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6598211407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되었으나 여전히 구 경성부, 아니 이제 다시 서울시가 된 이 곳은 일인들이 해놓은 작명이 넘쳐나는 동네였다.
일본도 조선은 경성이라하여 이 곳에
가장 몰려살았다.
특히 일인의 집단거주지였던 후암동 근처인 중구와 구용산(지금의 원효로 인근)은 상당수의 동네가 일본식 작명이 이루어 진 곳이었음.
최초의 서울시장 김형민은 "가로명 제정위원회"를 만들어 도로명을 바꾸기 시작했다
소화통(昭和通しょうわどおり, 쇼와도리)=>퇴계로
일인들이 몰려살던 본정(本町, 혼마치[ほんまち])
일본 상인들이 조선을 수탈하던 본진이었던 이 곳은
건천동에서 태어나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려 충무로가 되었다. 일본의 기운을 누른다는 의미에선 이만한 작명이 없긴하다.
중구 황금정(黃金町:고카네마치), 여기는 조청상민수륙장정 이래 서울에서 화교들이 밀집하여 살던곳. 즉 조선 최대의 차이나타운이었다.
충무로의 작명취지와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의 기운을 누른다는 의미로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 장군의 성을 따서 을지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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