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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공감 능력이 뛰어나면 좋은 걸까?

작성자인생힘들고어려워|작성시간24.01.08|조회수5,427 목록 댓글 5

출처 : 여성시대 (비밀의숲)

 

 

 

 

 

 

공감의 반경 - 장대익, 바다출판사

 

 

공감 능력이 뛰어나면 좋은 걸까?

 

 

누군가는 말한다. 오늘날 가속화하는 혐오와 분열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서라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감은 만능 열쇠가 아니다. 오히려 공감을 깊이 하면 위기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우리의 편 가르기는 내집단에 대한 과잉 공감에서 온다. 대체 무슨 말인가? 공감은 일종의 인지 및 감정을 소비하는 자원이므로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없다. 따라서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해 공감을 과하게 쓰면 다른 집단에 쓸 공감이 부족해진다. 자기 집단에만 깊이 공감하는 것이다. - 공감의 반경 본문 中 발췌

 

 

​<공감 능력>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 요즘, 정확히 짚어봐야 할 개념과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서 가져온 책이야.

 

공감 능력은 지능과 연관이 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니 쟤는 싸이코패스일 것이다.. 공감 능력이 풍부해야 좋은 사람이다.. 공감 능력이 너무 뛰어나면 앰패스다..

 

자, 그래서 <공감>이 무엇이냐.

 

공감은 두 유형으로 나뉜다고 함. 정서적 공감인지적 공감.

 

여기서 정서적 공감은 쉽게 말해서 감정의 전염, 이라고 생각하면 돼.

 

드라마 보면서 주인공이 울면 나도 우는 것, 옆 사람이 자기 힘든 얘기하면서 울길래 나도 울어버리는 것. 이런 게 바로 정서적 공감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야. 마찬가지로 축구 한일전할 때, 집중해서 보다가 골 넣으면 신나서 쌩판 모르는 옆사람이랑 하이파이브하고 끌어안는 것도 정서적 공감 때문에 발생하는 일.

 

그럼 인지적 공감은 무엇이냐. 이건 "역지사지"라고 생각하면 돼. 말그대로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 타인의 마음을 머리로 '인지'하는 것.

 

혹시 여기서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의 차이가 느껴져?

 

정서적 공감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자동화 시스템으로 본다면, 인지적 공감은 자동적으로 되지는 않아서 생각을 하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배워서 터득하는 수동화 시스템이라고 보면 돼.

 

그럼 둘 중에 뭐가 더 강력할 것 같아?


당연히 정서적 공감이지. 내가 구태여 생각하고 이해하고 배우고, 공감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 정서적 공감은 공감의 지분을 굉장히, 그러니까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어.

 

그런데 그게 왜? 그게 문제가 돼? 정서적 공감이 공감의 총량 중 너무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그래도 타인에게 공감하는 건데, 싸이코패스처럼 공감하지 못하는 것보다 공감하는 게 더 나쁘기라도 해?

 

놀랍게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정서적 공감의 과잉은, 너무 강력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정말 위험해.

 

정서적 공감은 선천적인 거야. 배워서 생기는 게 아니라 영유아기 때부터 타고나는 선천적인 공감 능력인 거지. 갖고 태어나는 것에 가까운 이 정서적 공감의 원인이 되는 것은 "거울 뉴런계"라고 하는데 뉴런이 신경이라는 말이니까 풀어보면 거울 신경이라고 하는 거지. 아마 자주 들어봤을 거야. <미러링>이라는 단어. 그게 바로 이 거울 뉴런계의 기능이지.

 

그래서 이 거울 뉴런계에 문제가 생기면 자폐나 반사회적 성향 등을 가질 수 있다고 해. 자연스러운 공감 능력을 갖지 못한 거니까.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이 정서적 공감이 많은 게 왜 문제가 된다고 하는 거야?

 

정서적 공감은 굉장히 강하고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지만 공감의 반경이 무척 짧아. 그러니까 내집단과 외집단을 나누는 데서 더 큰 능력을 발휘한다는 거야. 무슨 소리냐. 나의 바운더리에 속한, 그러니까 내가 속한 집단에는 과잉적으로 공감하는 것과 동시에 내가 속하지 않은 외부 집단-타집단에 대해서는 엄청난 공감 능력의 부재를 일으켜. 그러니까 한마디로 내가 속한 집단에 내가 가지고 있는 공감 능력을 최대치로 퍼붓는 거지.

 

그런데 이게 왜 문제야? 내 사람들에게 잘하는 건데?

 

바로 거기서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왜?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나라 국민, 우리나라 민족 등 내집단에 대한 공감과 충성력을 최대로 이끌어내고, 반대로 외집단에 대한 강력한 혐오와 공격심을 유발하기 때문에.

 

공감은 마일리지 같은 거라고 해. 어디에 한 번 쓰면, 다른 데에는 쓰지 못해. 수량이 제한적으로 설정된, 일종의 한정된 마일리지거든.

 

왜, 사람 만나는 게 피곤하다는 말 있잖아? 그게 바로 이 공감 때문이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함께 어울리면서는 눈치도 봐야 하고, 사람의 표정이나 안색도 살펴야 하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짐작해야 하고, 내가 너무 선을 넘는 발언을 한 게 아닌가? 내가 너무 친한 척 말 걸지 않았나? 저 사람, 겉으로는 웃고 있는데 내가 지금 선 넘었다고 벽 치는 거 아닐까? 속으로 욕하고 있는 거 아닐까? 혹시 이 사람 사기꾼 아닌가?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지? 나 등처먹으려고 그러나? 등등 고려해야 하는 게 너무 많으니까.

 

정서적 공감의 문제는 더 있어. 강력하지만 너무 금방, 너무 쉽게 휘발된다는 문제를 갖고 있지.

 

그러니까 당장은 공감하지. 자국에 전쟁이 일어나 난민이 된 아이가 자국을 탈출하려다 사고를 당해 죽었어. 죽은 아이의 시체가 해변에 떠밀려 왔지. 이 광경을 본다면 사람의 마음이 어떨까? 그 아이가 백인인지, 흑인인지, 아시안인지, 남아인지, 여아인지, 장애가 있는 아이인지, 없는 아이인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은 자연스레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 그 아이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각인이 되었는지,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난민 수용에 대한 법안을 뜯어고치고 자국에 난민을 받는 데에 찬성해.

 

그러나 그게 얼마나 갔을까? 얼마 안 가, 난민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난민 수용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난민 법안은 다시 뜯어고쳐지고 있어. 그게 지금 유럽을 포함한 난민 수용 국가들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야.

 

난민은, 외집단이거든. 사실상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빼면 피부색부터 인종, 머리색, 눈동자색, 쓰는 말이나 가진 문화 모두 다른 외집단 사람들이니까.

 

쥐에게 실험한 결과도 있어. 쥐를 가둬놓고 버튼을 앞에 두는 거야. 버튼을 누르면 음식이 제공되게 되어있지. 하지만 버튼을 누르면, 옆방에서 다른 쥐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걸 듣게 되기도 해. 그러니까 내가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기 위해 버튼을 누르면, 옆방에 있는 다른 쥐가 고통을 받는 거야. 그 매커니즘을 이해한 쥐들은 배가 고프다못해 며칠이나 쫄쫄 굶게 되어도 버튼을 누르지 않는데, 중요한 건 이 부분이 아니라 그렇게 선택한 쥐가 내집단에 대해 더 크게 반응을 했다는 거야.

 

나와 같은 우리나 실험실에 있던 쥐가 내지르는 비명을 들은 쥐는 버튼을 무려 12일간 누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전혀 모르는, 친분이 전혀 없는 쥐가 내지르는 비명을 들은 쥐 중에는 그냥 무시하고 버튼을 누른 경우도 있었다는 거지.

 

잠깐만. 내집단이 겨우 그런 걸로 정해지기도 해?

 

그럼. 거창하게 인종이나 민족이나 같은 자국민이나 하는 것까지 갈 필요도 없이 학연 지연 혈연으로도 생성되고, 하다못해 잠깐 같은 공간에 머물렀다고 내집단이 되기도 해. 이 책에서는 학연 지연 혈연에 흡연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하더라고. 회의 시간에는 대판 싸우고 씩씩댔었지만 흡연실에서 서로 불을 붙여주고 담배를 같이 태우다 보면 친밀성이 강화된다는 거야.

 

잘 알려진 <살인의 심리학> 등에서 보면, 히틀러도 그랬지만, '내집단'에 대한 공감의 과잉을 불러일으키면 자연히 '외집단'에 대해서는 공감의 부재가 과잉으로 일어나기도 해. 외집단을 비인간화 시킬 수도 있어. 가령, 월남전에서 베트남인들을 베트콩이라고 부르면서 쏘아죽이고 그 시체의 신체 일부를 잘라다 전시하거나 수집하는 행위에 대한 일 같은 것 말이지. 일본이 조선에 행했던 일도 마찬가지고. 미국이 이라크병에게 한 일도 똑같은 행위야.

 

내집단에 대한 공감을 극도로 강화했기 때문에, 내집단을 공격하고 내 동료를 살해한 그들에 대한 비인간화 역시 극도로 이루어졌던 거지.

 

그럼 정서적 공감은 결국 안 좋은 거네? 인지적 공감만 해야 되는 건가?


그건 아니야. 정서적 공감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거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다만 정서적 공감이 본인의 <공감 능력>에서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끔 두지 말라는 거야.

 

가장 건강한 공감의 상태는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이 서로 팽팽하게 알력 다툼을 하는 것처럼, 사이좋게 함께 발휘되어야 한다고 해.

 

이를 테면 이런 거지. 나는 이성애자라서 동성애자들이 겪는 불합리함과 사회적 차별에 대한 건 자연스럽게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없어. 하지만 그들이 어떤 불편과 차별과 혐오를 받는지 알아. 그러니까 동성애자 편에 서서 함께 평등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한다면 그건 인지적 공감에서 오는 마음이야. 그러다 사회의 차별과 혐오로 인해, 상처받고 슬퍼하는 동성애자를 봤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는 거야. 이건 정서적 공감에서 오는 마음이지.

 

나는 비장애인이고 신체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어서 장애인들이 얼마나 큰 불편을 겪고 있는지는 솔직히 잘 알 수 없어. 하지만 장애인이 불편을 겪는다는 사실을 마땅히 이해하고 있고,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시위를 보며 사회 복지나 법안이나 기술들이 편리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같이 서명운동을 하고 시위에 참여한다는 것 역시 인지적 공감에서 비롯된 행동인 거지. 그들의 신체적인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건 정서적 공감이고.

 

이 책에서는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을 이분화해서 나누고, 두 공감 유형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고 결국에는 공감의 "총량"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중요한 건 공감의 깊이가 아니라 공감의 반경이라고. 더 넓은 바운더리를 내집단으로 인식함으로써 공감의 확장이 이루어져야 공감하는 사회, 타인을 이해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거지.

 

 

관심 있으면 함께 읽어 보자!

 

 

 

 

 

 

 

 

참고로 바이럴 아님,, 저자 누군지 잘 몰라요,,.,,. 출판사에게 1원도 받지 않았어요,,
제 최애 장르 닉으로 설정해두고 양심 없는 짓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덕후의 자존심이며 양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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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네온마린 | 작성시간 24.01.08 흥미돋..!! 나 정서적 공감은 타고났는데 인지적 공감은 후천적으로 습득하고 있는 거 같아 근데 진짜 본문에서 말하듯이 두 가지 기능을 적절히 컨트롤 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가장 안정적인 상태(?)같음 스스로 그렇게 느꼈어
  • 작성자구다닥 | 작성시간 24.01.08 오..생각이 많아지는 좋은 글이다!
  • 작성자왜케화남 | 작성시간 24.01.08 난 인지적 공감은 정상 범위인것 같은데 정서적 공감이 선천적으로 부족한 것 같음..
  • 작성자여성시대_댓글알리미 | 작성시간 24.01.08 ※ 여성시대 인기글 알림 봇 v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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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간장칰킨 | 작성시간 24.01.08 흥미롭다! 자신이 속하지 않거나 속하지 않을 집단의 일은 무시하거나 혐오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구나 인지적 공감의 부재에서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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