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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야구] 드래프트 제도를 바꿔버린 한 천재 투수의 고집

작성자KBO 개그콘서트|작성시간23.08.15|조회수8,552 목록 댓글 32

출처 : 여성시대 KBO 개그콘서트













1971년, 에가와 스구루라는 천재 투수가 일본 고교 야구에 등장함. 일본에 오타니 사사키 다르빗슈 등등 대단한 투수 많지만 (개인적으로) 고교 시절 임팩트나 성적은 이쪽이 압도적임. 1970년대에 이미 150을 던지던 미친 투수였음













에가와는 1학년이던 여름, 고시엔 예선에서 퍼펙트게임을 기록함. 퍼펙트게임 자체도 대단하지만 고등학교는 1년 차이가 엄청 큼. 2, 3학년을 밀어내고 주전을 따낸 것만 해도 이미 압도적인 재능인데 퍼펙트게임까지 했으니 그냥 미친놈임.


다만 득점 지원을 지독하게 못 받아서 승리 운이 더럽게 없었음. BUT 초특급 유망주였던 에가와는 자기 공 하나로 다 때려잡음. 본격적으로 에이스 역할을 도맡은 2학년 고시엔에서는

예선 2차전 - 노히트노런
예선 3차전 - 퍼펙트게임
8강전 - 노히트노런 + 끝내기안타
4강 - 10이닝 노히트 후 11회에 끝내기 맞고 패배















그리고 3학년이 된 에가와는 마침내 고시엔 본선 무대를 밟음. 1차전 상대는 전년도 가을 대회 우승팀이자 팀타율 0.336의 호쿠요 고교. 5만 5천 명의 만원관중 앞에서 등판한 에가와는













첫 타자부터 11타자 연속 탈삼진 + 19K 완봉승을 거두며 혼자서 우승 후보를 때려 잡음. 상대팀 감독이 “선수들에게 패스트볼을 노리라고 했지만 에가와의 구속을 따라가는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고 극찬할 정도














2차전 - 번트 안타 1개 제외 무피안타 10K 완봉승
3차전 - 1피안타 20K 완봉승



빠따의 태업으로 고시엔 우승은 끝끝내 못했지만, 말 그대로 고교 야구를 혼자 씹어먹음. 고교 야구를 에가와의 대회라고 부를 정도. 지금도 고시엔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누구냐고 하면 에가와 스구루임...




고교 통산 노히트노런 12회, 퍼펙트게임 2회

















에가와가 등판하는 경기는 고교야구인데도 프로보다 더 많은 관중이 몰렸고, 매번 수십 명의 기자가 에가와를 취재하러 다닐 정도였음. 실력에 스타성까지 갖췄으니 프로 구단이 안 탐낼 수가 없었음.

















그렇게 열린 드래프트 회의.

가와는 고교 시절부터 “요미우리가 아니면 안 간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위의 성적을 보면 알겠지만 에가와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수준의 초초초초초특급 유망주였음.















한큐 브레이브스 (현 오릭스 버팔로즈) : 1순위 에가와 스구루













응 안 가







당연하지만 선수에게는 지명을 거부할 권리가 있음. 다른 구단에 입단하지 못하는 거지, 대학이나 사회인 야구로는 얼마든지 가도 됨. 쿨하게(?) 지명을 거부한 에가와는 그대로 대학에 진학함.

대학 리그에서도 에가와는 리그를 씹어먹는 활약을 하고, 4년 후인 1977년 다시 한 번 드래프트에 참가하는데















세이부 라이온즈 : 1순위 에가와 스구루















응 안 가









에가와는 여전히 “요미우리 아니면 야구 안 한다”는 마인드였고, 또다시 지명을 거부하고 미국 유학을 감.


세이부는 에가와를 계속 설득했지만 에가와는 완강했음. 결국 이듬해인 1978년 11월 20일, 세이부의 교섭권은 소멸되고 세이부는 지명을 포기한다는 기자회견을 하는데














다음날인 1978년 11월 21일, 요미우리가 드래프트 번외로 에가와와 계약을 함. 다음 드래프트인 1978년 11월 22일 딱 하루 전의 일이었음.





당시 일본 드래프트 대상자는 ‘당해에 일본의 학교를 졸업 예정이거나 사회인야구에 참여하는 선수’였음. 즉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 중인 에가와는 드래프트 대상이 아니었음.

근데 1978년 11월 22일의 드래프트부터는 범위가 확장돼서, ‘일본의 학교에 재학한 경험이 있는 선수’였음. 이쪽이라면 당연히 에가와도 해당이 됨 ㅇㅇ.

해당 규정은 1978년 7월 31일에 결정났는데, 적용은 당해 드래프트부터 될 예정이었음. 세이부가 교섭권을 포기한 20일과 변경 규정 적용일인 22일 사이 ‘하루’에 계약했으니 정당하다는 게 요미우리의 주장이었음. 이 사건을 ‘공백의 1일’이라고 부름.














센트럴리그 회장은 말장난하듯 규정의 허점을 이용했으니 요미우리와 에가와의 계약은 무효라고 판단했음. 이에 요미우리는 드래프트 보이콧이라는 강수를 둬버리는데















한신 타이거즈 : 1순위 에가와 스구루
















JONNA 개판임


와중에 요미우리 구단주는 한 술 더 떠서, “에가와를 우리 팀 선수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요미우리는 센트럴 리그를 탈퇴하고 새로운 리그를 만들겠다.”며 아예 리그 자체를 보이콧해버림.

결국 12월 중순까지 내년 일정도 못 짜는, 문자 그대로 비상 사태가 벌어져벌임...














이러다가 프로야구 운영이 망할 판임. 결국 NPB의 커미셔너는 중재를 위해 나서며 내건 해결책이

<한신의 교섭권은 인정한다. 대신 곧바로 요미우리에 에가와를 주고 원하는 선수를 받아라.> 였음. 즉 트레이드를 하란 것ㅇㅇ













한신 : 안 해 ㅅㅂ 미쳤냐? 오 사다하루를 준다고 해도 안 함. 에가와 우리꺼임.

(오 사다하루 : 홈런왕만 15번 먹은 요미우리의 레전드. NPB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














NPB : ㅅㅂ 한신아 제발 한 번만 좀 시발 리그 좃되게 생겼다고...












결국 한신은 트레이드에 동의하고, 에가와를 넘겨주는 대가로 고바야시 시게루를 요구함. 시게루는 1977년 사와무라상을 수상한 요미우리의 에이스였음. (사와무라상 = 그 해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에게 주는 상. 사이영 상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됨ㅇㅇ)













고바야시 시게루는 요미우리의 에이스인 동시에 본인도 요미우리의 팬이었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트레이드를 거부함. 하지만 요미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시게루가 아닌 에가와였음. 한신이 제안하자마자 바로 승낙할 정도였음.

요미우리는 시게루를 설득했고, 결국 시게루는 요미우리를 떠나 한신으로 가게 됨.















한신으로 트레이드 된 시게루는 당연하게도 독기가 만땅이었음. ‘나를 버린 것을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선발 로테까지 바꿔가며 요미우리 전에 표적 등판했고, 트레이드 당해인 1979년 또 사와무라상을 받음.

하지만 복수심에 불탔던 1979년이 마지막 열정이었음. 시게루는 1979년 이후 요미우리 전에 등판할 동기가 사라졌다고 표현했고, 에가와와의 첫 맞대결에서도 참패함. (시게루 5이닝 4실점, 에가와 9이닝 완투승)



고질적인 팔꿈치 부상 + 요미우리를 떠난 후 야구에 대한 흥미 전무...였던 시게루는 1982년 갑작스러운 은퇴를 선언함.


[이런 말을 해도 어쩔 수 없지만, 만약 그 트레이드가 없어서 요미우리에 남아 있었다면 좀 더 길게 현역생활을 이어갔을 것이다. 요미우리에 있었다면 35살 정도까지, 아니 던질 수 있는 동안에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지 않았을까. 결국 그 트레이드로부터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는 내 인생이 시작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었는데 말이다. 주위의 평가에만 신경쓰는 나 자신이 싫었고, 지쳤기에 이제 야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퇴를 결심했을 때 나의 야구인생을 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고, 감상에 젖지도 않았다.]


라고 함















한편 에가와는 소원대로 요미우리에 입단하지만 에가와 한 명을 위해 리그를 들쑤셔놨으니 여론이 안 좋았음. 결국 요미우리는 에가와를 두 달 간 자숙시킨 후 1군에 올림.


근데 재능이 진짜 JONNA 진퉁이라 데뷔와 동시에 요미우리의 에이스로 군림함. 1980년에 바로 다승왕을 먹었고, 1981년에는 다승+평균자책점+승률+탈삼진+완봉 5관왕에 리그 MVP까지 혼자 싹쓸이함. 다만 당시에는 사와무라상이 기자단 투표로 받는거라 사와무라상은 한 번도 못 탔음.


참고로 에가와는 커리어 내내 한신 킬러였음. (36승 18패)
반면 시게루는 독기가 가득했던 1979년에만 8승 무패의 요미우리 킬러였고, 이후로는 5승 15패로 요미우리한테 약했음.










요미우리는 순혈을 엄청 따지는 보수적인 구단이라 선수+코칭 스태프 경력이 모조리 요미우리인 성골만 1군 감독을 할 수 있음. 에가와는 당연히 요미우리 순혈이라 1군 감독 자격이 있고 수석 코치 제의도 받았는데, 코칭 쪽엔 별 흥미가 없는지 절대 안 한다고 못 박음. 현재는 해설자.

(한 번 예외가 있었긴 함. 근데 이쪽도 요미우리에서 선수+투수코치 하다가 딱 2년 다른 팀 투수 코치하고 요미우리 1군 감독된거라 아예 노근본(?)은 아니고 진골...근데 감독 부임하자마자 요미우리 팬들이 존나 욕했고 재임 내내도 욕 개처먹음)
















어쨌든 이 공백의 1일 사건을 계기로 <역지명>제도가 도입됨. 쉽게 말해 선수가 역으로 원하는 구단을 지명해 들어가는 거임. 선수에게도 취업의 자유가 있다st

이유만 놓고 보면 꽤 그럴듯함. 프로야구 선수라 하면 대부분 어릴 때부터 야구를 보며 특정 팀을 응원했을 거고, 당연히 원하는 팀이 있을 테니까ㅇㅇ. FA 자격 취득까지 오래 걸리는 걸 감안하면 선수도 원하는 팀에 가는 게 행복함.








BUT...결국 역지명 제도는 요미우리 같은 인기+부자 구단으로 선수가 몰릴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음. 안 그래도 부자 구단이 FA 시장에서 유리한데 유망주 드래프트까지 앞서 나가면 리그 좃됨.

한 술 더 떠서 구단이 눈 여겨둔 유망주에게 뒷돈을 주는, 즉 템퍼링까지 발생함. 결국 2006년을 끝으로 역지명 제도는 완전히 폐지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답니다~













여담) 놀랍게도 저런 또라이(?)가 에가와 한 명만 있는 게 아니다











비교적 최근인(?) 2006년에 닛폰햄 지명을 받은 초노 히사요시는 ‘요미우리 아니면 안 간다’며 거부, 2008년에 다시 지바 롯데에게 지명 받았으나 또 거부, 2009년 3수 끝에 요미우리 입단함. 요미우리무새라 나머지 11구단 팬들은 썅놈 취급하며 망하라고 기도했지만 신인왕과 타격왕을 해드셨다. (데자뷰?)

(지바 롯데는 왜 거부한 전력이 있는 놈한테 2라운드를 낭비하냐 -> 닛폰햄 지명 거부하고 2년을 사회인야구에서 굴렀으니 나이도 있겠다 받아들일 줄 알고)














스가노 도모유키 역시 “요미우리 아니면 안 간다”하고 다녔으나 2011년 닛폰햄이 조까쇼 하고 1라운드에 지명. (투수는 야수에 비해 1년 1년이 더 중요하니까 설득하면 받아들일 줄 알고.)

닛폰햄이 지명을 해준 건 영광이지만 어릴 때부터 가졌던 꿈이 더 중요하다”며 거부. 여기서 꿈이란 당연하지만 요미우리의 선수가 되는 것ㅇㅇ. 결국 재수 후 2012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의 지명을 받음.

이번에도 타팀에서 나를 지목했다면 야구를 그만둘 생각도 있었다”고 인터뷰해 개같이 욕 처먹고 또 11구단 팬들이 제발 망하라고 기도했으나 사와무라상 수상 + 역대 최고액 계약을 하는 최강 에이스 선발이 됐다고 한다




야후!











이 외에 특급 유망주가 드래프트 전 기자회견 열고 기자들 앞에서 <한신에 가기 싫은 10가지 이유>를 낭독하며 “한신이 나 뽑으면 지명거부한다”고 미리 협박해서 오릭스 입단에 성공한다거나ㅋㅋㅋㅋㅋㅋ

(와중에 ㅈㄴ 웃긴 건 쟤 FA 되니까 한신이 러브콜 보냄. 물론 또 안 감.)




우리 팀에서 3년만 뛰면 네가 원하는 팀으로 트레이드 시켜준다고 싹싹 비는 등등...별의별 일이 다 있답니다.












왜 일본에서만 저런 일이 있나요?


1. 한국은 고교야구 풀이 엄청 좁고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선배라 저렇게 막 나가기 힘듬.

2. 또한 군면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회 눈 밖에 나는 기행(?)을 저지를 수 없음.

3. 한국은 1라운더가 열에 아홉 고졸인 반면, 일본은 아마 야구 규모가 크고 육성도 잘 돼있어서 대학&사회인 야구 출신 선수도 엄청 선호하고 상위 라운드에서 많이 뽑음. 또한 군대도 없으니 지랄 ㅈ까쇼 하고 대학이나 사회인 야구에 잔류해 몇 년 썩힐 때의 위험 부담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이렇듯 일본과 미국은 아마야구의 풀이 엄청 크기 때문에 특급 유망주의 경우 선수가 갑이고 구단이 을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답니다~ 물론 자주는 아니고~ 근데 잊을 만 하면 나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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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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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치자피즈치피킨자 | 작성시간 23.08.25 와 야알못인데 요즘 야구 흥미 생겨서 검색하다 읽게 됨ㅋㅋ 너무 재밌다!!!!
  • 작성자속구 | 작성시간 23.09.10 여시 드랲이 코앞이라 연어하다가 봤는데 너무 잘 읽었어ㅋㅋㅋㅋㅋ 너무 재밌는데 혹시 스크랩 허용 부탁해도 될까요?!
  • 답댓글 작성자KBO 개그콘서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9.10 풀었어용
  • 답댓글 작성자속구 | 작성시간 23.09.10 KBO 개그콘서트 감사합니당🩵🩵🩵
  • 작성자violeta | 작성시간 23.11.16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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