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boriborikim.tistory.com/m/216
(주 출처는 여기고 중간중간 내가 헷갈리거나 궁금했던 부분은 여기저기 기사나 글들에서 보충해옴)
먼저 정리하기에 앞서 이전 글을 간단히 요약한다.
중동전쟁 배경 요약
수천년전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유대인들은 다른 세력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당하고 전세계로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뿔뿔히 흩어져 조국을 잃은채로 타국에서 엄청난 박해, 차별을 당하며 살던 유대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언젠간 고국으로 돌아가리라 하면서 힘과 부를 쌓는다.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이 나치독일의 패망으로 끝남과 함께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숫자의 많은 유대인 난민들이 발생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고국 팔레스타인땅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돌아간 땅에는 아랍인들이 살고 있었다. 박힌 돌 아랍인들과 굴러온 돌 유대인들은 서로 엄청 싸우기 시작한다. 자기 땅이라고.
1948년 5월 14일, 그 땅에 수천년동안 살고 있던 아랍인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언한다.
당시 팔레스타인 땅에 훨씬 오래 살고 있었고 디아스포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돌아온 유대인들이 실제 전체 인구의 33%정도에 불과했음에도, 유엔과 미국 등은 아랍인들이 그렇게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손을 잡아주었다.
중동전쟁?
사실 중동 하면 생각나는게 전쟁 테러 이런 것들인데-
이들 대부분은 자기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종파간의 내전이거나, 또는 무장테러단체들인 알카에다나 IS같은 조직들과의 싸움 등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은 (비교적) 별로 없다.
규모가 큰 국가전으로 번진 중동전쟁은 현재까지 7차례였고(IS와의 전쟁 제외) 이는
1948년, 주변 아랍국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진행된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시작된다.
아랍국가들의, 팔레스타인 땅에 건국한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전쟁은 1973년까지 4차례에 걸쳐 계속 발생한다.
그런데 이 4번 전쟁 모두 이스라엘이 승리했다
- 제 1차 중동전쟁 (1948.03-1949.03)
이스라엘 독립일(1948.05.14) 직후, 이집트의 전투기들이 이스라엘을 공습하고 이를 시작으로 아랍군들은 손을 잡고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전쟁구도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 등 아랍연맹국들
vs
이스라엘
아랍인들은 이 때, 쪽수에서 훨씬 밀리는 이스라엘을 얕잡아 보았을 것이다. 5대 1 싸움이니 그랬겠지.
그러나.. 수천년간 나라없는 설움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유대인들은 힘들게 얻은 자신의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군인들, 민간인들 할 것 없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싸웠다. 그리고 이후 미국까지 이스라엘을 지원해,
결국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다.
결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땅 78% 점령
이스라엘 독립
- 제 2차 중동전쟁 (1956.10.29 - 1956.11.07) - 수에즈전쟁
1차 중동전쟁이 아랍국들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면 2차는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공격 명목이 수에즈운하에 대한 서구의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수에즈운하의 실질적 소유권은 오랜시간동안 프랑스와 영국이 가지고 있었다. 1854년, 이집트가 프랑스에게 운하개설특허권 양도 , 영국은 1875년에 이집트 주 매입. 그리고 1914년엔 이집트를 보호국으로 삼음)
그래서 수에즈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영어론 Suez crisis라고 부른다.)
(제1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은 모두 군사력을 강화한다. 전쟁이 또 언제 터질 지 모르므로.
그러던 중, 이집트에선 쿠데타로 정권교체가 일어난다. (1952.07, 파루크 정권 -> 나세르 정권)
그리고 새로 집권한 나세르가 1956년,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포해버린다. 이 뿐만 아니라.. 아랍의 영향력 확장을 위해 당시 영국, 프랑스에 맞서 싸우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한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가 곱게 보였을 리가 없다.. 이들은 이집트 침공계획을 세우기 시작하고 여기 이스라엘도 합세한다. )
전쟁구도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vs
이집트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의 시나이반도 공습으로 시작
오랜시간 침공계획을 세웠던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전략은 성공하고 11월 6일, 수에즈 운하와 시나이 반도는 이들에 의해 점령된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은 세계 여론들과 미국, 소련, 유엔 등의 철군 요구와 맹비난 등 정치적 압박으로 인해 결국 군대를 철수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제연합의 요구를 거부하며 이집트의 침입저지와 아카바 만의 선박통행를 보장하지 않으면 철수하지 않는다고 버티었다. ..그리고 결국 이를 보장받는데 성공하고 철수한다. 그래도 목적은 이룬 셈.
결과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에는 이겼으나 얻은게 없었다, 오히려 비난만 받은 굴욕적인 전쟁.
- 전쟁에 진 이집트 나세르는 반대로 영웅이 됨. (수에즈운하는 이후 완전히 이집트 소유로 인정됨)
- 중동지역 역시 미국, 소련의 영향 하에 들어가게 됨.
(소련은 이집트를 지원하며 이스라엘을 배척하며 아랍편에 서고, 미국은 공산국가 소련의 위협을 받는 중동국가를 보호해야한다는 명목하에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시작.)
세계 패권의 완전한 이동 (영국, 프랑스 -> 소련, 미국)
제 2차 중동전쟁 이후 1964년 4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이하 PLO)가 결성
- 제 3차 중동전쟁(1967년 6월 5일 ~ 6월 10일)- 6일전쟁
일명 6일 전쟁
전쟁의 발단은 2차 때와 비슷. 이집트가 또 티란해협을 봉쇄해서 이스라엘의 길목을 막았고 동시에 시나이반도에서 국제연합 평화유지군을 축출해버린 데서 전쟁이 터지게 됨
또 한편으로는 당시 시리아와 국지전을 치르던 이스라엘이 비무장지대였던 골란고원에 군을 주둔시키면서 상황이 급격하게 심각해졌고, 이를 계기로 설립된 아랍연합군과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구도
이스라엘
vs
이집트 ,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아랍군 지원국: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튀니지, 쿠웨이트, 알제리, 리비아, 팔레스타인해방기구
6일 동안 이어진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지배 영토를 3배 이상 늘렸다. 이스라엘에게 이 날은 축제일이지만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인들에게는 치욕과 애도의 날이다. 한쪽은 ‘점령’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다른 쪽은 ‘해방’이라고 부른다.
결과
요르단 강 서안지역,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시리아 골란고원,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장악
이 때 점령한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세웠다가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오슬로 협정을 맺으면서 1994년 팔레스타인이 차지하게 됨
- 4차 중동전쟁 (1973년 10월 6일 ~ 10월 23일)
일명 욤 키푸르 전쟁
제3차 중동전쟁인 6일전쟁을 승리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시리아의 골란고원의 절반, 요르단 영토였던 서안지구를 점령했고, 이에 분개한 아랍측이 벼르고 벼르다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인 '욤키푸르' 날에 선제공격 실시.
전쟁구도
이스라엘
(지원국 : 미국, 이란)
vs
이집트, 시리아, 사우디, 알제리, 요르단, 쿠바, 모로코, 튀니지, 쿠웨이트, 리비아, 이라크
(지원국 : 소련, 북한, 동독, 파키스탄, 레바논, 수단)
유대인들의 최대명절인 속죄의 날(욤키푸르)에, 열심히 기도하며 속죄를 하고 있던 이스라엘은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으로 초반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곧 반격에 성공한다.
이스라엘의 평소 군사력도 컸겠지만 상대 군사들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으며 엄청난 병력을 끌고 왔기에 ,
이스라엘 반격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의 지원이 컸다고 본다.
초강대국 미국은 이스라엘 건국 이래 주욱 이스라엘 편에 서 왔으며 욤키푸르 전쟁 때에도, 물적, 군사적, 정보적 지원을 해주며 이스라엘에 전세역전의 깃발을 쥐어준다. (미국의 정찰기 SR-71 Blackbird가 전쟁지역을 날아다니며 적군이 어디 위치해 있는지 이스라엘에 알려줬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적은 병력으로 효과적으로 그 수많은 아랍연맹군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결과
더 큰 전쟁을 우려 유엔과 미국(이스라엘지원), 소련(아랍군 지원)의 제재로 휴전협정이 체결
이스라엘의 시나이 반도 상실 (전쟁 이후 이집트와의 협정을 통해 반환함)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협정
이집트의 이스라엘 적성국 대열 이탈
시리아의 패배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어려웠을지도 모르는 이 전쟁은, 석유파동을 초래했다.
즉, 세계 석유 생산량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아랍지역의 산유국들이, 주적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 서방국가를 압박하기 위해 석유생산을 줄이고 가격은 엄청나게 인상한다..
아랍군들과 이스라엘군들의 싸움 역시- 그 뒤에는 소련과 미국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늘져있다.
욤키푸르 전쟁에서 소련이 아랍군들의 이스라엘 공격을 돕지 않았다면(약 13,000톤이 넘는 군수물자를 때려부었다고.)- 미국도 이스라엘을 그렇게까지 돕지 않았을것이다. 미국은 1,2,3차 중동전쟁에 걸쳐 이스라엘을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안좋은 비난여론들의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고 꽤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지원을 요청했을 때 머뭇거렸을테고. 근데 소련이 이집트와 시리아에게 군수품들을 때려박는걸 보고 - 아니 이대로 가다간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겠어!!!!하고 보란듯이 또 이스라엘을 돕고.
이런 4차에 걸친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영토를 넓혔고
그에 파생된 석유파동도 일어남
여기저기 기사나 정리글에서 중간중간 뽑아온 부분도 많음
혹시 잘못된 부분 있으면 댓글 플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