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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세계의 여행하기 빡센 관계자외 출입금지 지역 네번째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4.02.28|조회수5,368 목록 댓글 7

출처 :https://arca.live/b/spooky/8692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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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에티오피아라 하면 어떤 게 유명하다고 생각되는가?

 

커피?

 

대협?

 

공중제비를 도는 암하라 글자?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오래 전부터 에티오피아는 최고(古)의 기독교 국가로 유명했다

단순히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세계 기준으로도 최고이다. 기원후 333년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지 20년밖에 안된 시점이었고,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바로 다음이였다. 

그 시리아도 370년에야 국교로 기독교를 선택했고 로마가 국교로 삼은 건 392년이었다. 나름대로 얼리어답터였던 것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믿는 종파는 바로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인데 고대 악숨 왕국 시절부터 1500년간을 이어오고 있다

이게 무려 5세기 경 칼케돈파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이래로 지금까지 유지된 가장 오래된 기독교 종파 중 하나라고 한다

사실 난 무신론자라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1500년이면 존나게 오래된 게 맞지 않냐?

 

아무튼 얼마나 독실하게 믿었는지 예루살렘에 있는 무슬림 새끼들이 ㅈ같다면서 자기네 나라에 새 예루살렘을 세우겠다는 '랄리벨라 프로젝트'를 계획하기도 했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 시기에 유럽 국가들은 이미 에티오피아라는 기독교 친우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에티오피아 역시 십자군 전쟁에 병력을 파견하여 싸웠다. 이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옛날부터 당당하게 기독교 가족들의 일원으로 대우받았다.

킹덤 오브 헤븐에 웬 흑인 기사들이 나오는 건 고증 오류도 아니고 PC의 폐해도 아닌 셈이다

 

이후에도 테와히도 정교회는 에티오피아의 외부 원정과 무슬림 세력과의 대립, 이태리의 침공 등에서도 에티오피아인들의 긍지를 지켜주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민족 종교로 거듭나게 된다

 

 

에티오피아를 한동안 피로 물들인 멩기스투라는 새끼가 있다

이 새끼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박해하고 쿠데타 기간 딱 이틀만에 2천명 이상을 죽인 신기록을 세웠으며

이후에도 의도적인 기근으로 120만명을 더 해먹은 새끼이다

 

이렇게 악랄한 새끼가 대가리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사람들은 고통 속의 한줄기 빛을 찾아 교회에 더 열렬하게 출석하기 시작했고

이때 에티오피아의 교회 출석률이 역대 최고치로 증가했었다

충분히 그 교세가 위협이 될 수 있음에도 이 새끼가 교회에 함부로 손대지 못할 정도로 테와히도 정교회의 입지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에 호응하여 정교회 사제들은 교인들의 편에 서서 사람을 밥먹듯이 죽여대는 정부를 상대로 지속적인 민주화 운동과 저항을 하였으며 총대주교였던 아부나 하이마노트는 멩기스투에 항의하는 단식을 하다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했을 정도였다

물론 멩기스투는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뭐라 깝치지는 못하고 신도들을 달래기 위해 꼼짝없이 국장을 치뤄주어야 했다

이러한 행보 덕분에 에티오피아인들의 테와히도 정교회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아무튼 이러한 압도적인 력사의 힘으로 에티오피아는 우리가 흔히 동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편견과 달리 기독교 신자들의 텃세가 아주 굳건하고, 동아프리카 대부분을 장악한 이슬람보다도 많은 신자 수를 자랑하며 신앙을 지켜오고 있다

위의 사진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베타 크리스티안 메드하니 알렘 성당이다. 에티오피아가 그렇게 잘 사는 국가가 아님에도 저렇게 성당은 삐까뻔쩍하게 짓는다. 테와히도 정교회에 대한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근데 무슬림들로부터 십자포위된 형국에서 고립된 신앙을 오랫동안 유지하다 보니 테와히도 정교회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독교의 모습과 좀 많이 다른 특이한 점도 많이 보여준다

테와히도 정교회는 구약 시절 풍습과 전통을 아주 중요시하고 안식일도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챙긴다. 그리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금육재를 지킨다

세례성사, 견진성사는 물론 구약 풍습 중 하나인 그 ㅈ같은 할례도 철저히 시행하며 지역 즈언통과 결합해서 그런지 주술 행위도 가끔 행한다

 

그래서 오늘 정교회 특집이냐고?

아 씨발 이거 출입금지 지역 글이지

 

아무튼 이런 테와히도 정교회의 특이한 면모의 끝판왕이 바로 오늘 알아볼 시온의 성모 마리아 성당일 것이다

 

시온의 성모 마리아 성당 - 에티오피아, 악숨

(Church of Our Lady Mary of Zion, ርዕሰ አድባራት ቅድስተ ቅዱሳን ድንግል ማሪያም ጽዮን, ቤተ-ክርስትያን እመቤትና ማርያም ጽዮን, የእመቤታችን ማርያም ጽዮን ቤተ ክርስቲያን)

 

 

 

시온의 성모 마리아 성당은 악숨에 위치한 정교회 성당이다

테와히도 정교회의 역사만큼이나 이 건물도 꽤 오래된 건물로 4세기에 지어졌다

4세기에 지어진 것 치고는 건물이 되게 깨끗한데 여러 세력들이 악숨을 거쳐가며 이 성당 건물에 혐성질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담사마냥 무너졌다 지어졌다 무너졌다 지어졌다 하기를 반복한 끝에 지금같은 신축스러운 모습이 된 것이다

그래도 외견과 달리 저게 17세기에 지어진 버전이니 아무튼 저 건물 자체만으로도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시온의 성모 마리아 성당은 테와히도 정교회에서 중요한 순례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정교회 주요 행사인 시온 마리암 축제 때마다 순례객들이 엄청 많이 찾아온다

옛날에는 에티오피아 황제들이 여기서 대관식을 치르기도 했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관광객들도 엄청 많고 사제들도 이들을 다 반겨준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성화들도 사진으로 찍어갈 수 있다

 

근데 딱 하나 못들어오는 부류가 있는데 바로 여자들이다.

1편의 아토스 섬처럼 시온의 성모 마리아 교회는 여자들의 출입이 엄금된다

이건 에티오피아 지역의 오랜 즈언통에 의거한 사항인데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오래 전 부족생활을 할 때부터 여성에게 찾아오는 월경을 그렇게 부정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월경중인 여자는 종교 의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건지 여자 자체를 종교행사에 들이지 못하게 막는 걸로 변했다

현재도 적지 않은 수의 에티오피아 교회들이 여성의 출입을 막고 있다고 한다

성당 이름이 성모 마리아 성당이면서 여자들의 출입을 막는다니 좀 웃기지만 성당 측에서는 우리 성당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여자는 성모마리아밖에 없으셈 ㅋㅋ하면서 반박하고 있다

 

 

그래서 아쉬운 여성 교인들은 건물 벽에 입만 맞추고 가기도 한다

 

시온의 성모 마리아 교회를 쳐보면 이런 돔형 건물에 방문한 사진이 많이 보이고 여성 관광객이 안에 있는 사진도 나온다

그리고 이 항목의 맨 위 사진도 바로 이 돔형교회다

근데 이건 훼이크다

17세기에 지어졌다는 건 구교회이고, 이 건물의 정체는 구교회 앞에 세워진 신교회이다

 

옛날옛적 엘리자베스 2세가 에티오피아에 방문했을때 여성을 못들어오게 하는건 좀 여성?차별같아요 퓨ㅠㅠ하고 하일레 셀라시에에게 건의를 했는데

우리의 대협 셀라시에는 그 넓은 아량답게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여성들을 어여삐 여겨 구 교회 앞에 신 교회 건물을 세워 주신 것이었다

 

그래서 신교회 건물은 남자던 여자던 관광객이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으며 사제 아저씨들이 사진도 같이 찍어준다

사진 찍고 내는 팁은 겸사겸사 교회 헌금함에 들어간다고 한다

 

 

뭐야 그럼 그냥 에티오피아판 아토스산 그런거 아닌가요?

 

 

이딴 라이트한거 소개하자고 그렇게 설명을 질질 끌었냐 뒤질래?

 

 

급발진은 이르다. 여기까지는 이 교회의 겉면만 보여준거다

겉보기에는 관광지같을수도 있고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근데 이 성모 마리아 교회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아니 같은 사제도 못들어가는 찐 금단의 구역이 존재한다

 

 

바로 여기다

이 작은 건물은 교회 뒷편에 있는 예배당이다

이 곳은 니가 남자건 여자건 관광객이건 무조건 출입 불가이며

같은 정교회 사제들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이 건물은 그 중요하다는 시온 성모 마리아 교회 안에서도 제일 신성하게 여겨지는, 에티오피아 최고의 성물로도 불리는 곳이다

 

그냥 보면 작은 건물로 보이겠지만 사진을 한번 자세히 보면 뭔가 심상치 않은 건물이라는 게 보일 것이다

뭔 군부대도 아니고 건물을 둘러친 철제 울타리는 기본이요 

그 위에는 마치 무언가를 막으려는 듯이 철조망까지 쳐져 있다

무엇보다 입구가 벽돌로 완전히 봉인되어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저 안에는 사람이 존재한다

진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저 건물 안에서 나갈 수 없다

죽어 시체가 되어 실려 나가야만 한다

이것은 시온 성모 마리아 교회가 세워진 후 지금까지 내려져 오는 전통이다

 

 

이 예배당의 이름은 '성판 보관소'

성판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세의 십계명이 맞으며

이 예배당이 전면 출입금지가 된 이유는

이 예배당에서 십계명이 든 언약궤, 즉 성궤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타지 헛소리같겠지만 사실이다

이게 이 건물에 진입할 수 없는 교회 측의 공식 이유이다

에티오피아에는 '타봇'이라고 불리는 십계명의 복사본 유물이 여기 저기 존재하고 엄청 신성시된다

그리고 이 시온 교회에 있는 십계명은 그 신성한 타봇들의 원본, 그야말로 성물 중의 성물인 셈이다

 

에티오피아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에티오피아의 첫 황제로 여겨지는 메넬리크 1세의 아버지가 사실 솔로몬이며

메넬리크가 솔로몬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솔로몬으로부터 언약궤를 받아 이를 에티오피아로 같이 가져왔으며

그 언약궤가 에티오피아 여러 곳을 돌다 마지막으로 도착하여 이 언약궤를 보관하는 중대한 업무를 맡게 된 곳이 바로 이 시온 교회라는 것이다

한동안 시온 교회 내부에 있었던 성궤는 다시 교회 뒤에 마련한 작은 예배당, 그러니까 성판 보관소로 옮겨지게 되는데

이는 언약궤에서 나오는 신성한 열이 이전 내부 성소를 망가뜨렸고, 사제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셀라시에의 아내, 메넨 왕비는 현재의 성판 보관소를 짓는데 자금을 지원했고

현재로써는 코하님, 그러니까 존경받는 대제사장이 아닌 자가 언약궤를 가까이 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성경 말씀에 따라 적합한 자만이 성궤를 마주할 수 있으므로 

이후 이 언약궤를 지킬 신실한 사제 단 한 사람만을 뽑아 이 보관소에 들여보냈다는 것이다.

 

 

보관소에 들어가는 사제, 수호승은 선대 수호승이 점지하게 되고, 그 직책은 종신이다.

만약 선대 수호승이 새로운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조기 사망할 경우, 수도원의 사제들이 새로운 수호승을 선거로 선출한다.

이후 선출된 수호승은 보관소로 들어가 평생 동안 그 건물에 갇혀, 언약궤를 죽을 때까지 수호하게 된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언약궤를 지키는 수호승들은 대대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백내장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참으로 하드코어한 전통이 아닌가?

 

 

물론 전설은 그냥 전설이고 실제로는 안에 있는 사제도 밥 먹고 샤워도 하고 햇빛도 좀 쬐줘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옆에 작은 문이 하나 나 있다

오른쪽에 흰 옷 입은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노란 사람이 보이는가? 저 사람이 바로 수호승이다

사람이란게 어두운 곳에 대충 짱박아 놓는다고 생활이 되는게 아니기 때문에 저 쬐맨한 건물에 평생 가둬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백내장이야 뭐 어두운 곳에서 등 하나 켜놓고 계속 있다 보니까 시력이 안 나빠질 수가 없을 것이니 생겼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 전설은 에티오피아에서만 통용된다. 

메넬리크 1세가 진짜 솔로몬의 아들내미라는 근거는 없다. 이스라엘 하레디들 앞에서 얘기하면 총 맞을 수도 있는 소리다

성궤가 에티오피아로 왔다는 근거 또한 없다. 저 건물의 내부가 공개된 적 또한 없다

저기 보관하고 있는 성궤가 모조품인지, 예루살렘에서 온 그 원본이 맞는지 또한 아무도 모르며 입증된 근거도 없다

그냥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얘기다

 

진실이야 어쨌든 간에 저 수도승이 평생동안 저 울타리 밖을 못 나온다는 것은 사실이며

허락받지 않은 자가 성궤를 봤더니 다 뒤졌다더라~ 하는 문구가 성경에 꽤 많이 적혀 있기 때문에 일반 신자들은 물론 사제들도 저기에 함부로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런던 대학의 에티오피아 관련 교수 에드워드 울렌도르프라는 양반이 1941년 자기가 직접 저 안에 들어가 봤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거도 근거는 없다

 

근데 에티오피아에는 또 이런 전설도 있다

진짜 성궤를 지키기 위해서 무수한 짜가를 만들어놨다는 전설 말이다

그래서 저게 짜가인지 진품인지도 모른다

 

진짜 그냥... 다 모른다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말 그대로 정말 풍문만 무성한 곳인 셈이다. 울렌도르프에 의하면 일단 뭐가 있긴 있다고 한다

 

아무튼 성당 측에서 저 곳의 내부를 공개할 가능성은 지금도 0에 가깝다. 그냥 그럴 계획 자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설령 공개를 강요한다면 신실한 현지 주민들에게 얻어맞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저 건물에는 수호승 단 한 명만 출입이 가능하다

시온 교회의 성궤가 진짜라는 증거는 현재에도 전혀 입증되지 않았으며 시온 교회의 실체는 앞으로도 미지수일 것이다

 

성판 보관소으로 통하는 문은 앞으로도 굳게 닫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짜잔 절대라는건 없군요

2020년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며 티그라이 전쟁이 발발하고 만다

재수없게도 이 교회가 위치한 악숨은 전쟁 발발지 티그라이에 위치하고 있었고

불상의 무장 세력이 이 교회를 습격하게 된다

교회에는 750명의 난민들이 숨어 있었고 무장 세력은 결국 이들을 끌어내어 전부 죽여버렸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은 강간과 모욕을 당했고 교회는 처절히 약탈당했다

이를 악숨 학살(Axum Massacre)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에티오피아 정부군과 암하라 민병대가 범인으로 의심받았지만

진짜 범인은 에티오피아를 지원하려 들어와 있던 에리트레아 정부군이었다

에리트레아도 티그라이인들을 존나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적은 언약궤를 훔쳐 아디스아바바로 가져감으로써 티그라이 지역의 교세와 신성력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무슬림도, 이태리도, 서슬퍼런 빨4갱이도 건들지 못한 테와히도 정교회의 성지 중의 성지가

결국 에티오피아 정부가 도와달라고 부른 외세에게 습격당한 것이다

 

그러면 언약궤는 어떻게 되었느냐?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티그라이 전쟁은 인류 역사상 정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정보통제가 이루어진 전쟁이라는 것이다

당장 니들중에 티그라이 전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잘 아는 사람 있냐?

티그라이에서 전쟁이 터지자마자 에티오피아 정부는 냅다 티그라이 쪽으로 가는 길을 전면 봉쇄해버리고 외신기자들의 출입을 차단해 버렸다

그러고는 내전이 끝날 때까지 빗장을 풀지 않았고, 현재도 티그라이에 접근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현지에서 대체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알 길이 없다

난다긴다 하는 해외 소식통들도 유독 티그라이 전쟁의 소식은 잘 얻어오지 못했다. 악숨 학살은 앰네스티가 겨우겨우 알아내 온 것이다

 

특히 시온 교회는 학살이 일어난 주요 장소이기 때문에 정보 얻기가 정말 하늘의 별따기이다.

당장 750명도 추정치이며 실제로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사살당해 교회 부지에 암매장 당해 있을 거라는 주장이 많다 

하필 에티오피아가 헬프콜을 쳐서 에리트레아가 동맹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풀릴 날은 에티오피아 정권이 갈아치워지지 않는 이상 요원해 보인다

 

그렇게 미스터리에 쌓인 출입금지 지역 시온 교회의 성판 보관소는

그보다 더한 미스터리에 빠져 소식을 당분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언약궤의 행방과 시온 교회의 근황은 현재도 불명이다

 

사람이 문제다

 

 

 

우리의 여왕 팔마르의 성모 대성당 - 스페인, 팔마르 데 트로야

(Cathedral-Basilica of Our Crowned Mother of Palmar, Catedral-Basílica de Nuestra Madre del Palmar Coronada)

 

 

그런가 하면 스페인에도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금하는 종교 건물이 있다.

세비야 주의 자그마한 마을 팔마르 데 트로야에 있는 우리의... 아무튼 팔마르 대성당이 그것이다

여기는 거룩한 얼굴의 팔마리아 가톨릭교회라는 스페인의 종교 단체의 본당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럼 이 거룩한... 팔마리아 가톨릭교회는 대체 뭐 하는 곳일까?

본인은 아까도 말했다시피 종교가 없어서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일단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해 보겠다

 

 

팔마리아 가톨릭교회는 전통주의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교단으로 바티칸 본점에서는 파문을 때려 맞은 공식 이단이다

파문을 맞은 이후에는 아예 바티칸과의 작별을 선언하며 스스로 로마 가톨릭과 독립적인

존재임을 선언하며

로마 가톨릭과 교황좌를 자기네들이 승계하겠다면서 대립교황 선언을 때리게 되어버린 곳이다

잘 이해가 안된다면 디시에서 갈라져 나온 아카라이브가 디시에서 근첩 취급을 받자 아카라이브가 디시의 자리를 자기네가 승계할 것이며 우만레가 자기 자신이 이제 김유식이라고 주장한다 생각해 보자

 

위에 있는 사람은 클레멘테 도밍게스라고 이 팔마리아 교회의 창립자인데

딱 봐도 똘끼가 펄펄 넘치는게 아무리 좋게 봐도 사탄이랑 팬티레슬링하는 미친놈같이 생겼다

병신같은 외모와는 달리 도밍게스는 나름 이 종교 굴리기에 진심이던 사람이었다

 

도밍게스는 평범한 보험팔이였는데 어느 날 1968년 4명의 여학생이 팔마르 데 트로야 마을에서 성모 마리아를 목격한 '팔마르 성모 발현' 이야기를 듣게 된다

팔마르 발현지는 나름대로 인기 있는 순례지가 되었고, 머지 않아 순례객 중 여러 명이 파티마에서의 기적과 유사한 것을 경험하거나 목격했다고 주장하게 된다

도밍게스 역시 이 중 한 명이었고, 얼마 되지 않아 도밍게스는 이 '환시자'들의 지도자격으로 부상하게 된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 봤다고 신나있던 환시자들과 달리 바티칸 본점의 반응은 싸늘했다. 

1970년 바티칸은 이 발현을 공인하지 않음으로써 환시자들의 뒤통수를 부셔버렸고, 순례로 신나게 돈 벌던 팔마르 데 트로야 관할 교구 주교도 뭐라 하지 못했다. 발현을 봤다던 여학생들도 성모발현 추종을 그만두었다.

근데 도밍게스와 추종자들은 바티칸이 뭐라 씨부리든 알빠노?를 외치며 여기저기에 자신들이 겪은 환시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도밍게스는 추종자들을 모아 거룩한 얼굴의 갈멜 수도회를 설립하고 바오로 6세에게 충직하겠다면서 자신들이 바티칸의 체인점임을 공고히 함으로써 호감작까지 준비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팔마르의 성모께서 이단, 진보, 공산주의와 같은 온갖 오류를 가톨릭이 제거하라고 하셨다더라~는 내용이었고, 이 때문에 프랑코를 대상으로 한 명분작까지 완료한다

 

자 이제 수도회도 차리고 했으니 누군가가 미사도 집전하고 사제도 양성하고 해야 했다

그래서 도밍게스는 백방으로 굴러다니면서 자기네 체인점 관리를 해줄 매니저들, 그러니까 주교와 사제가 될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당연히 주교는 자기가 될 것이었으니, 도밍게스는 자신을 주교로 성성해줄 대주교들부터 찾아가게 된다

도밍게스는 자기네들이 나름대로 전통 가톨릭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전통 가톨릭의 권위자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자신을 주교로 성성해달라고 했지만 르페브르는 도밍게스가 생긴 게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내쫓아 버렸다

 

보기 좋게 까인 도밍게스, 이번에는 남베트남 머통 응오딘지엠의 큰형이던 응오딘툭 대주교를 찾아간다

응오딘툭은 후에 대교구장을 역임한 후 2차 바티칸 대공회까지 참석한 엘리트 중 엘리트로 명망있는 유명 성직자였다

당시 성 비오 10세회 소속이었다가 팔마리아 교회로 이적한 모리스 레바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도밍게스는 이번에는 직접 가서 징징대는 대신 이 '전문가'를 응오딘툭에게 대신 보내기로 했다

레바즈는 도밍게스의 기대대로 응오딘툭에게 팔마르 성모 발현은 사실이라며 신나게 야부리를 털었고

레바즈의 설득에 넘어간 응오딘툭은 1976년 도밍게스 포함 수도자 및 사제 5명을 주교로 성성하는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이래서 이적한 놈이 더 무서운 법이다

 

...

 

하 저 씨발

 

 

당연히 당시 교황 바오로 6세는 이게 뭔 짓이냐며 응오딘툭을 냅다 파문해버렸다

아까부터 파문이란 얘기가 나오는데 대충 가톨릭 채널 주딱에게 차단당한거라 생각하면 된다

하루아침에 호감고닉이 된 응오딘툭은 뒤늦게 자신이 뭔 짓을 해버린건지 깨닫고 채문게에서 지속적으로 앙망문을 올렸고 그 결과 파문당한 당해에 파문을 철회받았다

 

근데 몇 년 후 전통주의자들을 계속 주교로 성성하는게 또 들켜서 다시 파문받는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나 보다

 

주교 타이틀까지 받아온 도밍게스는 이후 조용히 교단을 운영했다

1976년에는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어 리신이 되어버렸음에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종교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1978년 바오로 6세가 선종하자 폭탄발언을 한다

 

야 내가 예수님을 만났는데 나보고 교황 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하기로했엏 ㅋㅋ

 

그렇게 얘기하고는 지가 교황에 스스로 즉위해서 수도회를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시킨 후 독립된 교회로 만들었다

 

그렇게 도밍게스가 21세기 대립교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해서 이 새끼가 시력이 아니라 다른 걸 잃어버렸구나 싶었던 팔마르 추종자들 중 대부분이 실망하고 떠난다

심지어 도밍게스와 같이 주교 성성을 받았던 주교 2명도 교단을 나가버렸고, 그 중에는 도밍게스를 위해 신나게 아가리를 털었던 레바즈도 있었다. 레바즈는 1990년대에 교황청과 화해하게 된다

 

결국 교단에는 대깨 도밍게즈 세력만 남게 되었고, 도밍게스는 로마 가톨릭의 구성원임을 스스로 거부, 자신들을 독립된 팔마리아 교회로 선언하게 된다

그 이후로, 도밍게즈는 교단의 문을 철저히 걸어 잠구었다

현재는 바티칸은 물론이오 다른 전통 가톨릭 교단들은 물론 교황공석주의자들도 이들과 전혀 상종하지 않으려 하고 배척하는 중이다

 

이 팔마리아 교회에 대한 정보는 그렇게 많지 않다

팔마리아 교회는 도밍게즈가 교황이 된 후 현재까지도 그 교리와 활동 등등을 모두 비밀에 부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 본당에 대해 외부인들의 출입을 엄금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정보는 대충 내부 유출이나 비밀 촬영, 탈퇴한 신도의 증언 정도로 간간히 모아 만든 정보이다

그야말로 21세기판 밀교인 셈이다. SNS계정이나 공식 사이트도 2018년이 다 되서 처음 만들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잊을 만 하면 스페인 언론의 탐사보도 대상이 되곤 한다

얘네는 이단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과는 다르게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대외적으로 지랄을 했다거나 하는 일은 또 안 했다

그렇다고 진짜로 사이비 종교가 아니냐? 그건 또 모른다. 정확히는 이 자들이 사이비 종교인가?를 판별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

정말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져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내부자 유출이나 도촬 등등으로 인해 정보가 계속 새어나오고는 있다. 위는 팔마르 성당의 내부 모습이다

 

대충 이런 식으로 미사를 진행하고 호세 프리모 데 리베라, 프란시스코 프랑코 같은 스페인국 인사들을 성인으로 지정해 놨다고 한다

그런 면모와는 또 반대로 존나 독실한 애들만 있을 것 같은 포르투갈, 아일랜드는 물론 서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꾸준히 신도들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 교황이 됐는지 정도의 정보는 수상하게 꽤 빨리빨리 나오는 편이다. 그나마 교회에서 제일 큰 이벤트라 그런 건지 모르겠다

 

이 정도 외의 자세한 정보는 지금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당장 위 사진 미사의 내용이나 진행방식도 자세하게는 알 수 없다

현재도 팔마리아 교회 소속 건물들에는 CCTV가 24시간 돌아가고 있으며 교회 건물에는 자급자족을 위한 신성한 태양광 발전기와 영험한 풍력 발전기 여러 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주위에는 두꺼운 담장이 둘려 쳐져 있고 우리네 부대 검문소마냥 들어가려면 빡센 검문을 받아야 한다

 

하여간 거 참 더럽게 미스터리한 곳이다

 

 

보헤미안 그로브 - 미국, 캘리포니아

(Bohemian Grove)

 

알렉스 존스와 같은 음모론자들에 의해 온갖 병신같은 소문이 붙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보헤미안 그로브는 캘리포니아 몬테 리오에 위치한 일종의 캠핑장 겸 사교클럽이다

딥스 어쩌고 하는 정신병자들이 꼬이는 것은 나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히 쓰지 않을 거지만, 이 보헤미안 그로브가 유명해진 이유는 그 특유의 폐쇄성 

그리고 이 보헤미안 그로브를 이용하는 미국 사회 상류층 및 유명인들 때문이다

유명인들이 존나게 모이는데 외부인들에게서는 철저하게 숨긴다? 어 이거 완전 악마숭배딥스테이트지구공동설유대인배후자본베리칩빼애액!!

아무튼 별의 별 해괴한 소문들이 도는 곳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개쌉소리가 도는 데에는 솔직히 보헤미안 그로브 자체의 특수성도 있긴 하다

당장 사진을 보자. 대충 봐도 레이건이랑 닉슨이 일어나 있는 사람 양 옆으로 앉아 있는 게 보일 것이다. 

1967년 찍힌 사진인데, 이 때 닉슨은 이미 부통령 임기를 마쳤었고 2년 후 미국 대통령이 된다

대충 찍은 사진도 이 정도인데 어떻게 음모론을 참냐?

 

심지어 여기서 이루어진 역사적 결정이나 사업 논의도 수두룩하다. 보헤미안 그로브 측에서는 외부 문제는 외부에 두고 오라고 모토를 정해놨다곤 하지만 당장 맨해튼 프로젝트 기획 회의가 여기서 열렸고, 오펜하이머는 물론이고 스탠더드 오일이나 제네럴 일렉트릭 대표에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의 석학들이 잔뜩 참석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건 보헤미안 그로브 참석자들도 자랑스러워 해서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는 일화라고 한다

 

이외에도 허버트 후버나 헨리 키신저, 조지 부시, 앰브로스 비어스 등 여러 정치, 예술 등의 명사들이 이 보헤미안 그로브를 거쳐갔다

대충 이런 사람들의 사교 클럽 정도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교 클럽 치고는 그 활동을 외부로부터 기괴하리만치 숨기는 것이 음모론에 더 불을 붙였다

 

 

위의 사진을 보자. 이건 보헤미안 그로브의 항공 사진이다

뭔 베트콩 호치민루트도 아니고 대충 보면 분간도 못할 정도로 나무를 빽빽하게 심어 놓았다

육상 보안도 굉장히 빡센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는 보안을 위해서 전직 군인/경찰들을 고용한다

돈 많은 손님들의 응디를 등에 업고 열화상 카메라, 야간투시경, 동작감지기, 진동감지기 등등 온갖 첨단 시스템으로 사이버펑크 저리가라할 시설을 만들어 놓고 이 지역에 무단출입하는 놈들은 무조건 고소를 맥인다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는 물론이고 아예 시크릿 서비스 요원들이 출현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공식적으로 침투는 4번 있었는데, 1980년 릭 클로어라는 기자가 노동자로 위장하고 잠입취재를 한 사건, 1989년 필립 와이즈라는 잡지 기자가 또 잠입 취재를 하다 걸려서 체포당한 사건, 2000년 위에서 말한 음모론자 알렉스 존스가 침입한 사건, 2002년 리처드 매캐슬린이란 새끼가 중무장한 채 침입해서 방화를 저지른 사건이다. 대부분은 고소를 먹는 등 끝이 좋지 못했다

꼴랑 캠핑 하겠다고 전직 군인에 첨단 시스템을 동원하는데 어느 누가 음모론을 참을 수 있겠는가?

 

일단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는 다음과 같다

 

보헤미안 그로브는 1872년 무대 배우였던 헨리 에드워즈가 예술가(보헤미안) 클럽을 만든 것이 시초이다. 이후 보헤미안 그로브의 추가 토지 및 시설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재정자원을 제공한 샌프란시스코의 저명한 사업가들이 클럽을 역으로 먹어버렸고, 정치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보헤미안이라는 이름빨을 위해 여전히 예술가와 음악가 회원들을 받았다.

 

보헤미안 그로브는 프라이빗 클럽으로, 정회원과 초대된 손님만 입장 가능하다. 손님은 대부분 다른 나라의 정치인이나 유명인사이며,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이렇게 보헤미안 그로브에 간 적이 있다. 정회원 자격은 대부분 아버지 쪽 가문에서 세습받는 경우가 많다.

 

손님은 6월이나 7월의 주요 야영 시에 초대될 수 있다. 클럽 회원은 클럽 일정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그로브에서 개인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 

여성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며 여성 서비스 요원들만 출입할 수 있고 그나마도 낮 시간 동안만 가능하다. 해가 지면 여자들은 모두 나가야 한다. 

 

1978년까지는 여성 직원은 채용하지도 않았고 이 때문에 고소까지 먹었지만 수상하게 그로브 참여 경력이 있는 판사가 방해공작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1987년 항소 끝에 그로브는 여성 직원들을 고용하긴 했지만 위와 같은 규칙은 여전히 유지 중이다.

 

남성 서비스 요원들은 대부분 이층집에서 단체 숙박을 하며 높은 직책의 사람들만 개인 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미성년자의 출입도 금지된다. 

 

하지만 정회원들은 개인 행사 진행 시 자신의 가족들을 데려올 수 있고 이 때는 여성과 미성년자의 출입이 허용된다. 그래도 오후 9시까지는 나가야 한다.

 

캠프장과 숙소는 118곳이 존재하며 숲 전체에 흩어져 있다. 그 외에도 원형 극장 여러 곳, 캠프파이어 서클, 지붕이 있는 소규모 강당, 클럽하우스, 대형 다이닝 시설, 그리고 보헤미안 그로브의 상징과도 같은 부엉이 조각상과 호수가 있는 '성지'가 존재한다. 성지에서는 중대사를 논하는 '호숫가 토크'가 매일 오후 12시 30분에 열린다.

 

그로브의 수호성인은 여왕의 비밀을 밝히지 않고 보헤미아 왕의 손에 죽은 '네포무크의 요한'으로, 오랜 세월 동안 그로브의 비밀을 지켜온 회원들을 상징한다. 

 

상징 동물은 부엉이다.

우흥

 

주요 행사로 회원들끼리의 연극 제작과 공연, 뮤지컬이 있다. 연극 제목은 '치유의 화장'으로 1881년 초연된 유서 깊은 연극이다. 연극 공연은 부엉이 조각상 앞에서 진행된다. 이 항목의 대표 사진도 공연 때 찍힌 것이다. 근데 그 비주얼이 드럽게 무서워서 사탄 의식으로 착각받기도 했다. 사실은 악마를 쫓아낸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뮤지컬은 매년 여름 캠프 마지막 주말에 열리며 합창단, 오케스트라 등 300여명을 동원하는 대형 공연이다.

 

 

 

 

아니 그니까 이걸 보고 음모론을 어떻게 참어

하여간 철벽같은 미국 상류층답게 보헤미안 그로브 측에서는 세간의 논란은 가벼이 흘러 넘기거나 무시하는 등 일축해버리고 있으며 회원들은 그 비밀을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고

현재까지도 자기들은 평범한 캠프장이라 주장하며 전직 군인들의 보호 하에 자기들만의 야영을 즐기고 있다

 

야영 한번 하겠다고 전직 군인들에 첨단 시스템을 동원하다니 어째 해명한 이후가 더 병신같이 들리는 건 기분 탓인가보다

하여간 이래서 금수저들은

 

 

물론 진짜 별 거 아닌 사교 클럽일 가능성도 꽤 높다

일례로 한 때 인터넷 상에서 '디즈니의 비밀'로 유명하던 디즈니랜드 내의 폐쇄구역 클럽 33(Club 33)은 비공개 클럽으로 소아성애, 악마숭배 등등 온갖 살벌하기 그지없는 음모론에 시달려 왔지만

 

 

실제론 그냥 더럽게 비싼 회원제 레스토랑이고 회원도 과정이 좀 빡셀 뿐이지 꽤 많이 받는다는 것이 알려진 바 있다

이러한 비공개 사교 클럽은 구미권에 그야말로 널리고 널려 있는데 각종 명문대에 존재하는 비밀 동아리들부터 해서 단골 회원만 들어갈 수 있다는 미국의 이탈리아 음식점 RAO's, 세계 굴지의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는 빌더버그 그룹(Bilderberg Group)까지 참 다양하다

 

보헤미안 그로브의 비밀 엄수가 다른 비공개 사교 클럽들에 비해 좀 과하긴 하다만, 한 꺼풀 벗겨보면 정말 별 거 아닌 단순 상류층 사교클럽 정도일수도 있는 것이다.

 

 

야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 비주얼을 보고 음모론을 어떻게 참어 ㅋㅋ

아 저 부엉이 호수 쪽으로 가자

 

사도 문서고 - 바티칸

(Vatican Apostolic Archive, Archivum Apostolicum Vaticanum, Archivio Apostolico Vaticano)

 

흔히 비밀 문서고로 불리지만 사실 이는 오역으로, 사도 문서고가 맞다

하지만 진짜 이름이 무색하게 사도 문서고는 그 오랜 역사와 함께 온갖 비밀 문서들을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문명은 진짜로 비밀 문서고였다

 

바티칸의 사도 문서고는 오랜 옛날부터 교황청에서 선포한 모든 법령 및 관련 문서를 보관하기 위해 세워진 중앙 문서고이다

역사가 기원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곳이며, 초기 기독교 시절에 이미 막대한 기록을 수집하고 보관하고 있었다

 

사도 문서고는 처음부터 저런 모던한 자태를 뿜어내던 게 아닌데 맨 처음엔 라테라노 궁전에 쭉 보관되어 있었다

이후 11세기부터 바티칸을 두고 온갖 지랄 옘병이 일어나면서 기록 보관소는 성 베드로 대성당, 팔라티노 궁전 등 온갖 곳을 전전하다가 나중에는 키배 뜨다 패배한 교황 때문에 아비뇽까지 따라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록이 유실되었다

또한 기록이 보관되어 있던 곳이 반교황파에 의해 약탈당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교황 호소인이나 자칭 교황들까지 자기들만의 문서고를 만드는 등 아주 개판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개판이 난 문서고 상황은 1612년 바오로 5세에 의해 문서고 통합 명령이 내려진 이후 1784년 명령이 내려진지 근 172년만에 어떻게 이 흩어진 문서고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하면서 겨우 수습된다

 

하지만 1796년... 프랑스에서 '그 새끼'가 등장하는데...

 

안심하세요 도둑입니다

 

프랑스의 자랑스러운 MC 나폴레옹이 등장한 것이었다

주위에 있는 거는 전부 두들겨 패면서 자유평등박애 주입식교육을 하면서 돌아다니던 혁명 일타(一打)강사 나폴레옹은 마침내 교황령에까지 당도하게 되었고

교황령에 앙증맞은 '교육'을 실시한 이후 휴전 협정에서 대뜸 바티칸 지하에 있는 기록과 예술품, 값나가는 물건들을 요구하게 된 것이었다

2년 후 톨렌티노 조약에서는 더 큰 조건을 요구했고 결국 교황이 엉엉 울며 파리에 요구된 물건들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보내진 물건들 중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성경 사본인 바티카누스 코덱스도 있었다

값나가는 걸 대충 가져간 나폴레옹은 나중에 황제 감투를 쓰고 나서부터 아예 바티칸 기록 보관소를 통째로 파리로 옮겨놓으라고 교황에게 명령을 내린다

교황은 나폴레옹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나폴레옹의 매콤주먹이 두려웠던 바티칸 측은 결국 진짜로 바티칸 기록 보관소의 문서 3000상자 정도를 파리로 로켓배송하게 된다

 

1814년, 연합군이 파리에 도착한 후, 프랑스에게 기록을 다시 바티칸에 돌려 놓으라고 윽박질렀지만 프랑스는 니들한테 두들겨 맞은 병원비때문에 배송비가 없다면서 배째라고 혐성질을 한다

결국 보다 못한 바티칸 관리들이 뼈빠지게 모금을 한 끝에 몇몇 기록들을 돌려놓을 순 있었지만, 파리로 배송된 기록의 약 4분의 1가량이 아직도 바티칸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아무튼 이 때의 트라우마로 바티칸은 보안에 심혈을 기울이려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근대사회가 이미 찾아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열정 넘치는 근대 학자들은 바티칸 지하에 값어치 있는 문서가 대량으로 있다는 소문이 유럽 만천하에 널리 퍼지면서 연구 좀 해보자고 교황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진위 여부 등 온갖 소란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1860년대부터는 이탈리아 통일 관련으로 교황령 전체가 시끄러워지자 결국 보관소는 다시 잠정 폐쇄된다

1879년 소란이 대충 진정된 후 교황 레오 13세는 요제프 헤르겐뢰터라는 사람을 추기경으로 임명했는데, 헤르겐뢰터는 보관소에 역사가들이 접근하게 해달라는 권고를 작성해 올렸다. 개신교도들이 가톨릭을 비방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의견 때문에 이는 반려되었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한 교황은 역사가들을 위해 기록 보관소 열람실을 따로 마련하게 된다. 단 어디까지나 '공정하고 비판적인' 연구에만 한정되어 있어서 실제로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됐다

 

이후 1979년까지도 역사가들의 들여보내줘와 바티칸의 생각해보고 간 논쟁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교황들은 예외로 원래라면 교황 통치가 끝나고 75년이 지나야 공개할 수 있는 규정을 무시하고 중요 문서를 마음대로 공개할 수 있었는데, 바오로 6세의 2차 바티칸 공의회 기록 공개와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청과 나치스의 관계에 대한 역사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둘 다 가짜뉴스 유포를 막기 위해 재빨리 공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2010년, 교황청은 오랜 생각을 끝내고 보관소의 문을 대중에게 열어젖히는 파격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

그 근원이 된 것은 바로 영화 하나였다

 

영화 천사와 악마를 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그 뽕맛과 임팩트, 그리고 교묘하게 역사와 예술 요소들을 뽕차게 취사선택하면서 같은 세계관 다빈치 코드와 함께 세계 전역에 음모론을 보급하다시피한 입지전적인 영화이다

 

지금이야 음모론에 쩌든 병신작품으로 까이는거지 그 위력이 정말 대단했다. 댄 브라운의 작품 대부분은 그 근거가 전무한 허무맹랑한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그 뽕맛 하나는 대단해서 이 영화와 다빈치 코드를 보고 작중 설정에 불과한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고 그 둘에 대한 음모론을 진지하게 중얼대는 병신 새끼들이 대량으로 양산되었다. 현재까지도 이 둘에 대한 음모론을 진실인 양 떠들어대는 목회자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그 근원에 이 영화가 있다

두 단체에 대한 음모론은 이 영화와 다빈치 코드를 기점으로 생성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뽕맛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작가인 댄 브라운도 지가 쓴 걸 진실로 믿는다고 한다. 잘못 쓴 거 아니다. 지 설정을 실제라고 믿는다고 지가 지 입으로 얘기했다. 지가 쓴 소설 설정을 진짜로 믿다니 역사에 남을 병신 새끼가 따로 없다

 

아무튼 이 영화가 가져온 파장은 참 어마어마했고, 영화의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인 뭇 병신새끼들이 대량생산되자 바티칸에 대한 가짜뉴스가 뭉탱이로 퍼지기 시작한다

결국 바티칸은 영화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고 오해를 타파하기 위해 영화에서 중요한 장소로 등장했던, 바로 그 사도 문서고의 대문짝을 대중에게 열어젖힌 것이었다

역시 디지털 구라는 교황이 와도 못 이기나 보다

 

뭐 그렇게 시원하게 열어젖혔지만 현재까지도 일반 대중들이 열람할 수 있는 문서는 몇 안된다

특히 아직까지도, 역사가뿐만 아니라 역사가 할애비가 와도 절대 공개하지 않는 문서들도 수두룩하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냅다 공개했다간 해로울 수도 있는 민감한 내용의 문서들을 많이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콧수염쟁이가 독일을 갖고 놀고 있을 무렵의 교황이었던 비오 12세 당시의 바티칸과 독일의 관계를 다룬 문건이나 

 

신학생을 성추행하고 젊은 사제들과 계간을 한 혐의로 기소된 추기경 시어도어 매캐릭에 대한 문건 등이 있다

 

알다시피 비오 12세 당시 가톨릭계는 우스타샤나 헝가리, 이탈리아처럼 가톨릭을 앞세워 대량학살을 저지른 나치 똘마니들을 지지해서 이들이 사과도 안하고 뒤질 수 있도록 돕거나 나치 전범들을 해외로 도피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사제 새끼들이 바티칸에서 가슴펴고 다니던 시절이었고, 사제들의 성추행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파헤쳐지지 않은 뿌리깊은 문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두 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결국 공개하라고 명령했지만 꽤 최근이었던 2020년까지 공개가 안 된 문건이다. 제일 최근에 공개된 문건이 이 정도이니 얼마나 민감한 문서가 사도 문서고 안에 잠들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1939년 이후 자료는 프란치스코가 공개한 문건들 말고는 공개가 안 된다. 프란치스코가 공개한 그 문건이 사상 최초였다.

1922년 이후 추기경의 개인 업무와 관련된 섹션 역시 접근할 수 없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직 75년이 안 지나서 접근제한이 안 풀린 문서들도 엄청 많다

 

 

그 외에는 미켈란젤로가 '내가 시스티나 성당 건을 기껏 도왔더니 이 새끼들은 왜 급여를 안 주냐 임금체불을 당해서 기분이 엿같다'고 쓴 편지부터 

 

헨리 8세의 결혼 무효 요청, 

 

갈릴레오가 이단 재판에 대해 손으로 쓴 사본 및 연구 자료, 

마르틴 루터 파문 명령, 

 

메리 1세가 처형 전 쓴 편지 등등 바티칸과 관련된 여러 호감고닉들의 시시콜콜할수도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한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요새는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이런 문서들을 디지털화하여 서버에다 보존하기도 한다

 

현재의 사도 문서고는 바티칸 도서관과 바티칸 미술관 근처에 있으며 1980년 현대적 개축을 거쳐 위 사진과 같은 모던한 모습이 되었고 새로운 지하 저장 공간을 마련했다

사도 문서고는 일부 대중에 공개된 문서를 제외하고는 허가된 사람만을 가려서 들여보내고 있다

일단 기록 연구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바탕으로 고등 교육기관의 우수하고 자격을 갖춘 학자만이 진입 카드를 신청할 수 있다. 신청만 해서 끝난 게 아니고 공인된 연구 기관이나 적절한 자격을 갖춘 사람의 소개장이 추가로 요구된다

어찌저찌 진입이 허가되었다면 소지품 검사가 시작된다. 오직 종이, 연필, 노트북만 들고 갈 수 있으며, 잉크, 펜, 디지털 카메라, 핸드폰은 들고 갈 수 없다. 이는 문서 손상을 막기 위해서이다

요청한 문서는 한 번에 5개만 가져갈 수 있고 하루에 60명만 들어갈 수 있다. 요청한 것 외의 문서는 절대 못 건든다. 지나가다 개꼴리는 문서가 보여도 무조건 참고 다음 번에 요청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나마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이후 바티칸의 엿같은 이미지를 타파하고자 비밀 문서고의 이름도 사도 문서고로 공식적으로 바꾸고 민감할수도 있는 문서들을 이것저것 공개하는 중이다

아마도 프란치스코가 퇴위하기 전 사도 문서고의 문이 다시 한 번 대규모로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다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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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나의 바다 | 작성시간 24.03.03 역시 종교가 찐이구나....
  • 작성자brighton | 작성시간 24.04.24 이런 정성글은 어떻게 다 알고 쓰는거지 진짜 대단해...
  • 작성자soxs | 작성시간 24.05.13 에티오피아 얘기 너무 충격이야 ㄱ- 재밌게 읽었어 여샤 !
  • 작성자오예스노예스 | 작성시간 24.07.18 진짜 흥미롭다!!!! 잘봤어!!!!
  • 작성자오리온초코칩. | 작성시간 24.10.25 완전흥미돋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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