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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친일불교 인사로 '초대 동국대 총장'을 지내며 화려한 꽃길만 걸었던 땡중 권상로

작성자예저닝|작성시간24.06.29|조회수1,292 목록 댓글 1

출처: https://blog.naver.com/joonho1202/223192337887

 

 

 

동국대 초대총장과 국사편찬위원을 지낸 친일 승려 권상로

 

 

권상로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과 동국대학교 최초의 (명예)박사 학위 취득자 였고 동국대학교의 초대 총장이었다.

 

 

 

 

하지만 한국 불교계에서는 권상로는 식민지 조선 최악의 친일 불교의 대표인사 였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기독교계의 대표적인 학교인 이화여대의 친일인사로는 김활란이 있었다면, 이른바 불교계의 대표적인 학교인 동국대에는 권상로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민툭위에 끌려갔던 동국대 초대 총장 권상로

 

 

하지만 이 권상로는 반민특위 까지 끌려갔던 인물 이었지만 해방 이후 식민지 시대보다 더 하려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전형적인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는 땡중 이었는데, 그는 해방된 대한민국 에서도 상당한 지위를 누렸던 인물이었다.

 

1. 동국대 초대 총장이 되는 최악의 친일파 였던 권상로(을사늑약 이전 부터 뼈 속 까지 친일파 였던 인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불교 대학인 동국대학교

 

 

1879년 경상도 상주(현 경상북도 문경)에서 아버지 권찬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권상로는 한학을 공부하다가 18세 때인 1896년 출가해 문경에 있는 김룡사(金龍寺)에서 서진(瑞眞)스님을 스승으로 하여 승려가 되어 불교계로 입문하였다고 한다.

 

이 후 ‘이회광’에게 구족계 라는 것을 받았는데 문제는 이 이희광 이라는 작자가 바로 ‘불교계의 이완용’이라 불리던 악질적인 인간이었다고 한다.

 

동국대 전신인 명진학교

 

1906년 서울로 상경한 권상로는 불교계가 만든 신식학교인 명진학교(明進學校)에 입학한다.(사실상 동국대학교 전신, 그러나 권상로는 이 학교를 중퇴를 했다)

 

이후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건봉사(乾鳳寺)에서 설립한 ‘봉명학’의 운영에 참여를 했었고 이 후에는 경흥학교와 성의학교에서 강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구족계를 주었던 친일파 숭려인 이회광의 주도로 불교계 대표들이 모여 창설된 종단인 원종(圓宗)에서 1909년 종무 편집부장이 되어 활동을 한다.

 

 

 

 

2. 식민지 조선의 시작과 500년간 이어온 억불정책의 종말!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

 

 

조선은 500년간 유교 국가였기에 불교와 승려에 대한 여러가지 탄압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불교에 대한 각종 억압이 사라지게 된다.

 

즉 500년간 이어온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 정책이 해제되는 등 한일병합은 오히려 한국 불교도에게는 나쁜 소식만은 아니었다.

숭유억불의 결과(이성계가 머물던 회암사지)

 

 

 

거기다가 조선총독부는 기존 유고중심의 조선 조정에 비하면은 상대적으로 불교에 우호적인 정책을 피기 시작한다.

 

이에 감동한 권상로 등 친일승려들은 일본과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찬양하는 친일 문건을 다수 작성하기 시작한다.

특히 권상로는 ‘조선불교월보’와 ‘불교’에 친일 기사들을 다수 게재한다.

 

즉 그는 이희광과 함께 일본의 불교계에 대한 우호정책에 한일 병합 조약 체결 무렵부터 적극적인 친일적인 성향을 보였다.(이는 같은 불교 승려였던 만해 한용운과는 다른 태도였다)

 

 

 

3. 조선총독부 식민정책에 적극 동조하는 친일 승려 ‘권상로’

 

법보신문 기사 인용

 

 

 

기독교계는 처음에는 반일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가 1930년대 후반 변절을 했고, 천주교는 사실 한일병합 초기부터 조선총독부에 협조적이 였었다.(그래서 3.1운동에도 천주교만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호국불교의 전통을 지닌 한국의 불교게(영화 명량 중)

 

 

 

그에반해 한국불교는 임진왜란 시절부터 지니고 있던 ‘호국불교의 전통’이 있었기에 반일적인 성향을 지닌 승려가 상당히 많았었고 이에 3.1운동 등 반일운동에 참여를 했었지만

친일 승려 권상로가 발행한 잡지 '불교'

 

 

 

그에반해 권상로, 이희광 같은 친일족 불교인사는 식민지 조선이 이전 조선왕조 때 와는 달리 일본이 불교를 탄압하지 않는다며 조선 총독부에 상당히 호응을 했다고 한다.

 

권상로는 1911년 문경군 대승사(大乘寺)의 주지가 되었고 1912년 ‘조선불교월보사’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취임해 ‘조선불교월보’를 발행하며 친일적인 성향을 보여주었다.

 

 

 

4. 적극적인 친일활동에 나서는 권상로

 

‘하오리 하마까’라는 일본 승려들의 승복을 입은 이회광(李晦光, 1862~1933), 권상로의 스승

 

 

일본과 중국 사이에 중일전쟁이 시작된 이후에 권상로는 적극적인 친일인사가 되어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참사’로 임명이 된다.

끝까지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던 불교 승려 한용운 그러나 권상로는 처음부터(을사늑약 이전) 친일 매국적 불교인사 였다.

 

 

 

그는 친일매체인‘매일신보’에 1940년 9월 3회에 걸쳐 ‘종교계의 임전체제’ 라는 글을 연재하여 식민지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적극 독려했고

 

1942년에는 ‘잡지 불교’에 ‘대동아전쟁과 대승불교’라는 일제 찬양글을 발표한다. 또한 ‘전시의 전 책임을 맡으라’라는 해괴한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1943년에는 ‘육군특별지원병 임시채용규칙’이 공포되자 식민지 조선인들이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한다!(지원병과 징용 그리고 위안부)

 

그리고 1944년 11월에도 국민총력경기도연맹에서 주최한 종교봉사 국민총진격 강연회에 연사로 참여하여 식민지 조선의 대표적인 친일인사로서 활동을 했었다.

 

 

 

 

5. 해방 이 후 오히려 더 잘나가는 권상로(동국대학교 초대 총장 등)

해방 이후 친일행적으로 반민특위에 끌려간 권상로

 

 

그러던 중 1945년 조국이 해방이 되었지만 권상로는 그동안 자신이 행한 친일에 대한 어떠한 사과를 하지 않았지만 그는 1946년 4월 동국대학교 교수로 임용이 된다.

하지만 1949년 5월 14일 그는 그의 친일행적으로 인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된다.

비록 그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석방이 되었고 곧이어 반민특위도 해체를 했지만 그가 친일행위자 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 이다.

 

권상로는 반민특위 석방 이 후 동국대 교수로 다시 활동을 했고 이 후 1952년 동국대 학장을 거쳐 1953년 동국대가 종합대가 되자 초대 동국대 총장에 취임을 한다.

 

그리고 그는 친일파 로서 '반민특위 체포이력'도 있었지만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에 임명이 된다.(또한 동국대학교는 그에게 1962년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이었던 친일파 권상로

 

 

즉 권상로는 동국대의 설립자는 아니지만 초대 총장이자 동국대 박사학위 소지자 로서 동국대의 뿌리와 같은 인물이었는데 (뼈 속 까지) 친일파 라는 것이...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슬프게도 이 권상로 라는 인물은 을사늑약 이전부터 친일파였음에도 대한민국이 해방이 된 이 후에 더 화려한 삶을 살게된다.

 

 

즉 한국불교의 대표 대학인 동국대의 총장이 되었고 국사편찬 위원회 위원이 되는 등 진짜 꽃길만 걸었다.

 

그럼에도 가장 이상한 것은 동국대에 권상로의 친일행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정말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화여대의 김활란과 비교해도...)

 

1962년 권상로는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았고 불교법계고시위원회 위원장과 불교법규 위원과 문교부 국정교과서 교사위원

그리고 대한종교신도연맹 고문과 중앙불교연구원 원장, 불교조계종원로회 원장 및 현대불교사 사장 등 불교계의 좋은 자리는 많이도 해먹는다.

 

친일불교의 거두 이회광 (불교계의 이완용)이 권상로의 스승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5년 4월 19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자택에서 사망했고 입적한 뒤에는 조계종에서 대종사(大宗師)라는 법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대 ‘최악의 친일행적’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권상로의 친일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 규정’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진짜 나름 팔자는 좋았던 인물 같다.(지은 죄에 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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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뉴진스이혜인 | 작성시간 24.06.29 인상봐라..석열이하고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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