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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김좌진의 아들로 태어남
1935년
18세의 나이에 파고다 공원을 평정
이후 서울에서 20대 조직 두목
구마적, 신마적을 죄다 두들겨 패고
약관의 나이에 종로 일대를 재패하며
경성 암흑가의 패권자가 됨
※ 본인 피셜
물론 자기 구역 내의 상인들로부터
진짜 "세금 받았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보호비를 삥듣음
실제 20대 때 사진
1943년
일제가 전국의 깡패들을 모아 만든 어용단체인
경성특별지원청년단을 조직하여
총독부 산하 건설현장에서 삽질함 (ㄹㅇ 의미 그대로)
1945년
광복 후 우익계 단체인 대한민청의 용역 집단이자
주요 인사가 되었고
남한 내 공산주의자들을 모조리 암살하던 백의사와 커넥션
대표적으로 한 일이 9월 총파업 당시
파업현장에 쳐들어가 노동자들을 줘패서 다수의 사상자 발생
참고로 대충 이시기에
친일공산주의(...) 배우 심영을 광통교에서 저격
백병원에 쳐들어가서 죽여버리려고 시도함
물론 본인 피셜 노모를 보고 그냥 전향서만 쓰게 하고 살려줬다고
1947년
친구였지만 좌익계열인 조선청년전위대의 정치깡패인
정진룡과 그 부하들을 생포한 뒤
고문과 전향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모두 살해
이 사건으로 미군정에 의해 체포
당시 우익계의 병크에 개빡친 미군정은 사형을 선고
이에 불복해서 할복을 빙자한 자해쇼 시전
처형 직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석방
시대를 생각하면 조선 제일의 주먹이 헛말은 아닌 체구
1948년
이승만이 설립한 대한청년단의 감찰국장으로 취임
공산당... 뿐만 아니고 정부에 반감을 가진 인물을 대상으로
무차별한 폭력 활동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짐
심지어 이승만이 사람 좀 그만 죽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ㄷㄷ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부산으로 런
근데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부산 정치 파동에서
의외로 치질을 이유로 참여를 거부
참고로 이정재 같은 이승만 정부의 정치깡패들이 국회의원들을 억류하고
기습날치기 개헌을 한 사건인데
훗날 이 때의 처신으로 목숨을 건진다
1954년
37세의 나이로 3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
근데 깡패 동료인 김관철에게 권총으로 위협한 사건으로
당선되자마자 깜빵행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선고유예를 받고 유야무야 국회로 복귀했는데...
갑자기 국회로 부통령 이기붕의 정치깡패인 이정재가
맞짱을 뜨자고 찾아옴ㅋㅋㅋㅋㅋ
참고로 이 때 부통령이었던 이기붕과 사이가 안좋아서
이기붕이 보낸 자객이 아닌가라는 추측
지방선거 입후보를 방해하자 완력으로 경찰을 뚫어버리는 실제 사진
근데 이승만의 정치깡패 노릇을 했던 과거가 있지만
이승만 최대의 흑역사인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
이에 이승만의 여당이자 집권당인 자유당에서 제명
무소속으로 활동하며 매일 같이 기삿거리를 쏟아내는 아이돌이 됨ㅋㅋㅋㅋ
1956년
자유당이 야당의 지방선거 입후보를 방해하자
야당 및 무소속 의원들이 시위를 벌임
무장경찰들이 이들을 체포하러 오자
혼자서 무장, 기마 경관 14명을 때려 눕힘
근데 시위 후 체포하러 온 경찰 5명도 모조리 병원으로 보냄
이거 참고로 본인 피셜 아니고 교차 검증된 팩트
아무튼 이승만과 반목한 끝에
국회의원 재선은 실패하지만
4.19 혁명 이후 이승만 정부의 부역자들
특히 이정재 같은 정치깡패들이 모조리 사형당할 때
이승만에 반대했기에 살아남고
오히려 박정희에게 아버지 김좌진이 받은 건국 훈장을 대리로 받았을 정도
1965년
야당이자 진보정당인 한국독립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
여기서도 전설적인 일화를 남기니
박정희의 측근이자 안하무인이었던 차지철이
국회의원들을 폭행하자
개빡친 나머지 웃통을 까고 한번 붙자고 덤빔
차지철은 ㅌㅌ함ㅋㅋㅋㅋㅋ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맺어지자 조약을 반대한 젊은 운동가 편을 들고
당시 중앙정보부와 사이가 좋지 않던 김종필과 친하게 지냄
+ 군사정권에 대한 강경 비판을 자주 했기에
한국독립당 내란 음모 사건의 주범으로 체포
하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는 체포 이유 + 국회에서 석방 동의안이 가결되어 석방
똥이나 쳐먹어라 이새끼들아!
1967년
김대중과 김영삼이 소속된 민주당 계열 정당인 신민당에 입당 + 의원 당선
그러던 중 정권과 삼성 간의 비자금 유착 관계인 사카린 밀수 사건이 발생
이에 국회에선 정부 요인들을 불러다 놓고 청문회 벌임
당연히 야당 의원이었기에 김대중 다음으로 질의에 참여
여러 논리로 정부를 비판한 뒤 똥물을 정부 요인들에게 퍼부음
※ 참고로 당시 새파랗게 어린 김영삼과 술친구였고
부하들 용돈 준다고 돈도 좀 빌렸다고
오렌지병으로 쓰러진...
1972년 11월 21일
위의 사건으로 또 깜빵 갔다가 사회로 복귀한 뒤
여러 사업을 벌이고 사기를 맞는 등 부침을 겪다가
오렌지병인 고혈압으로 거리에서 급사
향년 54세
김두한
(1918 ~ 1972)
김좌진의 아들이자 경성의 주먹 황제면서
일제에 부역하고 극우 단체의 용역 깡패일과
정권의 정치깡패 노릇을 했지만
막상 최후의 일선은 안넘고
말년으로 갈 수록 정권의 개보단 재야 인사로서
정권을 비판한 정치인
의외로 우익계 정치 깡패 출신이지만
마지막 의원은 김대중, 김영삼과 같은 민주당 계열 의원이었던 사람
진짜 아이러니한 사람 그자체
실제 똥물을 퍼붓기 전 장광설로 썰 푸는 김두한 사진
사실 우리가 잘 아는 야인시대의 김두한은, 70년대 김두한이 라디오에 출연해서 썰 푼 거를 극화한 거에 가까워서
그냥 김두한이 엄청나게 미화된 거라고 보면 편합니다ㅋㅋㅋㅋ
비록 일제 부역이나 정권의 정치깡패 등 옹호할 수 없는 이력이 있지만
의외로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서 일선은 안넘고, 결국 정권을 비판하는 야당 인사가 되는 등 참 아이러니한 인간입니다
김영삼 曰 : 여러 결점은 있지만 입바른 말은 하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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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의 국회 난동 사건을 꽤 높은 퀄리티로 재현한 야인시대 영상
참고로 위 영상에서 김두한이 말하는 대사는 진짜 국회 속기록에 적힌 김두한의 질의 내용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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