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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한국전쟁에 한국군위안부 있다

작성자참지밀|작성시간24.06.11|조회수1,657 목록 댓글 2

출처: https://beforesunset.tistory.com/m/487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은 지난 6월 25일까지, 그는 누구보다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한성대학교 연구동 805호에는 방송사 카메라가 찾아와 전쟁과 분단을 물었다. 각종 학술행사와 원고청탁이 밀려왔다. 이유가 있다. 한국전쟁을 전공한 학자는 많지만 젠더(gender) 관점의 평화 연구자로서 김귀옥 교수는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한반도 분단 역사에서 민중, 여성이 당한 역사적 고통을 집중 연구해 남성중심의 기성 정치사에 균형을 잡아주었다. 그동안 그 실체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북파공작원과 민간인 납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월간 <말>지와 <민족21> 등에 기고해 주목을 끌었다.

특히 지난 2002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5회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심포지움'에서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위안부가 있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아사히신문과 오마이뉴스에 동시에 보도됐다. 조선일보를 제외한 국내 주요 일간지와 뉴스에서도 이 충격적인 사실을 다뤘다. 하지만 한국군의 치부를 건드린 논문은 곧 역사의 뒤안길로 치워졌다. 국방부 자료실에 비치되었던 한국군위안부 관련 자료의 열람이 금지됐고, 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했다. 대학 당국에서는 ‘조심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좌익혐의자들 성노예화로 응징한 것”

“51년 여름,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진다. 후방의 지루한 전쟁이 계속되면서 주기적으로 전방에서 후방으로 교체되는 장병들에게 뭔가 ‘위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장교들은 이미 북에 갔을 때 여자들을 데려와서 별도의 위로가 필요 없었다. 전방 최전선의 집들은 장교들이 여자를 데리고 사는 집이다. ‘성은 공평하다’는 남성의 논리에 따라 장병들에게도 위안의 기회를 준 것이다.

남성 증언자들에게 위안부 여성들이 어땠는지 물었다. 화장하고 멋 부린 사창가 여성이 아니라 촌스러운 용모의 15~16세 정도의 어린 여성이라 했다. 물론 전쟁고아가 일부 있을지 모르겠으나 대부분 좌익부역 혐의자들로 추정된다. 소위 빨갱이 혐의를 받는 상황에 무력을 갖춘 군인들에게 위안부를 거절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좌익을 구실로 손쉽게 끌고 올 수 있지 않았겠나. 이는 근본적 수치심을 건드린 처벌로, 좌익에 대한 폭력적 응징으로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군 위안부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위안부로 추정되는 몇 사람을 만났지만 ‘울음과 침묵’으로 답할 뿐이었다. “무덤으로 가져갈란다”며 다음 날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문 아무개 씨(1936년생)는 1951년 당시 16살에 원산 앞 바다에 있는 섬에서 여맹(女盟) 회의를 하다가 한밤중에 당시 원산 앞 바다의 여도에서 첩보공작활동을 하던 북파공작원들에게 납치당했다. 그중 한 명에게 겁탈 당한 후에 강제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고 아이 둘까지 낳았다. 그를 어렵사리 수소문해 찾아갔지만, '전쟁 때 아이 낳고 고생하며 산 것밖에 없다'며 더는 할 얘기가 없다며 구술을 거부했다.

1950년 당시 의과대학생이었던 이 아무개(73) 씨는 납치 또는 강요에 의해 군 위안부가 될 뻔했던 또 다른 여성의 사례이다. 6·25 당시 서울에 남았다가 인민군에게 협력한 것 때문에 국군에게 체포된 이 씨는 다른 여자 의대생 3명과 함께 인계된 부대의 장교 4명에게 '배정'되었다. 이 씨는 다행히 자신을 불쌍히 여긴 한 장교의 도움으로 풀려났으나 다른 3명은 그때 이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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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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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현대제철 레드엔젤스 | 작성시간 24.06.11 쓰바 전쟁 역사 제대로 안배운거잖아.....피해자들 이미 다수가 사망했겠지. 국가차원에서 참전용사 우쭈쭈할게아니고 피해자 조사도 해야 맞지만..
  • 작성자프린스알란 | 작성시간 24.06.11 하 이 놈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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