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타인 닉네임, 트위터
이거 기사 뒷부분까지 읽어야 함.... https://t.co/CvWVR7iYSu pic.twitter.com/VMxnev4C1x
— Abilis (@JOOism) September 3, 2024
통영이 고향인 친구에게 들었는데
— 썩어라 수시생 (@susisaeng_suck) September 4, 2024
추용호 선생님 윤이상 생가 바로 앞에 거의 허물어져가는 공방에서 현수막 걸고 통영시랑 몇년간 싸우셨다네요 ㅠㅠ https://t.co/6uIQBCaYfy
겨우 문화재 지정된듯하다
— 열일곱 (@duhflaubert) September 3, 2024
지정되면 뭐하나 도로는 깐다는데.. 150년 된 한옥을 어떻게 무슨 수로 옮기냐고.. 눈물난다
100년 넘게 보존된 공방은 단순히 작품이 만들어지는 장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곳인데 그걸 강제로 밀어버리고(실제로 강제집행 당시 일부를 헐어버렸다고 함... 2020년까지도 도구를 안 돌려줬나 봄...) 도로 만들면 그게 뭐... 뭐임?
— 파르페✨🌈 (@myomyo_parfait) September 3, 2024
뭘 위한 거야 대체 pic.twitter.com/YIcnhvYuOR
추용호 장인은 최근 10여년 동안 공방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가 공방을 겸해 사용하는 통영시 도천동 집은 그의 할아버지가 1868년 지은 것으로, 이곳에서 그의 아버지 추웅동 장인이 태어나 평생 살았고, 그 역시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줄곧 살았다. 전체 면적은 50㎡로, 마당을 가운데 두고 방 2개, 부엌, 화장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담장은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무너져 콘크리트로 다시 만들었고, 초가지붕도 1960년대 슬레이트로 바꿨지만, 기본 구조와 흙벽으로 된 내부는 그대로다. 통영에는 1600년대부터 삼도수군통제영이 관리하던 12공방이 있었는데, 그의 집은 마지막 남은 공방이었다. 또 그의 집 대문 앞 빈터는 윤이상 선생의 생가터다.
그러나 2011년부터 도천동 일대 도로 확장공사를 진행하던 통영시는 추용호 장인이 집 철거에 반대하자, 2016년 5월30일 강제집행을 했다. 추용호 장인이 잠시 외출한 틈을 타서 집 안에 있던 가재도구와 소반을 만드는 도구·재료를 모두 들어내고 대문에 못질을 해서 출입을 통제한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