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박상현
https://otterletter.com/his-foreboding/?fbclid=IwAR2Svi6-YyNy4NwY2tJonB6XatCgNYW64h2yiT7Q2IlVuHu-_NFa_0BkeuE
과학기술혁명이 본격화된 이후로 지난 몇 세기 동안 인류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변화의 속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인류가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라이트 형제가 처음으로 비행에 성공한 후 인류가 달에 착륙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단 66년에 불과하다. 그리고 기술 문명의 엄청난 발전 속도는 사회도 그렇게 빨리 발전하고 있다는 (혹은 변할 수 있다는) 착시현상을 만들어낸다. 그런 섣부른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면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거나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시대를 앞선 사람들이 이룩한 성과는 모두가 누리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제도나 물건의 사용자들이 지적으로 그들과 동일한 수준에 도달해있는 건 아니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승객 중에서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는 이유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1%가 될까?
스마트폰 사용자 중에서 블루투스와 와이파이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0.1%가 될까?
물론 기술적 원리를 몰라도 그 혜택을 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단지 더 편리한 물건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던 옛날 사람들에 비해
우리가 더 나은 사고를 하거나 더 나은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칼 세이건, 1985
어떤 사람이 동시대 사람들에 비해서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세상을 성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고 해서 무조건 그들을 선각자라고 생각하거나 그들의 "예언"이 맞을 거라 단정 지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자신이 우려하는 바를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는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그 사람이 칼 세이건(Carl Sagan)일 때는 더욱더 그렇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나 스티븐 호킹(1942~2018)처럼 아주 뛰어난 과학자 중에는 그 명성이 과학계 너머로 퍼져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경우가 있다. 20세기 중후반에는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이 그렇게 "설명이 필요 없는" 과학자였다. 특히 1980년에 나온 그의 책 '코스모스(Cosmos)'는 13부작 TV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서 대중의 과학지식을 한 단계 올려 놓았고, 현재 중년의 과학기술자 중에는 어린 시절 그걸 보면서 꿈을 키운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학자가 학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을 뿐 아니라 대중적인 영향력까지 큰 경우 정치인들도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1980년대의 미국 정치계는 2020년대의 한국과는 달라서 세이건이 입당 제의를 받지는 않았고, 청문회에 초청을 받았다. 아래의 영상은 그가 의회에서 기후변화에 관해 이야기한 1985년 청문회의 모두 발언 부분이다. 세이건은 여기에서 대기의 온실효과란 어떤 것인지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가 왜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다들 경청하고 있지만, 유난히 열심히 듣고 있는 상원의원이 한 명 보인다. 그게 카메라를 잡은 사람에게도 그 진지한 관심이 눈에 띄었던 듯, 두 번이나 클로즈업해서 그 의원을 카메라에 잡는다. 그해(1985년) 초선 상원의원이었고, 1991년에 빌 클린턴의 부통령이 된, 그리고 훗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기후변화를 경고하는 일에 매진한 앨 고어(Al Gore)다.
대중이 기후변화에 대해서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앨 고어가 2006년에 발표한 기후변화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부터다. 그런데 고어는 이미 1976년부터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하원의원이던 시절에 의회 최초로 관련 청문회를 개최한 인물이다.
화질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 영상에서 칼 세이건은 우리가 지난 10년 넘게 들었던 내용을 이야기한다. 이산화탄소, 메탄과 같은 온실가스가 인간의 활동으로 대기에 많아졌고, 이는 지구의 평균기온을 높여 기후변화가 올 거라는 경고다. 하지만 세이건이 청문회를 통해 의회의 행동을 촉구한 후에도 대부분 의원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고, 그중 상당수는 오히려 자신에게 돈을 주는 화석연료산업 로비스트의 요구에 따라 재생 에너지 산업의 성장을 막아왔다.
세이건은 이 모두발언에서 미국과 소련(러시아)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얘기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석탄 산업이 기후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예상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줄이자고 했고 (하지만 2022년에도 미국은 이 문제로 여전히 싸움 중이다), 대체에너지 개발을 주장했고, 미국과 소련이 합의해도 중국이 따라주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문제임을 지적했다. 지금 들으면 예언처럼 들리지만, 세이건은 예언가나 점성술사가 아니라 데이터를 보고 판단하는 과학자였을 뿐이다.
세이건과 고어는 1980년대에 이미 인류가 어떤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를 경고했지만, 대중은 관심이 없었고, 대부분의 정치인은 이 문제의 해결책을 때로는 소극적으로, 때로는 적극적으로 저지했다. (같은 해에 열린 또 다른 청문회에서 그가 했던 말을 들어보면 세이건은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해서 그다지 높은 신뢰를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칼 세이건, 1995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칼 세이건의 대표작은 '코스모스'다. 1985년에는 (훗날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소설 '콘택트(Contact)'를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6년에 세상을 떠난 그가 마지막으로 펴낸 책은 'The Demon-Haunted World' (1995, 한국에서는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다. 이 책은 세이건의 다른 책들에 비해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근래 들어 독자들에게서 "예언서 같다"는 말을 들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번역문은 아래를 보라.)
"나는 나의 아이들이나 손주들 세대의 미국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다. 미국은 서비스와 정보 경제(산업)에 있을 것이고, 주요 제조업의 대부분이 다른 나라로 넘어갔을 것이고, 뛰어난 기술의 힘은 극소수의 손에 넘어간 상태에서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이해하지도 못하게 되고, 대중은 자신의 어젠다를 설정하거나 힘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지식에 기반한 의문조차 제기할 능력을 잃게 되고, 점을 치거나 불안한 마음에 별자리를 알아보면서 우리의 비판적 사고능력이 쇠퇴하고, 자신의 기분에 좋은 것과 진실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눈치도 채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신과 미개한 시대로 되돌아갈 것 같은 예감이다. 미국인들이 단순해지고(dumbing down, 복잡한 지식과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있음은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에 등장하는 의미 있는 콘텐츠가 서서히 쇠퇴하는 모습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30초짜리 (지금은 10초 이하로 줄어들었다) 사운드바이트, 가장 단순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 유사과학과 미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무지에 대한 찬양(celebration of ignorance)이 그렇다."
물론 1995년이면 21세기를 5년 앞두고 있었고, 이미 21세기의 모습을 제법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었던 시점이다. 핵심 제조업이 해외로 넘어가고 미국은 서비스와 정보 경제(information economy)로 들어간다는 건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한 내용이고 진행 중에 있었다.
미국인들이 이 글을 다시 읽으며 감탄한 것은 "기술의 힘은 극소수의 손에 넘어간 상태에서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이해하지도 못하게 되고" 같은 대목이다. 2018년에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소환해서 "페이스북이 어떻게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는 식의 기초도 모르는 질문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짧은 사운드바이트(soundbite)가 복잡한 지식과 뉘앙스 있는 토론을 대체하고 대중의 비판적 사고능력이 쇠퇴하는 것은 물론, 그 결과로 사람들이 미신과 점성술, 유사 과학을 믿게 될 것 같다는 그의 우려는 사실이 되었다. 사람들은 긴 기사를 읽는 대신 트위터의 140자만으로 자신의 견해를 결정하고 분노했고, TV에 나와서 유사 의학을 퍼뜨리며 유명해진 인물은 상원의원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자와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는 행동은 트럼프가 자신의 지지 세력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지에 대한 찬양(celebration of ignorance)'은 트럼프 임기 4년을 가장 잘 요약해주는 표현이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 방역과 대응에 미국이 계속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다.
큐어넌(QAnon)과 같은 음모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증거를 댈 수 없는 이유로 "진보세력과 숨은 정부가 증거를 없애지 않고 놔둘 리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논리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사실상 어떤 근거없는 얘기도 의심할 수 없는 신앙이 된다.
대표적인 게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JFK Jr.)의 환생설이다. JFK 주니어는 1999년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지만 큐어넌 컬트에 따르면 JFK 주니어가 JFK 암살 기념일인 11월 22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와서 도널드 트럼프를 다시 대통령으로 "회복"시키거나, 혹은 트럼프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2024년 대통령선거에 함께 출마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농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농담도, 장난도 아니다.
점점 더 단순해지는 미디어를 보면서 대중이 어리석어질 것을 걱정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그게 무지에 대한 찬양, 그리고 미신과 유사과학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 것은 감탄스럽다. 세이건이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의 말처럼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류의 역사가, 인류가 만들어낸 진보가 사실은 그다지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그의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번역문은 아래)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 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 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 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