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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cxxx]역기능 흙부모 가정에서 딸이 엄마를 절대 동정하면 안 되는 이유

작성자leino|작성시간24.09.19|조회수5,498 목록 댓글 9

출처: https://dirtmentalist.tistory.com/m/150



예전에 이 블로그의 포스팅 중 하나에 '부모의 나르시시즘은 유독 딸을 향하는 것 같다'는 댓글이 달린 적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남성으로 추정되는 방문객은 '아마도 여성이 육체적 힘이 약해서'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예상을 했다. 그러자 그 뒤에는 부모의 패악질에 견디다 못해 성인이 된 후 맞폭력을 썼더니 그 뒤로 부모가 더 이상 패악질을 부리지 않더라는 1차 경험 댓이 달렸다. 또 이와 다른 포스팅에는 다른 방문객이 '흙수저라면 남자든 여자든 격투기 등을 배워서 신체를 단련해야 한다'는 식의 댓을 단 적이 있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 중 상당수를 탈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기본 소득이나 받고 소비만 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는 21세기에, 고작 신체적 완력을 둘러싼 이런 논의를 보고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 현대 사회에서 물리력이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에 그냥 웃어넘길 말이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위의 의견들은 나르시시스트 및/또는 흙부모를 둔 역기능 가족의 자녀들이 진지하게 여겨야 할 내용이며, 실제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 중 다수는 본능적으로 이게 결코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부모의 나르시시즘이 아들보다 딸을 향하는 경우가 많고, 같은 조건일 때 딸이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피해를 더 크게 입는 경향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비밀도 아니며 그 이유도 간단하다. 세상의 중심은 남성이고, 가족 제도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아직도 가부장제로 운영되며, 세계 부와 권력의 대부분을 남성이 소유하고 있다. 강약약강인 나르시시스트가 여성을 선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은 물론이고, 한국과 전혀 다른 서양 문화권에서조차 사라지지 않는 유산 상속의 아들 쏠림 현상 등 모든 종류의 아들-딸 차별은 부모의 나르시시즘이 발현된 결과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동성 자녀도 거의 반드시 차별을 하게 되어 있지만 자녀의 성별이 다를 경우, 아직도 성별은 차별의 강력한 원인 중 하나가 된다.


그런데 사실 나르시시스트 흙부모에게는 사회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위치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1차적으로 접하게 되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완력 차이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때로는 심지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차별 요인이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나르시시즘이 강한 부모일수록, 구세대 부모일수록, 지적 수준이 낮은 부모일수록, 흙계급에 가까운 부모일수록 그들의 세계관에는 신체적 완력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신체적 완력이 강한 사람 앞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양순해지고, 반대로 완력이 약한 사람 앞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폭군이 되는 성향이 나타난다. 나르시시즘이 강할수록, 구세대일수록, 지적 수준이 낮을수록, 흙계급에 가까울수록 이 성향은 거의 야생 짐승의 습성처럼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성적 판단으로 제어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들에게는 이런 성향이 무의식적 반사 수준으로 대뇌 판단을 거치지 않고 발현되며, 이것이 본인들의 가장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왜? 본인들이 매우 동물적인 세상에 속해있으며 동물적인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모와 자식 세대는 다른 웬만한 나라보다 극심한 문화 차이를 보인다. 현재 부모 세대는 학교에서 체벌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자식 세대는 체벌이 금지된 환경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폭력에 대한 경험 차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잠재의식 세계관의 어마어마한 차이로 이어진다. 겉으로야 제아무리 '폭력이 나쁘다', '폭행은 범죄다' 라는 명제를 모든 국민이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도, 사회는 신체적 완력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모두가 공유하는 상식인 것 같아도, 실제 현실에서 신체적 완력과 폭력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하는가에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완전히 문명화된 현대인이라면 직장에서 누군가와 첨예한 갈등이 일어나 1:1 맞짱을 뜨고 있는 상황에서 폭력 발생의 가능성 자체를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폭력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경험하며 살아와 이것이 인생의 기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상 공간에서 누군가와 익명으로 의견 충돌이 나는 상황에서조차 신체적 완력을 자동으로 고려하며 반응한다. 문명화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문명화된 공간에 속해있다는 신뢰가 있는 사람이라면 드웨인 존슨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신분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직접 마주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조차 상대방이 자신보다 물리적으로 강하다는 사실에 기가 죽어 자신의 의견을 펼치지 못하거나 상대방에게 그냥 세뇌되어 버린다. 완력 서열에 복종하는 것이 완전히 내면화되어 사고방식과 의사결정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흙부모들은 바로 그런 동물적 강약약강 가치관을 내재화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딸을 아들보다 더 우습게 여긴다. 별 다른 추가 이유는 필요 없다. 애초에 성별이 정해졌을 때부터 딸은 자신보다 완력이 약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냥 웬지 더 가볍고, 더 우습게 보이는 것이다. 그냥 힘만 약하다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힘이 약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우습게 보게 된다. 딸이니까 더 멍청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조종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면에서 더 열등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는 그저 인상 비평에 불과하며 대뇌를 거친 이성적 판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거를 대라 하면 자신의 주관적 인상 외의 설명은 잘 못할 것이 뻔하지만, 그렇다고 반박이 쉬울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시적인 덩치를 가늠해보고 싸움 여부를 결정하는 야생 짐승마냥, 나르시시스트 흙부모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매우 단순하고, 피상적이지만 그만큼 동물적인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수정이 힘들다.


그리고 나르시시즘 성향 수준이 비슷하다고 가정할 경우, 아들과 딸의 완력 차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버지보다 어머니 쪽일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가 가부장적이거나 폭력적인 양상을 가지고 있고 어머니가 여기에 평생 기가 눌려 살았는데 경제 수준은 흙이고 어머니가 강한 나르시시즘 성향을 가질 경우, 이런 어머니는 딸(및 세상의 다른 여성)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악질적인 일진이 된다. 아들에 대한 태도는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대개 아들에게는 딸보다 덜 착취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딸 앞에서 악마가 되는 것과는 정반대로 아들(및 세상의 다른 남성)에게는 답답할 정도로 양순하기 짝이 없는 순애보 망부석 타입의 여성으로 기능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이러한 어머니들은 평생 본인 자신이 남성의 물리적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남성의 물리적 완력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자 자원이라고 여기며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 또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자신의 몸에서 나왔지만 자신이 가지지 못한 강한 완력을 가진 아들을 신비롭게 여겨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숭배하는 경향이 생겨나며, 반대로 아무리 다른 부분에서 잘난 면이 있더라도 신체적 완력 면에서 자신을 압도하지 못하는 여성에게는 아무런 놀라움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아무리 역기능 흙가정에서 겉으로 보기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피해자, 나아가 가부장제의 피해자처럼 보인다고 해도 딸들은 함부로 어머니를 동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 감정은 일방적인 짝사랑이며, 나르시시스트 어머니는 절대 딸에게 고마워하지 않고 다만 호구로 여길 뿐이다. 이런 어머니를 지원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때까지 착취당하겠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단 어머니 뿐 아니라 누군가를 동정하거나 도와줄 때는 반드시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 번째, 나에게 피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두 번째, 상대에게 희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동정심과 도움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표현으로도 모자랄, 내 인생을 구덩이에 쳐박아 버릴 인생 최악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서울대를 합격하고도 그냥 안 갔다거나, 전문직 라이센스를 그냥 반납해버렸다든가 하는 괴이한 선택보다도 훨씬 더 나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엄마도 피해자이고 불쌍하잖아요."


하지만 가해자는 당신이 아니며 따라서 당신이 보상해줄 수도, 책임져줄 수도 없다. 가부장적인 나르시시스트 어머니는 자신을 아무리 학대하는 남성이라 해도 오로지 가족 내 남성의 관심과 사랑만을 원할 뿐이며, 애초부터 자기와 똑같은 미천한 존재에 불과한 딸의 사랑 따위는 받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알아서 이용당해준다니 없는 것보다는 나아서 여기저기 밑천으로 써먹을 뿐이다. 남성만을 두려워하고 남성만을 숭배하는 명예남성 나르시시스트 어머니의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성이다. 같은 여성이 아무리 잘해줘도 나르시시스트 어머니의 불행이나 상처는 해결되지 않는다.


예전에 한 나르시시즘 관련 영문 사이트에서 '나르시시스트는 공포와 호감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강약약강을 뼛속 깊이 내재화하는 나르시시스트의 기이한 감정선을 잘 포착한 표현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에게 공포를 선사할 수 있는 존재(=그만큼 자신보다 힘과 권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면 좋아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막말로 흠씬 두들겨팰수록(애매하게 맞서 싸우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서열이 분명해질때까지 일방적으로 두들겨패야 한다) 천사가 되고, 잘해줄수록 악마가 되는 것이 나르시시스트이다. 나를 진심으로 미워하며 악마처럼 굴던 부모가 막상 연을 정말 끊으려 하면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꿔 사랑을 호소하며 매달리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그래서이다. 상대가 나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거나 나를 괴롭힐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악질 일진이던 나르시시스트도 갑자기 양순해질 수 있다. 물론 이를 보고 반성이라 생각해서 잘해줬다간 다시 악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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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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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버러지헌터 | 작성시간 24.09.19 맞말이다
  • 작성자나나콤나 | 작성시간 24.09.19 뼈저리게 느끼는 바야. 동정한 내가 등신..
  • 작성자알잘떡깔싼 | 작성시간 24.09.19 그치 맞아 그건 엄마가 선택한 삶이니깐 내가 죄책감 느낄 필요 없어.
  • 작성자파인애플스틱 | 작성시간 24.09.19 동정하는 순간 내 인생은 없는거여 탈출만이 답임
  • 작성자착접검지 | 작성시간 24.11.03 와 기혼들이 섭웨남알바를 더 안쓰럽게 보거나 여자면 만만하게 보고 찍어누르려는 모습을 보일때가 생각나는데 이 글 내용이 일맥상통한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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