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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스포츠와 정치가 만날때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4.06.15|조회수2,960 목록 댓글 1

출처: https://www.fmkorea.com/7130491613

 

 

1. 1987년 6월 항쟁과 이집트 한국전 

 



 

이 시기는 제16회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가 한창 진행되었던 시기였다. 경상남도 마산시에 있는 마산종합운동장에서 이날 오후에 태국과 헝가리 축구대표팀 간의 경기를 한 뒤, 이어서 열린 한국 A팀과 이집트 간의 경기가 치러졌는데 경기 도중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쏜 최루탄 연기가 경기장으로 날아들었다. 그때는 전국적으로 산발적인 시위가 매우 많이 일어났기에 최루탄에 익숙했던 한국 선수들과 관중들은 큰 동요가 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집트 선수 중 다수가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그 사이에 한국 선수들이 골을 넣었기는 했지만 이집트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이상을 보이자 한국 선수들과 관중들도 웅성웅성거렸고 결국 주심은 경기를 재개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몰수무를 선언하며 경기를 종료시켰고, 이 장면은 KBS 1TV를 통해서 갑자기 방송이 끊기는 초대형 방송사고까지 겹쳐 전국적으로 생중계되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경기가 끝나자 경기 전에 강제로 표를 사야 했던마산 관중들이 표 환불을 요구하며 주최 측에 대거 항의하다가, 표 환불이 받아 들여지지 않자 시위대에 합세하며 심야 시간까지 시위를 벌였고 전두환의 사진은 불탔다. 이 소식은 다음 날에 주요 언론들을 통해 짤막히 보도되면서 대중들에게 시위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널리 알린 셈이 되었던 것이었다.

 

 

2. 나치와 바이에른 뮌헨

 



 

독일이 나치 휘하의 암흑기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창단 멤버들에 유대인이 여럿 있기에, 1930년대 나치에게 구단 간부들이 강제로 해임당하기도 했다.

 

 이 조치에 구단은 저항했지만, 나치는 바이에른을 '유대인 클럽'이라고 조롱하며 분쇄했다.

 

 클럽의 간부진 및 서포터즈의 열혈 회원 중에서 유대인은 속속 빠져나갔다. 다행히 국경을 넘어간 사람도 있지만 '커트 란다우어' 당시 클럽 회장처럼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도 있었다. 남부리가를 호령했던, 강력했던 바이에른은 그렇게 추락하였다.

 

3. 플라잉 니킥과 유고 전쟁



 

 

 이미 개막 전부터 원정온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서포터는 세르비아 극우 민병대장인 '아르칸' 젤리코 라즈나토비치가 지위하는 사실상의 민병대로, 이미 경기 전부터 디나모 자그레브의 홈팬들과 시가지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등 엉망진창이었고 사실상 준전시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가 시작된 후에도 분위기는 가라앉을 줄 몰랐다. 그리고 경기가 격화되자 이미 경기내용은 안중에도 없고 경기를 관전하러 왔다 흥분한 아르칸의 친위대는 디나모 자그레브의 홈팬들을 향해 돌 투척, 경기장 기물파손, 흉기를 이용한 위협 등을 일삼은데다 분리에 반대하는 플랜카드 등을 부착하며 난동을 부렸다. 이 당시는 홈,원정 서포터즈간 분할 입장도 되지 않아 순식간에 양측이 엉켰고 바로 난투극과 집단폭력사태가 발발했다. 

 

참지 못한 디나모 자그레브의 팬들도 역시 반격을 시도했는데, 이 때 유고 연방 경찰은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에서 열렸음에도 일방적으로 디나모 자그레브의 팬들을 상대로 강제진압을 시작하였다.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하여 물대포 등의 수단을 동원해 강력하게 진압하기 시작한다. 이미 경기는 중단되었고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선수들은 모두 라커룸으로 피신하였지만 디나모 자그레브의 선수들 중 주장 보반을 비롯한 몇몇은 경기장에 남아 있었다. 이미 난투는 잔디 위에서 벌어졌고, 그곳에서 홈팬들이 유고 연방 경찰들에 강제진압을 당하는 장면을 보다못한 보반은 경찰을 향해 플라잉 니킥을 꽂았다. 이른바 '독립을 불러일으킨 발차기.

 

4. 전차 경기장에서 시작한 대폭동

 



 

 제국 전역에 큰 도시는 대부분 히포드롬이라고 부르는 원형경기장이 있었다. 또한 각 전차경주는 4개의 팀으로 나뉘어져있는 경우가 보통이었는데 이들은 각각 다른 색깔의 유니폼을 입어 서로를 구분했는데 각각 적색, 청색, 녹색, 백색이었다. 로마 제국에서 비잔티움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4개의 전차경주팀은 2개로 줄어 녹색당과 청색당이 남았는데 이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각각 큰 파벌을 이루고 현대의 정당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졌다.

 

1월 10일의 충돌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유스티니아누스는 청색당과 녹색당의 지도자를 처형하고 감금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양 세력이 서로 힘을 합쳐 시위를 벌였다. 

사흘 뒤 전차경주가 재개되었으나 성난 군중은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두 황제를 향해 니카를 외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황제는 피신하고 경주를 중단시켰다.

 

이후 분개한 군중은 광장에 모여 다음과 같은 외침을 부르짖었다.

 

"자비로운 녹색당과 청색당이여, 부디 영속하라!"

 

5. 흑인의 사망과 무관중 경기

 



 

2015년, 경찰에 구금된 상태에서 일주일 만에 척추 손상으로 사망한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이 열린 27일, 경찰의 과잉대응을 규탄하는 시위가 폭동으로 번지면서 볼티모어 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볼티모어 시에 비상사태와 통행금지령를 선포했으며 1500여 명의 주방위군도 이 지역에 투입돼 시청과 경찰서 등 주요 관공서 주변을 에워쌌다.

 

MLB 사무국은 볼티모어 시와 협의해 28일(현지시간) 오후 볼티모어 오리올 파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볼티모어 폭동에 따른 관중의 안전 우려 탓에 이틀 연속 경기를 취소한 것이다.

또 29일 오후 2시 5분 같은 장소에서 열릴 예정인 두 팀의 경기를 관중 없이 치르기로 했다.

볼티모어는 앞서 취소된 두 경기를 5월 28일 같은 장소에서 더블헤더로 치른다.

 

6. 프랑코 독재정권과 레알 마드리드논란

 



 

Hala Madrid, hala Madrid, el equipo del gobierno, la vergüenza del país

(마드리드 만세, 마드리드 만세, 정부의 팀, 국가의 수치)

 

 이것은 스페인과 유럽에 퍼져 있습니다. 한국에선 해설위원 서형욱의 저서를 통해

 국내 축구팬들에게 비판없이 전파 되었습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내전 당시에 프랑코에게 끝까지 대항했던 도시이고 프랑코가 이 도시를 이간질시키기 위해 축구를 이용했습니다. 레알마드리드는 왕실 구단이 아니라 FC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같은 시민구단입니다.

즉, 구단주가 없이 시민들을 기반으로 시작된 클럽 구성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구단으로 왕가 지원을 받았다는 것 자체는 전무합니다. (이는 레알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모두를 포함합니다)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프랑코의 탄압 내지 저항 정신과 관련하여 카스티야 지방이었던

 마드리드였기에 더더욱 이런 오해가 가속되어

'바르셀로나=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클럽', '레알 마드리드=왕가의 지원을 받는 부패한 클럽'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외부의 노력 때문에 지금까지도 오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물증이랄 게 없습니다

 

(출처 : 레알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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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레즐리 노프 | 작성시간 24.06.15 그치 최루탄 첨 보면 놀랄 수 있지… 글 넘 재밌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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