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냐구요? 병사입니다.
일본의 역사 화가인 오오타 텐요오가 그린 조선전역해전도 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그당시의 조선 병사의 복장이나 무기와 전력등을 파악할수 있습니다.
그림을 보시죠. 사극처럼 천쪼가리 하나 입고 싸우는 병사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일본의 졸개들 조차도 갑옷으로 완전무장한 마당에 조선의 병사들이 천쪼가리 포졸복만 달랑 걸치고 전쟁을 치룬다는게 안맞다.
조선시대 이전의 사극을보면 병사들도 갑옷 입은거 보셨을겁니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병사도
갑옷을 입었습니다. 조선 시대 초기부터 말기까지
밑에 확대 그림입니다.
◆ 검과 방패를 든 팽배수입니다
◆ 조선의 연노(連弩, 여러 개의 화살을 연속 쏠 수 있는 쇠뇌를 말한다.)
대형 석궁으로 연발로 발사가 가능하고 사람이 맞으면 갑옷을 입어도 치명상을 입힙니다. 팔로 밑으로 위아래 당기듯히 연발로 발사 가능합니다.
◆ 조선 수군이 발사하려는 질려포통(蒺藜砲筒, 나무로 제작한 통에 화약과 능철(菱鐵)을 넣어 폭발시키는 무기. 현대의 수류탄)
동시대에 개인화기로 수류탄을 표준무기로 사용한 나라는 조선뿐이다.
◆ 현자총통을 장전하는 병사들
현자총통, 총통 맨 안쪽에 화약을 넣고 종이를 꼬아 실을 만들어 화약에 연결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는 작은 탄환과 흙으로 채운 후, 포탄을 넣고 발사했다.
일본칼의 경우 단조 기술이 상당히 발달해서 (조총의 경우 필수적으로 필요한 기술) 조총등은 잘 만들었지만 대형 화포의 경우 기술이 부족했다.
하지만 조선의 경우 주물 기술이 뛰어났고 개인 화기로는 무게등이 있어 힘들었으나 함선등에 설치해서 강한 무기로 위력을 펼쳤다.
◆ 쌍검을 사용하는 병사
◆ 활쏘는 모습을 자세히 보면 활에 폭발형 수류탄을 부착했다. 적함선에 활이 날아가 화살이 박히고 폭발한다.
개인화기로서 화포처럼 여러명이 필요없고 개인이 휴대하며 사용이 간편하고 적 함선등에 박히면
상당한 타격을 주는 무기이다.
그림처럼 병사가 얇은 옷 입고 돌아다니는거는 포졸같이 평상시 치안을 담당하는 입는것이고 전투의 경우 갑옷이 표준장비입니다.
◆ 임진왜란 전투 장면을 그린 국내외 작품 가운데 가장 세밀하게 묘사된 '울산성 전투도 병풍'이다.
역시나 TV 사극에서나 보던 포졸의 옷이 아닌 병사들 전원 갑옷을 착용하고 있다.
◆ 왜구들을 무릎 꿇린 이종무 장군과 주변 병사들
◆ 대마도 정벌도
◆ 사슬갑옷과 원주투구, 조선 최강의 병기인 편전으로 무장한 조선의 궁병
조선시대 거의 모든 전투에서 아낌없이 조선의 힘을 보여줬던 병기는 다름 아닌 편전이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고증학자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를 살펴보면 편전에 대해 “중경유수(中京留守) 김강신(金强伸)이 원병(元兵)에게 포위되어 병기가 다 떨어졌을 때 엽전으로 화살촉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원병의 화살 하나를 얻으면 넷으로 잘라서 통편(筒鞭)으로써 쏘았으니, 이것이 편전의 시초이다”라고 했다. 쉽게 말해 편전은 일반 화살을 몇 개로 나눠서(片) 쏘았던 화살인데, 화살의 크기가 하도 작아서 속칭 ‘애기살(童箭)’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문제는 화살의 길이가 너무 짧아서 보통 활처럼 활줄에 걸어서 시위를 잡아당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편전의 강력한 파괴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통아’라는 일종의 화살 받침을 만들어 쏘았다. 편전은 동양 삼국 중 오직 조선만이 그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전투마다 편전을 쏘는 궁시병은 조선의 최정예 부대로 인정받았다.
조선의 힘을 보여준 편전은 길이가 짧아 그 자체로는 활시위에 걸 수 없어 통아라는 화살 받침을 이용해 쐈다.
◆ 조선의 조총병
가슴에 달려있는건 대나무로 만든 화약통이다.
조총의 가장 큰 의의는, 중세 시절에 갑옷을 무력화하는 용도로 쓰이던 화약 무기가 마침내 동아시아의 강력한 활이나 석궁에 버금가는 편의성을 얻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또한 조총이 아시아에 도입된 이후 다양한 개량형이 등장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일본의 대조총, 우리나라의 천보총등이 있다. 대조총이 무지막지하게 굵다면, 천보총은 총열이 무지막지하게 길다.
창병과 각종 병장기들
◆ 도깨비 팽배(방패)와 허리에 차고 있는 환도로 무장한 팽배수
가운데 용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재질은 나무에 밖은 가죽으로 보강되어 있으며 테두리는 쇠로 보강해서 방어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적을 방패로 때려 눕히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의 환도를 보면 길이가 50여Cm에서 80Cm정도인데 거의 글라디우스 수준이다. 그런 칼을 들고 싸웠다면 필히 방패를 들고 싸웠다고 봐야 한다.
또한 고구려 벽화에도 방패와 칼을 든 보병이 보이는 것으로 봐선 이런 형태의 보병도 전통이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 승자총통으로 무장한 조선 초기의 총통수
조선에는 대형 총통보다도 소형 총통으로 이총통, 삼총통, 사전총통등 개인화기로써 총통이 운용되었고 선조 재위 시절인 1583년 병사 김지가 만든 승자총통이 북방에서 여진족을 상대로 효과를 발휘하자 대표적인 개인 화기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개발한 정철총통 등이 개인 화기로 꾸준히 운용되었으나 조총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비중이 줄었다.
◆ 혹한기 병사들의 복장
◆ 조선의 기병
◆ 편곤을 든 기병
편곤(鞭棍)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철편(鐵鞭)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전해졌다. 편곤은 보병이 사용하는 보편곤(步鞭棍), 기병이 사용하는 마편곤(馬鞭棍)으로 나뉘는데, 적을 타격하는 부분인 자편과, 손잡이인 모편으로 구성된다.
중국의 철편과 조선의 편곤의 차이점이 있다면, 중국의 철편은 모편과 자편 사이에 긴 쇠사슬이 있으나, 조선의 편곤은 모편과 자편 사이에 1~2개의 쇠고리만이 달려 있기 때문에 형태가 전통적인 도리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조선중기 이후 많은 문헌에 편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명군에 속해 있던 타타르족 기병들이 편곤으로 왜군을 무찔렀다는 기록도 있고, 선조가 화를 덜 입은 전라도 지방에서 편곤을 제작하도록 명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 이괄의 난 때 이괄의 기병 700명이 모두 편곤으로 관군을 공격하였는데 그 위력이 대단했다는 기록도 있다.
편곤은 임진왜란 이후 단병무예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며, 조선후기 조선군의 주요 무기로서 훈련도감에 편곤군이 편성되기도 했고, 무과 시험 과목에 포함되기도 했다.
병사들의 갑옷을 고증을 통해 재현, 복원한것이다.
◆ 유물을 토대로 복원한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조선병사
잘못된 조선 수군의 복장
두정갑의 방어력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