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7355810018
인지도가 낮은 나라들을 언급할 때마다
'와 저런 나라도 있었냐?' 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인구수 대비 파리 올림픽 메달을 가장 많이 획득한 나라 TOP 10
이렇게요ㅋㅋ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저는 전문가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닙니다.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나라는...
??? : 그래... 나다...
?
그레나다입니다.
그레나다 Grenada
수도 : 세인트조지스 (Saint George's)
면적 : 344㎢ (경남 남해군, 강원 인제군 북면과 비슷)
인구 : 114,621명 (경남 통영시, 서울 중구, 서울 강북구 미아동과 비슷)
언어 : 영어(공용어), 그레나다 크레올 영어
민족 구성 : 아프리카계 흑인 82.4%, 혼혈 13.3%, 인도계 2.2%
종교 : 기독교계열 96.6%(개신교 48.8%, 가톨릭 39.2% 등) 힌두교 1.3%
일단 그레나다는 여기에 있습니다.
잘 안보인다구요?
이러면 좀 보이실까요?
우측 하단 쪽에 Grenada라고 쓰여있는 곳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 곳에는 최소 기원전 3600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합니다.
기원후 750년 ~ 1250년 사이에 가장 많은 인구가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가뭄과 전쟁으로 이후 인구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1498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읏차!
(정확하게는 콜럼버스는 그레나다 지역을 발견하기만 하고 상륙하지는 않았음)
(그레나다 원주민)
님 누구임?
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고 하는 사람인데,
여기가 인도 맞지?
여긴 이제부터 '라 콘셉시온'이다.
(정보 : 콜럼버스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아메리카를 인도라고 믿고 있었다.)
(스페인 출신 선원들)
얼마 전(1492년)에 우리 스페인이 그라나다를 정복했는데 그거 기념으로 여기도 그냥 '라 그라나다' 라고 부르죠?
이렇게 콜럼버스가 야심차게 지은 이름인 '라 콘셉시온'은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ㅋㅋ
스페인의 발견 이후로 유럽인과의 소규모 교역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유럽인들의 정착지 건설 시도도 있었지만 원주민들의 강한 저항으로 번번히 무산됩니다.
1609년 4월
(잉글랜드 왕국)
오? 여기 스페인 땅인줄 알았는데 아직 유럽인들이 아무도 안 사네?
우리가 여기 정착해야겠다 개꿀ㅋㅋ
(그레나다에 정착한 잉글랜드인)
우리 이 섬에 가만히 있지만 말고 요 밑에 트리니다드 섬에 '불법 무역' 하러 가보자ㅋㅋ
쟤네 잠깐 나갔냐?
여기 조금 남아있는 잉글랜드 놈들 다 죽여버려
1609년 9월
다녀왔습니-
???
정착지에 남아있던 잉글랜드인(이었던 것)
으악 ㅅㅂ 튀어
...이런 식으로 말이죠.
1649년 3월
(자크 딜 뒤 파르케, 프랑스의 군인, 마르티니크의 초대 총독)
이 섬에도 정착지를 세워볼까?
여기 섬 이름이 뭐라고? '라 그라나다?'
그럼 프랑스 식으로 '르 그레나다'라고 불러야겠다ㅎ
그런데 나는 마르티니크 총독이라 이 섬에 오래 머물지는 못하거든?
내 사촌 '장 르 콩트'한테 이 섬을 맡겨야지!
(장 르 콩트, 그레나다의 초대 총독, 초상화를 못 찾음 ㅈㅅ)
ㅎㅎ 한 자리 먹었다
원주민 분들! 저희는 그냥 얌전히 살테니까 작은 정착지만 하나 세울게요!
(그레나다에 거주하던 카리브족 추장 카이루안)
쟤네 조금 수상한데...
이번엔 인원도 많아서 우리가 먼저 공격하기도 어려워 보이고...
그래도 얌전히 살겠다니깐 일단 냅둬보자!
1649년 11월
아이고 추장님ㅠㅠ
?
저희는 그레나다 바로 위 그레나딘 제도에 살던 카리브족 전사들인데요,
저기 프랑스 놈들이 섬에 쳐들어와서 이러쿵저러쿵...
...그랬단 말이지?
"태워"
프랑스에 분노한 카리브족은 그레나다의 프랑스인 정착지를 공격했고,
카리브족의 기습 공격에 대응하지 못한 프랑스 정착민들은 요새로 튀었고, 일부는 섬을 탈출했습니다.
형님ㅠㅠ 저희 좀 도와주세요ㅠㅠ
ㅇㅋ
1650년 5월, 자크 딜 뒤 파르케가 군대를 이끌고 그레나다에 상륙했고,
고립된 프랑스인들을 공격하려던 카리브족 전사들을 기습 공격해 전세를 역전시킵니다.
자크 딜 뒤 파르케는 곧바로 마르티니크로 돌아갔지만
그레나다에서의 원주민과 프랑스인들의 전투는 자그마치 1654년까지 지속되었고,
마지막으로 카리브족의 추장 카이루안과 그의 추종자들은 항복하는 대신 절벽에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 때 전투로 그레나다의 원주민들은 사실상 전멸했고,
그 후로 그레나다는 마르티니크의 종속국 형태로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레나다는 인디고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경제를 유지시켰고,
이후 1714년, 코코아 콩의 유입으로 초콜릿 플랜테이션이 대표적인 산업이 되었습니다.
1700년 기준 그레나다의 인구는 백인 257명, 유색인 53명, 노예 525명이었다고 합니다.
1756년
7년 전쟁 발발
(프랑스 왕국)
졌다ㅠㅠ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우리 재정상태가 ㅈ된것 같지만 어쨌든 이겼다!
그래도 이긴 ㅂsin이 낫대ㅎ
7년 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1763년 파리 조약으로 인해 그레나다는 영국에 양도되었습니다.
미국 독립 전쟁이 한창이던 1779년에 프랑스가 그레나다 섬을 잠시 재점령했지만,
미국 독립 전쟁이 끝난 뒤 체결된 1783년의 파리 조약으로 그레나다를 점령하던 프랑스군은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1795년
(줄리앙 페동, 마르티니크 태생의 프랑스계 혼혈인)
야, 근데 우리 주민들은 다 프랑스계고 프랑스어만 쓰는데
영국이 우리를 지배하는게 맞냐?
"엎어"
되겠냐
영국이 2년에 걸친 이 반란을 진압하는데 성공했고,
이 결과로 오히려 영국의 지배를 공고히 하게 됩니다.
이후 그레나다의 경제는 점점 성장하게 되고, 부족한 노동력은 아프리카 출신의 노예로 충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1833년, 노예제도가 완전히 불법화되고,
다시 부족해진 노동자는 인도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1843년, 동인도 제도(현 인도네시아)에서 영국으로 가던 상선에 육두구 나무가 실려있었고,
상선이 그레나다에 남겨둔 소량의 육두구 나무가 그레나다에서 크게 번성하게 됩니다.
이 후 육두구가 그레나다의 상징이 됩니다.
(그레나다의 수출품목 구조, Nutmeg = 육두구)
그래서 국기에도 육두구가 있어요
(국기 왼쪽에 불꽃처럼 생긴게 육두구임)
이후 그냥저냥 평범한 카리브해의 영국 식민지로 남아있다가
1974년, 영연방 왕국으로 독립하게 됩니다.
(에릭 게리, 그레나다의 초대 총리이자 독재자)
이 양반은 1967년부터 그레나다의 수상이었는데, 독립 이후 자연스럽게 총리직을 역임하게 되고,
1976년에 치뤄진 그레나다의 첫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게 되지만
야당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정치권이 혼란에 빠집니다.
그와중에 에릭 게리는 갱과 비밀경찰을 동원해 잔혹한 독재정치를 펼쳤는데,
외국 자본과의 유착으로 실업률과 빈곤율이 미친 듯이 치솟았고, 국민들이 이에 불만을 품게 됩니다.
1979년
(모리스 비숍, 그레나다의 제2대 총리)
그래? 그럼 쿠데타 맛 좀 봐라!
1979년, 모리스 비숍이 무력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는데,
모리스 비숍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근대화 사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은 이 쿠데타를 위법으로 보았고,
주변국들과 사이가 틀어지는 등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모리스 비숍은 강경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습니다.
오죽하면 막내아들 이름을 블라디미르 레닌 비숍으로 지었을 정도;;
이 때 정권을 잡으면서 수립한 정부가 '그레나다 인민 혁명정부'였으니...
그 와중에 카리브해 국가들 가운데 나름 형님 역할을 했던 자메이카에서도 좌파 정권이 붕괴되며 그레나다의 고립은 심화되었고...
그레나다는 결국 카리브해의 제일 큰 형님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합니다.
카리브해의 제일 큰 형님이 누구냐구요...?
(쿠바)
ㅎㅇ
그레나다는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대한 UN의 비난 결의안에도 쿠바와 함께 반대하고,
혁명정부 수립 이후 소련과 쿠바 등 공산국가의 원조를 받는 등 친소, 친공 정책을 펼칩니다.
1983년
(버나드 코드, 당시 그레나다 부총리)
(허드슨 오스틴, 당시 그레나다군 사령관)
그 와중에 모리스 비숍보다 더 급진적 레닌주의자인 버나드 코드 부총리를 지지하던 허드슨 오스틴 그레나다군 사령관이 모리스 비숍을 감금하기에 이르렀고...
모리스 비숍을 지지하던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내전이 발생합니다.
이 때가 기회다 튀어야지ㅌㅌ
탕!
모리스 비숍은 도주하던 중 총살당하게 되며
버나드 코드와 허드슨 오스틴은 그레나다 총독을 투옥하며 군사정부를 수립,선포하기에 이릅니다.
(그레나다는 영연방 왕국에 속하므로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를 국가원수로 모셨고, 영국의 국왕이 그레나다의 국가원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레나다 총독이 사실상의 국가원수 역할(=얼굴마담)을 수행합니다. 실질적인 권력은 없습니다.)
???
띵동-
누구세요?
???
배달이요~
엥 저희 아무것도 안시켰는데요?
민주주의 배달이요.
1983년 10월 25일, 미국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그레나다를 침공합니다.
이는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이 참여한 최초의 대규모 군사 작전이었습니다.
야 그레나다가 아무리 공산주의에 씹창난 국가라고 해도 영연방 왕국인데 침공은 ㅈㄴ 너무하는거 아니냐?
영국 말고도 많은 국가들이 미국을 비난하기에 이르렀고,
UN 총회에서 찬성 108표, 반대 9표, 기권 27표로 가이아나와 니카라과의 공동 결의안이 가결되었는데,
이 결의안에는 그레나다 주권 보호, 외국군 즉시 철수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알빠노
미국은 미군을 평화유지군이라고 이름만 바꾸고 그레나다 침공을 이어 나가 사실상 UN 결의안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UN 안보리 결의안도 표결에 부쳐졌는데...
응~ 거부권~
결과적으로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이 쿠바군을 등에 업은 그레나다군을 격파하는데 성공하며 4일만에 전쟁을 종료시킵니다.
1979년 인민해방군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던 그레나다군은 이 전쟁을 끝으로 해체됩니다.
이듬해 12월에는 평화유지군의 감시 하에 민주적인 선거가 진행되었고,
미군은 1985년 6월까지 그레나다에 주둔하다가 철수했습니다.
그레나다는 이후 정치도 빠르게 안정화되었고,
카리브해의 국가들 가운데에서는 치안도 안정적인 편입니다.
1차 산업 위주의 바나나공화국 같은 산업 구조를 보이지만,
2023년 기준 1인당 GDP 11,623달러에 경제성장률도 4.8%를 기록하는 등 나름 탄탄해보이기까지 합니다.
1차 산업을 제외하면 카리브해 섬나라인 지리적 특성을 이용한 관광업 또한 그레나다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주요 산업이구요,
그외의 사항으로는 그레나다 여권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무비자로 갈 수 있고, 친미국가라 E-2 비자가 수월하게 나오기 때문에 여권 장사가 쏠쏠하다고 합니다.
(수도 세인트조지스의 전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