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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망국의 공주에서 황후로, 황후에서 대륙의 지배자로

작성자흥미돋이야기해주는여시|작성시간23.12.01|조회수6,195 목록 댓글 20

출처 : 여성시대 흥미돋이야기해주는여시








도파민 도는 궁중 암투 이야기를 하려면 배경지식이 조금 필요함. 역사 교양 늘리는 겸 대애충 훑어보겠음.


일단 태초에(?) 진시황이 있었음. 알다시피 중국은 아주 넓은 땅임.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21세기에도 영토 넓은 나라로 꼽히는 동네인데 까마득한 기원전엔 어땠겠음. 자연스럽게 중국은 여러 개의 소국으로 나눠져 있었음. 이걸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름.

이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첫번째 황제가 진시황임. 진시황은 황제 중심의 중앙 집권 체계를 확립했고, 이건 청나라까지 근 2천년을 이어짐.





하지만 동아시아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거랑 별개로, 진나라는 진시황의 죽음과 거의 동시에 망함. 진시황이 사망한 후에는 유방과 항우라는 두 영웅이 나타나서 대륙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존나 싸움.
















그게 초한지임.

여차저차 하여 유방이 이겼고, 유방은 한나라를 세워 다시 한 번 통일 제국을 이룸. 최초의 통일 제국은 진나라였지만 그쪽은 역사가 워낙 짧기 때문에 실질적인 최초는 한나라였음ㅇ.ㅇ

짧고 굵게 망했던 진나라와 달리 한나라는 400년 넘게 이어지며 중국 문화의 기초를 다졌음. 그래서 중국 토착 민족을 한족이라고 부르고, 중국의 문자를 한자라고 부르는 거임.





그치만 모든 역사에는 끝이 있는 법. 한나라가 망국의 길로 접어 들면서 또 황제 해보려는 여러 영웅들이 나타나서 와장창창창 싸워대니















삼국지임.

동아시아 사람치고 삼국지 모르는 사람 드뭄. 유비, 조조, 관우, 장비 등등 이름은 한번씩 들어봤을 거임.

자 그럼 삼국지 결말이 어케 됐느냐

















조조의 최측근이자 위나라의 재상이었던 사마의가 최후의 승자임. 사마의는 고평릉 사변에서 실권을 잡았고, 이후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워 다시 한 번 통일 제국을 이룸. (진시황의 진나라랑 구분하기 위해 이쪽은 서진이라고 부름)


하지만 진나라라는 국호에 마가 낀 건지 서진도 오래 못 갔음. 특히 북방의 이민족이 내려오면서 화북 지방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고 강남으로 내려감. (화북 지방은 대충...황허 위쪽이라고 생각하면 됨)















이후 화북지역은 중국 역사에서도 손 꼽히는 혼란기가 개막하는데, 이걸 오호십육국시대라고 부름.

오호 = 다섯 오랑캐
십육국 = 16개의 나라

즉 중국 토착 민족인 한족 외에 다섯 개의 북방 민족이 16개의 나라를 세웠단 거임. 아무리 중국 땅이 넓다지만 중원 전체도 아닌 화북에 나라가 열여섯개면 존나 콩가루임. 심지어 저 16국도 나름 역사에 발자취 남긴 나라만 계산해서 16국이지, 소리소문 없이 단명한 나라를 포함하면 셀 수도 없음.







이 개쩌는 콩가루에서 도파민이 등장하니...
















시작은 태무제였음. 태무제는 북위의 세번째 군주였음. 위에서 오호 십육국 설명했잖음? 오호 중 하나인 선비족이 세운 나라임.

태무제는 개쩌는 정복자였음. 즉위하자마자 북쪽의 유연을 침공하더니 서쪽의 북하, 동쪽의 북연까지 싸그리 멸망 시켜서 화북을 통일함.














이리 하여 오호 십육국의 시대가 끝나고 남북조 시대가 열림. 화북=북조는 선비족의 북위가, 강남=남조는 한족의 유송이 통치하는 형태가 완성된거임.



자 그럼 태무제는 화북의 지배자가 된 거로 만족했을까? 그럴 리가 없음ㅇㅇ. 태무제는 곧장 강남으로 향하고, 태무제의 아들이자 황태자인 탁발황이 대리청정을 함.

이제 이쯤에서 중국 역사 필수 조건이 하나 나오게 됨. 그것은 바로바로


















간신배 환관ㅎ


태무제는 종애 라는 환관을 매우 총애하고 신임했음. 반면 대리청정을 맡은 태자 탁발황은 종애를 불신해서 자기가 믿을 수 있는 가신을 등용함. 대표적인 가신이 도성임. 종애는 도성+탁발황 일파와 당연히 사이가 안 좋았음.

한편 태무제는 강남으로 떠났지만 북위의 뿌리는 뭐다? 선비족이다. 선비족은 북방의 유목+기마 민족이기 때문에 기병술은 강했지만 해군 전력은 상대적으로 약했음. 결국 태무제는 강남 정벌에 실패하고 돌아옴.













이에 종애는 태무제한테 도성 일당을 모함함. 기록에 따르면 태무제의 성격은 용무엄혹임. 용맹하면서 엄한, 군인 같은 성격. 태무제는 곧장 도성 무리를 죽여버림.

그러자 탁발황은 앓아누움. 내가 신임하던 휘하의 군사들이 아버지 손에 다 죽어버렸잖음. 분노+시름으로 끙끙 앓던 탁발황은 그대로 병사함.
















태무제는 자기 아들을, 그것도 가장 아끼는 장남을 죽임 꼴이 된 거임. 물론 태무제가 직접 아들을 죽인 건 아니지만 상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


그러자 종애는 두려워짐. 따지고 보면 자기가 원인 제공을 한 거잖음? 후환을 걱정하던 종애는 결국 태무제를 암살함. 화북을 통일한 정복 군주치고는 참 허무한 최후가 아닐 수 없음.















죽은 황태자 탁발황의 아들인 탁발준이 황제가 되는 게 옳은 순서지만 탁발준은 너무 어림.

이에 몇몇 중신들은 태무제의 셋째 아들인 탁발한을 옹립하려는데, 종애가 선수를 쳐서 탁발한과 중신들을 죽이고 황제의 유언을 조작해 태무제의 여섯째인 탁발여를 허수아비 황제로 올림.

심지어 황제가 된 탁발여가 자기를 견제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탁발여까지 살해함. 두 명의 황제, 한 명의 황태자, 한 명의 황자, 승상이 환관의 손에 죽은 거임ㄷㄷ












결국 금위군관 유니를 비롯한 몇몇 충신들이 합심해 종애를 제거하고, 본래 황제가 됐어야 할 탁발준을 옹립함. 열 세살의 탁발준이 황제가 되니 얘가 문성제임.


이 문성제에게는 총애하는 후궁이 있었으니














풍씨 성을 가진 귀인임. 이 사람이 오늘 글의 주인공임. (시발 서론 존나게 길었네)




태무제가 화북을 통일할 때 멸망시킨 나라 이름 기억남? 북쪽의 유연, 서쪽의 북하, 동쪽의 북연. 풍귀인의 할아버지인 풍홍이 바로 북연의 마지막 황제인 소성제임. 풍귀인의 아버지는 북연의 황자였으니 풍귀인은 (북연이 와르르멘션 하지 않았다면) 북연의 공주가 됐을 거임.

황자였던 아버지가 북연이 멸망할 걸 예감하고 북위로 망명했다는 판본이 있고, 계모인 황후에게 모함을 받아 북위로 망명했다는 판본도 있는데 뭐가 진실인지는 모름. 북위가 국서필화 사건의 여파로 기록물이 많지 않음. (국서필화까지 설명하면 리얼 교양 극장되니까 생략)












풍귀인의 일생을 처음부터 파보자면 이럼. 풍귀인의 아버지는 위에 쓴대로 북위로 망명해 살고 있었는데, 풍귀인이 아직 미취학아동일 적 역모에 연루됨. 당시 북위의 법률에 따라 아버지와 오빠는 사형당했고, 딸인 풍귀인 혼자 살아남아 북위 황궁의 노예가 됨. 망국의 공주 신분도 모자라서 이젠 노비가 된 거임;

얘가 노예가 됐을 당시에는 아직 태무제가 살아 있었음. 노예로서 노동을 하던 아이는 태무제가 총애하는 후궁 좌소의의 시녀가 되는데, 이 좌소의의 아버지가 소성제풍홍이었음. 즉 좌소의는 북연의 공주이자 풍귀인의 고모임. 운 좋게 좌소의와 만난 아이는 이후 고모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데


















얼마 안 지나 위에서 설명한 종애의 칼부림이 시작되며 황궁이 쑥대밭이 됨. 1년 남짓한 시간에 황족이 여럿 죽어나가다 문성제가 즉위하는 걸 모두 지켜본 좌소의는 문성제에게 환심을 사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단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고, 자신의 조카딸을 문성제에게 바침.

문성제는 풍씨를 총애하며 바로 귀인 첩지를 내렸고, 망국의 황족 출신 노예였던 아이는 황제의 애첩 풍귀인이 됨. 문성제가 열셋, 풍귀인이 열한살이었음.













황제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 됐으니 행복하게 살았...다면 이 글이 안 나왔겠죠?

당시 북위에는 엄청난 악습이 하나 있었으니
















자귀모사, 혹은 자귀살모 제도임. 특정 황자가 태자 책봉을 받을 경우 그 생모를 죽이는 풍습임. 이런 괴상한 악습이 생긴 이유는 오로지 하나. 외척을 경계하기 위해서임. 좀 더 심도 깊게 설명하자면 이럼.




자고로 외척은 모든 왕조에서 경계 대상임. 한국만 해도 태종 이방원은 외척을 경계해서 자기 처가랑 사돈 박살냈고, 외척의 득세가 세도 정치로 이어짐. 하물며 중국은 땅덩어리가 넓기 때문에 더 심했음.

땅이 너무 넒고 다민족 국가라 완벽한 중앙 집권 체제가 사실상 불가능함 -> 황제는 지방 호족을 견제할 수 있는 친위 세력이 필요함 -> 근데 종친은 언제든 황권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정적임. 고로 중국의 황제들은 대개 환관을 자신의 친위 세력으로 등용함. 허구한 날 환관 간신배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임. 환관, 외척, 귀족이 서로를 견제하며 돌아가는 게 고대 중국의 황실이기 때문에 중국 황제들은 항상 외척을 경계함. 북위 이전의 통일 제국인 한나라도 사실상 그 균형이 무너져서 외척이랑 환관이 싸우다 망했고ㅇ.ㅇ

게다가 위에서 말했다시피 선비족은 유목 민족이었고, 유목 민족은 모계 권력이 강했음. 또한 유목 민족은 아직 적장자 상속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음. 결국 족장의 후계를 정하는 과정에서 모친, 더 나아가 그 모친의 출신 부족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따라 후계가 정해지는 일이 왕왕 있었음. 강한 외척을 가진 아들이 후계가 되는 거임.





북위를 건국한 초대 황제 도무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음. 도무제는 외부의 적보다는 같은 선비족 내 다른 부족과 내분하는 일이 더 많았음. 저 뭐 유목 민족일 때야 그런다 치더라도 북위라는 국가가 됐는데도 외척이 득세하면 나라꼴 개판나겠지? 예를 들어 황자 1과 황자 2의 어머니, 더 나아가 그 외가들끼리 서로 싸우면 바로 망테크 타기 딱 좋음.

결국 도무제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동원해 대부족들을 강제로 해체시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기 모친을 죽였고, 태자의 모친이자 자기의 후궁인 유귀인한테도 자살을 명령함. 무고한 후궁을 희생시킴으로서 외척이 득세할 여지를 완전히 제거하여 황권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승계 구도를 만든 거임.

물론 황제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귀모사를 즐거워하진 않음. 도무제가 황권을 위해 유귀인을 죽이자 유귀인의 아들이자 태자인 탁발사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아버지와 갈등하다 결국 황궁을 떠나버림. 그러자 도무제는 다른 아들인 탁발소를 후계로 삼기 위해 탁발소의 생모인 하란비를 죽이려다 역으로 하란비+탁발소한테 살해당함.

반란이 일어나자 18살의 탁발사가 돌아와 이복동생 탁발소와 하란비를 죽이고 황위에 오르는데, 자신의 황후가 태자를 낳자 오랜 고민 끝에 황후에게 자결을 명함. 아버지 손에 어머니를 잃고 사실상 절연했던 탁발사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갔다는 게 정말 아이러니한 일임. 유목민족인 선비족이 농경민족인 화북의 한족을 다스리며 ‘국가’를 운영하려면 해야만 하는 필요악이라고 여긴 거임.

쨌든 이렇게 하나의 풍습과 전통으로 자리잡았으니 자귀모사는 이어질 수밖에 없었음. 북위라는 나라의 시대적 특성상 태종 이방원의 외척 숙청보다 좀 더 극단적이고 비인간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듯.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풍귀인은 문성제의 총애를 받음. 그러나 북위에서 태자를 낳는다는 건 곧 사형 선고였음. 이 어처구니 없는 갈림길에서 풍귀인은 고모 좌소의가 그랬듯 악착 같은 생존을 도모하기로 결심함.

당시 문성제한테는 풍귀인 외에도 이비라는 후궁이 또 있었는데, 풍귀인은 황후 자리를 놓고 이비와 경쟁하고 있었음. 풍귀인은 아직 자식이 없었지만 이비에게는 탁발홍이라는 아들이 있었음. 보통 궁중암투라 하면 자기 아들을 태자로 세우기 위해 일어나지만 자귀모사 제도가 있는 북위는 정반대임. 남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는 게 후궁들의 목표였고, 따라서 풍귀인은 이비보다 한참 앞서 있었음. 이비는 자식이 있지만 풍귀인은 아직 자식이 없으니까.

풍귀인은 문성제에게 “탁발홍을 태자로 책봉해서 황권을 다지고 미리 승계 구도를 안정시키시라”고 부추겼고, 결국 어린 탁발홍이 태자가 되면서 생모인 이비는 자귀모사 제도에 따라 죽음. 이렇게 정적을 제거한 풍귀인은 북위의 황후가 되는데, 풍귀인이 열네살 때의 일임. 생모를 잃은 탁발홍은 북위의 법률에 따라 황후 손에 양육됨.
















이후 465년. 문성제가 26살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요절하며 열두살의 탁발홍이 황제가 됐고, 풍황후는 자연스럽게 태후가 됨. 탁발홍을 헌문제라고 부름.

헌문제가 즉위할 당시 조정의 권력은 거기대장군 을혼이 잡고 있었는데, 풍태후는 을혼을 제거해 실권을 잡은 다음 수렴청정을 선언함. 이후 북위 조정의 중신을 하나하나 자기가 뽑고 임명하면서 조정을 완전히 장악함. 망국의 공주에서 노예로, 노예에서 후궁으로, 후궁에서 황후로, 황후에서 태후로, 그리고 이젠 사실상 화북의 지배자가 된 거임.



















헌문제가 장성하면서 수렴청정은 끝났지만 실권은 여전히 풍태후 손에 있었음. 애초에 조정의 중신을 뽑은 게 풍태후잖음 ㅇ.ㅇ

당연하게도 헌문제 입장에선 빡침. 내가 어릴 때면 모를까, 이미 장성했잖음. 당시 풍태후한테는 이혁이라는 최측근이 있었는데, 염문설 수준의 야사가 남았을 정도로 총애하는 수족이었음. 사사건건 풍태후와 부딪치던 헌문제는 이혁을 예고 없이 잡아들인 다음 뇌물죄를 빌미로 이혁과 가족을 모조리 죽여버림.


















풍태후는 당연히 분노했지만 어쨌든 헌문제는 황제고, 황제한테 직접적으로 보복하는 건 역모의 소지가 있음. 분노를 억누른 풍태후는 정치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헌문제를 정치적으로 완전히 고립시켜버림.

또한 헌문제의 후궁이 아들 탁발굉을 낳자 즉시 탁발굉을 태자로 책봉하고, 자귀모사 제도에 따라 생모를 죽인 다음 황태자 탁발굉을 자기가 양육함.





사실상 허수아비 황제가 된 헌문제는 마지막 수로 양위를 선언함. 태자 탁발굉이 너무 어리니 숙부에게 양위하겠다는 거임. 헌문제의 숙부라 하면 문성제의 형제임. 아무리 풍태후라도 섭정을 할 명분이 없으니 나름 묘수였으나...















조정 대신들은 전부 풍태후의 편이었음.


"폐하께서는 지금 황숙에게 보위를 선양하려고 하는데, 신은 소목이 문란하여 후세에는 반드시 역적이 들고일어났다는 비난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폐하께서 만약 태자를 버리시고 제왕들로 교체할 것을 논의한다면, 신은 청컨대 목을 베고 죽을지언정 감히 조서를 받들 수 없습니다."



반대에 부딪친 헌문제는 결국 순리대로 황태자 탁발굉에게 양위하고 물러남. 고작 여섯 살의 태자가 황제로 즉위하니 효문제 되겠음.















열두살보다도 어린 여섯살 황제가 즉위했으니 조정은 또 풍태후 천하임. 상황으로 물러난 헌문제는 어떻게든 실권을 되찾기 위해 풍태후와 대립하지만 풍태후는 그걸 두고 볼 사람이 아니었음. 결국 풍태후는 헌문제를 독살하고 태황태후가 되어 완전히 나라를 장악함.


풍태후의 수렴청정은 효문제가 장성해 20대 청년이 된 후에도 쭉 이어지다가 490년에 이르러서야 멈춤. 490년에 왜 멈췄냐
























ㅎㅇ 나 저승사자


490년, 병상에 누운 풍태후는 효문제에게 실권을 넘기고 물러나 요양하다가 마흔 아홉의 나이로 눈을 감음. 이리 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던 파란만장한 일생이 끝남.

















여담 1


효문제가 풍태후 손에 길러지긴 했지만 사실상 아버지의 원수잖음? 더군다나 풍태후는 효문제를 잠재적 정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체벌했고, 자기한테 대든다는 이유로 빈방에 가두고 며칠씩 굶기기도 했음.

결정적으로 효문제가 아주 사랑하던 후궁이 아들을 낳자 효문제는 풍태후를 찾아가 자귀모사 제도를 폐지해 달라고 읍소하는데, 풍태후는 얄짤 없이 후궁을 죽여버림.

근데 효문제는 풍태후에게 항상 효도했고, 풍태후가 사망해 눈치 볼 상대가 없어진 후에도 몹시 슬퍼하며 극진히 장례를 치름. 그래서 효문제가 사실 헌문제의 아들이 아니라 풍태후와 이혁의 아들이란 야사가 있음













여담 2

풍태후가 죽고 실권을 되찾은 효문제는 자귀모사 제도를 폐지하려는 시도를 했고, 효문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아들 선무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자귀모사 제도를 완전히 폐지함. 이리 하여 선무제의 후궁은 태자를 낳고도 목숨을 건진 최초의 여인이 됐고, 선무제가 죽고 자신의 아들이 황제가 되자 태후가 됨. 이 사람이 영태후임.

근데 영태후가 섭정하자 외척이 득세함(;;;) 심지어 영태후 본인도 서서히 권력욕에 미쳐서 친아들인 황제랑 권력 다툼하더니 결국 자기 친아들을 살해함(;;;) 그 친아들이 남긴 자식이 1살짜리 손녀 한 명이니까 손녀를 남자아이라고 속여서 즉위시킴(;;;)

가장 중요한 시기에 황실이 10년 넘게 영태후 모자의 권력 투쟁으로 마비됐으니 나라가 멀쩡할 리 없음. 결국 영태후는 아들을 죽인 그 해에 군벌의 손에 살해당했고, 북위는 영태후 사후 6년 만에 끝장났다고 한다...;;;
















- 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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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shake it off | 작성시간 23.12.20 아 재밌다 아니 나 금수미앙이라는 중드 재밌게 봤는데 진짜로 탁발준이라는 사람이 있었구나 난 전부 픽션인줄 근데 자귀모사 충격적이다 무슨 그런제도가;;; 풍귀인 이름은 다르지만 미앙이 모티브인거 같은데 탁발준 죽고나서 미앙이는 정말 잘 살다 갔구나... 글 너무너무 재밌게 잘봤어 고마워 여샤!!
  • 작성자rururhen | 작성시간 24.03.24 와 개재밌다
  • 작성자킹가리 | 작성시간 24.11.22 역시 동양역사 개꿀잼
  • 작성자내림올림반올림좌 | 작성시간 24.11.22 저때는 진짜 환관이랑 외척이랑 아주 번갈아 난리도 아니었구나ㅋㅋㅋ
  • 작성자인생훌랄라 | 작성시간 24.11.23 허엌 유비랑 유방이랑 여태 같은 사람인줄.....허엌ㅋㅋㅋㅋㅋㅋ유비 고 유방 인데 왜 여태 같은 사람이라 생각햇냨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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