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5410202653
한민족의 위대한 유산 팔만대장경
하지만 이 팔만대장경은
'내놔충'들에 의해
우리 강토에서 사리질 위기를 맞기도 하였어
바로 일본이
이 팔만대장경에 대해 '내놔'를 시전했던 것으로...
일본은 고려말 잡아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송환하고 대장경의 인쇄본을 받은 이래로 그것을 탐내게 됨
* 조선이 건국된 후 일본은 태조 원년부터 중종 34년까지 무려 87차례에 걸쳐 조선에 대장경 서적을 달라고 요구해서 45차례나 받아갔어(유교국가인 조선이 건국됨에 따라 이전보다 대장경의 중요성이 떨어진 것을 일본이 파악하고 더욱 그것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유력하게 존재함)
* 물론 일본도 대장경 서적을 받을 때 나름 자신들의 토산물을 바치거나 잡아온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조치들을 하거나 그랬지만...
한편 일본의 계속된 팔만대장경 관련 요구가 귀찮았던
태종은
그것을 아예 일본에 줄 생각을 하기도 하였는데...
전하 그걸 해결책이라고...
주는 것은 쉬워도 다시 받지는 못할 텐데요
* 다행히도 신하들의 반대에 없던 일이 되었지
내놔라 팔만대장경~!!!
*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일본은 세종 5년 규주 등 135인이 때로 몰려와 팔만대장경을 줄 것을 청하였어
나는 관대하다. 어차피 무쓸모인데 그냥 줘 버릴까?...
* 세종은 일본 사신들에게 대장경이 여러 개이면 줄수도 있지만 한자판이 1개뿐임을 들어 주기 힘들다고 말하였지만...
* 한편으로는 신하들에게 어차피 대장경은 무용지물이니 그냥 주자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어
저기 대왕님?.... 그러다 후대에 기록되실?...
*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도 신하들이 반대하였는데...
* 유교국가 조선의 신하들이 대장경의 반출을 반대한 것은 일본이 달라는 것을 그대로 주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줄 수 없는 것까지 달라고 청할 것이라는 논리에 의해서였어(물론 이 의견 자체도 충분히 일리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겉으로는 차마 대장경의 중요성을 표현하지 못해도 내심 사대부들도 그 안에 새겨진 종교적 이야기를 떠나서 대장경 그 자체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는 해석도 존재함)
미안 대장경은 없던 일로 ㅎㅎ
* 세종은 이에 신하들의 의견을 수용하였지만...
일본 거야~ 일본 거야~
* 규주 등은 이에 팔만대장경을 내놓으라고 단식을 하기에 이르렀지...
* 더 나아가 그들은 일본 본국에 대장경판은 어차피 못 받게 되었으니 병선 수천척을 보내어 약탈하는 것이 어떠냐는 편지를 써서 보내려 하기도 하였는데... 왜승 가하가 그것을 빼돌려 통사 이춘발에게 건내는 사건도 벌어짐
맡겨놨냐... 뭐 이런...
* 하지만 세종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일본에 대한 온건책을 계속 주장하였고 팔만대장경 대신 산스크리트어로 쓴 밀교대장경판과 주화엄경판을 보냈어
대장경판을 받지 못한 것은 실로 민망하오나...
* 참고로 일본 사신단은 마지막까지 뒤끝을 부려 세종에게 감사를 표하면서도 대장경판을 받지 못한 것이 민망하다는 이야기를 꺼냄(아니 니들 꺼냐고...)
참으로 노답이로구나...
* 이후에도 일본은 성종 시절 구변국주를 사칭해 대장경판을 청하기도 함
* 임진왜란 때도 위기였는데 의병, 승병이 목숨을 걸고 사수하여 팔만대장경을 수호했지
* 근현대 일본의 침탈 과정에서는 해인사 승려들이 목숨 걸고 그것에 반출을 막았는데, 유학자 황현 또한 이에 감탄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어
* 글을 마칩니다.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댓펌
https://mobile.twitter.com/incunabula/status/1574546784365445136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보 보존 사례라는 글...
몰랐는데 저떄 팔만대장경 달라한게 일본 서부의 오우치 가문이었더라구요 ㅎㅎ
백제계임을 대놓고 광고하던
워낙 조선왕조랑도 자기들 백제계라고하며 소통도 잘해서 혹시나 해서 찔러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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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1년에 땅을 달라고 하기도 그랬죠...
* 세종 5년의 사건을 오우치 가문이 보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기는 한 데... 실록에저 사건과 관련하여 '대내전(오우치에 대한 우리의 표현)'이라는 표현이 없고 일본 국왕(아마도 막부)의 사신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사신단의 규모도 매우 컸던 것을 보면 세종 5년 팔만대장경을 보내달라고 때 쓴 세력이 오우치라는 것은 근거가 미약하지 않나 싶습니다.
* 갈라진 일본인만큼 여러 세력이 각각 조선에 사신을 보내기도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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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센고쿠시대 이전까지 전국 최강이었던 오우치에서"도" 대장경을 달라고 한건 사실이구요
코끼리까지 진상하면서 대장경을 하사해 달라고 요청했죠
거기다 오우치 가문자체가 백제 임성태자의 후손이기에 백제땅 한곳을 하사해 달라고 청하여 조선 조정에서는 실제로 100만평 정도를 임지로 줄까 진지하게 의논하였지만
일본에 빌미를 줄거라는 신하들의 반대에 포기했죠
오우치 가문의 후손은 2000년대에 한국에 기부도 하고 백제 왕릉에 참배를 하고 돌아기기도 하였습니다
https://www.mk.co.kr/news/culture/6865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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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문하신 아이야 작성시간 24.08.21 남의꺼를 달라고 단식하는놈들은 뭐하는놈들이고;;;;;;;;; 사고방식 특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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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말차 프라푸치노 작성시간 24.08.21 태생이 빈대짓이 근본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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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데미그라스소스 작성시간 24.08.21 왜 남의거를 달라고하는거야 산다는것도 아니고???? 왜저런거야 이해가안되네 역시 상종못할 부류 유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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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우유왕자 작성시간 24.08.21 쟤들은 진짜 맡겨놨나 왜 달라고 떼를 써?
지들이 만들던가 미친놈들 -
작성자류시오 작성시간 24.08.21 이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