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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저주받은 보석,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의 진실(브금有)

작성자bluenblue|작성시간24.06.09|조회수3,165 목록 댓글 4



 

출처: 루리웹 삼색냥이님

 

 

 

 

 

오늘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에 대해서 알아보자.
블루미스터리 또는 밤하늘의 부서진 파편이라고 불리우는 이 보석은

45.5캐럿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블루 다이아몬드이다.

깊고 파랗게 빛나는 이 블루 다이아몬드는 그 크기나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지만

세간의 큰 관심을 끈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저주받은 보석이라는 높은 악명때문이다.

항상 소유주가 바뀔때마다 저주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이 블루 다이아몬드의 이름은 바로 '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 이다.

 

 

 

<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

 

 

 


많은 사람들은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가 저주를 받았기때문에

소유주들이 불행하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

과연 저주를 내린다는 아름다운 보석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의 악명은 사실일까?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와 그 소유주들에 얽힌 이야기를 지금부터 알아보자.

45.5캐럿의 블루 호프는 지금까지 발견된 다이아몬드중 가장 커다란 다이아몬드이다.

그리고 그 희소성만큼이나 블루 호프에 관련된 이야기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대인들은 보석에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때문에 다양한 색깔의 보석들을 부적으로 사용했다.

특히 다이아몬드는 투명하고 깨끗한 이미지때문에 순결함을 상징했고

지구 상에서 가장 단단한 광물이기때문에 강한 힘을 상징하기도 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다이아몬드는 치유력을 지녔다고해서 아주 귀하게 여겨졌다.

재미있게도 이런 치유력을 지녔다고 믿어졌던 다이아몬드는

중세시대때 가장 치명적인 독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르네상스시대에 악명이 높았던 카트린느 드 메디치는 왕가의 라이벌들을 숙청할때

다이아몬드 가루를 독약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 카트린느 드 메디치 >


하지만 실제로 다이아몬드 가루는 그다지 몸에 치명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왜 다이아몬드가 몸에 해롭다고 알려지게 되었던 것일까?

다이아몬드에 독 성분이 있다는 이야기는 3천년전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인도의 다이아몬드 광산 소유주들은 노예들이

다이아몬드를 삼켜서 빼돌리는 것을 막기위해 위와 같은 소문을 사실인양 퍼트렸던 것이다.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는 19세기 중반 인도에서 발견됐다고 알려져있다.

당시 전 세계에 유통되던 다이아몬드는 인도 펀자브 광산에서 캐냈던 것들이다.

 

 

 

 

< 인도의 펀자브 ( 주황색 ) >

 


기원전 8백년전부터 인도에서는 다이아몬드 채굴이 시작되었다.

보석값이 매우 비쌌기때문에 인도 다이아몬드 상인들의 주 고객들은 로마 황제나 중국 황제들이었다.

이는 인도의 다이아몬드는 당시 최고급품이었다것을 알려준다.

전해져오는 전설에 따르면 블루 호프의 이야기는 17세기 무굴제국시대의 인도에서 처음 시작된다.

무더운 여름밤, 프랑스의 탐험가 장 밥티스트 타베르니에는 잠시 쉴곳을 찾아 인도 정글의 외딴 힌두사원에 들렀다.

그 곳에서 장 밥티스트 타베르니에는 사원 중앙에 어마어마한 보석이 박혀있는 힌두신의 석상을 발견하게된다.

널리 만물을 내다볼수 있는 힌두신의 눈은 100캐럿이 넘는 희귀한 푸른색 다이아몬드로 되어있었다.

밤의 어둠을 틈타 타베르니에는 힌두사원에 잠입해 다이아몬드의 한쪽눈을 떼어냈다.

다음 눈을 칼로 도려낼려고 할때 그는 사제들에게 발각당했고 한쪽 손에 푸른 다이아몬드를 꼭 쥔채 도주했다.

이렇게 타베르니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블루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게 된것이다.

 

 

 

 

< 장 밥티스트 타베르니에 >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의 저주는 이때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신성을 더럽힌 댓가로 말이다.

그러나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가 힌두신의 눈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부분의 유명한 보석들은 신상을 장식했다고 전해져 오는 경우가 많기때문이다.

블루 호프는 1,600년대 초반에 발견되었는데

타베르니에가 인도에서 훔친것인지 아니면 사들였던 것인지 그 출처는 정확치 않다.

블루 호프의 저주는 적어도 3세기동안 계속 됐다.

최초 소유자로 알려진 장 밥티스트 타베르니에의 신원 또한 블루 다이아몬드처럼 불분명하다.

전 세계를 여행하고 다녔던 타베르니에는 17세기경 유럽과 아시아에 유명한 보석상이 됐다.

특히 그는 페르시아의 왕의 신임을 받는 상인으로 페르시아 귀족들만이 두르고 다니는 화려한 터번을 쓰고 다녔다.

 

 

 

 

< 터번을 쓴 타베르니에 >


1642년, 타베르니에가 블루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당시 블루 다이아몬드 기록 >


112캐럿에 달하는 블루 다이아몬드는 성인 남자의 주먹만했다.

힌두신의 눈이었다는 블루 다이아몬드의 전설은 좀 처럼 믿기 힘들다.

타베르니에는 매우 정직한 사람이었기때문이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타베르니에는 모든 보석에 대해 매겨진 세금을

한번도 빼먹지 않고 납부한 정직한 보석판매상이었다.

타베르니에가 인도 유지에게 돈을 주고 블루 다이아몬드를 매입했을 가능성이 가장 커보인다.

1645년, 보석상 타베르니에가 프랑스에 도착했을때

보석수집에 심취해있던 루이 14세는 그를 베르사이유궁으로 불러들였다.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는 막강한 권력과 부를 가진 군주였으며 호화로운 생활로도 유명했다.

 

 

 

 

 

< 루이 14세 >


루이 14세의 보석사랑은 그의 코트만 보더라도 알수 있다.

루이 14세의 코트에는 123개의 다이아몬드 단추와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396개의 단추구멍이 있었다.

 

 

 

 

< 루이 14세의 코트 >


타베르니에를 베르사이유궁으로 부른 루이 14세는

천개가 넘는 작은 다이아몬드와 44개의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사들였다.

그 중에서 루이 14세의 눈을 사로잡은 단 한개의 보석은 바로 거대한 블루 다이아몬드였다.

루이 14세는 타베르니에에게 22만프랑을 지불하였는데

오늘날 7만 5천달러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 7,900만원 상당 )

그뿐만아니라 감사의 표시로 타베르니에에게 귀족작위까지 수여했다.

타베르니에에 대한 블루 다이아몬드의 저주는

그가 루이 14세에게 다이아몬드를 판 직후부터시작됐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타베르니에는 자신의 조카에게 전 재산을 빼앗기고

인도의 사막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그후 타베르니에의 시체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1875년, 모스크바의 한 묘지에서 타베르니에의 묘지가 발견되었는데

전설의 비참한 말로와 달리 그는 부유하게 살다가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제 블루 다이아몬드의 새 주인은 프랑스 황실이 됐다.

1700년경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보석들의 대부분은 프랑스 황실의 소유였다.

블루 다이아몬드를 사들인 후 루이 14세가 괴저병으로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다이아몬드의 저주라고 믿기 시작했다.

커팅된 67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를 물려받은 루이 15세는

1774년에 죽으면서 루이 16세에게 이를 물려줬다.

루이 16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는

무도회에서 종종 블루 다이아몬드를 걸치고 나와 화려함을 과시했다고 하지만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


왜냐하면 블루 호프는 왕의 휘장에 박혀있었기때문이다.

 

 

 

 

< 왕의 휘장 >


블루 호프가 저주를 내렸던 안내렸던 프랑스 왕가의 몰락으로 블루 호프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대표하는 상징이됐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이 시작됐다.

 

 

 

< 프랑스 혁명 >


하루아침에 부유한 귀족들은 죄수가 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둠을 틈타 베르사이유를 탈출했다.

탈출 당시 그들이 챙긴 귀중품중에는 블루 다이아몬드도 포함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탈출 하루도 안되어서 체포되었고 구금된뒤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


블루 호프를 포함한 왕실소유의 보석들은

가구를 보관하던 커다란 창고건물로 옮겨졌는데

이는 방을 가득채울정도의 양이었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들은 한사람이 왕실보석을 훔칠 사람들을 모았고

도둑들은 6일에 걸쳐 왕실 보석들을 모두 훔쳐냈다.

당국이 이를 안것은 보석이 이미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뒤였다.

1812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지 20년후 런던의 한 보석상에서

훨씬 작은 크기의 블루 다이아몬드가 나타났다.

 

 

 

< 작아진 크기의 블루 다이아몬드 >


모양과 크기는 달랐지만 프랑스 황실이 소유했던 블루 다이아몬드가 확실했다.

두개의 다이아몬드가 같은 다이아몬드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전 세계에 블루 다이아몬가 손에 꼽힐 만큼 적다는 것과

선명한 파란색에 그만한 크기는 더더욱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듬고 남은 22캐럿가량의 다이아몬드 조각들은 어디로 사라진것일까?

의외로 그 해답은 매우 쉽다.

블루다이아몬드의 모양상 원석에서 다르게 커팅한다는 것이 어려움으로

커팅과정에서 그냥 사라졌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1830년, 영국 은행가 헨리 필립 호프가

영국의 보석상으로 부터 9만달러를 주고 블루 다이아몬드를 사들였다.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1,500만달러의 거금이었다. ( 158억7,000만 원 )

그뒤 아이러니컬하게도 저주를 상징하던 이 다이아몬드의 이름이 블루 호프( hope = 희망 )가 된 것이다.

 

 

 

<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


자식이 없던 헨리 필립 호프는 조카 토마스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었는데

토마스도 갑자기 죽어버렸다.

1887년, 프란시스 헨리 호프경이 호프가의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았고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의 새로운 주인이되었다.

도박을 좋아했던 프란시스는 종종 돈에 찌들리던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날 극장을 찾았을때 미국인 여가수 메이 요이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말괄량이 메이란 애칭으로 불리던 메이 요이는

무대 주인공처럼 파란만장한 사생활때문에 더욱 유명한 여자였다.

 

 

 

< 메이 요이 >


두 사람은 신분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호프경은

젊은 여가수와 결혼했고 결혼선물로 그녀에게 블루 호프를 선물했다.

하지만 결혼 1년뒤 프란시스가 파산하면서 그의 아내는 그를 떠났다.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호프경은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를 14만달러에 팔아버렸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00만달러에 해당하는 가격이었다. ( 21억1,600만 원 )

메이 요이는 이혼후 블루 다이아몬드라는 호텔을 짓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아 호텔에 큰 화재가 났다.

한때 블루 호프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정부로 부터 보조금을 받으며 살다가 1938년에 죽었다.

메이 요이는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블루 호프의 모조품을 걸고 다녔다고한다.


블루 호프의 악명이 유명해질 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높아져만 갔다.

1908년, 블루 호프를 손에 넣은 보석상 피에르 가르띠에는 새로운 소유주를 찾고 있었다.

당시 위싱턴은 신문업계의 거물 토마스 맥클린과 금광재벌의 딸 에벌린의 결혼이 화제꺼리였다.

1909년, 갓 결혼한 이 부부는 가르띠에에게서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를 사들였다.

특히 에벌린은 역사가 담긴 보석에 큰 관심이 있었는데 이를 가르띠에는 잘 이용했다.
힌두교신의 눈 부터 타베르니에 죽음, 프랑스 왕실의 비극을 둘러싼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의 전설이 바로 가르띠에의 입에서 처음 주장됐다.

세간의 관심을 즐겼던 에볼린은 블루 호프를 18만달러의 거금을 주고 사들였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00만달러의 돈이었다. ( 31억7,400만 원 )

 

 

 

< 에볼린 월시 맥클린과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


즉 블루 호프의 저주는 보석상 피에르 가르띠에가 판매 수단으로 만든 이야기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보석을 소유할수 있는 인물이 평범한 삶을 살수있는 인물들은 아니였을 것이다.

그만큼 부유했으며 사치스러웠을 것이고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았기때문에

우연이 겹쳐 저주처럼 보여졌던 것이다.

에볼린이 블루 호프를 소유하면서 블루 호프의 이야기는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에볼린이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일부러 소문을 퍼트렸던 것이다.

자신은 특별한 사람으로 블루 호프의 저주를 비켜나가는 인물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다.

하지만 에볼린 역시 불행한 일생을 보냈다.

그녀의 장남은 9살때 교통사고로 죽었으며 남편은 알콜중독으로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났고

외동딸마저 약물중독으로 자살해버렸다.

외동딸이 죽고 1년뒤 에볼린도 세상을 떠났다.

에볼린이 죽자 블루 호프는 뉴욕의 유명한 보석상인 해리 윈스턴에게 팔렸다.

 

 

 

< 해리 윈스턴 >


해리 윈스턴은 공식적으로 블루 호프의 저주를 부인했다.

1958년, 그는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를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했다.

 

 

 

<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


가장 아름답지만 끔찍한 저주의 대명사가 된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는 현재 미국인들의 소유가 된것이다.

 

 

<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의 소유주와 변천사 >

 

 

 

 

 

 

 

내용은 쩌리방용같은데 저주받았다는 내용이 있기도 하고

또....내가 쩌리에는 글을 못써서 홍콩에 올립니당.

본문내용중에 피에르 가르띠에라고 되어있는데 까르띠에인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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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곰탱이귀여워 | 작성시간 24.06.09 존나 흥미롭다 고마워~~! 저주는 만들어낸 이야기라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끝이 다들 안좋았긴하네ㅠㅠㅋㅋㅋ
  • 작성자좋아합니다이번엔거짓이아니라구요 | 작성시간 24.06.09 세공하면서 저렇게 많이 깎여나간다니...아깝다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bluenblu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09 보통 금 부스러기는 세공자 몫이긴 한데 다이아는 가공할때 보통 그냥 깎여나가서 없어진다고하더라구 다이아는 가루 녹여 쓰고 이럴수가 없으니깐 근데 좀 큰 조각 생겻으면 그냥 세공자가 갖다 팔앗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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