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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펌] 씨네필이 써보는 '150년 영화의 역사'.jpg

작성자순하리 레몬진|작성시간24.02.29|조회수2,999 목록 댓글 7

ㅊㅊ: 펨코

https://www.fmkorea.com/best/4524555670

1. 영화의 탄생 (1870년대~1910년대)

 

1878년 미국의 한 승마클럽에서 말이 달릴 때 네 발이 공중에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이를 증명하기 위해 승마클럽은 당시 유명 사진사였던 에드워드 마이브릿지에게 부탁을 하게 되고마이브릿지는 경주 트랙 옆에 24대의 카메라를 설치하고 와이어를 달아서 말이 와이어를 끊고 지나가면 자동으로 사진이 찍히는 장치를 개발하게 된다실험 결과는 말의 네 다리가 공중에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 것으로 나왔고훗날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동영상이 탄생했던 순간으로 여겨진다.

 

이를 눈여겨본 에디슨(우리가 아는 그 발명왕 에디슨 맞음키네토스코프라는 기계를 발명하게 된다키네토스코프란 기계 안에 영사기를 만들고 렌즈를 들여다보면 움직이는 사진을 볼 수 있게 만든 장치인데보통 20~30초 정도로 키스권투 장면스트립쇼 같은 자극적인 내용을 담았다고 알려졌다.

 

키네토스코프는 한 번에 한 사람밖에 영상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는 동시에 많은 사람이 영상을 볼 수 있는 영사기를 만들었고. 1895년 입장료를 받고 본인들이 찍은 영상들을 영사기에 틀어서 공개했는데그것이 바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영화라 불리는 열차의 탄생이다. (단 전문가에 따라서 더 전에도 영화가 존재했다는 의견 또한 존재함). 라 시오타 역에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을 찍은 영화인데기차가 스크린을 향해서 달려오자 놀라서 극장 밖을 뛰쳐나왔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당시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봤던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는 영화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영사기를 구입해 영화산업에 뛰어들게 된다본래 마술사였던 멜리에스는 본인의 직업 특기를 살려서 카메라 트릭을 이용한 편집 기법을 도입하였고 여기에 스토리를 넣어서 1902년 최초의 극영화 달나라 여행을 만들게 된다.

 

한편 초창기 영화에서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이야기를 빼먹을 수가 없는데, 1915년 영화 국가의 탄생’ 클로즈업플래시백짧은 쇼트를 나눈 편집교차편집 등 현대 영화의 다양한 연출 기법들이 이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시작이 됐다. (다만 영화 내용 자체가 KKK단을 심각하게 미화하는 영화라는 점;;)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동영상)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

 

뤼미에르 형제 <열차의 도착>

조르주 멜리에스 <달나라 여행>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국가의 탄생>, <인툴러런스>

 

 

 

 

2. 독일의 표현주의와 소련의 몽타주 기법 (1920년대)

앞서 말한 영화 선구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영화가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고그다음 영화감독들의 숙제는 어떻게 하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심지어 무성영화에 흑백영화였음관객들에게 내용과 메시지를 더 확실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였다이때 나타난 뛰어난 감독들이 나름대로 그 해답을 제시하는데 그게 바로 독일의 표현주의와 소련의 몽타주 기법이다.

 

당시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정치적사회적으로 지극히 불안정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었다이러한 불안감절망감그리고 광기가 표현주의 영화의 주된 주제였다인간의 심리상태를 비현실적이고 과장되게 묘사했으며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극단적인 대조기괴한 형태의 세트장을 활용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불안감공포광기를 표현하고자 했었다이 사조를 대표하는 감독으로는 프리드리히 무르나우프리츠 랑 등이 있다.

 

한편 소련에서는 몇몇 감독들을 중심으로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 중이었는데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표현할 때처음부터 끝까지 롱테이크로 일일이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짧은 숏들로 찍어서 그걸 유기적으로 연결한다면 관객이 어떻게 인식하냐에 관한 것이었다.

 

레프 클레쇼프는 한 가지 실험을 했는데먼저 무표정한 남자 배우를 한 컷 촬영하고 그 뒤에 각각 어린 소녀가 누워있는 관잠을 자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맛있어 보이는 수프를 찍은 컷을 붙였다그 후 관객들에게 그 무표정한 남자 배우가 어떤 감정 상태에 놓인 것 같냐는 질문에 어린 소녀의 관과 붙였을 때는 슬퍼 보인다고 하였고자고 있는 여인과 붙였을 때는 흐뭇해 보인다고 하였고수프와 붙였을 때는 배가 고파 보인다고 하였다쿨레쇼프는 두 개 이상의 컷이 편집으로 연결되었을 경우 각 컷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이것을 쿨레쇼프 효과라고 부른다,

 

그 뒤를 이어 세르게이 예이젠시타인지가 베르토프 같은 영화감독들이 충돌 몽타주어트랙션 몽타주지적 몽타주구상적 몽타주 등 다양한 몽타주 이론들을 만들어냈고 그 이론들을 본인의 영화에 활용해 선보이기도 했다.

https://youtu.be/_YYmfM2TfUA

(아마 가장 유명한 몽타주 장면일 것이다. 훈련하는 여러 컷들을 연결시켜서 주인공이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

 

프리드리히 무르나우 <노스페라투>, <마지막 웃음>

프리츠 랑 <메트로폴리스>, <M>

로베르트 비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세르게이 예이젠시타인 <전함 포템킨>

지가 베르토프 <카메라를 든 사나이>

 

 

 

3. 할리우드 고전 황금기 (1930년대~1960년대 초반)

1910년대부터 로스앤젤레스 인근 인스빌이라는 마을에 영화 제작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왜 여기에 차렸냐면 남부 캘리포니아의 1년 내내 맑고 온화해서 야외촬영에 유리한 기후에, 근처에는 눈 덮인 산호수바다사막대도시 등이 존재해 다양한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1927년 재즈싱어로 최초의 유성 영화가 탄생했고, 1930년부터 불후의 명작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를 할리우드 황금기라고 불리게 된다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스릴러와 서스펜스라는 장르를 완성한 히치콕, 26살의 나이로 불후의 명작 시민케인을 만든 천재 감독 오손 웰스그 외에도 빌리 와일더프랭크 카프라존 휴스턴마이클 커티즈하워드 혹스에른스트 루비치엘리아 카잔빅터 플레밍찰리 채플린버스터 키튼데이비드 린 등 수많은 명감독들이 이 시기에 활동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

 

오손 웰스 <시민케인>, <악의 손길>, <위대한 앰버슨가>

존 포드 <수색자>,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 <황야의 결투>, <분노의 포도>, <역마차>

히치콕 <이창>,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현기증>, <싸이코>

빌리 와일더 <이중 배상>, <선셋 대로>, <뜨거운 것이 좋아>,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프랭크 카프라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스미스씨 워싱터에 가다>, <멋진 인생>

존 휴스턴 <말타의 매>,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

마이클 커티즈 <카사블랑카>

빅터 플레밍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하워드 혹스 <리오 브라보>, <그의 연인 프라이데이>

엘리아 카잔 <워터프론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찰리 채플린 <황금광 시대>,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버스터 키튼 <제너럴>

데이비드 린 <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 강의 다리>, <닥터 지바고>

스탠리 도넌 <사랑은 비를 타고>

조셉 L. 맨키위즈 <이브의 모든 것>

윌리엄 와일더 <우리 생애 최고의 해>, <벤허>

세실 드밀 <십계>

월트 디즈니 제작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피노키오>

 

 

 

 

 

4.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 (1930년대~1940년대)

1930년대에 프랑스의 유명 영화 독점사였던 파테와 고몽이 해체를 하게 되었고여러 소규모 영화사들이 프랑스 영화계에 떠오르게 된다이는 프랑스 영화 산업에 있어서 큰 행운이었는데여러 유명 감독들이 간섭 없이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그로 인해 프랑스 영화의 독자적인 미학을 확립할 수 있게 되었던 것당시 활동 했던 유명한 영화감독으로 장 르누아르장 비고마르셀 카르네 등이 있는데이 감독들을 시적 리얼리즘이라는 집단으로 불리게 된다.

 

시적 리얼리즘이 영화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바로 미장센이라는 개념을 영화에 확립시킨 것이다본래 미장센은 연극에서 쓰이던 용어로연출자가 무대 위 소품무대 장치조명 등을 계획하고 구성해서 관람객들에게 연출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인데이를 시적 리얼리즘 영화감독들이 영화에 대입시켜서 영화 화면 안에 배경조명배우의 몸짓사물의 위치 등을 감독이 세밀하게 계획하고 연출해서 감독의 의도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또한 미장센 기법의 탄생에는 롱테이크와 딥 포커스 기법이 가능해진 렌즈의 발전도 한몫하기도 했다.

 

 

<미장센의 예시>

 

 화면 하단을 보면 탁자 위에 빈 유리잔과 약물이 있고 한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있으며, 사람들은 이를 보며 급하게 들어오고 있다. 영화를 안 보고 위의 사진만 보는 사람도 여자가 약을 먹고 자살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딥 포커스를 이용해 화면 하단을 중심으로 화면을 배치하여 구성함으로써 관객에게 상황의 이해가 극대화하도록 나타낸 것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

 

장 르누아르 <게임의 규칙>, <위대한 환상>

장 비고 <라탈랑트>, <품행제로>

마르셀 카르네 <안개 낀 부두>, <천국의 아이들>

 

 

 

5.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1940년대~ 1950년대)

 한편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의 시적 리얼리즘 영화들에게 큰 영향을 받고 네오 리얼리즘이라는 영화 사조가 탄생하게 되는데이들은 거대한 스튜디오에서 대규모의 자본으로 찍고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소위 말하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영화들을 거부했고세계 2차 대전 패전 이후 이탈리아 내에서의 경제적인 궁핍함과 사회적 불안 속에서 방황하는 소시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네오 리얼리즘 영화들의 특징으로 할리우드의 영화와 달리 제작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조명이 없는 자연 채광핸드헬드(삼각대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전문 배우가 아닌 길거리에서 캐스팅한 배우들거친 편집 등을 들 수 있는데 오히려 이런 것들이 개성 있고 색다른 요소로 다가오면서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의 미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이 사조를 대표하는 감독으로는 로베르토 로셀리니비토리오 데 시카루키노 비스콘티페델리코 펠리니 등이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

 

로베르토 로셀리니 <무방비 도시>, <독일 영년>

비토리오 데 시카 <자전거 도둑>, <움베르토 D>

루키노 비스콘티 <강박관념>

페델리코 펠리니 <>, <카비리아의 밤>

 

 

 

 

 

 

6. 일본 영화 황금기 (1950년대~1960년대)

 

1950년대 들어서 일본의 영화 산업은 최전성기를 누리게 되는데그중 일본 영화 역사상 최고의 해라고 불리는 1958일본 전국에는 7,500여 개의 영화관이 있었고 연간 제작되는 영화의 수는 평균 500~600 편에 이르렀으며 영화 입장객만도 11억 27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특히 비평적으로도 호평을 받았고 각종 국제 영화제 상들을 싹쓸이 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이 시기에 구로사와 아키라오즈 야스지로미조구치 겐지로 대표되는 후대 영화감독들에게 큰 영감과 영향력을 줬던 전설적인 감독들이 활동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

 

구로사와 아키라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이키루>

오즈 야스지로 <만춘>, <동경 이야기>

미조구치 겐지 <우게쓰 이야기>, <산쇼다유>, <오하루의 인생>

고바야시 마사키 <하라키리>

 

 

 

 

7. 프랑스 누벨바그 (1960년대)

 프랑스의 전설적인 영화 평론가 앙드래 바쟁을 중심으로 만든 프랑스의 영화 잡지 카예 뒤 시네마가 있었는데잡지에서 기고를 하던 평론가들은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기존 영화들이 지나치게 관습적이고 진부하다며 비판하는 글들을 자주 썼었다이에 그렇게 영화에 대해서 잘 알면 너희들이 한번 만들어봐라는 비아냥을 듣고 진짜로 평론가들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게 누벨바그 사조의 시작이다.

 

 누벨바그 사조의 특징은 먼저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으며 또한 기존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생소한 시도를 했었다대표적으로 현장감을 위해 삼각대를 쓰지 않고 핸드헬드로 촬영했으며각본 자체도 쪽대본처럼 즉석에서 작성 및 수정을 하고배우가 시나리오에도 없던 애드립을 사용했고점프 컷을 빈번하게 사용했으며배우가 카메라를 보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가 하면일관된 내용이 없는 서사구조를 뒤죽박죽 섞은 영화들 또한 등장하였다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누벨바그란 기존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한 저항이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영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조를 대표하는 감독으로는 먼저 영화 혁명가 장 뤽 고다르를 들 수 있고 그 외에도 프랑수아 트뤼포클로드 샤브롤자크 리베트에릭 로메르 등의 감독들이 이 시기에 활동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 <비브르 사 비>, <경멸>, <미치광이 삐에로>, <주말>

프랑수아 트뤼포 <400번의 구타>, <쥴 앤 짐>

에릭 로메르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녹색 광선>

자크 리베트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

클로드 샤브롤 <도살자>

알랭 레네 <밤과 안개>, <히로시마 내 사랑>,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

크리스 마르케 <방파제>, <태양 없이>

아녜스 바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8.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1960년대 후반~1970년대)

 1960년대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 강행 및 매카시즘 광풍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고미국과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인권운동반전운동그리고 히피들로 인해 미국 사회가 대격변을 맞이하던 시기였다기존의 꿈과 희망이 넘치는 할리우드 영화를 거부하고 냉소적인 미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염세주의적인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데 이를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또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뉴 할리우드)라고 부르게 된다또한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사조의 감독들은 프랑스의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이 사조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존 카사베츠샘 페킨파로버트 알트만시드니 루멧로만 폴란스키프랜시스 코폴라마틴 스콜세지 등이 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면서 반체제 운동과 히피 문화도 시들시들해지고아메리칸드림영웅주의를 다룬 영화 록키가 초대박을 치게 되며 다시금 밝고 희망찬 영화들이 인기를 끌게 되고결정적으로 스타워즈로 대표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도 서서히 쇠퇴하게 된다그러나 이들의 정신은 후대에 등장할 미국의 작가주의 감독에게 계승되었고쿠엔틴 타란티노데이빗 핀처크리스토퍼 놀란폴 토마스 앤더슨과 같은 80년대~90년대에 데뷔한 작가주의 감독들에게 이 시기는 바이블이라 할 만큼 오늘날까지도 막대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

 

아서 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마이크 니컬스 <졸업>

데니스 호퍼 <이지 라이더>

조지 로이 힐 <내일을 향해 쏴라>

시드니 루멧 <뜨거운 오후>

존 슐레진저 <미드나잇 카우보이>

로만 폴란스키 <악마의 씨>, <차이나 타운>

존 카사베츠 <얼굴들>, <남편들>, <영향 아래 있는 여자>

로버트 알트만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내쉬빌>

샘 페킨파 <와일드 번치>

프랜시스 코폴라 <대부 1,2>, <컨버세이션>

마틴 스콜세지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스티븐 스필버그 <슈가랜드 특급>

 

 

 

 

 

 

9. 전 세계에 퍼진 뉴웨이브 운동 (1960년대 이후)

 

누벨바그로 시작된 뉴웨이브 운동은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퍼지게 되는데이탈리아독일소련영국일본홍콩대만한국 등 다양한 국가의 감독들에게 영향을 줘서 각기 다양한 국가의 뉴웨이브 운동이 일어났고중남미에서는 제3세계 영화로 발전해 정치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성격의 영화들 또한 만들어졌다특히 한국에서는 김기영하길종유현목과 같은 감독들로 대표되는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

 

이탈리아 뉴 웨이브

페델리코 펠리니 <달콤한 인생>, <8과 1/2>, <아마코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정사>, <욕망>

 

일본 쇼치쿠 누벨바그

오시마 나기사 <감각의 제국>, <교사형>

이마무라 쇼헤이 <복수는 나의 것>

 

뉴 저먼 시네마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베르너 헤어조크 <아귀레신의 분노>

빔 벤더스 <베를린 천사의 시>

 

인도 뉴웨이브

사타야지트 레이 <아푸 3부작>

리트윅 가탁 <구름에 가린 별>

 

타이완 뉴웨이브

에드워드 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하나 그리고 둘>

허우 샤오시엔 <비정성시>

 

코리안 뉴웨이브

김기영 <하녀>

하길종 <바보들의 행진>

유현목 <오발탄>

 

 

 

 

 

 

10. 블록버스터의 시대 (1980년대 이후)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텔레비전의 폭발적인 보급이 이루어졌고이에 따라 영화 산업이 위기에 빠지게 된다이를 타개하기 위해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서 텔레비전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스케일의 영화를 만들어 관객들을 유인하고 거기에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파생 상품들을 판매해서 수익을 거둔다는 개념이 도입되게 된다.

 

 1975년 개봉한 죠스가 당시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2억 달러를 돌파하였고 그 뒤를 이어 1977년 조지루카스의 스타워즈가 초대박을 치면서 본격적인 블록버스터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그 후 1980년대 이후부터 블록버스터는 주된 영화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대표적인 블록버스터로 유명한 감독으로는 스티븐 스필버그제임스 카메론조지 루카스피터 잭슨크리스토퍼 놀란 등이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 <죠스>, <E.T>, <인디아나 존스 3부작>, <쥬라기 공원>, <라이언 일병 구하기>

제임스 카메론 <터미네이터 시리즈>, <타이타닉>, <아바타>

리들리 스콧 <에일리언 시리즈>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 시리즈>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3부작>

크리스토퍼 놀란 <배트맨 3부작>, <인셉션>

조지 밀러 <매드 맥스>

디즈니 제작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11. OTT의 시대 (2010년대 이후)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OTT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OTT 자체적으로 대규모의 제작비를 들여서 오리지널 영화들을 제작하고 있는데이러한 OTT 산업이 영화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제작사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극장 산업이 위협받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특히 코로나 이후 극장 산업이 큰 타격을 입으며 OTT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이에 대규모의 영화 제작사들은 자체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만들며 OTT 시대에 적응을 해나가려 하고 있다과연 OTT가 영화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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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Hi Barbie | 작성시간 24.02.29 재밌다! 이것저것 파편적으로 알고있던걸 간략하게 딱 정리해주네
  • 작성자돌아뿌리버럭시아스 | 작성시간 24.05.10 재밋다
  • 작성자방빼기 | 작성시간 24.06.01 잼나구만
  • 작성자today is my birthday | 작성시간 24.09.03 오 연어하다가 왔어 완전 흥미돋는다 잘 읽었어!
  • 작성자부자되고싶다평생소원 | 작성시간 24.09.07 오 흥미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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