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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세계 2차 대전은 왜 1945년 8월 15일에 끝났을까?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4.08.07|조회수1,746 목록 댓글 7

출처: https://www.fmkorea.com/7330823851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인 광복절은

 

 

일제가 세계 2차 대전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서

 

 

 

 

 

한반도가 일제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는 이 날이 1945년 8월 15일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은 1945년 8월 15일에 끝났을까?

 

사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 엉뚱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1944년 레이테만 해전만 하더라도

 



 

한 주에 항모를 한척씩 찍어내는 미국의 생산력 앞에서

 




일제 대본영조차도 '저항할 수 없는 힘의 차이'를 체감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앞에서는 결사 항전을 외쳤던 일제 수뇌부들조차

 

뒤에서는 소련에게 종전 교섭을 중재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즉 만일 일제가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걸 체감하고 항복을 한 거라면

 

1945년 8월 15일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일제가 항복을 선언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반대로 미국은 일제가 무너질 때까지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일요일 아침에 일본에게 기습당한 미국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점에서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 상황이었기에

 

 



 

'Jap' 이라는 말이 '야비하게 뒤통수 치는' 이라는 뜻의 속어로 쓰이게 되고

 



사회 전역으로 '쪽바리는 씨를 말려야 한다' 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인종차별이 문제라는 인식이 희박하던 시절이었으니

 

홀씨 제독 같은 경우엔 '더 많은 Japs들을 죽여라' 라고 대놓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결과 일본은 자국 약칭을 'JAP' 이 아니라 'JPN' 으로 쓸 정도다

 




 

 

일본이 진주만 공습시 

 

'내가 지금 해군력에서 압도적인 상황인데

 

미국이 아무리 거대할지라도 한 방 후려갈기고 미군의 해군력을 궤멸시키면

 



미국은 결국 회담장으로 나올 거고

 

일본에 대한 제재들을 해제할 것이다' 라고 전망했던 것과 달리

 

 




미국은 정말로 일본어를 지옥에서나 쓰게 만들 기세로

 

 




미국을 건드리면 좆된다는 사례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키나와와 오가사와라제도를 정리하고 나서

 

일본 본토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뛰어넘는 병력을 상륙시키고

 

일본 본토에 진공하여 일본을 물리적으로 멸망시킬 몰락 작전을 기획하기도 하였으나

 

 




일본 역시 미군의 상륙을 예상하고 있었고

 

죽자살자 저항하겠다는 '1억 총옥쇄' 를 결의하며 항전 의지를 내비쳤기에

 

 

미군 입장에서 그 동안 발생한 미군 사망자를 훌쩍 뛰어넘는 피해를 감당하고

 

냅다 상륙작전을 개시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대신 미국은 일본 열도 주변에 기뢰를 싹 깔아두고

 




일본 본토에 대해 주기적으로 제초제를 투하하여

 




일본을 문자 그대로 '굶겨 죽이려' 고 하였다

 




미국이 계산하기로는 3년 정도만 고립시키고 주기적으로 제초제를 뿌린다면

 

별다른 미군 희생 없이 일본을 문자 그대로 절멸 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을 정도다

 

 

즉 미국 입장에선 일제가 저항할 수 없을 때까지

 

나치를 패망시킨 것보다 더 잔인할 정도로 즈려밟을 생각이었다

 




미국은 전쟁을 1945년이 아니라 1946년, 1947년...

 

일본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언제까지든 전쟁을 지속할 기세였다

 




 

즉, 일제는 이미 1944년에 이길 수 없는 전쟁인 걸 알고 있었고

 

미국은 1946년이나 그 이후에도 전쟁을 계속해서 수행할 의지가 충분한 게 명백했는데

 

어째서 일제는 항복을 선언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는 미국이 요구하는 항복 조건과

 

일제가 수용할 수 있던 항복 조건이 평행을 달렸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조건 없는 일본의 항복을 요구하고 있었고

 

일제는 여러가지 조건을 내걸었으나

 

두 가지 조건 만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하나는 덴노를 정점으로 한 국체의 보존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선의 포기였다

 

 

전자는 일본 제국의 정신적 기둥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던 거였지만

 

후자는 조선을 포기하는 순간 일본은 더 이상 제국이고 열강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조선은 면적은 혼슈와 비슷하고 인구는 3000만에 불과했지만

 

조선은행권 엔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들을 묶어주는 매개였으며

 

 

일제가 부설한 한반도 북부의 산업단지는 세계적인 수준였으며

 

화학 공업 분야에서는 그 수준이 놀라울 수준이어서

 

당시 흥남의 조선 질소 비료 회사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그리고 한반도 남부의 농경지는 일본 본토와 맞먹는 수준으로

 

일본 제국의 신민들을 먹여 살릴 식량 안보의 필수적인 역할이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인식하고 

 

조선인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했던 것과 별개로

 

 

조선은 일본 제국에서 분리 될 수 없는 일부로 생각했다

 

위에 말했던 1억 총옥쇄의 경우

 

당시 일본 본토의 인구는 7000만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나머지 3000만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했다는 의미기에

 

 




일제는 자기네가 망하면 망했지

 

조선의 독립을 용인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보통 식민 지배국이 피지배국에 집착하여

 

절대 놓아주지 않으려고 온갖 추한 꼴을 다 보여준 사례로

 

프랑스가 (자신들이 본토로 인식했던) 알제리에서 했던 사례를 꼽는데,

 




 

일제가 조선에 보인 집착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 광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러다보니 일제와 연합군의 강화 논의는

 

시간이 지나도 진전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945년 봄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상황이 크게 바뀌었는데

 




바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비록 뛰어난 지도력으로

 

미국 역사상 4선을 역임한 인물이지만

 

 




말년의 루즈벨트는 총명함과 거리가 멀었다

 

당시 루즈벨트는 치매로 의심되는 상황이었고

 

그 결과 미국은 태평양 전쟁의 승기를 다 잡아놓고

 

스탈린에게 너무나 많은 양보를 했다

 

 

그 중 하나가 만주에 있던 일제 관동군의 병력이 100만이라는 말에

 

소련이 이를 분쇄하겠다는 제안에 흔쾌히 동의한 것인데

 

 




루즈벨트 4기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그야말로 얼굴 마담 수준이었기에

 

당시 이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접근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루즈벨트의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대통령직을 승계받고 나서

 

루즈벨트의 대외 정책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미국은 1945년 초 태평양 전쟁의 승기를 잡고 나서

 

한반도 역시 미국이 진공할 구상을 하고 있었으나

 




이미 루즈벨트가 만주에 있는 일제 관동군 수가 100만이라는 보고에

 

1945년 초 얄타 회담에서 독일이 항복하고 나서 3개월 후

 

소련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비밀리에 합의한 상황이었다

 

 

 




 

즉 미국은 4년 내내 일제와 태평양에서 맞붙으면서

 

이제 승기를 잡고 일제를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할 와중에

 

소련이 참전하면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주는 일 할 판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제를 물리적으로 절멸시킨다는

 

기존의 노선을 포기하고

 

 

일본에 핵무기를 투하함으로서

 

일제가 항복하게끔 유도하려고 하였다

 

 




이에 1945년 7월 16일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트리니티 실험을

 

당초보다 서둘러서 진행했고

 

 



 

그리고 핵무기를 투하할 명분을 얻기 위할 목적으로

 

일제에게 무조건 항복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발표한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일제는 이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았다

 

일제는 자기가 보유한 식민지들 상당수를 포기하더라도

 

소련이 연합국과 일제를 중재해주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으로 10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음에도

 




일제는 1억 총옥쇄 등의 결사 항전 의지를 과시함으로서

 




이런 '독기' 에 질린 연합군이 강화하자고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그럴 수록 아무 의미 없이 헛되이 개죽음을 당하는 이들이 늘어날 뿐이었지만

 

 

아무튼 일제 입장에선 그렇게 자국민들이 갈려나가도

 

일제는 자국민들을 국체를 지키기 위한 도구이자

 

그냥 머릿수만 채우면 되는 개돼지들로 보았기에

 

이들이 희생되는 건 눈길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도쿄 대공습에서 10만 넘는 일본인들이 불타 죽었지만

 

일제 수뇌부 입장에선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일제는 '국체' 를 보존하고, 수뇌부의 안위만 지킬 수 있다면

 

'1억 총옥쇄' 라며 자국민들을 얼마든지 옥쇄하자고 선동하면서 버틸 기세였다

 

 

 

그렇기에 미국은 일제가 무조건 항복 의사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한다

 

 




 

이로 인하여 히로시마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워낙 피해가 컸던 나머지 중심부들이 초토화 되어 

 

주변부들부터 보고가 들어오는 상황이라

 

일제 수뇌부들은 원자폭탄에 대해 '맞을 만 한 가 보다' 라고 생각했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원자폭탄을 투하했음에도 일제로부터 별다른 반응이 없자

 

미국은 원자폭탄이 한 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원자폭탄을 투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팻 맨을 투하하였다

 




 

그리고 같은 날 소련이 얄타 회담에서 합의했던 것처럼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그 동안 일제 수뇌부들은 태평양 전쟁에서 소련이 중재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어떻게든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을 상대로 무의미한 항쟁을 하고 있었으나

 

소련의 참전은 이들의 희망회로를 박살내버렸다

 

 




소련군은 파죽지세로 만주에 있던 관동군을 격파해버리고

 

한반도 북부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순식간에 장악하고

 

일본 본토인 홋카이도에 상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전쟁이 길어지면 일본은 소련에게 점령되어 공산화 되거나

 




독일과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과 소련에게 찢겨질 운명이 될 터였다

 




 

 

 

이렇게 되자 일제 수뇌부들은

 

자국민들이 그렇게 의미 없이 희생될 때에는 끄떡도 하지 않다가

 

항전해봐야 소련만 좋은 꼴이 되었다는 걸 깨닫고는

 

포츠담 회담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들이 머리를 굴린 결과,

 

만일 일본 본토에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만 상륙을 한다면

 

악질 전범을 제외한 이들은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참작을 받을 수 있지만

 

 

소련군이 일본 본토를 장악한다면 

 

덴노를 비롯한 일제 수뇌부 전부가 교수대에 오를 판이었기에

 

그럴 바에야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에 항복하는 게

 

자신들 몸 보신에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만주에서 일제 고위직들은 소련군이 쳐들어오자

 

만주에 있던 일본인들을 내팽개치고 자신들만 도망가서

 

남겨진 일본인들이 학살과 강간 약탈에 노출되었던 일처럼

 

 




일제 수뇌부들은 최후까지 비겁하고 쓰레기 같은 모습 뿐이었다

 

 




비록 일제가 포츠담 선언에 따라 무조건 항복하는 걸로 결정난 상황에서

 

상황 판단 못하고 끝까지 저항하자는 멍청이들이 있긴 했지만

 

일제 수뇌부들 대부분이 이러한 멍청이들에 호응하지 않았기에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 일제 수뇌부들이 의식했던 걸지는 모르겠지만

 

소련이 진주한 곳은 어김없이 학살과 약탈, 공산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들의 몸보신이 그나마 일본인들에게 나은 미래를 주긴 했다는 점에서 씁쓸할 따름이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일제가 일주일만 일찍 항복했다면

 

한반도에 소련군이 진주하지 않았기에 분단이 되지도 않았을 거고

 

분단이 없었기에 6.25 같은 비극 없이 제대로 된 통일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고

 




 

만일 일제가 끝까지 저항했더라면

 

포츠담 선언 당시 

 

미군이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전시 벌어질 일에 대해 전망했던 것처럼

 

한반도는 소련에게 장악당하는 꼬라지가 되었을 거라는 점에서

 



 

 

일제 스스로 이길 수 없는 전쟁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째서 이러한 무의미한 발악 때문에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지

 

이에 대해 일제의 항복 과정에 대해 되새겨 보기 위해서 글을 써 보았다

 

 

곱씹어 볼 수록 자국민들을 갈아나가면서

 

자신들의 몸보신을 보장받으려고 했던 일제 수뇌부들의 행태가

 

정말로 쓰레기같고 이 때문에 한반도가 희생되었다는 게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플 따름이다

 

 

 

베댓펌


1억 총옥쇄도 골때리지만 그 후속편격인 1억 총참회도 골때리죠. 훗날 스스로 신흥종교를 만드는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총리가 의회에서 한 말인데 본문의 1억 총옥쇄짤에도 나와 있지만 당시 일본 인구는 1억이 안됐고 조선과 타이완(소위 외지)의 인구를 합쳐야 1억이었죠. 그러니 1억 총참회라는건 식민지인들도 참회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소리가 되어버리죠. 사실 1억 총참회는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게 되는걸 이용하려 했던 면이 크지만요.


그렇지요

사실 일본인들은 시바 료타로 사관이 양심적이라면서 고평가하는데

저는 아무리 봐도 시바 료타로 사관도 책임 회피로 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모든 죄악은 '우리 착한 일본인들이 지은 게 아니야' 라고 말하기 위해

단지 군부 저 미친 것들이 사악한 짓을 한거고

우리는 거기에 선동되어 속은 어린 양일 뿐이다

이런 소리로만 들리거든요


1억 총참회도 딱 그런 느낌으로 생각됩니다

 

일제가 끌고간 징병,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눈물겨운 호소는

현재 일본국의 국민이 아니라고 외면하면서


정작 전쟁 책임에 대해서는

너희들도 과거 일본 제국의 신민이었다며


아무튼 오스트리아처럼 니들도 제국의 일부로서

역사적으로 전쟁에 대한 책임을 분담할 의무가 있다

이런 식으로 물타려는 의도가 보여서 기분이 나쁘더군요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그런 높으신 분들 지키는 문화가 철저하니까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미 독립한 한국에게 전쟁 책임을 물어봐야

국제 사회 누구도 '뭔 개소리여?' 라고 할 뿐이니 의미가 없는 말이긴 하지요


다만, 자국 내에서는 이런식으로 책임 소재를 폭넓게 전가할 수 있으므로

그 결과 높으신 분의 잘못은 조용히 희석이 되는 구조가 맞습니다


손타쿠처럼 대놓고 말만 안했을 뿐 높으신분 의향대로 진행하고 나서

나중에 문제 생기면 높으신분들은 빠져나가는 모양새 너무나도 익숙하니까요


8월 15일 인도, 파키스탄도 영국한테 독립한날 아니야?

 

ㅇㅇ 1947년 8월 15일에 독립한 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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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메아리산울림 | 작성시간 24.08.07 일본 진짜 역겹다
  • 작성자한 글자도 안맞아 이 개색히야 | 작성시간 24.08.07 좋은 글 잘 읽었어!
    참..씁쓸하다
  • 작성자이우인. | 작성시간 24.08.07 알면 알수록 개역겨운 일본...
  • 작성자와개뚱뚱씨발 | 작성시간 24.08.07 모든 부분에서 일본은 한국의 기생충 같음... 일본이랑은 영원히 척져야함. 그게 한국 국익에 도움됨...
  • 작성자글루팅 | 작성시간 24.08.07 그냥 빨리 더 죽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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