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6326038579
요즘 우리는 전쟁에 대해서 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해서 너무 쉽게 말할 때가 있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비록 우리나라가 휴전 국가라고 해도 전쟁이나 직후 상황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이미 사라졌고, 전후 세대가 기성 세대로 집권하게 된 지도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쟁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다른 나라의 사정이나 게임에서만 볼 수 있는 막연한 개념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전쟁은 멋있거나 재미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전쟁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생존자의 삶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끔찍한 사건이다. 이.왜.명?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들의 주제는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 사실상 예고편 역할을 했고, 세계적으로도 많은 예술 작품들에 영향을 준 스페인 내전에 대한 작품들이다. 전쟁에 대한 가벼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작품들을 보며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 세계는 아름다운 곳이고, 그것을 위해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지."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세계 문학 중에서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함께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다. 헤밍웨이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스페인 내전을 잘 그린 작품은 아니다. 물론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에 특파원 자격으로 참전하기도 했고, 스페인 좌파 공화국 정부를 위한 모금 활동을 열심히 할 정도로 스페인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그렇지만 스페인 문화 자체에 대한 이해도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소설을 본토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역 특색을 무시한 인물 관계도와 스페인어를 영어에 맞춘 억지스러운 번역 투의 문장이 꽤 있다. 무엇보다도 스페인 내전을 주 무대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전 자체보다는 헤밍웨이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고찰을 담아있는 점이 가장 아쉽다. 따라서 그냥 읽으면 훌륭한 소설이지만, 스페인 내전에 대한 자세히 알고 싶어서 읽으려고 한다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앞서 밑밥을 많이 깔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좋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이후에 소개할 카탈로니아 찬가에 비해서 스페인 내전에 대한 디테일적인 부분은 떨어지기 때문에 아쉽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 이야기의 강점은 죽음에 대한 헤밍웨이의 고찰이 잘 담겨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소설의 제목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영국의 목사이자 시인이었던 존 던이 쓴 동명의 시에서 차용했다. 여기에서 종은 죽은 사람을 애도할 때 치는 조종(弔鐘)을 의미하는데, 이 시의 핵심 메시지는 죽음은 누구나에게 오기 때문에 누가 죽어서 종을 치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헤밍웨이는 존 던이 전하고자 한 죽음의 불가피하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더 확장시켜 '그렇다면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을 이 소설에서 전개한다.
소설의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이다. 그는 다리를 폭파하라는 임무를 받고 이를 수행하는 70여 시간 정도를 다룬 이야기다. 로버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이 임무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직감한다.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어차피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면 세상을 위한다는 가장 우아하고 숭고한 목적을 위해 살다가 죽기로 한다. 그는 죽더라도 자신이 세상의 악이라고 생각하는 파시즘을 막기로 결심한다. 사실상 죽음을 맞이하게 될 다리 폭파 작전을 개시하기 전에 그는 최선을 다하여 삶을 불태우고 간다. 술도 여한 없이 퍼마시고, 전쟁터에서 만난 사랑하는 여자와 격렬하게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작전을 수행하러 떠난다. 그는 철교를 파괴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다리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 그는 자결을 생각하지만, 대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적군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가기로 결심한다. 어차피 인간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면 나 이외의 사람 혹은 나 이후의 사람들을 위해서 숭고한 희생을 하며 살아가자. 참 헤밍웨이다운 결론이면서도 멋있는 결론이다. 비록 스페인 내전에 대한 디테일은 아쉽지만 전쟁터를 다니면서 죽음에 대한 수많은 고찰을 한 대문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카탈로니아 찬가 - 조지 오웰
"무엇보다도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갑자기 평등과 자유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고 노력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다르게, 이 소설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군인 조지 오웰의 기억을 쓴 회고록에 가까울 정도다. 그래서 솔직히 오웰 특유의 비꼬기나 유머가 들어가 있지만, 문학적인 매력은 조지 오웰의 다른 작품에 비해 조금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 특히 스페인 공화당 정부 진영 측의 분위기가 어땠고, 어떻게 패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소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는 소련 공산당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스페인 내전의 공화파 정부 측은 상당히 많은 집단들이 연합한 형태였는데(오웰은 아나키스트들이 많은 통합노동자당 소속이었다), 이 집단들의 정치적 목적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강한 세력은 스탈린주의자 공산당 세력이었다. 왜냐하면 소련의 지원이 가장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무기를 비롯해서 부대의 전문성이 다른 차원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세력이 강한 스탈린주의자들이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아나키스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시비를 거는 수준을 넘어서서 아예 파시스트 쪽의 간첩이라고 음해하면서 탄압하고 공중분해 시켜버린다. 뿐만 아니라 패전의 기색이 짙어지자 스탈린주의자들은 사실상 스페인 내전에서 발을 빼버린다. 비록 훈련된 훌륭한 군인들은 아니었지만, 자유와 평등을 위해 함께 싸운 동지들을 반역자로 몰고, 내전 이후에도 파시스트의 배신자라고 전세계에 낙인 찍어버린 것을 보고 오웰은 분노에 가득 차 이 소설을 써냈다. 그리고 스탈린주의자들에 대한 분노는 나중에 오웰의 걸작 <동물농장>과 <1984>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대단한 점은 전쟁 속의 이해관계와 그 안에 있었던 내전 속 내전을 적나라하게 잘 그려냈다는 점이다. 단순히 공화파 정부 측 세력이 파시스트에 대항한다고 해서 모두가 단결되고 선한 집단이 아니었으며,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같은 편을 제거한 역사의 어두운 면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냈다. 또한, 잘못된 정보를 쉽게 믿지 말라는 경고도 담겨있다. 실제로 오웰이 카탈로니아 찬가를 집필하고 출판하려고 했을 때 스탈린주의자들의 전세계적인 파워가 강했기 때문에 스페인 내전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이 파시스트에 협조했다는 게 이미 팩트로 굳어져 있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카탈로니아 찬가의 출판은 몇 차례나 거절되었고,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했던 출판사에서 우여곡절 끝에 출판하였으나, 이미 세상은 오웰의 이야기를 거짓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얼마 주지 않은 채 진실은 한참 동안 쓸쓸하게 잊혀졌다. 이처럼 스페인 내전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들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니 자신이 역덕이거나 역덕의 길을 걷고 싶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살라미나의 병사들 - 하비에르 세르카스
"진정한 영웅들은 전쟁에서 태어나 전쟁에서 죽지요. 살아 있는 영웅은 없소이다. 젊은 양반. 모두 다 죽었어요. 모두 죽었어요, 죽었어, 죽었다고."
살라미나의 병사들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쏟아져 나온 스페인 내전 관련 소설 중에서도 손에 꼽는 걸작이다. 스토리 라인 자체는 심플하다. 3부로 나뉘어져 있는 이 소설의 1부는 무명 소설가이자 신문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하비에르 세르카스가 인터뷰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 이를 추적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가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는 스페인 내전 종전 직전 정부 군 측에서 포로들의 집단 총살이 있었는데, 이때 스페인 파시스트 당 창당 멤버인 거물 산체스 마사스가 도망쳤다는 이야기였다. 산체스 마사스는 도망 중에 근방을 수색하던 군인에게 발각되지만, 그 군인은 아무 말도 없이 그의 도망을 모른 척 해줬다고 한다. 2부는 세르카스가 산체스 마사스의 삶을 추적하며 그의 삶을 재구성한 이야기이고, 3부는 산체스 마사스를 놓아준 병사로 추정되는 퇴역 군인 미라예스와의 대화를 담았다.
이 소설의 재미있는 점은 작가가 공화당 정부 쪽의 편을 들지도, 그렇다고 프랑코 세력의 편을 들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내전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고, 전후 세대이기 때문에 중립적인 시선을 두는 게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둘 중 어디에도 정치적인 편을 들지 않고 산체스 마사스와 그 정치적 거물을 풀어준 군인, 그저 이 두 인물의 입장에 대한 인간적인 공감을 한다(물론 너무 중립적으로 써서 그런지 현지에서는 적잖게 프랑코 파를 지지하는 소설이 아니냐고 욕을 먹긴 했다). 2부에서는 파시스트였던 산체스 마사스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인 비판보다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신념을 믿기는 했지만 그도 결국 파시스트들을 이용해 독재를 했던 프랑코에게 이용당한 희생자라고 평가를 한다.
3부에서는 공화당 정부를 위하여, 패전 뒤에는 프랑스로 망명하여 세계 2차 대전에서 나치를 상대로 싸운 미라예스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을 전우들과 함께 전쟁터에 바쳤지만, 정작 스페인에서는 처음에는 프랑코 때문에 그 다음에는 안정적인 민주화를 위한 망각 협정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잊혀진 존재가 된다. 그렇게 영웅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그는 프랑스의 한 양로원에서 쓸쓸하게 생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통해 민주화를 위한 망각 협정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그래도 역시 소설의 백미는 산체스 마사스를 놓아준 병사의 행위다. 솔직히 이 장면이 왜 중요한지 모를 수도 있다. 그냥 단순히 병사의 찐빠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간다고 해서 적군의 거물을 처리하지 않고 그냥 보낸다. 이는 결정하기 쉽지 않은 선택지다. 전쟁의 패배에 대한 화풀이로 죽여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래도 되는 시기였으니까. 그러나 그 병사는 산체스를 그냥 놔주며 인간적인 화해의 메시지를 던진다. 스페인 내전은 이미 오래 전에 끝이 났다. 그때의 전쟁을 하던 이데올로기의 시대도 끝이 났다. 세르카스가 스페인 내전이라는 주제를 꺼낸 이유는 그때 당시 누가 더 잘못을 했는지 꼬집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이름 모를 병사가 했던 것처럼 화해가 필요하며, 미라예스와 같은 잊혀진 영웅들을 기억하며 올바른 스페인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국내에는 인지도가 적은 소설이지만, 충분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한번 잊혀진 영웅들을 함께 기억해보지 않겠는가?
비상의 기술(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 안토니오 알타라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갔다. 자 이제 됐다. 날아오를 시간이...."
비상의 기술(El Arte de Volar)는 우리나라에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니라 만화인데, 워낙 스페인 내전의 모습과 패전 이후 프랑스로 망명한 병사의 삶을 자세하게 그린 명작이기 때문에 소개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실화에 기반한 작품이며, 아나키스트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해 여러 고초를 겪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의 아버지 안토니오의 삶을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번역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품의 제목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작품의 핀트를 잘못 짚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안토니오가 아나키스트는 맞다. 그러나 안토니오가 아나키즘의 개념이나 이론을 확실히 배우고 아나키스트가 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평화로운 세상을 바랐을 뿐이고, 당시 그가 머물던 지역에 유행하던 아나키즘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제로 번역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원제가 비행의 기술인 이유는 안토니오의 90년 인생이 추락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엔지니어를 꿈꾸며 평화로운 세상을 바랐던 소년 안토니오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전쟁에서 평화를 꿈꾸며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결국 패전했고, 전쟁 이후에는 가정을 꾸리는 데에 성공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이 믿어왔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여 죄책감에 시달린다. 노년기에 접어들자 전쟁에서의 PTSD는 점차 심해지면서 그의 정신을 파먹기 시작했고, 주변인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며 괴로워한다. 아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을 모른 체 한다. 그러다가 정신이 멀쩡했던 어느 날, 그는 병원 사람들 몰래 병원 옥상에 올라가는 데 성공한다. 90년 동안의 추락의 경험을 살려 마지막 비행을 통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전쟁은 단순히 살아 돌아온다고 끝나지 않는다. 전쟁은 생존자들이 살아있는 한 영원히 끝이 나지 않는다. 전쟁이 얼마나 한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읽어보기 바란다.
댓펌
글 진짜 완벽한데 딱 하나 오류가 있습니다.
통합노동자당(paum)은 아나키스트가 아니라 '좌파공산주의'라는 부류의 마르크스주의 정당이었습니다.
레닌의 민주의회 해산을 비판하고 민주적인 방식의 다양한 평의회를 통해 이상적인 공산사회를 이룩하자는 개념이었지요. 트로츠키주의와도 조금 다릅니다.
아나키스트들은 대부분 CNT/FAI에 소속되어있었어요.
통합노동자당을 '아나키스트'라고 칭한건 다수파였던 스탈린주의자들의 일방적 주장에 가깝습니다.
독서 초본데 책 내용을 잘 기억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예를들어 책을 다 읽어도 대화 내용으로 꺼내기엔 단편적으로 남아있어서 깊게 이야기할수 없거나
책의 좋은 문구를 얘기하고 싶어도 잘 기억이 안나거나 하는데.
그리고 혹시 전자책도 보시나요?
저는 책을 볼 때 좋은 문장들을 메모를 하면서 책을 읽습니다. 물론 그냥 읽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걸리고 귀찮긴 하지만 기억에 더 오래남고 나중에 찾아보기도 쉽습니다.
전자책도 많이 봅니다. 제가 큰 책장을 살 여력이 없다보니까 전자책으로 책을 많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모하기도 쉬운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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