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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한 고고학자와 사라진? 보물들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4.07.19|조회수4,590 목록 댓글 4

출처: https://www.fmkorea.com/7259291970

 

 

 

1958년 영국의 고고학자 제임스 멜라트가 이스탄불에서 이즈미르로 향하는 기차를 타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그의 눈에 건너편에 앉아있던 소녀가 차고 있는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딱 보기에도 수천년 전 만들어진 팔찌 같았던 것이다.

그는 소녀에게 자신을 고고학자라고 소개하며 혹시 팔찌를 자세히 볼 수 없겠냐고 물어본다.

소녀는 흔쾌히 자신의 팔찌를 보여주며 자기 집에 팔찌 말고도 더 많은 보물들이 있다고 자랑한다.

그 말에 눈이 돌아간 멜라트는 바로 소녀의 집으로 향한다.

 

 

소녀의 집에 도착한 멜라트는 미쳐 돌아갈 뻔 했다.

소녀가 보여준 보물들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 유물 같았기 때문이다.

멜라트는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지만 소녀는 사진은 안되고 스케치는 된다고 하였다.

 

멜라트는 당장 소녀의 집에 머물며 보물들의 스케치와 상형문자들을 이리저리 탁본을 뜨기 시작했다.

 

 


(실제 스케치 된 유물들)

 

 

소녀는 이 보물들이 그리스계 보물일거라고 말하며 세계1차대전 직후 그리스군이 이 일대를 점령하고 있을 때 호숫가 근처에 있는 '도락' 이라는 마을에서 도굴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멜라트는 유물에 정신이 팔려 소녀의 집주소나 신상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고 이것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 일으킨다.

 

 



 

소녀의 집을 떠나고 이듬해 1959년, 멜라트는 자신이 스케치한 도락의 보물에 대해 발표한다.

하지만 이는 곧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멜라트는 소녀의 이름이 '안나 파파스트라티'이고 주소는 '카짐 디레크가 217번지'이며 미국식 영어를 했다는 것만 기억했다. 하지만 튀르키예 경찰이 조사해 보니 그런 주소도, 그런 소녀도 없었다. 아예 "카짐 디레크 가"라는 거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튀르키예 정부도 분노했는데, 멜라트가 튀르키예 유물을 정부와 상의 없이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멜라트는 발표 전 튀르키예 문화재청에 유물을 발표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지만, 이상하게도 편지가 튀르키예에 가지 않았다. 일반 편지가 종종 분실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멜라트는 편지가 잘 도착했겠거니하고 발표를 때려버린 것이었다.

 

 

결국 멜라트는 자신이 튀르키예에서 진행하던 아나톨리아 초기 유적지 조사를 마치지 못하고 튀르키예에서 추방당한다. 후에 경찰조사를 통해 멜라트도 억울했다는게 밝혀지긴 한다.

 

멜라트는 영국으로 돌아가 조용히 교육자로 종사하다가 2012년 86세로 사망한다.

 

 

 

의문인 것은 오늘날까지도 멜라트가 보았다는 도락의 보물들은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멜라트가 도굴단에 이용당했던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도굴단이 자신들의 보물 감정을 위해 멜라트를 이용했고 또한 이 보물들이 멜라트에 의해 발표가 되면 가격이 더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보물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멜라트가 유명해지고 싶어서 꾸며낸 사건 이라고 주장한다.

 

멜라트는 보물 스케치의 공개 이후 보물의 발견 경위와 실존 여부에 대한 증명을 요구 받았지만 그가 밝힐 수 있었던 건 스케치와 탁본, 소녀가 보물을 공개해도 괜찮다는 편지뿐이었다.

 

문제는 소녀의 편지 구성이 멜라트가 평소에 쓰는 편지 구성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멜라트는 편지 날짜를 로마자로 썼는데 소녀의 편지 역시 날짜가 로마자로 쓰여졌다.

 

또한 제 아무리 도굴단이라도 밀거래를 했으면 흔적이 남았거나 비밀리에 수장가의 손에 떨어졌어도 세월이 흐르면서 한두점정도는 시장에 공개가 될 법한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은 너무 이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반박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일단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은 멜라트의 실수이긴 하나 스케치와 탁본을 분석해 본 결과 너무 상세하고, 보물의 설명에 약 6만여 단어가 쓰였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보물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묘사할 수 있냐는 것이다.

 

아직도 보물의 행방은 털끝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댓펌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라 찾아 보았는데, 여기 나온 James Mellaart라는 사람이 아나톨리아 지역 선사시대 고고학자로서 굉장히 명성이 있었던 사람이지만, 위조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려 했다는 혐의도 있더라구.
특히 이와 관련, 사망이후 연구 노트를 본인의 아들(!)과 다른 연구자가 분석하면서 위조?혐의로 증거로 내놓은게 있더라.
https://popular-archaeology.com/article/james-mellaart-pioneer-and-forger/

상기 사건도 어찌 보면 James Mellaart의 주작일수도 있음.

 

ㄷㄷ 아들이 위조혐의를 같이 조사하네요

 

그거와 별개로 워낙 저명한 사람이라 영향력이 상당히 있던 사람이었대요!


결국 멜라트는 튀르키예에서 추방당하고 조력자 역할에 한정해서 1964년 겨우 복귀할 수 있었다.

고초를 겪던 멜라트는 1961년부터 자신이 발굴하던 차탈회위크라는 아나톨리아의 최초이자 초기 신석기 유적 조사로 돌아왔지만 골때리게도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여기서도 신석기 유적의 벽화 묘사본과 일부 유물을 공개했지만 막상 그 원본은 찾을 수 없었던 것. 결국 1965년 멜라트는 유물매매 혐의로 튀르키예 고고학계에서 영구추방되고 말았다.

저것만으로 완전추방된게 아니고 또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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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지난 인생이 무드등처럼 스쳐 지나가 | 작성시간 24.07.19 탁본이 흥미롭네
  • 작성자흥흥흥훙흥 | 작성시간 24.07.19 오 흥미롭다
  • 작성자민쟈오밍 | 작성시간 24.07.19 서프라이즈 한편 뚝딱 본거같음 흥미돋
  • 작성자남성드잡이전문가 | 작성시간 24.07.20 왜자꾸 탁본만 내요그니까 미치겟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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