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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불가촉천민을 둘러싼 두 위인의 다툼

작성자흥미돋는글|작성시간24.08.12|조회수2,686 목록 댓글 11

출처: https://www.fmkorea.com/7345004938

 

 



간디, 인도의 국부로 여겨지는 인물이자

비폭력·무저항 운동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댓펌)

간디 특) 입 바른 소리 번지르르하면서 청렴결백한 이미지인데 실상은 물도 일반물 안먹고 꿀탄 레몬 탄산수에 고급 채식으로만 식사하는 등 서민적이거나 평범함과 거리가 매우 멈
(그 외 논란의 사생활은 덤)

 

 

 



하지만 간디도 인간인 만큼 단점과 실책, 오판이 있었고,

 

특히나 인도는 문화, 종교, 인종 갈등과

구시대적 전통에 의한 차별이 심각했고

간디는 이 중 일부를 묵인하거나 축소하려 했다.

 

'불가촉천민' 문제도 그 중 하나였다.

 

 

 

 

 

 



애들아 내가 좋은 생각이 났다

 

찬달라(부정타는 것=불가촉천민)라는 단어는

너무 차별적인 것 같지 않냐??

 

우리가 아무리 카스트 제도에 익숙해졌다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함ㅇㅇ

 

 

 

 



엥 그럼 부정타는 걸 부정탄다고 하지

그걸 뭐 어떻게 불러요

 

걔들은 카스트도 없음ㅇㅇ 더러워 더러워ㅇㅇ

 

 

(*간디가 용어를 바꾸자고 처음 한 건 독립 이전이지만

편의상 인도 국기를 사용하자)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야! 그럼 못써

그러니까 하리잔(신의 아들)이라고 부르자

 

이러면 차별적인 시선도 완화되고

서로 손에 손잡고 영국으로부터 독립 캬ㅋㅋㅋㅋㅋ

내 머리에서 나왔지만 지렸다 지렸어

 

 

 

 

 

 



오 저도 그거 알아요

바꾸는 거 없이 적당하게 씨부리는 그거ㅇㅇ

 

 

하지만 많은 불가촉천민들은 (당연히)

간디의 주장에 부정적이었는데,

 

실질적으로 대우해 주는 건 없이

'올ㅋㅋ 신의 아들ㅋㅋ'이라고 불러 봤자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간디는 굴하지 않고 이들을 하리잔이라 부르며

이들의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하리잔 운동'을 벌였지만,

 

불가촉천민에겐 '그런 단어가 뭔 소용임'이라고 욕을 먹고

대중들에겐 '걔들을 사람 취급함?!'이라고 욕을 먹었다.

 

 

 

 

 

 



소신발언) 하리잔이란 ㅈ같은 단어 말고

달리트(억압받는 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함

 

 

찬달라를 실질적으로 대체한 '달리트'라는 단어를 만들고,

불가촉천민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한 리더는

암베드카르 박사였다.

 

그는 미국·영국·독일에서 유학한 엘리트였지만,

아버지가 불가촉천민이라는 배경 때문에

상위 카스트로부터 천대받곤 했다.

 

 

 

 

 

 

 

 



지금이야 많이 완화된 편이지만,

독립 이전 인도에서의 불가촉천민 차별은 심각했다.

 

'왜 하다못해 소도 대접을 받는데

인간인 우리는 이렇게 비참하게 대우하냐?'

 

'지나가던 개도 우물에서 물을 먹는데

우린 더러워진다고 우물도 못 쓰게 하냐?'

라는 불만이 생기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자 암베드카르는 1만 명의 불가촉천민과 행진,

초다르 저수지에서 단체로 물을 떠먹음으로써

카스트 제도 ㅈ까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카스트 제도의 근원인 힌두교의 법전을 불태우고

사원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폭력시위를 벌이는 등

격렬하게 투쟁하기 시작한다.

 

 

 

 

 

 



소신발언)카스트 제도 ㅈ같은 건 맞지만

이번엔 우리가 만든 거 아님



1932년, 영국은 불가촉천민의 대우 향상을 위해

그들에게 분리된 선거권을 보장하고자 한다.

 

 

 

 

 

 

 

 



암베드카르는 이 법안에 긍정적이었다.

 

그에게는 불가촉천민이 분리선거구에서

자신들만의 정치적 권력을 보장받음으로써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간디는 이러한 조치가

인도를 분열시키려는 영국의 계략이라며

단식까지 불사하며 반대한다.

 

 

 

 

 

 

 

 



결국 암베드카르가 한 발 물러서

불가촉천민에 할당된 의석을 늘리는 식으로 마무리했는데,

 

간디가 단식을 하다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전국적으로 불가촉천민에 대한

린치가 일어날 것이었기 때문이다.

 

 

 

 

 

 

 

간디의 최우선 목표는 독립과 통일된 인도였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꽤나 도덕적이고,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이었지만,

힌두교적 질서를 무시하면 조국이 쪼개질 것을 염려했다.

 

그렇기에 그는 대중의 인식 변화를 추구하며

불가촉천민을 사회가 포용하길 원했지만,

카스트 제도에 실질적으로 손을 대진 못했다.

 

 

 

 

 

 

 


여러분이 암베드카르에 이입하기 쉽게 도와줄 짤

 

반면 암베드카르는 차별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불가촉천민에게 독립은 의미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제도적, 전국적인 차별의 철폐를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1931년 8월,

분리선거구 문제로 한참 싸우던 두 남자가 만났을 때

암베드카르가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선생님은 저에게 조국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물조차 얻어마실 수 없는 곳을 조국이라고 부릅니까?

 

선생님, 저에게 조국은 없습니다!'

 

 

 

 

 

 

 

 

간디는 그 말에 기겁하며

 

'불가촉천민이 힌두교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불가촉천민에게 있어서도 자살행위다'라고 설득했다.

 

 

 

 

 

 

 

 



그렇게 조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애쓰던 간디는

무슬림에게도 포용의 정신을 역설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포용의 자세에 불만을 가진

극단적 힌두주의자에 의해 숨을 거둔다.

 

 

 

 

 

 

 



간디의 사후, 1년 뒤 만들어진 인도의 헌법은

암베드카르가 주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낮은 신분을 가지고 있던 그가

가장 높은, 국가를 구성하는 주춧돌을 결정한 것이다.

 

비로소 이 헌법의 15조를 통해 인도에서

카스트에 의한 제도적 차별은 부정된다.

 

 

 

 

 

 

하지만 인도는 결국 파키스탄-방글라데시와 분리되었고,

지금도 무장투쟁 분리주의가 존재하고 있으며,

 

카스트 제도 역시 그 정도가 줄어들긴 하지만,

사회에서 여전히 갈등의 근원이 되고 있는 실정이므로,

 

두 위인이 내부 문제를 간신히 봉합하여 인도를 만들었지만

두 사상 중 그 무엇도 완벽하게 실현되지 못한 채,

여전히 인도를 좀먹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가촉천민보다 더 낮은 Thurumbar라는 계급도 존재하는데,
이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부정타는' 사람들이라
자기들 몸을 가리기 위해 야자수를 끌고 다녔다고 해요.

뭔 학교에서 일진들이 애들 따돌리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거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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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귀욤뽀짝고양이 | 작성시간 24.08.12 와 재밌게 잘 읽었어!!!! 글 써줘서 고마워🫶
  • 작성자순례자의길 | 작성시간 24.08.12 흥미돋이다
    재밌게 잘 읽었어 고마워!!!!
  • 작성자TRCL | 작성시간 24.08.12 어렸을때 카스트제도도 충격이었는데 불가촉천민이 있다고해서 경악했는데 그 밑도 있다고? 저런걸 만들어서 사람차별하는게 쓰레기종교가 아니면 뭐야
  • 작성자믱키 | 작성시간 24.08.12 뭐냐 21세기에.. 재밌었우!
  • 작성자LALE | 작성시간 24.08.12 계급제도 너무나도 병신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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