안 카프에 헌신해준 히로키를 예우하는 의미로 팬들에게 마지막 박수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 거였음.
















카프의 팬들은

<우리는 함께 싸워왔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미래에 빛나는 그날까지도.
그대가 눈물 흘린다면 우리가 그대의 눈물이 되어주리.
카프의 에이스 쿠로다 히로키>

라는 현수막을 외야에 걸고 우렁차게 육성 응원을 하며 프차 1선발을 떠나보냄.















https://youtu.be/9aaE0PUMHI8



영상 ㅇㅇ

(팬들이 손에 든 슬로건과 깃발의 15는 히로키의 등 번호)















그리고 스토브리그, 히로키는 기자 회견을 열고 카프 잔류를 선언함. 저 현수막을 본 순간 평생 카프의 팬이 되기로 결심했단 거임. 팬들의 눈물 섞인 응원이 히로키의 마음을 붙잡은 것.

내가 다른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히로시마 시민구장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 팬, 카프 선수를 상대로 공을 던진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를 여기까지 키워준 것은 카프다. 그 팀을 상대로 내가 힘껏 공을 던질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히로키는 이런 멘트와 함께 <4년 12억엔 + 메이저리그 진출시 언제든 계약 파기>의 조건으로 카프에 잔류함. 당연하지만 카프 팬들에게 평생 까임방지권을 얻음.












2007 시즌, 히로키의 아버지가 돌아가심. 카프의 1선발로 시즌을 마치고 33살이 된 히로키는 “아직 내 안에 불꽃이 남아있을 때 싸워보고 싶다”며 메이저 진출을 선언함. 카프는 히로키의 등번호인 15번을 준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고 히로키를 미국으로 보내줌. 여담으로 아버지가 암 투병하다가 돌아가셔서 현재까지 매년 암 관련 재단에 고액 기부를 함.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카프 덕택이다. 언젠가는 돌아가서 보답하고 싶다. 일본에 돌아간다면 카프밖에 없다. 돌아간다면 힘이 있을 때 돌아가고 싶다.




라는 약속을 남기고 메이저에 진출한 히로키는 다저스에서 3년, 양키스에서 3년을 뛰며 꽤 준수한 활약을 했음. 이미 30대가 훌쩍 넘은 나이였는데도 다저스가 상당히 막장이던 시절엔 커쇼에 이어 2선발 노릇을 했고, 양키스에서도 꾸준히 평자 3점대를 찍음.

히로키는 커쇼랑 짱친이어서 커쇼가 선수단 미팅에서 다저스에 남아달라고 했었음. 벗 다저스 사정상 히로키는 이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친구인 커쇼와 맞붙고 싶지 않아서 아메리카 리그의 양키스로 이적함.











사실 대부분의 선수는 다년 계약을 선호함. 매년 커하를 갱신할 수 있다면 단년 계약 후 다음 해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게 이득이지만, 매년 날아다니며 발전할 수 있는 선수는 없으니까ㅇㅇ 보장액이 안정적인 다년계약을 원함.

특히 히로키는 양키스 이적 당시 이미 30대 중반이라 4년~6년 정도의 다년계약을 맺고 은퇴하는 게 최선이었음. 근데 히로키는 매년 단년계약만 고집했음. 그 이유가


더 이상 내년을 위해서 야구하는 나이는 아니다. 내가 왜 지금 야구를 하는지 생각하면서 늘 완전하게 불사르고 싶다. 다년계약을 하면 아무래도 2년째의 일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여력을 남기며 시즌을 치르고 싶지는 않다. 팀에 리스크를 떠안기지 않고, 매년 결과로 내 자신의 가치를 어필해야 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의 공포,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은 언제나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다.



우리팀 투수호소인에게 읽어주고 싶은 글






히로키는 고교~대학 초반까지 만년 후보였는데 오히려 이게 오히려 호재였음. 혹사 당하지 않고 소모품인 어깨와 팔을 아꼈으니까 ㅇㅇ.

훌륭한 워크에씩 + 3점대 평자에 5년 연속 190이닝을 소화한 베테랑 선발 투수는 누구나 환영할 선수임. 2014년을 199이닝 ERA 3.71로 마무리한 히로키는 양키스, 파드리스, 다저스 등 복수의 메이저 구단에게 오퍼를 받는데














일단 저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시고 저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했던 모든 구단들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제가 있게 된 건 고향팀 카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제가 미국에 건너오기 전에 고향 팬들과 약속을 했습니다. 힘이 남이 있을 때 반드시 돌아와 던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요. 이제 팬들과의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라며 2000만 달러의 오퍼를 거절하고 카프로 돌아감. 물론 카프에서도 레전드를 대우하기 위해 없는 돈을 짜내고 짜내 1년 4억엔을 제시했지만 2000만 달러에 비하면 꽁돈임. 심지어 일본에 돌아오며 내야하는 소득세만 9억엔이었음ㅋㅋㅋ

즉 카프 팬들에게 남긴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0억+메이저 선발 로테이션 보장을 뿌리치고 40억에 카프로 돌아온 것. (소득세 생각하면 사실상 자기 돈 50억 내고 카프에서 뛰는...)







히로키는 일본으로 돌아가며 “꿈을 이루러 간다”고 표현함. 이에 “메이저가 아니라 NPB가 꿈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제 딸들은 야구를 아주 좋아합니다. 제 경기가 끝나고 나면 항상 「멋진 아빠 힘내세요」라고 말하죠. 딸들은 양키스 경기를 즐겨 보곤 했습니다. 평범한 제가 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죠.

이처럼 스포츠 선수는 아이의 정신과 사고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꾸준히 노력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 등 인생의 기본을 전해주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가시마 시게오 씨는 야구로서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겠다고 항상 의식하며 행동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프로 체육인의 모습이지요. 스포츠 선수는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아이들의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연봉을 받는 것도 어린이와 팬들의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내 인생을 돌이켜 볼 때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나의 꿈입니다.>


라며 단호하게 일본으로 돌아감.












메이저에서 성공한 우리팀 프차가 2천만달러를 포기하고 돌아온다? 카프 팬들은 난리가 남.






카프 팬들은 돌아온 프차를 위해



- 구단 최초로 연간 회원권 매진

- 히로시마 시내 곳곳에 자비로 히로키를 환영하는 현수막 붙임 + 현수막 제작 업체들은 히로키를 위한 현수막이라는 이유 하나로 연말연시에 휴가 포기하고 철야

- 히로키 복귀 첫 경기 시청률 65.8프로. 즉 히로시마 사람 3명 중 2명이 야구를 봄

- 올스타 투표 1위



등등의 에피소드를 쏟아내며 격하게 환영하는데















카프 빠따는 개노답이었음...

2015년 시즌 말, 카프는 남은 두 경기를 다 이기면 포시 턱걸이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 히로키는 8과 3분의 1이닝 무실점 역투를 하며 첫 경기를 이김. 두번째 경기에서는 카프의 또다른 에이스인 마에다 켄타가 7이닝 무실점 역투를 하지만 빠따가 1안타 경기를 하며 개같이 패배. 이리하여 히로키와 카프는 포시 진출에 실패함









26경기 11승 8패 평자 2.55

준수한 성적이지만 이미 히로키는 40대였음. BUT 카프의 에이스인 마에다가 2015 시즌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히로키까지 사라지면 카프는 말 그대로 좃댐...결국 히로키는 다시 한 번 카프와 단년 재계약을 체결하고 2016 시즌을 뛰게 됨.











2016년 9월 10일, 히로키는 요미우리전에 등판해 자기 손으로 카프의 정규 시즌 우승을 이뤄냄. 딱 25년 만의 정규 우승이었음. 본인 통산 200승은 덤.


노쇠한 히로키는 이미 부상으로 몸 상태가 안 좋은 상황이었지만 카프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위해 3차전에 등판함. 5.2이닝 1실점의 준수한 투구를 한 후 통증 때문에 내려가는데....







불펜이 불을 지름......

가까스로 빠따들이 9회에 동점을 만들어 연장을 가는데...











오타니가 끝내기를 쳐벌임ㅎ



그렇다...2016년 카프의 일본 시리즈 상대는 닛폰햄이었고...닛폰햄에는 오타니가 있었고...저 해의 오타니 성적이

투타니 : 평자 1.86 (최고구속 165)
타타니 : 옵스 1.004 22홈런

예아....










다행히 카프가 2승을 미리 따놓은 상황. 시리즈가 7차전까지 간다면 히로키가 7차전 선발로 등판할 예정이었음. BUT 일본 시리즈 내내 6연투를 한 필승조에게는 7차전까지 끌고 갈 힘이 없었고, 결국 닛폰햄에게 승승패패패패를 당하며 카프와 히로키의 시즌이 끝남...


(왜 필승조한테 6연투를 시켰나요? -> 그것은 나 여시도 모르고 돌대가리 감독만 알 것;;)
















일본 시리즈가 끝난 후 홈 구장에서 히로키의 은퇴식이 열림. 히로키는 여기서 팬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고, 카프의 유일한 영구 결번 투수이자 카프의 심장으로 영원히 카프 역사에 남음.

저 때 헤드라인이 <안녕, 카프의 영원한 에이스>











이후 해설자로 활동하다가 카프 어드바이스로 오랜만에 현장 복귀함. 아마 몇 년 후에 카프 감독도 하지 않을까 싶음.












- 끝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개엠지사우루스 | 작성시간 24.02.25 ㅜㅜㅜㅜㅜ 눈물 나...
  • 작성자오늘의 친밀 | 작성시간 24.04.13 ㅠㅠㅠㅠ진짜 낭만이다ㅠㅠㅠㅠㅠ
  • 작성자티라노사우르르르 | 작성시간 24.04.27 주기적으로 보러오는 글.....

    엇..ㅋ 댓달고 좀 올렸는ㄷㅔ 과거의내가....
  • 작성자아니근데대체왜? | 작성시간 24.07.01 와 거의 머 야구 만화다 ㅠㅠㅜㅜ진짜 낭만 ㅠㅠ
  • 작성자divebabydive | 작성시간 24.08.21 이런 선수가 우리팀 선수면 난 진짜 죽을 때까지 행복할 거 같음 이런 위대한 선수가 우리팀에 있었다고...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