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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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장준하 의문사 편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고상만저
장준하, 묻지못한 진실 (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관의 대국민 보고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
이 전화는 막내 아들 (당시나이 18세) 장호준이 받았다
"지금 장준하 선생님이 포천 약사봉에서 많이 다치셨으니
서울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야
데려갈 수 있다 "
그 사람은 이렇게만 말하고 끊었다
장준하 선생님 유족이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은 것은 바로 이 전화 때문이었다
이 의문의 전화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 ?
이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로 생각하고 백방으로 찾았으나
누군지 찾지 못했다
2003년 의문사 진상조사 당시까지도
이 전화를 한 인물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중 진상조사 위원회는 한 문서를 발견한다
바로 중앙정보부 중요상황 보고서
8월 17일 오후 9시
중앙정보부 판단기획국에서 작성된
[중요상황 보고서 ]
-재야인사 장준하 포천 약사봉 등반 중 실족 추락하여 사망함
현장에 있던 동일행인
김용환 (동대문구 이문동 거주) 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유족이 현장에 도착해
사망을 확인함-
여기서 의문점 하나
유족들도 당시 누가 전화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중앙정보부 17일 당일 보고서에는 김용환이 명시 되어있다
유족도 몰랐던 것을 중앙 정보부는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일까
중앙정보부는 김용환의 목소리를 알고 있었나 ?
아니면 그가 전화 한것을 어떻게 알았나 ?
중요 상황보고서를 쓴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확실하게 확인 됐을 경우에만 이름을 적는다
그렇지 않으면 비워두고 무명으로 쓴다
확인되지 않으면 기술하지 않고 이름이 써있으면 그사람이 맞다
즉 보고서에 이름이 적혀있다면
그건 어떤식으로든 확인이 된것이다.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확실한 사실
중앙정보부는 김용환을 알고 있었다
-사족 -
당시 중앙정보부는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었다 (현재 한예종 자리 )
그러다 남영동으로 확장 했고
지금은 내곡동에 있다.
김용환에게 물었다
8월 17일에 장준하 선생님 댁에 3시경에 전화가 한통 걸려왔습니다.
이 전화에 관해 알고 계신 사항이 있으신가요
"그걸 나에게 왜 물어요
받은 가족이 알겠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
라고 반문했다
진상조사위가 중앙정보부 문서를 보여주며 다시 물었다
이곳에는 당신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김용환은 그전 까지의 진술 태도와는 다른 확연하게 격한 반응을 보이며
"이건 조작이다"
라고 외쳤다
김용환은 자신이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후 조사를 거부하고 나가 버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앙정보부 상부에 보고된 내부 보고서는 조작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서 전화를 했나?
<김용환이 전화 사실을 인정하면 어디에서 전화했는지 진술해야만 한다>
포천 약사봉에서 김용환이 사라진 시간 2시 10분경
장준하 선생님 댁에 전화가 걸려온 시간 3시에서 4시 사이
1시간 거리에 있는 전화 할수 있는 장소를 찾아봤다
75년 당시에는 전화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였으므로
이 거리에서 전화기가 있었던 곳은 딱 1군데였다
바로 포천 약사봉 근처 이장님댁이었다
이것은 이장님댁에 정부가 마을 관리 차원에서 놓아준 전화였다
이곳에 찾아가 봤더니
이장님댁은 그대로 있었고
당시 이장님도 생존해 있으셨다
이장님은 이렇게 증언 했다
"살면서 단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빌려준 일 없음 "
이 전화는 내 전화가 아니라 나라에서 놔준거라
내가 빌려주고 그렇게 할 수 없다.
포천 약사봉 1시간 거리의 유일한 전화기를 소유한 이장님댁에서는
런닝구차림의 사내가 와서 전화를 빌려달라고 한적도
빌려준적도 없다고 한다
전화할수 있는 유일한 곳에서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다시 하는 질문 김용환은 어디서 전화를 했는가 ?
이 질문을 바꾸면 이렇다
김용환은 어디에 있었는가 ?!
결국 김용환이 장선생님 사망후
사라진 9시간의 행적으로 다시 귀결 된다
여기서 돌아갈 질문 김용환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어느날 장준하 선생님 선거사무실에 찾아와서 도운
그의 진술로 돌아가 보자
장준하 선생님과의 인연에서 김용환의 증언을 보면
" 나는 선생님이 당선 되시고 나서부터 쭉 옆에서 모시다가
1975년 1월에 백만인 선언으로 구속 되실때까지 곁을 지켰다
그러니 나와 장준하 선생님의 인연은
1967년 선거 운동 부터 1975년도 1월까지이며
나는 이 기간동안 장준하선생님 옆에서 비서역할을 하며 가까이에서 모셨다."
물론 이것 역시
"거짓말 "
가족이나 지인은 선거운동 할때
그가 갑자기 선거 사무실에 찾아와 도운 것은 맞으나
그 이후 그를 본적이 없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것이 8월 17일 이라고 했다
김용환은 가족과 지인들의 이와같은 진술에도
본인은 계속 장준하 선생님 곁에서 모셨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조사 결과
71년도 이후에는 김용환이 장준하 선생님 곁에 있을 공간 자체가 없었다
71년도에 장준하 선생님은 박정희가 개입한 부정선거로 인해 국회의원에 낙선 했고
그로인해 사무실이 없었다
근무 할 사무실 자체가 없었다는 조사 결과에
김용환은 이렇게 진술 한다
"사무실이 없어지고 나서는 장준하 선생님 집에서 사무를 봤다 "
라고했으나
이 역시 거짓
박정희의 탄압으로 집도 사라져 단칸방 같은 곳으로 이사를 했기에
단칸방 같은 선생님 집 도대체 어디에 김용환씨가 있었습니까
그곳 어디에서 머물며 사무를 본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김용환은 더이상 대답을 못했다 .
그러자 김용환은 71년도 이후에 옆에서 모시지는 않았다고 그제서야 말을 바꾼다
이에 71년부터 75년 1월까지 그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게 되버렸다
<75년1월 이후에는 고향 당진에서 중학교 시간 강사를 했다는 것은 확인 >
공백이 되버린 71년부터 75년의
4년간 생활을 물었다
부인도 있고 가족도 있으신데 그럼 71년도 부터 75년 1월 중학교 시간 강사로 일하기 전까지는
무엇을 하며 먹고 사셨나요 생활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
김용환은 이렇게 답했다
"아버지가 당진과 인천 오가는 배를 한척 가지고 계셔서
그 운반비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거짓으로 판명
김용환의 친척은 이미 64년도에 배를 처분했다
그 이후에 김용환의 가족중에 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라고 확인해 줬다
즉 71년도 부터 75년도 1월
약 4년간
김용환의 행적은 밝혀진 것이 없음이 공식적 조사 결과 이다.
........
1964년 서울시경이
중앙정보부가 사설 정보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추천한
특수인물 정향 보고 정보원으로
추천한 인물 카드에 김용환이 올라가 있다
국가정보원 (국정원) = 중앙정보부
자료를 미리 검토하고 나서 그중에서 몇개만 자료를 제공했고
중요한 자료는 단 한건도 주지 않았다
보안사령부는 (기무사)
이조차도 하지 않았다
장준하 선생님 죽음 당시에 105부대장이 나와서 직접 그 현장을 보고
진종채 보안사령관에게 현장 상황을 직접 보냈다고 했다
그것을 확인하고 요청했으나
기무사는 이조차도 "해당사항 없음 " 으로
단 한건의 자료도 주지 않았다
의문사 진상조사위가 열린 것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때이고
진상조사위는 대통령 소속이었음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것이다
<이것이 말해주는 사실은 대.통.령.만 바뀐것이다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힘은 그 당시에도 뒤에서 존재 했던것이다
현재는 앞으로 나와있지만 ;;;>
또한
한나라당 (지금 새누리당) 반대로 수사권을 가질수 없었고
그로인해 조사권만 있는 상태로 해당부서에 자료를 요청해야지만 볼수 있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일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당시에
요구했던것이 딱 하나였다 수사권과 기소권
수사를 하고 해당 인물들이 재판을 받을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기소권은 물론이고 수사권조차 없다
조사권을 가지고 있지만 의문사 진상조사위 당시에는 노무현대통령때 였음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하물며 .... 지금...
현재 여당 세월호 특조위가 모두 보이콧을 선언했다
왜냐고 ?
바로 세월호 특조위에서 4월 16일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에 대해 물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해수부 문건을 통해 BH청와대 행적 조사시 모두 탈퇴하라는
지시를 충실히 따른 개들이라고 할 수 있다 .
언제나 그렇듯이 사라진 시간은 키를 쥐고 있다
다음편 장준하 의문사 마지막편
세명의 거짓말쟁이 와 유골이 말해준 진실
1.< 그때 그시절 >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프롤로그 그리고 윤동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019
2.<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까지 반드시 알아야할 인물 장준하 <feat 박정희가 가장 두려워한 인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207
3.[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김구와 장준하 (feat 일본군이 먹다 남은 음식을 개처럼 받아먹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704
4.[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1950년판 컨트롤비트 첫번째 (feat.사상계)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9356
5. [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1950년판 컨트롤비트 두번째 (feat.사상계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9468
6. [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feat. 장준하 죽음의 키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057
7.[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건의 재구성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934
8.[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라진 9시간 >
9.[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 위원회 < feat. 근접한 진실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3340
11.[그때 그시절] 세명의 거짓말쟁이와 유골이 말해준 진실 (feat.장준하 죽음 그후)
12.[그때 그시절] 친구를 가슴에 묻고 민주주의 투사가 된 목사님 문익환- 프롤로그 (feat.문성근)
* "빨간 글씨는 새빨간 거짓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