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학생 때 학회 일로 간판을 만들 일이 있었는데,
난생 처음 간판을 만들어보는지라 진행 과정에서 시행착오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평상시처럼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데,
창 밖 풍경에서 유달리 AA간판, BB간판, CC간판 등, 간판집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겁니다.
항상 지나던 길이었는데, 예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유독 그 날엔 제 눈에 잘 띄었던 거죠.
이런 걸 심리학에서는 점화 효과(priming effect)라고 부릅니다.
이는, 이전에 겪었던 경험들이 이후 겪게 될 일들의 지각 및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해요.
당시 제 머리속에는 간판에 대한 생각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에,
점화 효과로 인해, 창 밖 풍경들 속에서 유독 간판집에 대한 지각이 선별적으로 이루어졌었던 것이죠.
이러한 점화 효과는 잠재의식 속에서, 자동반사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평생 우리의 태도와 행동에 "은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가령, 학창 시절동안 교우 관계로 인해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학생이 있다면,
이 학생의 앞으로의 인간관계론은 그 시절의 경험들로 인해,
나도 모르는 사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프라이밍되어 버리는 겁니다.
머리속 생각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이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점화 효과는 우리의 일상 속에 만연돼 있습니다.
상업 광고가 노리는 일차적인 효과는 바로 이 프라이밍에 있는데,
일례로,
어느 한 주말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이 가정적인 캐릭터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면,
가전제품 회사들마다 경쟁적으로, 그 주말 드라마 타임에 자신들의 상품을 광고 내고 싶어할 겁니다.
시청자들이 갖고 있는 남주에 대한 호감이 아직 점화돼 있을 때,
그 남주를 모델로 내세운 광고를 보게 되면, 자신들의 제품에까지 그 호감이 전이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잠재의식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해당 제품 자체에 대한 호감도를 가지게 되요.
인기가 높고 이미지가 좋은 셀럽들의 몸값이 비싼 이유,
바로 이 점화 효과 때문인 거죠.
날이 갈수록 세상이 팍팍하게 변하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완전경쟁사회에 시달리며 자라왔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반 친구조차 학우가 아닌 경쟁자로 바라봐야 한다면,
이러한 환경에서는 사람들의 심사가 보다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겠죠.
자신의 이득과 손해를 민감하게 따지게 될 것이고,
공정한 경쟁에 위배되는 불합리한 장면을 목도하게 되면 불같이 분노하게 될 겁니다.
사람을 봤을 때,
자신의 이전 경험에 따라,
와 사람이다!!! 와 휴 사람이네...로 갈리듯이,
사회 생활을 대하는 마인드 자체가 점화 효과로 인해,
경쟁, 적자생존, 약육강식 이런 쪽으로만 극단적으로 해석되는 것이죠.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다면,
그 경험의 강렬함에 따라 점화 효과의 세기는 달라지겠지만,
대체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행동 자체가 방어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의심하게 되고, 신뢰하지 않게 되고, 거리를 두게 되죠.
머리속 생각들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이유는
과거의 강렬했던 경험이 일으키는 점화 효과로 인해,
나의 태도나 행동에서 이미 선입관이나 편견이 생겨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되고,
판단이 애매한 상황에서도 잠재의식 속에서 이미 점화된 방면의 해석을 하게 되기에 편향적 사고가 일어나게 되요.
새로운 사람이 좋은 사람일수도 있겠죠.
나에게 좋은 제안을 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과거의 안 좋았던 경험이 잠재의식 속에서 나를 계속 방어적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굴곡이 심하고 사건사고가 많았던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긍정적인 마음을 먹고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일이란 굉장히 어려운 과제인 셈이죠.
자신의 잠재의식과 싸워가면서 매번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나는 점화 효과에 대항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좋은 말들을 해 주면서 긍정적인 암시를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괜찮아.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잘 해 낼 수 있어.
난 좋은 사람들과 만나게 될 거야.
멋진 인생이야. 난 행복해.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시크릿>에서 이야기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나,
"생각이 곧 현실이 된다"는 핵심 주제 역시, 바로 이 점화 효과를 역이용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겠죠.
점화 효과로 인해, 부정적인 태도로 회피적 삶을 살던 사람들이 (ex. 휴 사람이네...)
머리속을 가득 채운 긍정적 언어들로 함께 세상과 소통하면서 진취적인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면, (ex. 와 사람이다!!!)
다소간의 어려움은 있을지언정,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더 많은 결과물들을 만들어내기란 당연지사일 겁니다.
내 머리속 생각들을 내 주변 사람들의 말이라고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어차피 안 될 거야.
사람은 믿을 게 못 돼.
세상은 어차피 괴로움 투성이야.
주변에서 이런 얘기들만 잔뜩 듣는다면, 자연스럽게 회피적 삶을 살 수밖에 없겠지만,
할 수 있어.
좋은 사람들이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거야.
세상에는 즐거운 일들이 정말 많아.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뭐라도 더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겠죠?
점화 효과의 어두운 기운에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면,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부정적 생각들을 끌어내고, 긍정적이며 밝은 생각들을 대신 채워 넣으면 됩니다.
고민이 될 때, 머뭇거리게 될 때, 의심하게 될 때,
내 머리속 확언들이 나에게 긍정의 불꽃을 점화시켜 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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