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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무덤을 통해 보는 가야의 독특한 문화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4.07.18|조회수3,064 목록 댓글 5

출처: https://www.fmkorea.com/7164210523

 

 

오늘은 시작하면서 펨붕이들에게 질문 하나만 하고자 한다.

 

다들 "삼국시대 각 나라를 대표하는 무덤"을 생각하면 어떤 무덤이 떠오르는가?

 

 




아무래도 고구려 하면 정복 군주의 위엄을 잘 보여주는 장군총이 떠오를 것이고

(세간에서 장군총은 장수왕의 무덤이 확실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학계에서는 광개토대왕의 무덤일 수도 있다는 이유로 신중을 기하고 있다.)

 

 




백제 하면 특유의 미술적 감각과 훌륭한 기술을 상징하는 무령왕릉이 떠오를 것이고

 

 




신라 하면 경주 수학여행의 국룰 코스 중 하나인 대릉원의 고분군이 떠오를 것이다.

 

 

근데 잠깐만...




우리가 빼먹은 나라가 하나 있었다... 바로 가야!

 

 




여러분들은 가야의 무덤 하면 어디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가?

 

역덕이거나 경남 도민이 아닌 이상 이 질문에는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가야는 다른 왕국에 비해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의 고분군은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른 개성과

고고학적 연구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 소국으로 나뉘어져 있던 가야답게

가야는 각 소국별 기반지마다 대표적인 고분군이 존재한다.

 

그중 오늘은 각각 김해와 창녕에 있는 두 무덤에서 발견된 재밌는 사실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먼저 김해에 있는 예안리 고분군부터 살펴보자.

 

김해는 전기 가야 연맹의 리더 역할을 했던 금관가야의 중심지였던 지역이다.

 

김해의 여러 고분군 중에서도 예안리 고분군은 

고대 가야의 인골이 많이 확인되어 그 연구 가치가 높은 고분군이라고 할 수 있다.

 

예안리 고분군이 왜 특이한지를 살펴보기 앞서,

우리는 중국의 사서 삼국지에서 삼한 시대를 다룬 부분을 읽어봐야 한다.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는 고대 중국의 복잡했던 역사뿐만 아니라

별도로 마련된 동이전을 통해 당시 한반도가 어땠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각설하고 삼국지 동이전에서 삼한을 다루는 부분 중에는 요런 구절이 있다.

 

 

"어린 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려 하기 때문에

지금 진한 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이게 무슨 소리지? 싶을 것이다.

 

 




사실 신체 일부를 변형시키는 풍습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세계 곳에서 볼 수 있다.

당장에 이 기록을 남긴 중국은 여성들에게 전족이라는 악습을 강요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풍습을 우리 선조들도 행했다는 기록은 왠지 모르게 생소하게 다가온다.

삼국지가 진한 사람들을 잘 모르고 쓴 소리는 아닌지, 이 기록이 맞는 건지 의심이 들지만...

 

 




.....!

 

 

누가 봐도 형태가 이상한 두개골이 예안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예안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이 두개골은 허무맹랑한 기록인 것 같던

삼국지의 정확성을 입증해 주는 좋은 유물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특이한 머리를 만드는 이런 관습을 편두(扁頭)라고 부른다.

편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각 지역에서 넓게 행해졌고,

우리나라의 경우 진한 & 변한에서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왜 우리 선조들이 편두에 진심이었는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

아무튼 편두는 한반도에도 독특한 신체 변형의 풍습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밌는 사례가 되었다.

 

 




이번에는 창녕의 송현동 고분군으로 가보자.

 

창녕은 소위 "비화(比火)가야"로 알려진 가야 구성국의 기반지로 알려진 지역이다.

 

송현동 고분군에서 살펴볼 가야 장례 문화의 키워드는 바로 순장(殉葬)이다.

 

권력자가 죽으면 그 하인들을 죽여 같이 묻는 순장 풍습은 가야에서만 행해졌던 것 아니다.

 

순장은 동아시아, 유럽, 인도,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의 다양한 지역에서 흔하게 행해졌던 풍습이다.

 

우리 선조들의 경우 기록과 고분군을 통해 부여, 신라, 가야에서 순장을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 다들 한국사 시간에 신라 지증왕의 업적으로 순장 제도의 폐지를 외웠을 것이다.)

 

가야의 순장 제도가 특이한 것은 그 지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순장의 대체제로써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병마용. 

그렇다고 해서 진시황릉에 순장된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다.)


사실 순장 제도는 죄 없고 병 없는 하층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풍습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야만적이면서도 사회의 멀쩡한 노동력을 없애는 악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증왕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순장의 풍습은

일반적인 장례 문화보다는 미개한 악습으로 간주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가야는 순장의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

후기 가야 연맹의 리더였던 대가야의 6세기 무덤에서도 순장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

가야는 말년에도 순장을 지속적으로 자행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순장에 대한 집착이 가야의 약화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창녕의 송현동 고분군에서도 순장자로 추정되는 다수의 인골이 확인되었다.

 

 




그중에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복원 상태가 가장 좋은 한 사람의 인골이다.

 

소위 "송현이"로 불리는 이 인골의 주인은 대략 16살 정도의 소녀로 파악되었다.

 

 




송현이는 연구 결과 신장 155cm 정도의 미혼 여성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연골의 상태가 좋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송현이는 일 때문에 무릎을 꿇을 일이 잦았던 하층민이 아니었나 추측되기도 한다.

 

 




또한 연구 과정에서 송현이의 유골을 통해 얼굴이 복원되었다.

 

 

 

 

복원 결과 송현이의 실제 모습은 대략 이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인상이면서도

순장 때문에 죽기에는 너무 어린 소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한 특이한 점 한 가지가 송현이의 귀에서 발견되었다.

 

바로 송현이가 귀에 걸고 있던 금귀걸이.

 

정황상 송현이는 무덤의 진짜 주인이 아니라 그저 순장자1에 불과한 사람인데

왜 금귀걸이를 걸고 묻혔는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순장되어 죽은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귀금속 장신구를 줬는지,

아니면 송현이가 생각보다는 높은 신분이었는지,

이것도 아니라면 당대 가야에서 금은 흔해 빠진 금속이었는지...

 

첫 번째 이유일 것 같기는 해도 진짜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없는지라

송현이의 죽음은 더 미스터리하게 다가온다.

 

 


(창녕 교동 고분군 전경)

 

지금까지 가야의 무덤에서 발견된 신기한 특징들을 살펴봤다.

 

가야는 우리 머릿속에서 잃어버린 왕국 중에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는 약 1400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삼국 시대를 살펴볼 때는 가야를 빼먹지 말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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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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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크림새우처돌이 | 작성시간 24.07.18 허러어어어어어억 너무 흥미로워
  • 작성자거침없이하이킥n번째 | 작성시간 24.07.18 와 여시 나 나중에 퇴근하고 정독할게 지우지마 글 고마워
  • 작성자자꾸이러면나화낸다 | 작성시간 24.07.18 아 나 돌로 안눌러도 나는 머리형저따우라서.. 나 가야인인가?
  • 작성자해내야죠 | 작성시간 24.07.18 재밋다 ㅋㅋㅋ
  • 작성자짜가운레몬케이크 | 작성시간 24.07.18 재밌다... 송현이 귀걸이 가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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