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KBO 개그콘서트
‼️스포에 예민한 여시는 영화 다 보고 나서 읽기‼️
주관 존나 많음 주의
시작 (보기 쉽게 시간 순으로 정리하겠음)
1. 유년기 (1924-)
20세기 초반까지 중국의 지배자는 청나라 제국이었음. 영화 속에서 청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장 내관임.
1911년부터 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서는데, 이걸 신해혁명이라고 부름. 청나라까지는 전부 황제가 다스리는 전제군주제였지만 중화민국은 근대식 공화국임.
이후 쑨원한테 대총통직을 받은 위안스카이가 과도정부를 수립하는데, 이걸 북양정부라고 부름. 다만 중화민국을 중화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하면서 온갖 비난에 직면함.
이 시기의 중국은 북양군벌 내에서 갈라져 나온 계파들의 내전 + 다른 지방 군벌들의 봉기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음. 특히 주인공들의 유년기인 1924년은 북경정변 등으로 북양정부의 정통성이 본격적으로 설득력을 잃어버린 혼란기임.
1-1. 경극
청나라 중기까지만 해도 곤곡이 대세였는데, 곤곡의 인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며 18세기 말~19세기 초부터 여러 지방극이 들어옴. 이때 고낭정이라는 (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 배우와 고낭정의 극단도 북경에 옴. 얘네가 곤곡을 비롯해 다른 곡조들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발전하여 유행을 탄 게 경극임.
경극에서 여성 역할은 ‘단’이라고 부르는데, 전통 경극에서는 단 역할 또한 남자가 했음. 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 배우를 남단이라고 부름. 1930년대에 중국에서 여성 해방 운동이 일어나자 매란방으로 대표되는 여성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며 남단의 수는 점점 줄어듬. 다만 주인공들의 유년기까지는 여전히 남단이 대세였고, 전통의 측면에서도 남단이 옳은(?) 구조였음.
데이는 경극 학교를 입학하는 순간부터 반복적으로 정체성의 혼란 내지는 상실을 겪음. 손가락이 잘리고, 남단 역할을 위해 ‘나는 본디 계집아이로’라는 대사를 강요받고, 곰방대로 입안을 쑤셔지고 등등.
이 부분을 흔히 어린 데이가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해석하는데,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 인간 도즈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과정으로 볼 여지가 있음. 인간 도즈의 정체성과 자유를 상실하고 우희를 연기하는 남단 청데이의 자아가 생성되는 과정 ㅇㅇ...
1-2. 패왕별희
영화의 제목이자 극중 메인 공연인 패왕별희는 진나라 말기의 고사에서 따온 작품임. 진시황 사후 혼란기에 항우라는 영웅과 유방이라는 영웅이 등장해 대륙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싸우는데, 이 이야기가 바로 초한지임.
극중 데이의 역할이자 경극 패왕별희의 단인 우희는 항우의 연인임. 항우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오로지 우희만 만났기 때문에 사실상 아내 포지션이기도 함.
항우는 중국 역사 속에서도 손 꼽히는 무력의 소유자로 ‘패왕’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한때 중국 대륙을 지배했지만 그와 별개로 포용력은 부족한 영웅이었음. 잔인하고 조급한 성격 때문에 많은 실책을 저질렀고, 결국 항우는 한때 얕잡아봤던 유방에 의해 몰락하게 됨.
최후의 전투를 앞둔 항우는 종말을 예감하고 우희를 불러 눈물 흘리며 술을 마시는데, 패왕별희는 이 장면에서 따온 작품임.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도다.
時不利兮骓不逝
하지만 시운이 불리하니 추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는 항우가 아끼는 명마)
骓不逝兮可奈何
추마저 나아가지 않으니 난 어찌해야 하는가.
虞兮虞兮奈若何
우희여, 우희여! 그대를 어찌하면 좋은가.
항우가 부른 노래인 해하가
漢兵已略地
한군이 이미 천하를 다 빼았으매
四面楚歌聲
성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은 초나라의 노랫소리
大王義氣盡
대왕의 의기가 다하셨다면
賤妾何聊生
천첩이 살아서 무엇하리요
우희의 답가인 화황왕가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자면, 우희는 역사에 거의 등장하지 않음. 경극 <패왕별희>는 사마천이 지은 역사서인 사기-항우본기의 내용에 후세의 창작을 더해 만들어진 건데, 우희는 사기에서 딱 한 줄 등장함.
有美人名虞, 常幸從, 駿馬名騅, 常騎之.
항우에게는 우라는 이름의 미인이 있어서 늘 총애를 받아 따라다녔고, 추라는 이름의 준마가 있어서 늘 이를 타고 다녔다.
항우의 해하가는 실제지만 그에 우희가 답가로 불렀다는 화황왕가는 후대의 창작이라고 보는 게 맞음. (항우가 부른 해하가는 고시 중간중간 兮 글자를 넣는 초사 스타일인 반면 우희의 답가는 운자를 맞춘 5언시임. 초나라 사람이자 초패왕 항우의 연인인 우희가 초나라의 멸망을 한탄하며 부르는 노래가 초나라 스타일이 아니란 게 말이 안 되자늠....)
앞서 말했듯 우희는 항우의 아내가 아닌 ‘연인’인데, 역사서에는 우희 외에 다른 여자가 등장하지 않음. 다만 태생부터 귀족 도련님이었고 중원의 지배자 자리에 올랐던 항우가 혼인을 하지 않았단 건 다소 의아한 부분임. 또한 우희가 정말로 항우의 유일한 여자였다고 하면 그만큼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혼인을 하지 못할 만큼 신분이 미천했다는 뜻이 됨. 즉 이뤄지지 않을, 혹은 인정받지 못할 관계
요약해서, 우희는 출신과 최후 전부 불분명함. 우희의 최후에 대해 남은 공식적인 기록은 없으며, 판본마다 다 말이 다름. 경극 패왕별희에서는 우희가 항우에게 짐이 되기 싫어 항우의 검으로 자결하는데, 이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위한 창작임. 즉 <패왕별희>라는 경극 자체가 우희의 희생과 죽음으로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함.
유년기의 끝에서 데이는 장 내관에게 불려가는데, 이 장면은 데이와 샬로의 유년기가 끝났다는 암시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음. 샬로가 패왕별희의 패왕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극 내외로) 누리는 영광의 기저에 우희, 즉 데이의 희생이 깔려있다는 암시. 또한 우희는 항우의 총애를 받았다는 것 외엔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데, 이는 비교적 주체적인 패왕과 대비되는 부분임
https://m.cafe.daum.net/subdued20club/ReHf/3828133?svc=cafeapp
초한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글을 읽어주세용
2. 중일전쟁 (1937-)
1927년부터 중국은 내전 중이었음.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라 국공내전이라고 부름. 이후 1937년 일본의 침략으로 중일전쟁이 벌어지자 공통된 적이 생기자 일시적으로 내전을 멈추는데, 이걸 국공합작이라고 부름.
1937년은 중일전쟁의 시작이자 난징 대학살이 일어난 해로 중국 내에서 반일&항전의지가 강했던 시기임. 데이와 샬로가 시위대에게 봉변을 당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
2-1. 신발
쥬샨이 샬로를 찾아올 때 맨발로 찾아오고, 데이가 쥬샨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신발을 줌. 당시 중국에서는 매춘부가 대문에 신발을 걸어 영업 중이라는 표시를 했음. 즉 쥬샨이 맨발로 찾아온 건 매춘부 쥬샨으로서의 삶을 끝내고 샬로의 아내로 살고 싶다는 의미고, 데이의 행동은 (자신과 샬로의 삶에 침범한 쥬샨에게) 기루로 돌아가라는 거부의 의미임.
2-2. 귀비취주
샬로와 손절한 데이는 더이상 패왕별희를 공연하지 못함. 당연함. 상대역이 없음.
이 시기 데이가 일본군 앞에서 하는 경극은 <귀비취주>임. 귀비가 술에 취했다는 뜻임. 여기서 귀비란 당 현종의 애첩이었던 양귀비를 말하는데, 귀비취주의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럼.
양귀비는 고력사&배력사 두 환관을 데리고 백화원으로 향함. 이날 백화원에서 황제를 모시고 연회를 열기로 했기 때문에 귀비는 기분이 매우 좋고, 궁 안에 삼천의 미녀가 있지만 황상께서는 오로지 자기만 총애한다고 자랑함.
-> 당 현종=샬로, 양귀비=데이. 귀비가 기대하던 백화원의 연회는 데이가 본래 기대하던, 한평생 샬로와 단둘이 노래하는 삶이라고 볼 수 있음.
그러나 막상 백화원에 도착하자 현종이 (양귀비의 라이벌인) 매비에게 가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옴. 자존심에 상처 입은 귀비는 당연히 억장이 무너지지만 애써 괜찮은 척 하며 혼자 술을 마심.
-> 애써 괜찮은 척 하며 홀로 술을 마시는 귀비는 샬로 없이 홀로 공연하는 데이와 겹침. 또한 매비는 쥬샨이라고 볼 수 있음.
실제 역사 속 매비는 오랫동안 현종의 총애를 받으며 양귀비와 대립했는데, 안록산의 난이 일어난 후 사라짐. 어느날 매비가 현종의 꿈에 나타나 자신을 버린 현종을 원망하며 울고, 꿈에서 나온대로 매화나무 아래를 파보자 난 중에 살해당한 매비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고사가 있음. (or 난 중에 자결했거나)
홀로 술을 마시던 귀비는 황제께서 납신다는 소리에 몸을 내던지며 무릎을 꿇지만 그건 (현종을 그리워한) 귀비의 착각이었음. 술에 취한 귀비는 설움에 겨워 홀로 춤을 추지만 끝끝내 현종은 오지 않고, 결국 환관들이 술 취한 귀비를 처소로 데려감
-> 데이는 샬로에게 끝을 선언한 후에도 계속 샬로를 그리워했고, 샬로가 곤경에 처하자 곧장 샬로를 구하러 가려고 함. 현종, 즉 샬로가 다른 사람의 곁을 지키는 동안에도 샬로를 그리워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데이의 운명으로 해석할 수 있음.
현종은 당나라 역사에서 당 태종과 더불어 손꼽히는 명군 중 하나임. 젊은 시절 당륭정변과 선천정변 등 여러 위기를 이겨내며 권력을 장악했고, 개원의 치를 펼침.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아들인 수왕과 혼인한 사이였는데, 현종이 양귀비한테 빠짐. 이후 귀비는 현종에게 총애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림.
그러나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귀비는 역적 포지션이 되고, 이전부터 불만을 품었던 병사들은 현종에게 양귀비를 처단하라고 요구함. 현종은 당연히 양귀비를 비호하지만 이 당시의 현종은 이미 힘과 권력을 잃은 황제였고, 결국 귀비는 (반쯤 강제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함.
즉 귀비취주는 쥬샨의 등장으로 버림받은 데이의 상황을 표현하는 동시에 세 사람 모두의 운명을 은유하는 장치의 역할도 가능함. 젊은 시절에는 세상 두려울 게 없던, 머리로 곧잘 무언가를 깨며 거침없는 힘을 내세웠으나 나이가 들며 의기가 다하고 힘을 잃어버리는 패왕&현종 샬로 + 그런 샬로를 한평생 따르지만 내몰려 자결하는 우희&양귀비 데이 + 마찬가지로 샬로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자살하는 매비 쥬샨
2-3. 목단정 - 유원
데이가 샬로를 구하기 위해 공연하는 곤곡의 제목임. 목단정은 원체 길어서 다 부르려면 밤을 지새워야 하기 때문에 일부만 공연함. 데이는 그중 유원을 부름.
대략적인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여주인공 여낭이 꿈속에서 유몽매를 사랑에 빠지고, 여낭은 유몽매를 그리워하다가 병에 걸려 죽음’임.
귀비취주와 마찬가지로 샬로를 향한 데이의 감정과 상황을 나타내는 곡임. 또한 데이가 부르는 유원은 봄의 좋은 시기가 지나 모란꽃 핀 시기인데, 샬로와 좋았던 시절이 끝나버렸단 걸 의미함.
3. 국공내전 (1945-)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국민당과 공산당은 다시 내전을 시작함. 이 시기에는 국민당이 일시적으로 베이징을 수복함.
3-1. 목단정
데이는 일본군 앞에서 목단정을 공연한 죄로 재판을 받는데, 자신도 일본인을 증오하지만 강제로 공연한 건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함. 앞서 말했듯 인간 도즈가 아닌 경극 배우 청데이의 자아가 강한 데이는 작품 내내 다소 몽상주의적이고 경극에 매몰된 모습을 보이는데, 데이의 예술관을 간략하게 엿볼 수 있는 부분임. 데이에게 경극은 숭고한 예술이며, 자신을 보러 온 관객은 (설사 그것이 민족의 적인 일본군이라 할 지라도) 그저 관객인 것.
이후 데이는 국민당 장교 덕에(?) 풀려나 그들 앞에서 목단정을 공연함. 조금 전까지만 해도 풍기문란 운운하던 극을 태연하게 공연하는 모습에서 예술이 예술로서만 존재하지 못하고 (데이의 바람과 다르게) 높으신 분들의 입맛대로 휘말리기 시작했단 걸 알 수 있음.
4. 공산당 집권기 (1949-)
베이징의 시장이 공산당에 투항하여 공산당과 홍군이 베이징으로 들어온 시기임. 극중에서는 데이와 샤오쓰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기도 함.
4-1. 샤오쓰
샤오쓰와 데이의 갈등은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음.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샤오쓰의 질투심임. 공연에서 우희 역할을 빼앗은 거나 문혁 시기에도 우희의 소품을 가지고 있는 것 등등
더 크게 보면 세대의 갈등임. 경극은 공산당 집권 이후로 극적인 변화를 겪었음. 이 글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남단이 사라지고 여성 배우가 등장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경극 특유의 화려함과 기교도 많이 사라짐.
앞서 말한대로 경극은 데이에게 있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자기의 정체성임. 또한 데이는 (전통 경극의 요소인) 남단이자 전통을 중요시하는 구시대적 예술가임. 데이에게 있어 경극의 화려한 기교는 절대 잃을 수 없는 것임. 데이는 그 화려한 기교를 위해 학대에 가까운 수련을 거쳤고, 샤오쓰 역시 같은 방식으로 교육함.
반대로 샤오쓰는 공산당의 영향을 받은 신세대임. 경극은 지식층을 위한 공연이었기 때문에 고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 계층, 즉 인민은 경극을 이해하기 힘듬. 구습을 타파하고자 하는 샤오쓰와 공산당의 시각에서 ‘구습인 체벌로 제자를 교육하고 + 자본주의 유산층을 위한 화려한 기교를 곁들여 + 무식한 관객은 알아듣지 못할 어려운 고전을 공연하는’ 데이는 자신들의 이념에 어긋나는 존재임.
또한 앞서 언급했듯 데이에게 경극은 예술임. 따라서 평상복을 입고 기교 없이 공연하는 현대극은 경극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함. 반대로 샤오쓰와 공산당은 경극이 대중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불어넣는 ‘도구’로 쓰이길 바람.
5. 문화대혁명 (1966-)
일단 문혁의 배경은 공산당 집권기에서 시작함. 마오쩌둥은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는 희대의 개소리로 대표되는 대약진 운동을 통해 엄청난 삽질을 저지르고 권위를 잃음. 결국 국가주석직을 사임하면서 류사오치가 선임됨.
이에 마오쩌둥은 젊은 세대에게 마오주의 교육을 강화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 회복+반대파 제거를 위해 약 10년에 걸친 문화대혁명을 일으킴.
문화대혁명이 원래 내세운 목표는 파사구였음.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관습을 타파하여 이타주의적이고 조금 더 진보적인 사회주의 국가로 자리잡자는 거임.
다만 중국의 문혁은 극단적인 문화 파괴의 형태가 됨. 자국이 자국의 문화를 파괴하는 듣도보도 못한(......) 쨌든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적 사상과 맞지 않는 문화, 즉 경극을 비롯한 예술도 테러를 당하게 됨.
5-1. 샬로의 몰락
항우와 관련된 유적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서초패왕영사와 패왕묘를 떠올릴 수 있음. 항우가 죽은 후 피 묻은 옷을 모아 장사 지내고 매해 제사를 올리던 곳이 패왕영사고, 항우의 무덤이라고 비석이 세워진 곳이 패왕묘임. 특피 패왕영사에는 자결한 우희를 안고 슬퍼하는 항우의 조각상, 즉 패왕별희를 묘사한 조각상이 있었음. 청나라 때만 해도 보수 공사를 하고 관리하던 유적임.
근데 패왕영사와 패왕묘 모두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의 테러로 파괴됨. 항우의 사당과 비석은 물론이고 앞서 언급한 패왕별희 조각상도 전부 부숴짐. 중국의 역사, 그 역사와 함께 전통을 이어 온 경극, 데이와 샬로의 패왕별희가 더는 존재할 수 없게 된 거임.
샬로는 취조 과정에서 벽돌을 머리로 깨라는 요구를 받는데, 더는 벽돌을 깨지 못하고 피만 남. 패왕별희라는 작품과 경극의 생명이 다해가듯 (우희가 부른 답가의 구절처럼) 의기가 다 해버린 패왕의 모습임.
5-2. 데이의 정체성
절망에 빠진 데이는 군중 앞에서 샬로를 비난하는데, 패왕을 버렸다며 비명을 지름. 또한 패왕조차 꿇어앉아있으니 이제 경극은 끝났다며 좌절함. 샤오쓰와의 대립 이후 경극 옷을 모두 태웠지만 데이의 자아는 여전히 경극배우이자 우희 그 자체란 걸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임.
작중에서 데이가 옷을 태우는 장면이 여러번 나오는데, 창녀의 아들이라고 놀림받자 어머니의 옷을 태움. 또한 샤오쓰에게 자리를 빼앗긴 후 경극 복장을 모두 태움. 그러나 데이는 옷을 태운 후에도 엄마에 대한 애증의 그리움을 내비췄고, 우희의 자아를 유지함. 마찬가지로 몽상주의적인 데이의 성향을 보여주는 요소라고 볼 수 있음.
6. 결말부 (1977)
문화대혁명이 종료된 후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측근인 4인방도 깜빵 간 시기. 데이와 샬로는 다시 경극을 할 수 있지만, (문혁의 영향으로) 이미 경극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고 쇠퇴해버린 후이기도 함.
결말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존재하는데, 나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함. 더는 공연을 할 수 없는 데이지만 그 정체성은 여전히 우희이자 남단이기에 패왕이자 관중인 샬로의 앞에서 끝나고 싶은 마음 + 경극에 매몰된 몽상주의자 데이이기에 자신의 죽음으로 패왕별희를 마침내 완성하고자 하는 욕구.
에....다들 패왕별희 보세요......존나 횡설수설해놨네 내가 뭔소리를 한 거고...
- 끗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