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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작성자레몬사냥꾼| 작성시간24.03.08| 조회수0|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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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정저저저저적 작성시간24.03.08 정치적 파장을 줄이려고 비정한 아버지 노릇을 했다는 거네... 나도 영조가 사도세자를 어린시절에 많이 가혹하게 대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후궁도 때려 죽이고 사람을 백명 이상 죽였다는 거 들었을 때부터 영조가 자기 할 일을 했고 후대에 사도세자 미화가 좀 많이 됐다고 생각했음 그건 역시 정조 역할이 큰 것 같고ㅋㅋ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 비옙 작성시간24.03.08 22
  • 답댓글 작성자 느그 서장 링딩동 살제 작성시간24.03.08 33..ㅜㅜ
  • 작성자 고구마맛만쥬 작성시간24.03.08 ㅜㅡㅠ 슬프다 이런 배경이 있어서 정조같은 멋진 왕이..
  • 작성자 도파민 돈다 작성시간24.03.08 영조 다시보이네
  • 작성자 왜때문이죠? 작성시간24.03.08 근데 확실히 대안이 생겨서 사도세자를 미련없이 버린게 맞는거 같음ㅋㅋ 그리고 영조가 사도세자한테 처음엔 자결하라고 함. 그걸 거부해서 뒤주에 가두는데 처음 가져 온 뒤주가 작아서 더 큰거 가져오라고 하지 않나? 이거까지 퍼포라고 보긴 좀 어렵고 곱게 좀 가지 마지막까지 용쓰네 싶어서 괘씸죄로 갇혀 죽은거 같긴 함. 정조는 법적으로 효장세자한테 입적되는데도 죄인의 아들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사도세자가 찐으로 세자 신분이 아닌 상태로 죽었으면 정통성에 엄청난 흠집이었을걸..
  • 작성자 40층 오르기 작성시간24.03.08 사도세자는 절대 왕이 되면 안 되는 잔인한 인물이었는데, 영조의 지나친 교육과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미화된 면이 있다고 봄. 정조가 어떻게 제정신으로 국력이 쇠한 조선 후기 최후의 명군으로 존재했던 건지 돌이켜 봐도 신기함. 세계사 통틀어 영-정조처럼 기울어 가던 왕조에서 갑툭튀로 좋은 왕 나온 일이 없다시피 함. 국력이 쇠했다는 건 긴 왕조의 숙명 차원이고 이후 일본 침략과는 별개!
  • 작성자 콜마네임 작성시간24.03.08 진짜 유익하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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