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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장
(李鴻章)
저물어가던 청을 부여잡은 명신이며
태평천국군을 토벌하고
북양함대라는 근대적 함대를 구상한 정치인이자
한국사 배울 때도 한 번은 들어본 당대의 네임드!
약간 시대 생각하면 이런 이미지로 비춰지긴 한데...
이홍장은 한족 출신으로
만주족이 우대받던 과거 시험에 최종 합격 할 정도로
바늘구멍을 통과것에 비유될 정도의 천재였지만
그러나 중국이라는 틀에 갖혀 몰락한 청나라의 신하였기에
우리는 이홍장을
그저 시대를 읽지 못하는 꼰대 노인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근데 청나라 말기의 과거 합격했던 관료 치고
이홍장은 굉장히 의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1. 당신이 청의 빅쇼입니까?
아시아권에서 이란 같은 탈아시안 빼면 평균 신장 1위의 위엄
다들 알다시피 중국인의 키는
남쪽으로 내려갈 수록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북방계가 많은 요동쪽이나
북중국이 키가 더 크고, 남중국이 확연히 작다는 게 통설인데
옆에 양놈들과 꿀리지 않는 풍채
근데 이홍장은 남중국의 안후이성에서 대대로 살아온 지주인데
여긴 현재 상하이 옆에 있는 지역으로 아직도 평균키가 170cm 언저리인 곳이다.
참고로 평균 신장이 가장 큰 동북 3성도 평균키가 173cm정도인데
이홍장은 당시에 180cm 이상의 신장..ㄷㄷ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 이홍장 각하
심지어 문인 느낌이 물씬 나는 이홍장이지만
젊은 시절 의용병을 이끌고 태평천국의 난을
가차없이 조져버린 무인에 가까운 존재였고
하늘이 내린 장수 소리를 들을 정도로 풍채와 무력이 상당했다고 한다
참고로 스승인 증국번은 그래도 청의 백성이라고 봐주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홍장은 응 폭도임 하고 싹 다 갈아버렸다ㄷㄷ
2. 야 너두 할 수 있어
언어를 배우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이를 먹어서 배우거나 모국어와 1도 상관 없는 언어라면...
물론 몇몇 능력자들은 금방 배우겠지만
나 너 우리는 익히기 어렵다..
이 경우 중국어와 유럽언어는 비슷한 점이 어순 빼면 1도 없고
이 때의 이홍장은 나이도 많았으며
특히 근대 중국, 청에서는 변변한 영어 교재도 없었기에
영어를 배우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이 때문에 총리 신분으로 러시아를 방문할 일이 있던
이홍장은 멘붕의 도가니 였는데...
Привет
니하오마..?
какие?
아 시발 뭐라는 거야....
러시아에 온 이홍장은 러시아어를 1도 못했지만
특히 근대적인 조약을 위한 외교를 인지했던 그는
서구식 예식을 배우기 이전에
간단한 러시아 회화라도 배우려고 했다.
그래서 이홍장은...
자기가 들고다니던 부채에 몇 가지 러시아 회화를 적어두는데
즉 일종의 커닝 페이퍼를 들고 다닌 거다.
예를 들어
감사합니다는 러시아 말로...
쓰바시보(四包錫箔)
잘가세요는
따스웨따리아(達四維大理也)
※ 둘 다 실제 부채에 기록된 표현이다
뭐 암튼 이홍장의 첫 외국어 공부도
우리와 비슷하게 커닝페이퍼로 시작했다는 거다
여기서 우리는 외국 공관에 파견나가도
끝까지 중화사상에 절어 외국말을 안쓰는 청의 고관보다
고령의 나이에도 세상의 변화를 인지하고
끝까지 배우려는 이홍장의 태도를 알 수 있다
아무튼 그 지옥 같은 청의 과거시험에 최종 합격한 천재인지라
40이 넘은 나이에 이홍장은 영어를 배우는데 성공하고
이는 이후 그가 갈 해외 순방에서 큰 도움이 되는데
옆의 중국인들과 이홍장의 키, 그리고 유럽놈들의 키를 비교하면...ㄷㄷ
일례로 그는 1896년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레이디 살롱호에 탑승했다.
여기에는 수많은 미국인들이 타고 있었는데
물론 이 소식은 미국 현지에서도 큰 뉴스거리였고
뉴욕 타임즈는 그에 대한 뉴스거리를 얻고자
탑승자 승객 중 한 여성에게 취재를 의뢰한다..
니...니 하오??
워 쓰 메이궈 기쓔
오 중국말을 하시는군요.
하지만 여긴 미국 선박이니 영어로 대화 하시지요
그녀는 이홍장과 영어로 몇 시간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취미나 현재의 국제 정세의 의견을 물었고
친필 사인까지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꽤 긴 항해기간 동안 심심했던 이홍장은
배에서 진행된 선상 공연을 보고
같이 간 수행원들과는 달리 꽤 재밌게 공연을 즐겼고
나중에는 가수들을 VIP실로 초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또 친필 사인을 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또 심심해서 이번에는 기술자까지 불러서
배의 항해와 조선에 대한 깊은 토론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전부 영어로 말이다
3.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가다 보면~
중국식 전통의 끝인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을 한 이홍장이었지만
아편전쟁 이후 수많은 서구 세력과 조우하며
그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래서 서구식 조약의 중요성을 깨닿고
신식 군대의 설립을 목표로 하지만
응 포탄값 다 이화원 퇴비 비용으로 썼어~
중국 근대화의 최종 보스인 서태후에 의해
교묘한 방해를 받아 결국은 실패에 이른다..
또한 나라의 100년에 걸친
부패와 제도의 모순점으로 상황은 최악이었기에
이홍장은 결국 일선에서 물러나고
중국인으로써는 꽤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바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명사의 고견을 듣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젊은 시절 무인으로서의
체력과 풍채는 아직 건재했고
늦은 나이에 영어도 배워서 의사소통에 문제도 없었기에
그는 세계 여러 곳곳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모스크바에서 독일 파견단과 찍은 사진
그는 우선 철도를 타고 러시아를 방문해
러시아의 차르인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여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니콜라이 2세는 이 때의 대화를 일기장에 적을 정도로
큰 기억으로 남았다고 서술한다.
독일의 포메른에 도착한 이홍장의 사진
이후 서쪽으로 향한 이홍장은
당시 유럽에서 강하게 떠오르고 있던 독일제국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이홍장은
철혈재상이자, 일선에서 물러난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만난다.
참고로 비스마르크의 키는 190cm
비스마르크 역시 외교관 출신이었기에
유창한 영어로 그들은 세계의 정세와
앞으로 중국과 독일이 나아가야하는 길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하고
이홍장과 비스마르크는 역시 서로 시대의 풍운아를 알아보아
서로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고 한다.
프랑스 엘리제 궁을 방문한 이홍장
이번에는 프랑스로 향해 공화국이 된 프랑스의 정부 수반을 만나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여기서 이홍장은
종국에는 베트남이 독립할 거라는 혜안까지 보여준다...
빅토리아 여왕을 만나는 이홍장
또한 이번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빅토리아 여왕을 만났고
꽤 건설적인 대화들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리고 여기서도 감명을 받은 빅토리아는 이홍장에게
유색인종으로는 최초로 로얄 빅토리아 훈장 대기사상을 수여한다
근데 이홍장은 아편전쟁 때문에 빅토리아를 싫어했다고ㅋㅋ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한 이홍장
이후 로얄 네이비의 관함식까지 본 그는
신대륙으로 향하고
캐나다와 미국을 방문해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접견까지 받는다.
뉴욕에 도착한 이홍장의 모습
이홍장은 뉴욕의 화려한 전경과
워싱턴 dc의 의회 의사당 건물들을 둘러본 후
클리블랜드 대통령과의 회견을 하는데
여기서 그는 반 중국 이민 법의 완화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을 내비쳤고
많은 중국인 커뮤니티를 찾아 그들을 격려한다
이 때의 일 때문인지
나중에는 중국에 방문한 그랜트 전 미국 대통령의 영접을 도맡기도 한다.
※ 사실 영어 가능한 고위 인사가 이홍장 밖에 없어서....
특이사항으로는 당시 청에 납치되어 있던 흥선대원군도 만났는데
처음에 그를 소국의 나약한 지도자로 폄하했지만
몇 번 만난 뒤 효웅이라고 재평가를 했고
흥선대원군도 역시 깊은 감명을 받아
아들 이재면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리즁당이라는 표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홍장과 전후처리회담을 하는 이토 히로부미
또한 외세에 휘둘리던 중국의 정세때문에
조약 체결을 위해 많이 외국에 나간 것도 있는데
청일전쟁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으러
일본에 갔을 때 일본 대표인 이토 히로부미와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했다고 한다.
근데 이토마저 이 중국인에게 적지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즉 과거에 합격한 유교적 소양을 갖춘 중국인임에도
식견과 행보가 너무나도 근대적이며
그를 만나본 외국 정치인들이 한결 같이
중국의 근대화를 이끌 사람은 이 사람 밖에 없다고 할 정도의
마성의 소유자이자 의외성 넘버 원 중국인!
아 씨발
참고로 이홍장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중국인 이름표기를 할 때 중국식 발음표기를 존중하기 시작합니다.
이홍장의 바로 다음 세대인 원새개는 정식으로 표기할 시 위안스카이로 한국에서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즉 이 사람의 존재가 중국 근대와 현대를 나누는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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