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흥미돋]영화 <서울의 봄>.... 12.12 군사반란 이후 인물들의 이야기
작성자100만 원하다 200 후퇴보다 20이라도작성시간23.12.13조회수14,589 목록 댓글 31정승화 참모총장
12. 12 쿠데타 직후 날조된 죄목으로 7년형을 선고받았으며
무려 참모총장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당함
강제로 옷을 벗기고 '아직도 총장인 줄 아냐'는 모욕적인 언사를 듣기 일쑤였으며
물고문, 전기고문 등 온갖 고문을 다 당하셨음
1981년 3월 사면, 복권
1993년 전두환, 노태우를 검찰에 고발
1997년 재심으로 무죄판결 받음
1999년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 회장 역임
2002년 향년 76세의 나이로 타계
근데 빈소에 노태우가 조화 보냄...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12.12 군사반란 진압 실패 후
보안사령부에 체포되어 서빙고분실에서 두 달간의 조사를 받음. 당연히 조사만 한 건 아닐것임
이후 가택연금을 당하며 이등병으로 강등됐고
이 충격에 부친은 이듬해 4월 별세
영화에서 보면 보좌관이 "똑똑한 아들 대학 입학식에 가야 하지 않으십니까" 라고 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아들은 1982년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 입학
그러나 같은 해 4월 낙동강변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 사인은 밝혀지지 않음
1994년 재향군인회장 역임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함
2010년 별세
그 후...아내분께서는 2012년 1월 17일 투신자살함
노재현 국방장관
12.12 군사반란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퇴했지만(미8군 사령부로 튄 것도 다 팩트임)
아주 잘먹고 잘 살며 꽃길만 걸었음
군사반란 이틀 뒤인 1979.12.14에 국방장관 사퇴,
이후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 한국비료공업협회 회장,한국자유총연맹 총재 등을 지냈고
2019년 사망
심지어 재벌가와 혼맥이 있어서 자녀들도 잘먹고 잘 사는 중
윤성민 육군중장
마찬가지로 잘먹고 잘 살다가 감
1981~1982 제 17대 합참의장 역임
1982~1986 제 23대 국방부장관 역임
이후 한국석유개발공사 이사장
대한방직협회장 등으로 근무
을지·화랑무공훈장, 보국훈장 통일장, 미국 은성훈장, 월남국가 3등훈장 등 다수의 훈장을 수훈
2017년 사망
정병주 특전사령부 사령관
12.12 군사반란 진압 도중 부하에게 총격당해 부상을 입음
직속부하였던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는 이미 배신한 상태였음
이후 1980년 소장으로 강제 예편
이후 7년동안 은둔 생활을 하시다가
노태우가 언론에 12.12 군사반란을 미화하는 발언을 하자 격분하여 이 군사 반란의 위법성을 주장하셨으나
1988년 10월 실종되었고
1989년 3월 고양시의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됨
현재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심
김진기 헌병감
다른 정의로운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군사반란 직후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1980년에 강제예편 당함
이후 한국토지공사 이사장으로 근무하시다가
2006년 별세
생전에 "평생을 12.12쿠데타의 악몽에 시달렸다"고 말하곤 했음
김오랑 소령
반란군에게 6발을 맞으며 현장에서 즉사
뒷산에 암매장되었다가 1980년 현충원에 정식으로 이장됨
부친은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홧병으로 사망
아내는 충격으로 실명
한편, 김오랑 소령과 절친한 사이였지만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던 박종규 중령은
군사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잘 살다가 1997년 4월 17일에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음
이후 2009년 김오랑 추모사업회에 사죄한다는 의사를 표했고 죽을 때까지 식도암으로 고생하다 사망함
반란군 측은 볼 필요도 없음
다 잘먹고 잘 살다가 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