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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후삼국시대) 후백제의 주요 정치 세력들.gif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4.02.22|조회수811 목록 댓글 0

출처 : https://www.fmkorea.com/6722716818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의 이동경로를 보면

 

가은-서라벌-승평-무진주-완산주 정도임.

현대식 이름으로는 문경-경주-순천-광주-전주

 

이 중 가은은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이고

서라벌의 왕실 근위대에 잠깐 들어갔다가 승평으로 파견됨

 

 

승평에서 거병한 견훤은 이후 순서대로

무진주와 완산주를 점령하고 후백제를 건국함

 

따라서 후백제 정권의 정치세력은

크게 승평파, 무진주파, 완산주파 정도로 나뉨

 

이번 글에선 여기에 추가로 3개 더 소개할 예정

 

 

 

 

 



1. 승평파

 

견훤은 승평에서 신라 서남해 방수군 소속이었는데

여러 군공을 쌓아 비장이 되었음.

 

이후 박언지-박영규 부자 등 인근 호족들과 세력제휴하여

889년 거병했고 훗날 후백제를 건국함.

 

 

이렇듯 견훤의 첫 세력 근거지가 승평이었고

 

또한 건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봉에 붙는

금성을 제외하면 후백제 최대의 항구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건국 후로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음.

 

이들은 견훤과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사람들이라

견훤이라는 사람 자체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임.

 

 

 

 

 



승평파의 대표 인물로는

 

견훤의 사위이자 훗날 견금강을 지지한 박영규,

 

박영규의 아버지로 신라군 시절의 견훤과 세력제휴한 박언지,

 

거병 이전 신라군 시절부터 견훤의 휘하에 있었고

훗날 후백제 인가별감으로 견훤의 경호실장을 지낸 김총,

 

견훤의 최측근으로 신검이 왕위를 찬탈하자 견훤과 함께

고려로 귀부하여 견훤을 보필한 신강도 승평 출신으로 보임

 

 

 

 

 



2. 무진주 신검파

 

889년 승평에서 거병한 견훤은

 

892년 무진주도독 김일이 지키던 무진주를 점령하고

밖으로는 신라 소속임을 명시하고 안으로는 왕을 자칭함.

 

이렇게 무진주는 후백제의 첫 수도였고

900년 완산주 천도 이후로도 후백제 제2의 도시였음.

 

 

 

 

 



무진주파는 견훤의 후계자로 장남 견신검을 지지함.

 

하지만 견훤이 4남 견금강을 총애하여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결국 얘네가 쿠데타를 일으켜 금강을 죽이고

견훤 일당을 절에 감금한 다음 신검을 왕으로 추대함

 

 

 

 

 



골때리는게 견훤이 밤중에 뭔 소란이냐고 묻자

 

"왕께서는 연로하시어 군국의 정사에 어두우시므로

장자 신검이 부왕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하여

여러 장수들이 기뻐하는 소리입니다."

 

라고 신검이 태연하게 대답함..

 

 

 

 

 



무진주파의 대표 인물로는

 

견훤이 사위로 맞이한 무진주성주 지훤,

 

무진주 지주제군사인 '지주소판왕공' 왕지본,

 

쿠데타판 다 짜놓은 권신 능환과 신덕·영순·파달 등,

 

그리고 견신검·견양검·견용검 삼형제가 있음.

 

 

 

 

 



3. 완산주 금강파

 

견훤이 892년 무진주에서 칭왕한 후,

900년 완산주로 천도하며 공식적으로 후백제를 세움.

 

완산주파는 무진주파와 달리 2대 국왕으로 견금강을 지지함

 

또한 두 파벌은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의견이 달랐음

 

 

 

 

 



930년대 들어 고려와의 쟁패에서 밀리는 분위기 속에

늙은 견훤의 후계자 문제가 불거지자

 

무진주파와 완산주파는 대외정책과 후계 문제에서

사사건건 충돌하게 되었고

 

 

 

 

 



본래 떡대 좋고 지혜로우며 군사적 재능까지 뛰어난

금강을 총애하던 견훤이 후계자를 금강으로 결정하자

 

신검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장악했고

 

이로 인해 금강을 지지하던 인물들이

산으로 은거하거나 고려에 귀부 또는 내응을 함.

 

 



완산주파의 대표 인물로는

 

견금강과 동생 견능예·견애복,

 

후백제 우장군까지 오른 유법반,

 

유법반의 사돈이며

신검이 왕위를 찬탈하자 산에 은거한 이겸악이 있음.

 

승평의 박영규와 신강도 금강을 지지했음.

 

 

 

 

 



4. 금성파

 

금성, 즉 나주를 위시한 영산강 유역 호족들은

한반도 최대의 항구인 금성 회진항을 통해

독자적인 해상활동을 원했지만

 

중앙 집권화와 대외 교류를 중시하던 견훤이

회진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자 불만을 가짐.

 

다만 금성의 모든 호족들이 이런건 아니어서

이후 나주는 태봉과 후백제가 거진 반띵함

 

 

 

 

 



결국 견훤이 대야성을 공격하러 자리를 비우자

이들이 말썽을 피웠고 이걸 견훤이 돌아오는 길에 밟음.

 

이 때문에 야마 돌아서 얘네가 태봉에 귀부했고

태봉과 후백제는 금성에서 긴 공방전을 벌임.

(https://m.fmkorea.com/6679306188)

 

후백제 중앙에서 활동한 주요 정치 세력은 아니지만

본 글에 금성파를 끼운 것도 이 때문.

 

 

 

 

 



금성파의 대표 인물은 다음과 같음.

 

태봉을 끌어들이고 훗날 왕건의 장인이 되는 금성 호족 오희,

 

역시 태봉을 끌어들인 금성 호족 나총례,

 

또 역시 태봉을 끌어들인 능주 호족 구존유,

 

훗날 왕건의 최측근이 되는 최지몽의 아빠, 영암의 최상흔

 

 

 

 

 



5. 해외파

 

견훤은 중국에 유학한 인재들을 등용하는 데 적극적이었음

 

이들은 크게 문장가 내지는 행정가,

그리고 당시의 철학자 겸 국정에 큰 영향 끼치는 승려로 나뉨

 

 

 

 

 

전자는 일대삼최의 일원인 최승우가 대표적이고

 

후자는 견훤이 제자를 자청하며 국사로 임명한

동진대사 경보가 대표적임.

 

다만 얘네는 1~4번처럼 하나의 파벌로 볼 수 없음.

 

 

 

 

 



6. 불교계

 

견훤은 당시 민심을 잡는 방법이자

철학의 영역이었으며 국가 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불교계의 사람들을 후하게 대접했는데

 

5번에서 설명한 경보 외에도

 

도선, 윤다, 편운화상, 형미, 조통화상, 관혜, 찬유 등

 

여러 분파의 여러 고승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자 노력함.

 

가은 = 현 문경
서라벌 = 현 경주
승평 = 현 순천
무진주 = 현 광주
완산주 = 현 전주
금성 = 현 나주
해외 = 현 해외

 

 

원래 신라 고려의 정치세력이랑 다 같이 묶으려 했는데
스크롤 압박이 무슨 책으로 내야할 정도가 되어버려서 그냥 개별로 다 나눕니다. 

 


Q. 견능예가 누군지 혹 태조왕건에서 능애 대장군인감?
견훤 친동생하면 능애밖에 모르는데 이분은 태조왕건에어 신검편으로 나오던데 잘못된건가요

 

ㄴㄴ 이능애는 견훤 동생이고
견능예는 견훤 아들, 즉 견금강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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