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01009&s_no=201009&page=2
▽▼▽▼지난 링크는 이쪽▽▼▽▼
안녕하세요! ㅇ▽ㅇ
저번주에 남성 한복글로 찾아뵀던
여징어 다시 인사 올립니다.
이번 주는 선남이 있으면 선녀가 있고
짚신도 제짝이 있는 법이라고
여성 한복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들고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선남과 선녀가 있고 짚신도 짝이 있다지만
오징어와 여징어에게는 ASKY가 있을 뿐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언급하면서(...
여성 한복에 대해 먼저 들어가기 앞서
정정사항을 먼저 알려드리고 시작하려 합니다.
저번추 철릭에 대해 설명하면서
'초기에는 소매가 넓다가 후기에 이르러 좁아진다.'고 알려드렸는데
어느 분께서 '초기에 소매가 좁고, 후기에 소매가 넓다.'라고 정정해 주셨습니다.
(출처 :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철릭)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고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드렸네요ㅠ
자료의 정보가 잘못됐음을 알려주신 ㅁㄹㅁㄹ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저번글을 읽으셨던 분들에게는 사과를 전해드립니다.
이렇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둥글게 덧붙여 주시는 오징어, 여징어 분들...
사, 사...사탕드실래요?
...
이번 글에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둥글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짤은 절대로 이영애님의 인생 화보라서 고른게 맞습니다.
제목과 위에서 말씀드렸다 시피 오늘은 여성 한복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여성 한복의 특징은 짧은 상의인 저고리와
풍성하고 아름다운 곡선으로 대표되는 치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성 한복의 부위별 명칭
요즘에는 한복을 자주 입을 일이 없고,
단순하게 속치마위에 치마를 입고 저고리를 입는 경향이
강한데 사실 이 한복치마가 가진 고유의 풍성한 아름다움은
입고 또 입고 속옷으로 완성되는 아름다움입니다.
1.속곳
한복, 특히 여성의 한복은 이 속곳을 잘 갖춰입었을 때
아름다운 태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슴은 가슴가리개로 납작하게 눌러 감추고
일반적으로
다리속곳>속속곳>고쟁이>단속곳>무지기치마
순으로 속곳을 챙겨입은 뒤 치마를 그 위에 입는 형태였습니다.
대슘치마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여성들이 정장을 할 때
무지기치마 아래에 입었다고 하네요.
무지기치마를 입은 모습
흔히 우리가 말하는 항아리 같은 치마모양은
이렇듯 많은 속곳을 입어야만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태였고
조선의 여성들은
상의는 타이트 하게, 하의는 풍성하게 입어
대비를 통한 아름다움을 완성했습니다.
2. 저고리
조선시대 곁막음, 곁막이, 동의대 라는 단어가 함께 쓰인 저고리는
기본적으로 길, 소매, 깃, 동정, 고름으로 이루어져있고
감과, 재봉방식에 따라 홑, 겹, 솜, 누비로
저고리 각 부분에 다른 색의 감을 쓴 것을 따라 삼회장, 반회장, 색동, 민저고리로 나뉘었습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색동, 반회장, 민저고리, 삼회장
민저고리는 깃이나 끝동, 겨드랑이에 다른 직물을 대지 않고
하나의 직물로만 만든 저고리이고
반회장 저고리는 깃, 끝동, 고름에만 다른 직물을 이용한
저고리로 삼회장저고리는 양반가 부녀들만이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평민들이 가장 자주 입던 저고리입니다.
삼회장은 저고리 중에서 가장 격식이 높고 화려한 것으로
깃, 끝동, 겨드랑이에 단이나 견, 주, 사등의 직물을 대어 만든 것으로
주로 자주색 직물을 대어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고
황색 삼회장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는 차림새는
양반가 부인들의 예복차림이었다고 하네요.
색동저고리는 오방색(적색, 녹색, 청색, 백색, 황색)으로 소매를 만들어
남녀의 구분없이 같은 길이로 만든 저고리로,
명절이나 돌잔치때 아이들에게 입히던 것인데
궁궐에서 왕자에게 입혔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답니다.
금박 저고리
또한 궁궐에서는 금사를 이용해 직금한 저고리나
금박을 넣어 한층 더 화려하게 저고리를 만들어
치마와 어울렸을 때 색채조화를 이용해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저고리는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점차 그 길이가 짧아지는데
1600년대에는 60~80cm였던 것이 1700년대에는 45cm,
1800년 대에는 35cm에 이르고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22cm에 이릅니다.
저고리의 길이 짧아지면서 각부분의 형태가 작아졌고
거기에 따라 고름이 가늘고 짧아졌는데
이러한 변화는 엄청나게 큰 머리모양, 풍성한 치마와 어울리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네요.
3. 치마
치마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많게는 여덟겹의 속곳을 겹쳐입어
둔부를 부풀리는 형태였고, 그에 따라 폭이 넓었습니다.
치마는 여성의 아름다운 실루엣을 표현하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여성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길이와 넓이를 다르게해서 신분을 구별할 수 있게 했는데
양반가의 치마는 넓고 길며, 직금이나 금박을 놓은 스란단을 넣을 수 있었고
평민은 민치마를 입었으며, 하속배(하인들)의 두루치는 민치마보다
폭과 길이가 좁고 짧아 속바지가 보일만큼 짧았습니다.
백정의 부녀에게는 더 나아가 치마 가장자리에 반드시
검은 헝겊을 달게해 구분 할 수 있게 했답니다.
때에 따라 입은 모양이 다른 치마를 입었는데
양반 부인들이 혼례나 돌잔치, 환갑, 회혼례 같은 곳에서 입었던
끌치마(큰치마)는 입었을 때 아랫단이 20cm정도 끌리는 모양이었고
거둠치마는 긴치마라고 부르며 신이 보이지 않는 길이로
일반적으로 일을 할때나 평상시에 입었던 치마입니다.
스란치마
대란치마와 스란치마, 스란단
스란치마는 치마단에 금박이나 직금으로 장식한 스란단을 댄 치마로
1층만을 댄 것을 스란치마, 2층을 댄 것을 대란치마라고 합니다.
치마의 색은 보통 다홍색, 남색으로 하고 폭도 보통 치마보다
한 폭을 더 대어 넓게 만들고 땅에 끌리도록 길이도 길었습니다.
연산군 10년에 첫 기록을 찾을 수 있고
16세기 초 이전 부터 착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 스란치마는
소례복에 쓰였고 대란치마는 대례복에 착용하던 치마입니다.
신분에 따라서 황후는 용문을 넣고, 왕비는 봉황문
빈과 공주, 옹주는 화문을 넣어 만들어 입었다고 하네요.
3. 대례복
적의
적의는 왕비의 혼례복으로 가례의 절차중에서
책비, 친영, 동뢰연을 진행할 때 입었던 예복입니다.
고구려 공민왕 때 중국에서 보내온 관복에서 유래한 적의는
조선에서는 태종 때 다시 중국에서 들여와 입었고 인조 때
우리식으로 바꾸어 붉은색을 입다가 고종 때 왕이 황제로
격상되면서 다시 황제비가 입었던 청색으로 바뀌었습니다.
폐슬과 패옥
적의에는 친애해로를 의미하는 꿩무늬를 수놓았고
폐슬, 대대, 혁대, 패옥, 수, 말, 석과 함께 착용했으며
옷깃이 곧게 내려와 좌우가 여며지지 않은 배자의 형태를
하고있으며 깃, 도련, 소매끝에 붉은 선을 두르고
황후는 선에 운룡문을 황태자비는 운봉문을 직금했습니다.
노의
노의는 왕비 및 정4품 이상의 정처正妻가 입던 포로
적의 다음가는 예복입니다.
다홍색의 옷감에 소매끝에는 남색의 한삼을 단뒤
가슴에는 원문을 금박한 자주색 비단인 노의대를 대어 입었습니다.
원삼
원삼은 통인신라 문무왕 때 여복을 개혁하면서 들어온 활수에서 비롯된 옷으로
황후는 황색길에 넓은 소매 끝에 다홍색과 남색의 색동과 흰 한삼을 달고
용문을 직금했으며 왕비는 다홍색 길에 소매에는 노랑 혹은 다홍 남색의 끝동,
흰 한삼을 달아 봉문을 금박한 것을 입었습니다.
또한 공주와 옹주들은 연두색 길에 다홍, 노랑 끝동을 달고 흰 한삼과
화문을 금박한 것을 입었는데
녹색 원삼은 내명부, 외명부 뿐만아니라 일반 부녀자들의
혼례에서 활옷과 함께 혼례복으로 입는 것이 허용 됐다고 합니다.
4. 활옷
화의, 할의라고도 했던 활옷은
공주, 옹주의 대례복이자 상류계급의 혼례복이었습니다.
무가 없이 옆이 트이고 앞길을 둘, 뒷길은 하나로
앞자락보다 뒷자락이 20cm정도 길고 깃을 달지 않은 채
뒷고대(옷깃의 뒷부분)에만 넣은 뒤 흰 동정을 달았습니다.
장수와 길복을 나타내는 십장생문을 옷 전체에 수 놓고
등에는 이정시합, 만복지원 이라는 글씨를 넣고
안쪽은 남색으로 덧대며 소매 끝에 황색, 홍색, 남색의 색동을
단뒤 소매의 진동 아래는 틔웠습니다.
혼례때 남색이나 홍색의 스란치마를 겹쳐입고
삼회장 저고리위에 활옷을 입고 붉은색 비단의 봉대를
뒤로 늘여 가슴에 매고 용잠과 칠보 화관을 쓰는 것이 일반 적이었습니다.
5. 당의
조선시대 여성들의 간의 예복, 소례복으로 평상복 위에 입는
당의는 궁중에서 평상복으로 쓰였습니다.
색에 따라 연두당의, 자주당의, 남송당의, 백생당의 등으로 구분했고
연두당의를 일반적으로 많이 입었습니다.
앞뒤 길의 길이가 80cm정도이고 겨드랑이 아래 양옆이 트인 당의는
도련의 독특한 곡선이 아름다운 의복으로 고름을 달고
안 고름을 함께 달았습니다.
비빈은 금박으로 양어깨와 가슴, 등에 보를 달고
상궁이나 사대부 여인들은 보를 달지 않은 민 당의를 입었습니다.
황후는 자색의 당의를 황비는 홍색, 그 이하는 초록, 백색, 흑색을
입었으며 겨울에는 두겹의 겹당의, 여름에는 당적삼, 당한심
이라고 불리던 홑당의를 입었습니다.
6. 관모
여성들의 모자와 쓰개
여성용 관모도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몇가지만 추려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화관
화관은 조선시대 궁에서 의식이나 경사가 있거나
양반집의 혼례에서 대례복, 소례복에 함께 쓰던 것으로
궁중내연에서 기녀, 동기, 무녀, 여령들이 쓰기도 했습니다.
대체로 5색 구슬로 장식하고 나비모양의 장식을 달았는데
영조 때 족두리와 함께 일반화 되었고
정조에 이르러서는 서민들의 혼례에도 쓰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족두리
화관과 함께 의식 때 예복에 갖추어 쓰던 관의 일종으로
영, 정조 때 가체를 금지하면서 성행했습니다.
검은 비단 여섯 폭을 둥글게 이어 솜을 채워 만드는데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것도 있고
위, 중앙, 옆면에 칠보나, 밀화, 옥 등을 장식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가리마(차액)
영애님의 재 출연(...
사극속 의녀들이 쓰던 관모를 가리마(차액)이라고 합니다.
이 가리마는 족두리가 국풍으로 자리잡으면서 사라졌지만
그 이전까지는 상류층에서도 일반화 되어 있던 쓰개로
얼굴을 가리던 관습과 달리 얼굴을 드러내는 쓰개입니다.
몽수를 쓴 채 앞을 걷어올려 얼굴을 드러낸 것에서
기원됐다고 보는 이 가리마는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금지되자 차츰 기녀와 의녀만이 착용하게 됐고
그에 따라 형태가 간소화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장옷
초기에 서민 부녀자들만 사용하다 후대에 이르러
양반 부녀자들도 사용한 장옷은 두루마기와
비슷한, 넓은 무의 포입니다. 너울 대신 간편하게
만들어 쓰게 된 것으로 보이는 장옷은
보통 초록색 무명 겉감에 안에는 자주색 안감을 대고
거들지(소맷부리에 다는 흰헝겊)을 달고 이마 위에
정수리를 덮도록 흰 헝겊을 댄 형태입니다.
앞에는 여며지도록 단추를 두세 개 달고, 비스듬하게
이중 고름을 대어 달았습니다.
쓰개치마
쓰개치마 역시 너울 대신 간편하게 사용한 쓰개로
치마와 같은 형태이지만 30cm정도 길이가 짧고 폭도 좁았습니다.
붉은색, 옥색의 홑치마에 옥양목 허리를 달아
머리 위로 불룩한 주름을 만들어 썼습니다.
치마의 양끝을 모아 손으로 잡아
이마에서 부터 턱을 가렸습니다.
신윤복의 월하정인 속 여인이
머리부분에 불룩하게 주름을 잡은 옥색 쓰개치마를 썼네요.
너울
너울은 조선 초부터 궁중과 상류계급에서 사용한 쓰개입니다.
원립위에 자루모양의 천을 어깨가 덮일 정도로 드리우고
얼굴이 있는 부분은 항라나 망사류를 대었는데
총 여덟폭의 직물을 대어 만든 이 너울은 앞이 보여야 하는 부분은
홑으로 나머지 부분은 겹으로 만들었습니다.
펼치면 양산과 비슷한 모양으로 자주색, 홍색, 두색의 끈으로
양편에 달아 고정시키고, 머리 부분에 꽃모양을 만들어 달기도 했습니다.
궁중에서 가례와 상례때 왕비 이하의 나인들이 착용했고,
계급간에도 천의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나라 복식 중 멱리 부분을 설명하면서
말씀드렸듯이 고려의 몽수에서 유래했지만
말을 탈때 쓰던 멱리나 몽수를 썼던 것과 달리
엄격한 내외법으로 인해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썼습니다.
잠시 당떨어지는거 같아서 당 보충하고 갑니다.
여기까지 보신 여러분들도 당보충좀 하세요...
아마도 지금 한것 만큼 자료가 남아있는거 같네요^^
....ㅋ....
아무튼 계속해서 갑니다.
7. 머리모양
조선시대에는 자주 가체를 금지하게 하라는 금제법이 시행됩니다.
가체로 인해 사치가 심해져서 그걸 막기위해 가체를 금지 시키면
머리장식으로 인한 사치가 심해지는(... 경우를 왕왕 찾을 수 있는데
도대체 조선 여성들이 어떤 머리를 했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얹은머리
얹은머리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기본 머리 모양입니다.
조선시대에 들어 이 얹은 머리에 가체를 들여 머리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얹은 머리를 한 여인들
성종 때는 1척(30.3cm)에 이를만큼 커졌고
가체로 인한 사치 이외에도 머리장식을 위해
말화, 석황, 금, 은, 진주 장식으로 인한 사치를 유발했습니다.
가체를 드린 얹은 머리
얹은 머리는 머리를 뒤쪽 아래에서 다리를 두갈래로 땋고
하나는 오른쪽 귀 뒤편으로 대고, 하나는 뒤통수 중앙에서
약간 왼쪽에 대어 위로 올린뒤, 두 개의 머리를 모아 가르마 쪽에서
똬리모양으로 둥글게 틀고, 그 밑으로 머리를 모아 왼쪽으로 내려
크게 고(고리)를 만들어 귀와 볼을 덮게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
한글인데 한글 안같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입니다.
상 중에는 이 얹은 머리에 다른 색의 댕기를 달아 노론과 소론을
구별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서민은 다리(가체)를 이용하지 않거나 적은 숱의 다리를
이용해 귀를 덮는 고를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사대부 부녀와 차별을
두었다고 합니다.
어여머리
어여머리는 외명부에서 주로하던 모양으로
왕족은 왕비와 출가한 공주, 옹주들이 했던 머리이고,
당상관의 부인들과 지밀 상궁도 이 어여머리를 했습니다.
당의 차림을 할때 주로 하던 머리모양이지만
정조 때 잔치와 혼례에 사용하는 건 금하지 말라는 기록이 있는걸로
보아 민가의 혼례때에도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첩지머리
첩지머리는 머리 장식인 첩지를 얹은 머리입니다.
첩지머리와 첩지
첩지머리는 첩지를 얹은 머리를 말하고
장식과 형태, 재료에 따라 신분을 구분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장할 때 쓰던 화관이나 족두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용도였고
왕후는 용첩지, 왕비와 세자빈은 광금 황첩지,
정경부인은 광금 개구리 정부인은 후미만을 광금한 개구리
상궁은 은제와 흑색 개구리를 사용했습니다.
고로 사극에서 '첩지를 내리다'라고 하면
내명부에서 한자리 차지 하게 됐다는 뜻입니다.
대수머리
위쪽의 적의를 설명하는 사진에서도 볼 수있는 머리로,
궁중 예식에서 왕비가 대례복을 입었을 때 하는 머리모양입니다.
가체를 이용해서 크고 화려한데, 머리 정상은 고계를 올리고
남은 머리로 정수리에서 어깨까지 A자 모양으로 늘여트린 뒤
뒷면은 두갈래로 갈라 자주색 댕기를 들여
여러개의 흑각잠을 이용해 고정시켰습니다.
장식으로는 대용잠, 대봉잠, 소용잠, 떨잠, 나비 상단 떨잠, 뒤꽂이 진주개, 족두리,
머리삭금댕기, 뒷댕기 등을 가식했습니다.
8. 치레거리(머리장식)
비녀
가체로 사치를 부리는 것이 심해져 가체를 제제하자
쪽머리가 여성들의 일반적인 머리 형태로 바뀌었는데 가체로
사치를 부리지 않는 다 싶더니 여성들은 비녀로 사치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재료로는 금, 은, 백동, 유, 진주, 영락, 옥, 비취, 산호, 목, 죽, 각, 골이 쓰였고
잠두의 모양에 따라 봉잠, 용잠, 원앙잠, 오두잠, 어두잠, 매죽잠
죽잠, 매조잠, 죽절잠, 연봉잠, 목련잠, 목단잠, 석류잠, 가란잠, 국화잠,
화엽잠, 초롱잠, 호도잠, 심장, 두잠, 완두잠, 민잠, 말뚝잠, 조리잠으로 구분했습니다.
존비귀천의 차별이 심했던 조선시대에는
금, 은, 주옥으로 만든 비녀는 상류층만이 사용했고
서민들은 나무, 뿔, 뼈로 만든 비녀를 사용했는데
잠두의 모양에도 크게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기녀들은 심잠이라고 해서 송이 버섯 모양의 잠을
주로 사용했는데 심잠은 그 모양으로 인해 정숙한 부인이나
어염집에서는 사용을 기피했다고 하네요.
어염집에서는 기피 대상이었던 문제의 심잠
용이나 봉황을 조각하거나 붙인 용잠이나 봉잠은 왕족이 사용했지만
사대부집에서도 혼례에 사용했고 보통 비녀보다 길이가 길어 댕기를 양쪽에
감아 앞으로 늘여 달았습니다.
떨잠과 뒤꽂이
떨잠과 뒤꽂이
떨잠은 떨철반자라고도 하는데 궁에서 왕비와 상궁들이 예복을 입었을 때
어여머리를 하고 좌우에 꽂았던 것으로 앞머리 중앙에 꽂은 것은 선봉잠이라
불렀습니다. 가는 철사로 용수철을 만들고 거기에 꽃모양이나 새모양, 보석을
장식해 움직일 때 마다 흔들려 아름답게 보이게 했습니다.
뒤꽂이는 가체를 금지시키면서 쪽머리를 장식하기 위해
발달했는데 쪽을 진 머리에 꽂아 아름다움을 더했던 장식입니다.
빗치개
빗치개는 여성들이 머리 가르마를 탈때 정돈하는 용도로 쓰이거나
머릿기름을 바르는 도구, 빗의 때를 벗기는 용도였습니다.
뿔이나 쇠붙이로 만든 이 빗치개는 한쪽은 얇고 둥글게
다른 한쪽은 가늘고 뾰족하게 만들어
둥근쪽으로는 머릿기름을 바르거나 빗의 때를 벗기고,
가는쪽으론 가리마를 탈 때 이용했습니다.
경대에 넣어두고 쓰기도 했지만 쪽진 머리에 뒤꽂이 처럼 꽂기도 했습니다.
9. 노리개
저고리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는 장신구로
다채로운 색상과 귀한 패물을 사용하여 한복에 화려한 미를 더한 노리개는
이전 많이 애용하던 목걸이나 귀걸이가 쇠퇴하면서
가장 다양하게 발전한 장신구입니다.
띠돈, 끈, 패물, 매듭, 술로 구성되어있고
금, 은, 백옥, 비취옥, 금패,산호등이 이용되었습니다.
패물을 한개 단 것을 단작노리개, 세개를 한 벌로 단 것을
삼작노리개라 했고 매듭은 패물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의 구실을 했습니다.
매듭과 술은 홍, 남, 황을 기본으로 해서
분홍, 연두, 보라, 자주, 옥색을 사용했고 패물의 크기에 따라
매듭과 술의 크기를 다르게 했고
모양또한 딸기술, 봉술, 방울술등을 이용했습니다.
궁중에서는 축의일에 왕비와 귀부인 모두 삼작 노리개를 찼다고 합니다.
☆기녀
조선 여성 복식을 이야기 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치명적인 여성들이었던 기녀의
복식을 빼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신분에 따라 복식도 달리했던 조선에서는
평민 뿐만 아니라 양반들에게도 사치를 막기위한
금제조항이 있었지만 기녀들에게는 이례적으로 많은
예외가 허용 되었고 그에 따라서 기녀들의 옷차림은
사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의복의 구조는 평민의 것과 비슷하지만
재료와 색상, 장신구들이 차이가 있었고
태종과 세종 시기에는 기녀들,
창기라고 해도 모두 양반 부녀자와 동등하게
능라비단을 허용했고, 가죽신을 신을 수 있었으며
금, 은, 주, 옥 같은 장신구 치장도
상류계층과 동등하게 허락했습니다.
거기다 옷감의 색상도 제한이 없어
홍, 녹, 황, 감색(남색)의 원색 옷감을 쓰거나
어린 동기들에게도 홍색 옷감을 썼고
민저고리만 입던 서민들과 달리 반회장은 물론
삼회장 저고리도 입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녀에게도 금지되는 것이나 제한 되는 것이 있었는데
궁중 향연에는 붉은색 옷만을
국빈을 대접하는 자리에서는 흑색 옷만을 입게 했고
겹치마를 입지 못하게 했으며
옷소매의 배래(곡선을 이루는 부분)가 없이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치마도 왼편으로 여미게 하는 양반들과 차별을 두어
오른편으로 여며서 구별하게 했습니다.
기녀들은 천민이었지만 그녀들의 옷차림은
일반 부녀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길이가 짧고 겨드랑이가 보이도록 도련을 파낸 저고리가
평민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부녀자들이 기녀의 복식을 따라해
사치가 심해지자 조선 중기에는 복식에 대한 여러가지 금제령을
내리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사치를 제제하기 위한 금제령에도 기녀들은
몇가지 예외가 허용되어 자유로웠습니다.
상류층에게만 허락되더 금은으로 된 머리장식과
전모를 쓸 수 있었으며 말을 탈 수 있었고
화려한 노리개를 찰 수 있었습니다.
치마 폭 또한 넓고 길어서 속에 십여가지의 속곳을
덮는 동시에 율동미를 주었고 치마 밑단으로
속곳이 드러나도록 추켜올려 입었으며
짧은 저고리로 인해 드러난 하얀 치마 허리에
수를 놓기도 했습니다.
가체로 인한 사치가 심했을 때도 기녀들
만은 얹은 머리를 할 수 있었고
양반 부녀자들에게는 색상의 제한이 있던
장신구 또한 제한 없이 착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사치스러움은 웬만한 양반 부녀자들을
능가했음에도 강력하게 제제하지 않았던 이유가
기녀들을 보는 양반들을 위해서 였다는 견해가
지배적이긴 하지만 조선시대의 여성들중
고달픈 삶이었음에도 유일하게
욕심껏 자유롭게 치장 할 수 있던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는것 같습니다.
제가 정리한 자료는 여기까지 입니다!
오늘 정리해 보여드린 자료는 정말로
한복 복식에 있어서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요즘에는 웬만하면 자료를 디지털화 하기 때문에
조금만 수고를 들인다면 아름답고 화려한 한복을 새롭게 알아가실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싶으시다면
문화콘텐츠닷컴(http://www.culturecontent.com/main.do)을 이용해주세요 :)
길고 지루한 글이었을 텐데 끝까지 함께 해주신
오징어와 여징어분들에게 리스펙트! 를 전하며
이 여징어 물러갑니다!
여러분 모두!
안녕히계세요!!
다음에 또 올지도 몰라요.(소곤
다음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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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