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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눈물한방울]할아버지와 손자를 마주 세워놓고 서로 뺨을 때리도록 했다.

작성자큭피|작성시간24.04.03|조회수3,714 목록 댓글 26


출처 : 김종민, 제주 4.3항쟁-대규모 민중학살의 진상, 역사비평 1998년 봄호







제주 4.3 이야기.




1.

뺨 때리기



할아버지와 손자를 마주 세워놓고 서로 뺨을 때리도록 했다. 

머뭇거리거나 살살 때리면 곧 무자비한 구타가 가해졌다.


제주도 토벌대원 셋이 한동안 심심했다. 담배꽁초를 던졌다. 침 뱉었다. 오라리 마을 잡힌 노인 임차순 옹을 불러냈다 영감 나와 손자 임경표를 불러냈다. 너 나와 할아버지 따귀 갈겨봐 손자는 불응했다.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경표야 날 때려라 어서 때려라 손자가 할아버지 따귀를 때렸다.


세게 때려 이새끼야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세게 때렸다 영감 손자 때려봐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때렸다.


영감이 주먹질 발길질을 당했다 이놈의 빨갱이 노인아 쎄게 쳐 세게 쳤다 이렇게 해서 할아버지와 손자 울면서 서로 따귀를 쳤다 빨갱이 할아버지가 빨갱이 손자를 치고 빨갱이 손자가 빨갱이 할아버지를 쳤다.


이게 바로 빨갱이의 놀이다 봐라 그 뒤 총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임차순과 손자 임경표 더 이상 서로 따귀를 때릴 수 없었다. 

총소리 뒤 제주도 가마귀들 어디로 갔는지 통 모르겠다.





2.

총살박수치게하기



총살에 앞서 총살자 가족들을 앞에 세워놓고 자기 부모형제가 총에 맞아 쓰러질 때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치게 했다.


표선면 가시리 안공림 씨(58)는 여덟 살 때 총살장에서 박수를 쳤던 끔찍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너무도 끔찍해 눈을 뜰 수도 없었지만 벌벌 떨며 박수를 쳐야 했다" 고 했다.





3.

이승만 사진과 태극기 강매



당초 서북청년단 (서청)은 민간인 자격으로 제주도에 들어왔다. 처음엔 주로 엿장수를 하다가 점차 세력이 커지자 이승만의 사진과 태극기를 강매했다. 4. 3이 발발하자 서청은 경찰로 또는 군인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과거에 이승만 사진과 태극기를 사지 않았던 사람들은 총살되었다.





4. 

말 태우기



토벌대는 주민들을 집결시킨 가운데 시아버지를 엎드리게 하고 며느리를 그 위에 태워 빙빙 돌게 했다.






5.

겁간 학살하기



야수로 돌변한 토벌대에 의해 여성들의 수난도 컸다. 성산면 시흥리의 박태수 할머니(당시 60대 중반)에게는 스무 살 가량의 손녀가 있었다. 주변에 소문난 미인이었다. 서북청년단원이 그녀를 탐했지만 할머니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화가 난 토벌대는 할머니를 대낮에 길가로 끌어내어 총살했다.


안덕면 감산리의 강매옥(당시 19세)은 군인들의 겁탈을 죽음으로 막았다. 강매옥의 언니 감경옥 씨(78)는 지금도 학살자의 성씨와 얼굴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친정집에는 군인 3~4명이 임시주둔했는데 그 중에서 '최상사'라는 놈이 동생을 죽였습니다. 동생은 참 예뻤지요.

그놈들은 처음에 처녀들을 몇 명 집합시켰다가 동생이 제일 곱다고 생각했는지 덮쳤습니다.

그러나 맘대로 되지 않자 총을 쏜 겁니다. 동생은 배꼽 부근에 총을 맞아 창자가 다 나올 정도로 처참한 모습으로 숨졌습니다."





6.

사살 연습




우리 마을 북촌리에 대학살이 벌어지던 그날, 아침부터 갑자기 총소리가 나더니 군인들이 마을 동쪽부터 불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연설이 있으니 학교 운동장으로 집합하라 했습니다.


군인들은 우선 경찰가족, 군인가족을 따로 분리시키더군요 낌새가 이상하다 여긴 사람들은 사돈의 팔촌이라도 경찰이 있으면 경찰가족쪽으로 줄을 섰습니다. 군인은 우선 민보단 간부를 불러내 바로 총살했습니다.


사람들이 동요해 흩어지기 시작하자, 군인들이 사람들 머리위로 총을 난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너댓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중엔 한 부인도 있었는데, 엎혀있던 아기가 그 죽은 어머니 위에 엎어져 젖을 빨더군요.


그날 그곳에 있었던 북촌리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겁니다.





7.

강제 성행위



미친 짓거리는 점점 심해져 갔다. 연행자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놓고 남녀 모두 옷을 벗긴 후 강제로 성행위를 시키다 총살한 일도 있었다. 4. 19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국회에 양민학살 진상규명 특위가 구성되었을 때 한 증언자는 제주도를 찾은 국회의원들에게 "군인과 서북청년단들이 처모와 사위를 대중이 모인 가운데서 정조를 맺게 하고 총살시켰다" 고 폭로했다.





8.

대살



토벌대는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 이라며 수시로 학살했다. 48년 12월 13일.


대정면 상모리와 하모리 주민 48명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총살당했다. 1948년 12월 22일 표선리로 소개한 가시면 주민 76명이 속칭 '버들못'에서 집단학살되었다. 토벌대는 주민들을 집결시킨 후 호적을 일일히 대조했다. 그 결과 젊은이가 사라진 경우엔 "폭도로 산에 오른 게 분명하다"며 총살했다.


주민들을 집결시킨 후 총살극을 구경시켰다 하여 "관광총살'이라고도 부른다.





9.

참수



초토화작전 기간 중에서도 1948년 12월 중순부터 약 열흘간은 집단학살이 가장 극심했다.


이 무렵 토벌대는 입산한 사람들을 총살한 후 목을 잘라오기도 했다. 그래야 전과(戰果)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한 서청 출신 증언자는 "목을 잘라오면 승진을 시켜주었다"고 말했다.


1948년 12월 25일 서귀면 주둔 토벌대는 작전을 마치고 내려올 때 길목인 서홍리에 들렀다.


서홍리 주민들은 토벌대의 손에 들린 끔찍한 모습을 목격했다. 


한 할머니는 "어떤 여인에게는 자기 아들의 목을 들고 내려오도록 했다" 고 증언했다.






10.


30만 제주도민 중 빨갱이로 몰려 학살된 희생자가 최소한 3만. 2001년 5월 제주 4.3사건 지원사업소가 접수한 희생자 신고에 의한 피해자 1만 3천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학살 희생자중 여성이 21.1% 10세이하 어린이가 5.6%, 61세이상노인이 6.2%.








4.3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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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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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초롱그라데이션 | 작성시간 24.04.03 이거는 한번보고 진짜 기막히고 화가나서 가끔씩 계속 생각나
    버러지 이승만 씨발놈
    곱게 재기한게 억울함
  • 작성자부채선풍기에어컨 | 작성시간 24.04.03 진짜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다...
  • 작성자소시지 에그 맥머핀 | 작성시간 24.04.03 아 역겨워
  • 작성자피포포피 | 작성시간 24.04.03 내용이 너무 잔인하다 이게 뭐야..
  • 작성자여시들아안녕 | 작성시간 24.04.04 시발것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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