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요시오카 시노부 <추락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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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하자마자, 나는 기내에 구비되어 있는 여성주간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날은 승객 중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많아. 평소의 오사카편과는 다르다는 인상은 있었습니다.
제 좌석 주변에도 젊은 여성이 눈에 띄였고요.
금연 사인은 금방 꺼졌지만, 착석 사인은 꺼졌나, 안 꺼졌나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제 곧 수평비행을 하려나 싶던 순간, 티비나 드라마에서 총을 쐈을 때 울리는 듯한 '빵!'하고 꽤 높은 소리가 났습니다.
'펑'이 아니라, '빵!'하는 높은 소리가요. 급감압(기압이 급격히 떨어짐)상태가 아닌데도,
귀를 막고 싶어질 정도의 엄청난 진동음. 뭔가를 예고하는 듯한 이상이 생겼는지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 좌석 약간 뒤에 있던 천장 부근에서 소리가 난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 곳 뿐 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울렸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천장을 올려다 봤는데, 진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기체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승객들 사이에서 '으악!'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성 승객들은 '꺅!' 하고, 한 순간 목이 메인 듯한 소리. 소란스러워지거나,
비명을 내지르는 일은 없었습니다. 귀가 아픈 정도는 아니였고, 지잉하고 막힌 듯한 느낌이 났어요.
'빵!' 하는 소리와 거의 동시에, 산소 마스크가 자동적으로 떨어졌어요. 점보기 같은 경우, 좌석 수+여분의 마스크가 떨어지기
때문에, 제가 앉아있던 '56' 두 좌석에는 마스크가 세 개 있었습니다.
그게 기내에 일제히 떨어졌을 땐, 마스크가 '왕왕왕'하고 튕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잡아 당기면 산소가 흘러나와, 입가에 있는 주머니가 부풀어 오르죠. 산소가 나오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부족하진 않았습니다.
그 즉시 '현재 긴급강하중. 마스크를 해 주십시오'라고 녹음 된 안내음이 일본어와 영어로 흘러나왔습니다.
마스크를 한 사람들은, 서로 옆 사람에게 알려주기도 하며, 의외로 침착하게 착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벨트에 대한 지시는 없었고, 승객들은 아직 벨트를 한 채로 있었습니다.
담배는 즉시 꺼 달라는 주의는 안내방송도 구두지시도 없었지만, 금연램프 사인에 자동으로 불이 들어온 모양이었습니다.
이륙한지 얼마 안돼 꺼졌을 사인이 켜져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긴급하강중이라고는 해도, 몸으로 느낄 정도의 급격한 하강은 없었습니다.
급감압일 때, 산소 마스크가 떨어지는 건 물론 알고 있었어요. 급감압은 무언가에 부딪힌 충격에 의해 기체가 손상됐을 때
일어난다고 배웠기 때문에, 그게 일어난거구나..하고 생각은 했지만, 무슨 일이 생긴건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산소 마스크가 떨어지는 광경은 훈련 이 후, 실제로 이 때 처음 봤습니다.
역시나 '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안개 같은 게 피어 났어요. 앞에 앉은 사람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꽤 짙었습니다.
제 자리 바로 앞은, 그 정도로 뿌옇지 않았지만, 좀 더 앞 좌석인 '47' '48' 부근이 희뿌옇게 보였어요.
쓱 보니, 전방 스크린 왼쪽통로에 스튜어디스가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더군요.
그 안개 같은 건, 몇 초만에 사라졌고,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서 봤을 땐, 이미 없었습니다.
흰 안개가 흐르는 듯한 공기의 흐름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삭~하고 사라져버린 느낌이었어요.
냄새는 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흰 안개? 아지랭이 같은 것이 발생하는 것은, 급감압일 경우 나타나는 현상이다, 란 것도
물론 훈련 때 교육받았던 사항이었습니다. 처음엔 스튜어디스도 각자 좌석에 앉아서 산소 마스크를 하고 있었지만,
한참 뒤에 승객의 마스크를 고쳐주며 좌석을 돌고 있었습니다. 좌석을 돌 때는 여분의 마스크를 잡아당겨 입에 대고 있었어요.
마스크에 달린 튜브는 당기면 꽤 늘어나기 때문에, 3열 정도는 마스크 한 개를 착용한 채로 확인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도, 짐 들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고, 기체의 흔들림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뭔가가 일어났나보구나 하고
저는 산소마스크를 한 채로 힐끔힐끔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죠.
사고 이후, 8월 14일에 공표한 '오치아이 증언'에서는, 객실승무원 좌석 아래에 베트홀(기압조절구멍)이 열렸다고 되어있는데,
제 좌석은 베트홀이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열려있었는지, 아닌지 저는 확인 할 수 없었어요.
힐끔거리고 있을 때, 저는 화장실 윗 편 가로로 긴 벽이 거의 전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화장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윗 쪽 벽이 몽땅 떨어져 나가서, 옥탑방 처럼 보이더라고요.
벽은 찢어졌다고 해야 하나, 부셔진게 아니라, 이음새가 엇나간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벽에 있던 판넬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벗겨진 벽 반대편에, 운동회에서 쓰는 텐트소재 같은 것이 팔랑거리는 게 보였어요. 오프화이트의 두꺼운 천 같은 거요.
빳빳한 소재도, 주름이 많은 커텐같은 소재도 아닌, 한 장의 천을 늘어뜨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것도 나중에 정비사에게 들은 건데, 뒷 쪽에는 그런 천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게 찢어졌다고 하기보단, 바람에 휩싸인 듯이 팔랑거리고 있었어요.
그 부분으로 기체 밖이 보이거나, 하늘이 보이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 더 말하면, 제 머리 위 약간 앞 쪽 천장에 정비용 50센치 직사각형의 구멍이 있었는데,
거기에 달린 덮개가 제 쪽을 향해 열려 있었어요. 부서진 게 아니라 뭔가가 튀어서 열린 것 같았습니다.
내부는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다만 천장의 짐칸이 아래로 열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 때는 승객 전원이 산소마스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는 없었습니다.
산소 마스크를 하고 호흡하는 것에 열중하느라 대화 할 여유조차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매우 불안 해 보이거나, 힐끔거리며 창문 밖을 보는 모습은 볼 수 있었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났었는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언제 점등했는지 보지는 못했지만, 'EXIT'와 '비상구'를 나타내는 비상라이트는 켜져 있었습니다.
좌석 위에 공기구멍으로 공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라이트를 킨 사람이 있는지도 기억 나지 않아요.
시간적으로 곧 어두워 질 때 였으니까 라이트를 켜도 이상하지 않으나, 그것 까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때 까지도, 비행기가 하강하는 느낌은 거의 없었습니다.
천천히 좌우로 크게 선회 하는 듯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산소 마스크를 하고 난 한참 뒤였죠.
'빵!'하는 소리가 난 지, 아마 10분 정도 지났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이 쯤 되니, 산소 마스크를 벗어도 고통스러움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승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요.
더치롤( 비행기의 이상(異常) 사태로 인해 옆으로 몹시 흔들리는 일)이란 용어는 몰랐습니다.
비행기는 변함없이 선회를 반복하는 듯 좌우로 계속해서 기울었어요. 진동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튼 간에, 반복적으로 좌우로 기우는 듯한 흔들림이 계속 되었습니다.
급격한 움직임, 덜커덩거리는 흔들림이 아닌, 느린 흔들림이요. 점점 흔들림이 격해지는 일도 없었습니다.
제 좌석 왼쪽 창문에서 보인 것은, 새하얀 구름 뿐이었습니다. 굉장히 두터운 구름이라 지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승객들은 창문 밖을 바라보거나, 개 중엔 스튜어디스에게 '괜찮은 건가요'하고 물어보는 분도 있었습니다.
기내는 어수선한 분위기, 패닉에 휩싸인 모습은 없었고,
이 단계에선 아직 대부분이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이었을거라 봅니다.
단지, 조종실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다들 불안해 하는 표정만은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던 중, 산소가 없어졌어요. 언젠가, 제가 비행을 할 때 산소 마스크는 몇 분 정도 공급되는지
승객에게 질문 받은 적이 있는데, 전원이 흡입할 경우, 18분 정도라는 계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정도의 시간이 경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승객은 그대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뒤에 L5(최후방부 왼쪽)도어 담당 스튜어디스가,
주변 승객에게 '좌석 아래에 있는 구명조끼를 꺼내서 착용해 주십시오'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어디서 지시가 왔는지는 모르겠어요. 평소 조종실에서 오는 연락은 치프퍼서에게 전달되거나,
급한 경우엔 승무원석 전화가 전부 조종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ALL CALL'로 전달 되는데,
이번 경우는 없었어요. 구명조끼를 착용하도록 한 지시는, 기내 안내방송이 아닌, 스튜어디스의 구두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스튜어디스가 착용하고나서, 착용법을 안내하며 좌석을 체크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런 식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전방 좌석에서도 일제히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스튜어디스는 구두로, 좌석 포켓 속에 있는 '안전 안내서'를 보고 구명조끼를 착용 해 주십시오,를 반복하며
좌석을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좌석 아랫쪽에 있는 구명조끼를 꺼내 머리에 썼어요.
저는 하네다에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구름 위고, 고도도 높았고,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점점 불안해져 갔습니다.
그런데, 구명조끼가 좌석 아래에 있는 걸 모르는 승객이나, 알아도 꺼내는 법을 모르는 승객이 제법 있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조끼가 있는 곳을 몰라서 당황하는 젊은 여성승객들이 있었어요.
그 때가 돼서야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승객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승객은 이 때 처음으로, 좌석 포켓 속의 '안전 안내서'를 꺼냈습니다.
제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옆 자리 창가 쪽 좌석에 있던 남성 K씨가 '스튜어디스 이신가요?'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네, 맞아요'하고 대답한 뒤, K씨가 구명조끼를 입는 것을 도왔습니다. 굉장히 침착한 분이었어요.
본인 걸 입은 뒤에, 좌석에서 손을 뻗어 앞 뒤 승객의 구명조끼 착용을 도와주셨거든요.
저는 통로로 나와, L5 스튜어디스 담당 손님을 도왔습니다. 그녀가 제 좌석 뒷 편을 체크하고,
저는 앞 쪽 2열 정도 좌우 승객을 지시하며 체크했어요.
하지만, 그 쯤 되니, 기체 흔들림은 가만히 서 있는게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심한 흔들림이 아니라,
아까처럼 좌우로 기우는 흔들림이었는데, 그 각도가 이 전보다 커져서, 좌석을 붙들어 잡고 두 세 걸음 걸은 뒤,
승객의 좌석 아래 구명조끼를 빼고, 조금 앉았다가, 다시 두 세걸음.. 걷는 식이었어요.
똑바로 걸으며 주변을 살피며 체크하는 건 이미 무리였습니다.
구명조끼는 비행기가 착수(물 위에 내림)했을 때, 외부로 탈출 하고 나서 부풀려야 합니다.
기내에서 부풀리게 되면, 몸을 앞으로 숙이고,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는 안전자세를 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 좌석 주변에 이미 구명조끼를 부풀린 승객이 네다섯명 있었어요. 모두 남성승객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여자 쪽이 냉정한 듯 합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던 건 오히려 남자였어요.
그 상황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조끼를 부풀리고 만 젊은 남성이 '어떡하지'하고 무기력한 얼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이미 부풀린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대로 계시면 된다고 전한 뒤, 안전자세를 취하도록 안내 했습니다.
한 분이 조끼를 부풀리면, 주변의 다른 승객들도 따라할 수 있기 때문에 스튜어디스들과 저, 그리고 옆 좌석에 앉은 K씨는
'부풀리면 안돼!'하고 소리쳤습니다.
기내에는 빈 좌석이 몇 군데 있었어요.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불안했을거예요.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사이에 좌석을 채워 앉게 됐어요.
저는 아무런 질문을 받지 않았지만, 제복을 입은 스튜디어스에게 승객들은 여러가지 질문을 하더군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괜찮은 거에요?', '살 수 있는 건가요?' 질문하는 사람은 남자 뿐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탑승한 여성은, 남자가 옆에 있어서 였는지 조용했지만, 똑같은 상황이라도, 남자 쪽이 이런저런 질문을 해 왔습니다.
스튜어디스는 승객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가능한 한 냉정하게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질문을 받아도,
'무슨일이 있어도 괜찮을거에요. 저희는 그 정도 훈련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안전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객실이 패닉에 빠지는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미소가 사라진 그녀들의 얼굴엔 긴장이 역력했지만요.
아기용 구명조끼가 윗쪽 선반에 있지만, 이 때는 이미 그걸 꺼낼 여유가 없어서 어른용 조끼를 착용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엄마아~' 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크진 않았으나, 짧은 외침에 가까운 소리였어요.
성인승객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비명을 지르는 일은 없었습니다. 목소리를 낼 수 조차 없었는지도 몰라요.
불안과 긴장의 기내였습니다.
전원이 구명조끼 착용을 끝내기까지, 5,6분이 걸렸어요. 구명조끼를 다 입은 분은, 옆 자리 승객을 돕고 있었습니다.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사이에 스튜어디스의 목소리로 안내음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갑자기 착륙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관제탑으로부터의 교신은 잡히고 있습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2층좌석에 있던 어시스턴트 퍼서가 조종실에 가서, 상황을 들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침착한 목소리였습니다.
흔들림은 한층 더 커졌어요. 더이상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요.
구명조끼를 입자마자, 대부분이 일제히 안전자세를 취했습니다.
그 때는 안경을 벗거나, 끝이 뾰족한 것은 좌석 포켓에 넣고, 자켓이 있으면 충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착용 하십시오,라고 지시 했지만, 그런 시간적 여유는 없었습니다.
저는 '56C'로 돌아갔습니다. L5 스튜어디스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두번째 뒤에 있던 빈 좌석에 앉았습니다.
머리를 숙여서 무릎 사이에 넣고, 발목을 잡는 것이 안전자세예요.
뒤에 있던 스튜어디스와 저는, 좌석에 앉아 큰 소리로 몇 번이고 소리쳤습니다.
'발목을 잡고,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는다!','전신긴장!' 전신을 긴장시키는 것은, 충격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이럴 때는 '~해 주세요'처럼 정중한 표현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스모선수나, 임산부처럼 배가 나온 경우, 허리를 굽히기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반대로 등을 쭉 펴고,
다리는 바닥을 제대로 밟고 있는 상태에서, 앞 좌석에 상체를 밀어붙이는 안전자세를 취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땐 그 자세를 한 승객이 없었어요.
안전자세를 취하기 직전, 저는 옆 자리 K씨에게 '긴급착륙하고 나서, 만약에 제가 움직일 수 없게 되면,
뒷 쪽 L5 도어를 열고 승객들을 대피시켜주세요.'라고 말했고, K씨는 '맡겨 두세요'라고, 매우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K씨와 대화를 나눈 것은, 이게 마지막이었어요.
그리고, 그 때, 창문 밖 약간 아랫쪽에 후지산이 보였어요. 아주 가까웠죠.
이 루트를 비행하며, 가장 가깝게 보일 때랑 비슷할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저녁 까만 산 등에, 하얀 눈이 쌓여 있었어요.
왼쪽 창문 조금 앞 쪽에서 보이던 후지산은, 스~윽하고 뒷편으로 이동 해 갔어요.
후지산이 딱, 창문 가장자리에 왔을 때, 저는 안전자세를 취하고 머리를 숙였지요.
머리를 숙이며 기내를 슬쩍 보니, 늘어져있는 여러 산소마스크의 튜브의 대다수가,
팽팽하게 아래 쪽으로 당겨진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마스크를 한 채로 안전자세를 취한 승객이 대부분이였나 봅니다.
안전자세를 한 의자 속에서, 몸이 크게 흔들리는 걸 느꼈어요. 배가 흔들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요동.
하지만, 상하 진동은 없었습니다. 앞 좌석에서 몇 살 쯤인지 모르겠지만, 여자아이가 '꺄악~!'하고 내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것 뿐이었습니다. 들렸던 건.
그리고, 곧바로 급하강이 시작 됐습니다. 완전한 급하강, 곤두박칠 쳤어요. 머리카락이 거꾸로 설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머리 양 편에 있는 머리카락을 잡아 끄는 듯한 느낌. 실제로 그렇진 않았겠지만, 잡아 끄는 듯이 느낄 정도였어요.
무서워요. 무서웠어요. 떠올리게 하지 말아주세요, 더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공포예요.
승객들은 더이상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어요. 저도 이제 죽는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수직으로 떨어져갔어요. 진동은 없었어요. 창 밖을 보고 있을 여유따위 없었습니다.
언제 부딪힐 지 몰라, 계속해서 안전자세를 취하고 있을 수 밖에, 그럴 수 밖에 없어.
땀이 났는지, 어쨌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아요. 좌석 아래 짐들이 날아갔는지, 어떻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몸 전체가 딱딱하게 긴장한 채로, 분명히 눈을 감고 있었을거에요. '빠~앙!'하는 소리가 나고,
추락하기 까지 32분간이었다고 하는데 긴 시간이었어요. 몇 시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하네다로 돌아갑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지는 않을까, 계속 기다렸어요.
그런 안내방송이 있었다면, 그건 조종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공항과 연락이 되고 있다는 거니까, 이제 괜찮겠지..했을텐데
하지만, 안내방송은 없었어요.
충격이 있었습니다.
충격은 한 차례만 느꼈어요.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다,란 인상 밖에 남아 있지 않아요.
회전했다는 느낌도 없었습니다. 팽개쳐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충격이 있은 후에도, 안전자세를 계속 해서 유지해야 하지만,
저는 너무 무서워서 얼굴을 들었고, 그 순간, 여러가지 것들이 날아왔어요.
딱딱하고, 모래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소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소리도, 충격도 모든것이 한 순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충격이 끝난 후, 우수수 먼지가 흩날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눈 앞은 뿌옇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추락했다고 생각했어요.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구나..하고 생각한건 그 때 였죠.
기계 냄새가 지독했어요. 기름 냄새라기 보단, 기계실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기계 냄새.
몸은, 좌석에 앉아있는 듯한 자세였어요. 왼손과 양다리는 뭔지 모를 단단한 물체에 끼어서 움직일 수 없었고,
발바닥은 무언가에 닿아있었습니다. 심한 고통은 없었고,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린 듯 했어요.
눈에는 모래가 왕창 들어갔는데, 특히 왼쪽 눈이 튀어 나온 것 처럼 엄청나게 뜨거웠습니다. 실명하겠구나 싶었죠.
이건 나중에 알았지만,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콘텍트렌즈가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는지, 없더라고요.
바로 눈 앞에 뭐가 있는데, 뿌옇게 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보이는 건 회색의 저녁.
귀에도 모래가 들어가서, 주위에서 나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호흡이 힘들다기 보단, 그냥 헉헉댈 뿐이었어요. 죽기 직전인가보다,하고 멍하니 생각했습니다.
축 늘어진 저는, 빨리 편안해 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차라리 죽는게 낫다 싶어서, 혀를 세게 깨물었어요.
괴롭고 싶지 않다는 일심이었지만, 아파서 쎄게 깨물지 못하겠더라고요.
추락 직후에,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어요.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숨소리였죠.
근처에서 들려왔어요. 주변 전체에서요. 그 중, '엄마아~'하고 부르는 남자아이의 목소리도 있었어요.
그리고 나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주변은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어요.
일단 낮은 곳에 파묻혀 있는 듯한 상태였어요. 왼쪽 얼굴과 뺨 부근에, 아마도 옆 자리에 앉아있던 K씨라고 생각되는데.
기대 듯이 닿아있는 걸 느꼈어요. 이미 숨은 쉬고 있지 않았고, 차가웠습니다.
좌석벨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점점 조여와서 고통스러웠어요. 오른손을 써서, 벨트를 풀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른손 뿐이었어요. 오른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머리 위 공간은 그렇게 작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른손을 얼굴 앞으로 뻗으니, 뭔가 딱딱한 게 있길래 치우려고 밀어보았지만,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걸 피해, 더 손을 뻗었더니, 역시 의자에 나란히 앉은 세명의 머리가 손에 닿았습니다.
파마를 한 긴 머리였으니, 여성 분이었겠지요. 차가워진 느낌이었지만, 무서움은 전혀 없었어요.
어디선가, 젊은 여성의 목소리로 '빨리 와'라고 말하는 걸 확실히 들었어요.
근처에서 거친 숨소리로 '헉헉'대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아직 몇 명쯤의 숨소리가 들리고 있었죠.
그렇게 다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의식이 간혹 희미해져갔어요. 춥진 않았고, 오히려 몸은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간간히 머리 위에 있는 틈으로 손을 뻗어 찬 공기를 쐬었어요.
갑자기,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으챠, 나 힘낼거야'라고요. 초등학교를 들어갔을까~ 싶은 남자아이의 목소리였고,
매우 정확히 들렸습니다. 하지만, 아까 '엄마아~'하고 부르던 남자아이와 같은 소년인지 아닌지, 판단이 안됐어요.
저는 그냥 녹초가 된 채로, 거친 숨소리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기계 냄새는 나지 않았어요. 피가 나는지도 몰랐고, 피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구토도 없었고요.
이윽고, 심야 속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어요. 주변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소리는 잘 들렸죠.
그것도 매우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였어요. 이제 살았다고 저는 꿈속에서 오른손을 뻗어 손을 흔들었지만,
헬리콥터는 점점 멀리 가 버리고 말았어요. 가지말라고 죽어라 손을 흔들었어요.
'살려줘', '누가 와서 도와줘'라고 목소리를 냈던 것 같아요. 아.. 가 버리네....
이 때도 아직, 몇 명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남자아이와 젊은 여자의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몸이 뜨거워서, 다시 오른손을 뻗어 차가운 바람을 쐬며, 깜깜한 어둠 속에서 저는 아득하게 생각했어요.
내가 이대로 죽으면 남편은 불쌍해서 어떡하나..등등.. 아버지를 생각하기도 했어요.
어머니가 삼년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뒤에 내가 죽으면 이런 불행이 어디에 있나..
어머니는 제가 스튜어디스가 되겠다고 했을 때,
'만약의 상황이 일어나면, 스튜어디스는 가장 마지막에 도망쳐야 되잖아? 그런 걸 니가 감당해 낼 수 있겠니?'라고,
몇 번이나 질렸다는 투로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리고, 왜 추락한 걸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럼 이번엔 실패하는 일 없이 더 잘 할 수 있는데. 여러가지를 연달아 머리로 떠올렸어요.
눈물은 나지 않았어요. 한 방울도. 추락할 때의 그 느낌만은, 더이상 그 누구에게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곤, 다시 의식이 희미해져갔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주변이 환했어요.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매우 조용했습니다. 살아있는 건 나 뿐인가 싶었죠.
그러나, 목소리를 내 봤어요. '힘냅시다'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대답은 없었습니다.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도, 더이상 들리지 않았어요. 나중에 요시자키씨 모자와 카와카미 케이코양이 살았다고 들었지만,
이 땐 그런 기색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 뒤에 제가 잠들어 버린 게 아닐까 싶어요.
바람을 느꼈습니다. 나무 부스러기와 지푸라기 같은 것이 쏴아~하고 날아와, 얼굴에 닿는 걸 느꼈어요.
핫!하고 정신을 차리니 헬리콥터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밝은 빛이 눈 앞에 넘쳐흐르고 있었어요. 아침 햇살이 아닌, 더 밝은 빛이요.
바로 근처에서 '손을 흔들어 봐요!' 였는지,'손을 들어봐요' 였는지..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누군가를 구출하고 있는 목소리인지, 부르는 목소리인지 모르지만, 저는 오른손을 뻗어 흔들어보였습니다.
'이제 됐어요, 됐어요', '금방 갈테니까'라고 했어요.
그 뒤에 저는 곧바로 의식을 잃은 모양입니다.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아.. 살았다, 살았구나..하고 희미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묻혀진 틈 사이에서 구출되었는지, 어떻게 이송되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신체의 아픔도,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목이 말랐던 건 기억나요. 입이 바싹 말라있었어요.
물 마시고 싶어, 물 마시고 싶어라고 말했다는데, 저는 기억이 없어요.
나중에 응급 조치를 해준 마에바시의 닛세키병원 부장님이 '그 땐 다친 곳에 안 좋을 수 있어서 못 줬어'라고 하셨지만,
물을 마시고 싶다고 말한 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눈을 뜨니, 병원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라고 묻는데, 이상한 대답을 했어요.
'네, 두세번 온 적 있어요'라고요. 이런 바보같은 대답을 하다니,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식으로 대답이 나오더라고요.
머리가 이상했어요. 하지만, 전화번호는 정확히 대답했어요. '여기는 군마현이에요'라고 의사선생님은 말했을 땐,
어째서 군마현에 와 있지? 하고 생각했죠. 그 질문에 아, 그 때 비행기가 떨어져서, 분명 거기서 군마현이 가까운가보다,
점점 생각이 났어요.
가족이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땐, 의아했어요.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걸 알면서도,
왜 여기까지 가족이 오나, 정말 의아했어요. 현실감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때 였을거에요. '몇 명이나 살았나요?'라고 물으니, 의사선생님이 '4명이요, 전부 여자만 살았어요'라고 하셨어요.
4명 밖에 못 살았구나.. 사고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죠.
천장 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산소마스크를 하고, 계속 천장만 바라 보다가, 함께 치토세에 돌아와 같은 비행기를 탔던
마츠모토상은 어떻게 됐을까..생각했습니다. 내 자신도, 실은 산 게 아니라, 죽어가는 중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백 몇 바늘을 꼬맸는데 아프지도 않았어요.
마취를 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간호사에게 들으니 '아파, 아파'라는 말을 했다고 하네요.
구출 된 날 오후 3시가 넘은 시각, 남편과 아버지, 할아버지가 병실에 왔고, 저는 '4명 밖에.....'라고 말을 꺼냈지만,
남편은 곧바로 '말 안해도 되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오치아이 유미 씨는 일본항공 어시스턴트퍼서
당일은 비번으로 123편에 탑승하고 있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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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와인보단양주파 작성시간 24.07.23 생존자 생존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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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실존을 획득하기 위한 진실성 있는 작성시간 24.07.23 빨리 구조되었다면 여럿 살았다는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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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둔근조지기 작성시간 24.07.23 왜여자만 살앗을ㅋ가 체온유지같은게 여자가 더 잘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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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나는똥자루 작성시간 24.07.23 여자가 지방이 더 많아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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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전설의 빵주먹 작성시간 24.07.23 와 댓글에 있는 링크도 봤는데 너무 안타깝다 ........ㅜㅜ 비행기안에 있던 사람들 전부 너무 안타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