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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총선 압승으로 범야권 맏형 역할 증명
야권 파이 키우고 차기 대선주자 1위 입지 굳혀
정청래·박찬대·장경태 등 친명 지도부 국회 입성
친명 그룹도 모두 생환…차기 당권까지 탄탄 전망
22대 국회 조국혁신당과의 관계 정립은 과제
더 낮은 자세로…이재명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2024.4.10 [공동취재] 연합뉴스
가난한 소년공에서 야당의 대선후보까지 입지전을 썼던 정치인 이재명의 스토리는 계속된다. 지난해 9월 국정쇄신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24일간 초인적인 단식을 했던 이재명 대표는 단식을 끊은 지 얼마되지 않아 동지들의 손에 의해 구속 직전까지 몰리는, 제1야당 대표로선 초유의 사태에 봉착했지만 무사생환했다. 지난 1월엔 부산에서 칼로 목 부위의 경정맥을 찔려 목숨을 잃을 위기를 맞았지만, 생사의 고비조차 넘겼다. 그렇게 돌아온 이 대표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말대로 민주·진보 진영이라는 '함대의 총사령관'으로 4·10총선을 이끌어 범야권 192석이라는 대승을 일궜다. 이번 성적표는 단순히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뿐 아니라 차기 대권주자로서 이 대표의 입지도 더욱 단단하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 결과에 따르면 전국 254곳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161곳, 국민의힘은 90곳에서 승리했다. 군소정당에선 진보당, 새로운미래, 개혁신당이 각각 1곳에서 승리했다. 49개 의석이 걸린 비례대표는 민주당 주도의 범진보 통합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14석,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18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2석을 각각 차지했다. 전체 300석 가운데 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이 175석을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의석을 더하면 범진보 의석은 188석에 이른다. 반윤석열 정권의 기치를 공유하는 새로운 개혁신당까지 범주를 넓히면 야권 의석은 192석이 된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의석까지 합해 108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지난 총선 보수진영 득표 수에서 단 1석도 더 얻지 못했다.
범진보 의석이 개헌선에 10여 석 모자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며 윤석열 정권의 폭주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이번 총선 승리는 의의가 있다. 민주당이 야당으로 단독 과반을 넘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당의 목표치 151석도 훌쩍 넘었다. 개표 결과 일부 아쉬움이 남는 지역이 있지만, 이 대표 개인으로선 수도권과 충청권 등에서 크게 선전하면서 또다시 제1야당 대표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점은 큰 소득이다. 아울러 대통령의 관권선거와 검찰·사법부의 재판을 통한 선거 방해라는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홀로 전국 6900여㎞를 누비며 압도적인 의석 차이의 총선 성적표를 챙긴 점은 당내 독보적인 입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9일 용산역 앞 광장에서 열린 '정권 심판, 국민승리 총력 유세'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4.9. 연합뉴스
특히 선거제 개편안을 놓고 병립형을 주장하는 당 지도부의 반발에도 연동형제를 결정해 진보당, 새진보연합, 시민사회계 인사의 국회 입성 길을 열면서 민주·진보 진영 총사령관, 범야권 맏형이 민주당임을 증명해냈다. 조국혁신당과 의석을 일부 나눴지만, 우호적인 경쟁을 통해 범진보 진영의 파이를 21대 총선보다 키우는 데 성공했다. 선거 과정에서 나온 여당과 보수언론의 네거티브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누르고 여야 대권주자 1위를 굳힌 것 역시 부수적인 소득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정청래(서울 마포을) 박찬대(인천 연수갑) 장경태(서울 동대문을) 서영교(서울 중랑갑) 등 친명 지도부가 모두 생환한 것도 이 대표가 차기 국회에서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압도적 선거 승리로 '친명횡재 비명횡사' 프레임은 일거에 해소됐다. '공천혁명'을 통한 박균택(광주 광산갑) 김기표(경기 부천을) 김동아(서울 서대문갑) 모경종(인천 서병) 정진욱(광주 동남갑) 등 친명 그룹의 국회 입성은 이 대표의 당내 입지를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다져주는 모습이다.
당내에선 이 대표의 리더십이 22대 국회에서 더 확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총선을 통해 이 대표가 당내 확고한 1인자로 올라섰다고 봐야 한다"며 "차기 전당대회에서도 친명그룹 외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오는 8월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구성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향후 거취를 고민 중이지만, 당내에선 아직까지 대표직 연임 가능성을 높게 보는 분위기다. 이른바 '사법 리스크'를 고려할 때 대표직 연임을 통해 검찰과 사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선 대표직 자체에 리스크가 있는 만큼 정청래, 박찬대, 장경태 등 친명 지도부를 전면에 내세우고 본격적인 대권 준비에 돌입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박용진 의원 등 잠재적 당권 라이벌들의 정치적 입지가 이 대표에 미치지 못한 만큼 어느 카드든 이 대표의 의지대로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번 총선을 계기로 라이벌들과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8일 서울 왕십리역 광장에서 중구성동구 갑과 을에 각각 출마한 전현희 후보와 박성준 후보 지원 유세를 하며 손을 맞잡고 있다. 2024.3.28
이 대표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범야권의 맏형으로, 야권의 1위 대권주자로서 입지는 다졌지만, 제3당으로 입성한 조국혁신당과의 관계는 하나의 과제로 남는다. 이 대표와 조국 대표는 민주당이라는 교집합을 매개로 사실상 선거 내내 동지적 관계,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조 대표도 이 대표를 민주·진영이라는 함대 사령관이라고 했고, 조 대표 자신은 쇄빙선 함장이라며 두 당의 관계를 규정해왔다. 다만 범야권이 200석을 얻지 못하면서 개혁입법 강행,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등 향후 예상되는 정치적 난국에서 어떻게 양당간 견해를 좁히고 협력할지는 시민들의 관심이다. 범야권의 맏형으로서 담대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일 수도, 지지층에게 실망을 안길 수 있는 독배가 될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압도적인 제1당 자리를 차지했음에도 최대한 몸을 낮추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