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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케첩이 중국어? 토마토 케첩의 원조는 '생선 액젓'

작성자고양이귀여워귀여워|작성시간24.01.17|조회수5,406 목록 댓글 11

출처 : 여성시대 민트쵸파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150804/1/ATCE_CTGR_0020050265/view.do

 

 

 

감자튀김이나 햄버거 먹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스인 케첩은 모두 알다시피 토마토로 만든다.

으깬 토마토를 설탕과 소금, 식초 등으로 버무린 후 숙성시킨 것이 케첩이다.

 

그러면 케첩(Ketchup)은 어느 나라 말일까?

당연히 영어라고 답할 것이다.

토마토 케첩은 미국에서 발달한 식품이고 미국의 국민 소스이니까.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현재의 토마토 케첩만 놓고 보면 틀린 부분이 없지만 케첩의 뿌리를 놓고 보면 완전히 틀렸다.

 

 

케첩은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다.

 

정확하게는 중국어 사투리,

더 정확하게는 홍콩 같은 중국 남부와 동남아 국가에서 사용하는 민남어(南語)가 뿌리다.

 

17세기 무렵 동남아와 중국 남부에는 케첩이라고 불리는 조미료가 있었다.

물론 지역에 따라 케첩, 쿠에찹, 코에찹 등으로 발음이 조금씩 달랐다. 한자로는 규즙이라고 적었다.

 케첩의 원조라는 규즙은 어떤 식품일까?

규는 복어나 연어를 뜻하는 한자지만 일반적으로는 생선요리를 표현할 때 물고기 어(魚) 자 대신 쓰는 한자다.

즙(汁)은 국물이라는 뜻이니 케첩, 즉 규즙은 문자 그대로 생선으로 만든 즙, 생선 액젓이라는 의미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에서 케첩이라고 부르던 생선 액젓이

어떻게 미국으로 건너가서 엉뚱하게 토마토 소스로 발전했을까?

 

 

아시아의 생선 액젓은 17세기 영국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다.

1711년, 찰스 록키어라는 영국인이 쓴

‘인도에서의 무역 장부(An account of the trade in India)’라는 책에 흔적이 보인다.

 

“가장 좋은 케첩은 통킹에서 온 것” “케첩은 중국에서 만드는데 값이 매우 싸다”라고 적혀 있다.

아시아의 생선 액젓 중 베트남 통킹만에서 만드는 생선 젓갈이 가장 맛있었고

아시아 현지에서는 그다지 비싸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왜 아시아의 생선 액젓을 유럽으로 가져갔을까?

단순히 이국적인 식품을 고국에 소개하거나 장기 항해 때 조미료로 쓰기 위한 차원이 아니었다.

생선 액젓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비중 있는 교역 품목이었다.

당시 동인도회사는 후추와 생강, 계피, 정향, 육두구 등 아시아의 각종 향신료 무역으로 돈을 벌었다.

 

생선 액젓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남아 현지에서는 값싼 생선 액젓이었지만

유럽에 가져가면 신비로운 동양에서 온 값비싼 조미료로 둔갑했다.

 

 

유럽으로 건너간 아시아의 생선 액젓은 세월이 흐르면서 완전히 새로운 소스로 변신한다.

영국인들은 생선 액젓에 버섯·호두 등의 다양한 재료를 넣어 소스를 만들었다.

 아시아의 양념이 영국인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생선 액젓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험한 태평양을 건너 서너 달의 항해 끝에 도착한 양념이다 보니 영국에서는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러니 영국인 입맛에도 맞추고 양도 늘리기 위해

버섯을 비롯한 여러 재료를 넣어 소스를 다시 만들었던 것이다.

 

 

수입품인 아시아의 생선 액젓이 너무 고가였기에

나중에는 서양 멸치인 앤초비로 대체했다가 결국 비싼 생선 액젓은 아예 빼버렸다.

 

대신 소금과 설탕 등으로 숙성시키는 케첩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토마토 케첩은 없었다.

 

대부분 버섯 케첩 내지는 호두 케첩이었고

심지어 현재의 굴 소스 같은 굴 케첩, 홍합 케첩, 복숭아·자두로 만든 과일 케첩까지 있었다.

 


 토마토 케첩은 미국에서 퍼졌는데 남북전쟁(1861~1865)이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 토마토는 사람이 먹는 열매가 아니었다.

토마토에 독성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 직전부터 조금씩 먹기 시작했지만 토마토에 대한 인식이 결정적으로 바뀐 것은 남북전쟁 때였다.

 토마토는 빨리 자라고 쉽게 재배할 수 있었기에 남군과 북군 모두 군용식량으로 채택했다.

병사들에게 토마토 요리책을 보급했을 정도다.

 

게다가 남북전쟁 당시 전투식량은 대부분이 통조림이었는데

토마토는 통조림으로 만들기도 쉬워서 채소의 상당 부분을 토마토가 차지했다.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남군 병사들은 북군의 식량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됐는데

이때 주로 노렸던 식품 중 하나가 토마토 통조림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남북전쟁을 계기로 미국인들의 입맛이 토마토, 그것도 토마토 통조림에 길들여졌다.

 

전쟁이 끝난 후 토마토 통조림 수요가 크게 늘면서 케첩 재료 역시

값비싼 버섯이나 호두 대신 저렴하고 입맛에 익숙해진 토마토로 대체됐다.

다양한 케첩이 토마토로 통일된 배경이다,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케첩의 역사도 돌고 돌아 아시아의 생선 액젓 케첩이 영국에서 버섯 케첩으로,

그리고 미국에서 토마토케첩으로 변신한 후 다시 아시아로 전해졌다.

 케첩 유전(流轉)의 배경에는 태평양을 건너

생선 액젓을 거래했던 부를 향한 욕망,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생존 본능까지 삶의 역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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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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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기니피그 | 작성시간 24.01.17 헐 신기해
  • 작성자반드시신발신겨 | 작성시간 24.01.17 신기하구려
  • 작성자여성시대_댓글알리미 | 작성시간 24.01.17 ※ 여성시대 인기글 알림 봇 v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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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1월 17일(수) 11시 - 인기글 66위 🎉
  • 작성자내가좀변햇댜 | 작성시간 24.01.17 헐 흥미돋... 그래서 동떨어진 호주에서는 토마토 소스라고 하는건가,,
  • 작성자사랑은 나도 모르는 새에 | 작성시간 24.01.17 아니 이게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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