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돋]멋과 간지와 낭만이 철철 넘쳐 흐르는 야구 선수들의 명언 모음집 - 메이저리그 편 (1)
작성시간24.07.01조회수2,769 목록 댓글 2출처: 여성시대 KBO 개그콘서트
조지 스타인브레너 (양키스의 구단주)
나는 지는 게 싫다. 정말 싫다. 죽도록 싫다.
내게 승리란 숨 쉬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다. 숨쉬고 있다면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스타인브레너는 과거의 영광을 잃고 추락하던 양키스를 인수해 다시 명문팀으로 만들었고, 뉴욕 양키스는 월드 시리즈 쓰리핏을 또 한 번 달성하며 악의 제국이 되었다. 양키스 팬들은 새로 지은 양키스 홈구장에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지은 집>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필 니크로 (투수)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 '이만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조금 더 노력하라. 그래서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이 들 때, 조금 더 노력하라. 그럼 성공할 수 있다.
필 니크로는 마이너리그에서 10년간 구르며 너클볼을 수련했고, 늦은 데뷔 이후 48세 시즌까지 현역으로 뛰며 메이저리그 통산 318승을 기록했다. 은퇴 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됐고 애틀란타의 영구결번이 되었다.
스캇 보라스 (스포츠 에이전트)
Q. 만약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에이전트로 시작할 것인가?
A. 다시 태어난 내가 가족을 부양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정형편에 여유가 있다면, 나는 반드시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살아남는 야구선수가 될 것이다.
보라스는 드래프트 지명을 받았지만 마이너 리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부상으로 은퇴 후 로스쿨을 졸업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보라스 코퍼레이션을 설립해 세계 최고의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주적으로 통하며 천문학적인 부를 쌓았다.
RA 디키 (투수)
야구란 후회를 관리하는 게임이다
대학 시절 올림픽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의 유망주였지만 고질적인 팔꿈치 부상으로 14년 간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다. 이후 니크로에게 너클볼을 전수 받으며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만 36세 시즌에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발이 되었고, 만 38세 시즌에는 너클볼러 최초로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요기 베라 (포수 / 감독)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1973년 7월, 요기 베라가 감독을 맡고 있던 뉴욕 메츠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꼴찌였고 1위와 9.5게임차였다. ‘솔직히 메츠의 이번 시즌은 끝났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베라는 시니컬한 어조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대답했고, 메츠는 후반기 기적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동부지구 1위를 차지하고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다.
톰 글레빈 (투수)
Q. 빠르지 않은 공으로 통산 300승을 달성한 비결이 무엇인가?
A. 야구를 향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
낮은 구속과 부족한 구위를 가진 투수였지만 극한까지 수련한 결정구 체인지업과 예술적인 컨트롤로 메이저리그 통산 305승을 달성했다.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애틀란타의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테드 윌리엄스 (타자)
남자라면 그날의 목표,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나의 목표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보아라, 저기 테드 윌리엄스가 지나간다. 이제까지 존재한 타자들중 가장 위대한 타자다.”
1941년, 테드 윌리엄스는 메이저리그에서 4할 타율을 기록했다. 83년 간 아무도 이 기록을 깨지 못했다.
크리스티 매튜슨 (투수)
승리를 통해서는 작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패배로부터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1905년 월드시리즈에 세 번 등판해 세 번 다 완봉승을 기록했다. 통산 365승을 기록한 후 은퇴했고,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군면제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입대했다. 군에서 독가스를 흡입하고 얻은 후유증과 싸우다가 45세에 요절했다. 사망 직전 남긴 유언은 “나는 결코 야구든, 인생이든 비겁하지 않았다.”
샤첼 페이지 (투수)
선수들은 나이 때문에 야구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야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늙어버리는 것이다.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 나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나이가 되는 것이다.
극심한 인종차별로 인해 메이저리그에 입성하지 못하고 니그로리그에서만 뛰다가 최초의 메이저리그 흑인선수인 재키 로빈슨이 나타난 후 메이저리그 팀의 러브콜을 받고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투수로 데뷔했다. 당시 그는 만 42세였다. 만 45세 시즌에는 메이저리그 최고령 완봉승 기록을 세웠다.
은퇴 후 메이저리그 연금 규정이 바뀌어 페이지가 3이닝 차이로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자 에슬레틱스의 구단주는 만 58세의 페이지를 영입해 3이닝 동안 투구할 기회를 준다. 12년 만에 메이저리로 돌아온 페이지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3이닝 28구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당시 보스턴 타자들 중 페이지를 상대로 안타를 때려낸 유일한 선수인 칼 야스트렘스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성장해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당대 메이저리그 스타들은 40대의 페이지를 상대하며 그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극찬했다. 56경기 연속 안타로 메이저리그 기록을 세운 조 디마지오는 40대의 페이지 상대로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겸손한 성격이라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던 디마지오가 평생 동안 자랑한 단 한 가지 업적이었다. 역사상 최고의 제구력을 가진 선수로 평가받는 그랙 매덕스는 딸들의 이름을 각각 샤첼과 페이지라고 지었다.
피 위 리즈 (타자)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피부색이어선 안 된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1947년,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이 LA 다저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자 관중들은 극도로 분노하며 야유를 퍼붓고 수백 건의 살해 협박을 보냈다. 상대팀인 신시내티 레즈 선수들 또한 흑인을 상대로 경기하길 거부했고, 경기장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에 다저스 유격수였던 리즈가 글러브를 벗고 1루로 다가가 로빈슨을 끌어안으며 잡담을 나눴고, 경기는 속개됐다. 보수적인 켄터키주 출신이었던 리즈는 재키 로빈슨을 포옹한 일로 고향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고, 로빈슨과 어깨 동무하고 있는 사진을 죽을 때까지 서재에 걸어두었다. 재키 로빈슨은 이후 메이저리그 최초의 전 구단 영구결번이 되었다.
앤서니 에보트 (투수)
모든 희망이 없어질 때까지,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장애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
에보트는 조막손 장애를 앓아 오른팔이 팔목까지밖에 없기 때문에 수비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오른손에 글러브를 걸쳐둔 채 왼손으로 공을 던지고, 투구 직후 왼손으로 잽싸게 글러브를 끼어 자기 쪽으로 날아오는 타구를 잡아내고, 다시 글러브를 오른팔목으로 옮긴 후 왼손으로 송구하는 루틴을 몸에 익히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이후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에보트는 1993년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월터 앨스턴 (감독)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잊어버려라.
22년간 다저스의 감독으로 재임하며 다저스 구단 역사 최초의 우승 포함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베리 라킨 (타자)
나는 단 한 번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전을 멈출 수가 없었다.
라킨의 어린 시절, 고향팀인 신시내티는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강팀으로 ‘빅 레드 머신’이라고 불렸다. 빅 레드 머신의 광팬이었던 라킨은 신시내티 입단을 목표로 훈련했고, 신시내티에 입단해 월드 시리즈 우승과 1번의 MVP, 9번의 실버 슬러거를 수상하고 신시내티의 주장을 역임한 후 원클럽맨으로 은퇴했다. 2012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신시내티의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라킨은 빅 레드 머신 세대 이후 최초의 신시내티 영구결번이다.
칼 립켄 주니어 (타자)
경쟁 할 수 있는 한 나는 그만 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야구를 즐기는 한 기록은 알아서 만들어질 것이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21년 원클럽맨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야수 중 가장 체력 소모가 심한 유격수로 2632경기 연속 출장, 통산 3000안타, 400홈런 등의 기록을 세웠다. 특히 2632경기 연속 출장은 메이저리그 기록이다. 2632경기 연속 출장 중 7회 이전에 교체되어 빠진 것은 딱 4번 뿐이었다. (4번 중 2번은 심판과 싸우다 퇴장)
1996년,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출산 현장에 함께 있기 위해 기록을 포기했다고 선언했으나 경기가 없는 날 아들이 태어난 덕에 기적적으로 기록을 이어나갔다. 1998년 9월 20일, 자신의 출장이 더이상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립켄은 감독에게 신인을 자신 대신 선발 명단에 포함해주길 요청하며 16년간 이어온 기록을 스스로 중단했다.
토니 라루사 (감독)
생계를 위해서 법률 업무를 보는 것보다는 마이너 리그에서 버스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더 낫겠다고 결정했다.
부족한 재능으로 빠르게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로스쿨에 들어가 변호사 면허를 땄으나 야구가 너무 좋았고, 결국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마이너리그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감독 최다승 2위인 통산 2884승을 기록하고 은퇴했다. 특히 카디널스에서 16년간 감독으로 재임하며 2회의 우승을 달성해 카디널스의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베이브 루스 (투수/타자)
모든 야구 선수들은 모든 베이스라인이 오르막길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때 은퇴해야 한다.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야구란 음악이 없는 발레이며, 대사가 없는 드라마다.
❤️야구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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