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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북한에 핵폭탄 이상의 충격을 안겨준 사건!!!!! '임수경 방북사건'

작성자변비대왕|작성시간24.09.01|조회수1,823 목록 댓글 8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며 20대 국회의원 공천에서는 하위 컷오프(···)로 당분간 정치를 떠나게 되었음.

탈북자에 대해서 막말도 하고 당내에서도 거친 언사로 트러블메이커의 이미지에 안티도 많이 있긴 하나, 이분이 소싯적에는 북한 정권 수립 이래 가장 거대한 충공깽을 주민들에게 선사했던 현대사의 주인공이라는거.

 

그렇다면 '임수경 방북사건'은 도대체 무엇이며, 북한에 어떤 층격을 안겨주었단걸까?

 

 

 

때는 1989년.

한국이 1년전 냉전체제의 붕괴를 상징하는 동서화합의 장이자 가장 성공한 올림픽이라고 평가받는 서울 올림픽을 개최했음.

 

물론 북한은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그 순간부터 배알이 꼴렸었고 자기들이 가진 나름의 외교망을 총동원해서 유치를 방해하려 했지만 결과는 실패.

 

1986년에 김포공항 폭탄테러사건, 1987년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 테러사건 등등 온갖 치졸하고 야비한 방법을 동원해서 올림픽을 훼방놓으려 했지만

역시나 결과는 실패.

 

그래서 북한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1989년 제 13회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이란걸 개최하게 됨.

세계학생축전이란  사회주의 국가 청년들의 문화, 스포츠, 학술 대회 등을 총망라하는 행사로 냉전 시기 제 3세계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주로 개최되었던 나름대로 규모있던 이벤트.

 

177개 국가, 약 22,000명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고 북한 정부도 올림픽보다 더 큰 규모의 행사를 개최했다고 선전하면서 자존심을 세우려 했음.

 

하지만 세계청년학생축전은 이후 동구권 공산 독재 체제의 붕괴와 함께 똥망 테크를 타버렸고(…) 가뜩이나 부가가치를 기대하기 힘든 행사를 무리하게 개최한 북한측은 막대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음.

 

이때 평양의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온갖 과시용 건물들을 뚜덕뚜덕 지어대었고 사회주의 국가의 관광단을 초청해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종의 과시용 성격이 강했던만큼 고스란히 북한 경제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는 북한 경제가 몰락하는 계기가 됨.

 

그때 만든 희대의 돈지랄능라도 5.1 경기장

 

각설하고, 이때 북한은 조선학생위원회 명의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에 초청장을 보냄. 올림픽 이후 해빙 분위기 덕분에 잘하면 방북이 이뤄질수도 있었는대, 하필 문익환 목사의 밀입북 사건 때문에 정부에선 전대협의 방북을 전면적으로 불허하게됨.

하지만 임수경은 전대협의 대표 자격으로 일본 - 서베를린 - 모스크바 - 평양 경로를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게 됨.

 

 

 

임수경의 방북은 남북 양쪽에 폭탄을 떨어뜨림!

사실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당시 온갖 밀입북 사건이 터지고 있었기 때문에 '헐 이제는 꼬꼬마 대학생도 북한에 들어가네' 정도로 그냥 튀는 애구나.... 정도로만 생각한 반면, 북한 사회에선 사실상 핵폭탄이 터짐. 실제로 후폭풍까지 있었다는 점에서 진짜 핵폭탄이었다는거!!!

 

당시에 방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남자들로 남한에서도 제법 명망을 지녀서 함부로 하기 어려운 이들이 많았지만, 임수경은 중산층 자제에 아직 앳된 평범한 대학생이었음!

 

거기다 임수경의 모습은 노동운동이나 민족운동에 투신한 투사의 모습이 아닌 그냥 흔하디 흔한 발랄한 남한 대학생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함.

 

 

당장에 북한의 관심은 임수경에게 집중!!!!!

오죽하면 북한 언론이 김일성보다 더 많이 취재하려고 했던 유일한 인물이란 평가까지 있을 정도!!!

 

살벌한 사회통제가 당연시 되는 이북에서 임수경이 나타나면 동원하지도 않은 지역 주민들까지 자발적으로 몰려들면서 인근 공장이 모조리 마비되는 상황!!!

 

그런 상황인만큼 북한에서는 선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고 상투적인 선전 방문을 준비했지만, 북한의 뜻대로 안됨.

임수경의 돌출행동은 곳곳에서 튀어나옴.

 

처음에 와서 한 말이

"저는 북한 체제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북한이 좋아서 온 게 아닙니다." ㄷㄷㄷ

 

 

 

거기다 북한에서는 가보로 취급받을 김정일 하사품을 그냥 두고 나오고, 북한의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만만하게 준비한 선전용 컴퓨터를 보고는

 

"어, 우리 집에 있는 거랑 똑같은 거네?"(…)

 

당시 북한의 자존심에 사정없이 상처를 주는건 물론, 앞서 말한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 역시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

심지어 세습정치까지 물고 늘어지며 거침없이 비판을 해서 북한측 안내원들을 경악시킴.

 

특히 북측이 미리 준비해둔 조선은 하나다라는 선전문구를 끝끝내 거부하고 조국은 하나다로 고치게 만들고, 학생들이 선물해준 스카프도 버리고, 집단체조 관람중에 퇴장하고,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방문도 '다른 행사도 있는데 거긴 왜 가요?'라고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걸 북측 실무자들이 울며불며 사정해서 겨우겨우 방문하고....

 

 

하지만 이런 비판적이거나 도발적인 발언보다는 젊은 여대생의 존재 자체에 북한 사람들은 엄청나게 열광함!

 

당시를 기억하는 탈북자들의 증언과 임수경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북한에서 임수경은 인기 정상의 아이돌과 같은 대인기를 얻음!

 

당시 임수경은 전형적인 새내기 운동권 여대생의 복장(하얀 티셔츠에 긴 청바지, 운동화)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이미지부터가 북한에서는 엄청난 문화컬쳐컬쳐쇼크었던 것.

 

 

당시 북한에서 대학생의 이미지라고 하면 그저 시커먼 옷을 입고 당의 규율이나 주체사상만 외워야만 했던, 수동적이고 암울한 이미지였는데 작고 당돌한 여성이 캐주얼한 복장으로 통일 통일을 외치니 신선한 충격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었음.

 

그래서 당시 북한 대학생들은 몰래 모여서 "남조선의 대학생이 저렇게 당당하게 다니는데 우리는 뭐냐."라고 한탄 비슷하게 말하기도 했었다고.

 

임수경이 가는 곳마다 북한 사람들이 몰려와서 보려고 난리치고 환호하고, 기자들이 플래쉬를 터뜨리고 질문공세를 퍼부은건 물론, 종종 노래해보라고 기자들이 요구하기도 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전대협진군가> 같은걸 불렀다고 함.

 

근데 이후에 이 두 노래는 북한에서 대유행했다고....

 

오죽했으며 이런 예상하지 못한 임수경의 선전전(?) 덕분에 의도치 않게 이득을 본 남한 정부에서 뜻하지 않게 공을 세웠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할까.

 

 

 

설명했듯 당시 북한 사회가 이 사건으로 받은 충격은 상당히 컸음.

임수경이란 인물 자체가 당시의 북한의 젊은층에게 굉장한 충격이었기 때문.

 

바로 이 때문에 북한에서 임수경은 '자유'를 상징하게 됨.

 

방북 후 북한 대학생 사이에서는 원래는 금지된 미국의 상징인, 임수경과 같은 면티에 청바지의 캐주얼한 차림이 일명 림수경 복장으로 대유행함!!!

 

또한 북한은 중산층 자제인 임수경을 통해서 남한이 어느 사회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되었음.

즉 임수경의 여유롭고 자유분방한 행동과 경제적 여유를 통해 남한의 경제적 수준과 남한 사회가 누리는 자유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

 

덕분에 북한에서 사상투쟁(사실상의 사상통제)을 하느라고 고생했다는 후문.

 

 

물론 임수경은 판문점을 통해 귀환함과 동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징역을 선고받았지만, 감옥에 갇힌 임수경이 북한 사회에 다시한번 충격을 주게 됨.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1990년대 초반 남북총리급 회담이 열렸을 때, 임수경과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걸 믿지 못한 북한 기자방문단이 불시에 임수경의 집을 방문.

 

당연히 '통일열사의 가족이 고초를 당하는지 확인하고, 만약 사실이면 비판을 하겠다'는 의도.

 

헌데 임수경의 집에 들이닥쳐보니 임수경의 가족들은 정말로 멀쩡히 살아 있었고, 임수경 가족의 생활상까지 북한 TV로 방영(사실상 생중계)되게 됨.

 

물론 임수경의 가족도 빨갱이라는 손가락질에 고초를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언니는 직장에서 잘리고 서울지하철공사 간부였던 부친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얼마뒤에 사직했지만,

 

북한에서는 누군가가 밀입남했다가 돌아올 경우 본인은 사형, 가족과 일가친척들은 수용소로 들어가는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판이었으니 임수경의 가족들이 멀쩡히 살아서 돌아다닌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일 수밖에.

 


더구나 그런 범죄자의 집안에 (북한 기준으로)그 귀한 컬러 TV, 파, 냉장고 등 온갖 가전제품이 있고 냉장고를 열었을 때 통조림이나 우유, 온갖 과일 등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에 북한 주민들은 그만 눈이 돌아감.....

 

체제경쟁에서 졌다는 걸 TV생중계를 통해 보여주며 그야말로 망했어요.

 

충격은 임수경의 재판에서도 이어짐.

 

북한은 임수경이 15년 구형에 5년 징역을 받았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한국 정부를 비판했지만, 제대로 된 재판을 열고 사형이 아니라 15년형을 구형받고, 겨우 5년형만 받았다는 사실이 북한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짐(···)

 

게다가 그마저도 다 채우지 않고 3년 반만에 출소했다는 사실까지 북한 언론에 보도되어 충공깽!!!!!

반역자를 가석방하는 남한 정권이라니....

 

사실 북한 사람들은 임수경이 판문점을 넘어 돌아갈 때 죽으려고 돌아가는 줄 알고 슬퍼했을 정도....

근데 감옥에서 편지와 일기를 쓰고 책도 읽었다네!!!! 럴수럴수 이럴수가!!!!

 

 

이렇게 임수경은 전혀 본인이 예상도 못한....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의 상징이 되어버리고 북한 주민들의 인식을 단번에 깨버리며 핵폭탄급의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 남북간의 체제전쟁에서 가장 엄청난 공을 세운 승리투수(···)가 되어버림.

 

90년대부터 이어진 북한의 경제몰락과 식량난 등을 견디다 못한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서의 삶을 꿈꾸며 탈북자가 급속도로 증가한 이유가 되기도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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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두산V7 | 작성시간 24.09.01 진짜 흥미돋이다 대단한 분이네 ㅋㅋㅋ
  • 작성자율무맴맴맴 | 작성시간 24.09.01 대박이네 ㅋㅋㅋ 생중계되고있어서 그런지 김일성도 함부로 못건드린것같네
  • 작성자금연구역 | 작성시간 24.09.01 진짜 깡대박이다 큰인물이야 ㅋㅋ
  • 작성자스프링클러 | 작성시간 24.09.01 와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재밌다 이거 엄빠한테 물어보니까 당시 우리 뉴스도 통제해서 이렇게 자세한건 남한 사람들도 몰랐대 이용당하고 온 줄 알았다더라
  • 작성자노엘×리암 | 작성시간 24.09.03 저 때 공산권도 다 무너지고 그래서 저 계기로 한국도 곧 통일될줄 알았다고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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