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희. 한겨레 박미향 기자
지상파 방송에 컴백한 정선희





난 그의 팬이 아니었다. 그는 제 성공에 겨워 스스로가 대견해져버린, 하여 그 언사가 되바라져버린, 그러면서도 직업적 제 몫은 해내는, 그런 정도 처자라 여겼었다. 촛불 발언 역시 그 애티튜드가 초래한 과실이라 여겼고. 사건 후엔 관련뉴스 며칠 팔로우하다 음, 이건 결국 사생활의 문제겠다 싶었다. 그리곤 잊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쁜 세상이니. 그러다 얼마 전 그의 지상파 컴백 기사를 우연히 봤다. 돌아왔구나. 그래 또 살아가야지. 그런 정도. 그렇게 끝났을 게다. 댓글만 보지 않았더라면. 댓글이, 험악했다. 이건 비호감이 아니라 저주였다. 주장들은 그랬다. 뭔가 의혹 여전하다는 거다. 근데 충분한 해명 없었다는 거다. 


김어준이 만난 여자

 그러니까 그가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 아직 판명나지 않았다는 거. 하여 내가 어쩌면 나쁜 사람이 착한 척 하는 데 속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하는, 그런 불안과 불신. 더구나 내가 놀아나고 있을지 모를 불쾌한 가능성과 그가 피해자일지 모를 측은한 가능성, 그 양극단의 모호한 공존. 하여 그의 웃음을 어찌 대할지 도대체가 황망한. 그렇게 당혹스러운. 그런 불편한.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 불편은 알겠다. 근데 그 불편을 이유로 사람들은 그에게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다 여기는 걸까. 은퇴? 그는 그 요구에 대체 어디까지 호응해야만 하는 걸까. 은둔? 이거, 당사자 한 번 만나봐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정선희를 만났다.

 

하소연 따위 듣고 올 생각 애초부터 없었다. 사실관계만 따지자. 야박하게. 그게 내 방식의 예의다. 위로하러 간 게 아니니까. 그건 내 몫이 아니니까. 하여 다짐부터 했다.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엎어도 된다. 나 역시 두루뭉술하면 그냥 덮겠다. 그러니 피차 부담 갖지 말자. 대신 최대한 가 보자. 질문도 그렇게 하겠다. 끄덕인다. 좋다. 기본적인 상황인식부터 물었다. 사람들이 왜 본인을 불편해한다 생각하나. “원하는 답을 제가 안 줬으니까. 저는 답을 알고 있다고들 생각하니까. 하지만 제게 없는 답을 어떻게 드려요. 그 사람이 살아 있다면 어쩌면 저도 진흙탕 싸움 했을 수도 있어요. 나도 고결한 사람 아니니까. 하지만 난 싸울 상대가 없어요.”

 

바투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실종인가 납치인가. “실종이죠, 어휴.(한숨) 안미선(안재환 누나)씨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당시 <일요신문> 인터뷰한 것도 그분이고. 살 빼려고 기도원 들어가 있다고. 나중에 입원해 있던 저한테 문자를 보내와요. 이거 자살이어서도 안 되고 자살로 보여서도 안 된다. 거기서 저는 그분과 연을 끊은 거예요.” 처음부터 이해가 안 간다. 그 양반은 왜 그랬고 당신은 또 왜 연을 끊었나. “전부 다 듣기 원하세요? 들어도 기사엔 못 쓰실 텐데.” 그건 두고 보자. 하지만 전부 원한다. 물끄러미 본다. “좋아요. 자, 재환이와 전 ‘정오의 희망곡’에서 처음 만나게 되요.” 그리곤 내리 3시간 반을 쏟아낸다. 국지성 폭우처럼. 콸콸. 그 말들 다 제 안에 가둬 두고 대체 어찌 버텼나 싶다. 듣고 보니 알겠다. 도무지 옮길 수가 없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도리가 아닌 게다. 망자들에게도 산자들에게도. 그럼에도 제3자가 갈피 잡기 위한 최소한의 대목 몇 추려, 무리하게, 옮겨본다. 이유는 있다 짚자. 



 

 1) “후줄근한 양복입고 사업한다고 뛰어다는 게 신선했어요. 얼굴 보느라 손거울 들고 다니는 애들과는 달랐어요. 매일매일 봐도 어떻게 안 질릴 수가 있을까, 오글오글한 멘트를 주고받으며 불타는 연애 했어요.(웃음) 어느 날 결혼하고 싶다고, 너여야만 한다고, 강하게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내 생애 없었어요. 너무 설렜죠.”

 

 2) “연애한지 3개월 안 됐을 때 3천을 빌려 달랬어요. 놀랐죠. 가게 주류대금이라고. 빌려줬죠. 곧 받았고. 한 달 뒤 또 5천. 다른 사람한테 비싼 이자 주느니 너한테 100만원씩 주겠다고. 제가 무슨 소리냐고 우리 사이에. 자존심 상할까봐 오히려 주면서 눈치 봤죠. 얼마 후 또 5천. 이유는 매번 달랐죠. 그땐 제가 화를 냈어요. 뭐냐 이게. 하지만 줬고. 그때부터 불안했어요. 설명은 힘든데. 뭔가 있는 거 같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아요.”

정선희. 한겨레 박미향 기자
<정선희> 한겨레 박미향 기자
 

 3) “1월 말부터 재환이가 잠을 못 잤어요. 동업하던 사람이 6억몇천 민사 걸었다고. 뭐라 설명하는데 잘 모르겠고 나한테 확 들어온 건 민사라는 말.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이름 언론에 나가는 거야? 그런 게 걱정되는 거죠. 그때부터 통장 가압류 되고 직원들 월급을 제가 주기 시작해요. 2천, 3천, 5천... 그러다 4월에 대체 빚이 얼마냐고. 한 10억 되냐고. 그 정도 된데요. 근데 가게만 팔리면 정리할 수 있어서 이야기 안 했대요.”

 

 4) “4월 되니 내 통장 있던 돈을 다 썼어요. 한 4억5천. 자기 아는 제 2금융권 있데요. 우리 아버지 보증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남편이 다른 사람한테 굽실거리는 건 너무 싫으니까. 며칠 고민하다 도장 찍었어요. 그게 나중에 경매압류 날아온 거 보니까 사채 공증이에요. 2억5천에 2500 선이자 떼고 복리로 3개월 밀린 상태로. 내 아파트 주소가 거기 적혀 있었어요.”

 

 5) “그 와중에 또 제 촛불발언이 뻥 터진 거죠. 그때 제가 그 화장품회사 모델하고 3% 모델료 받는 조건으로...” 잠깐. 그럼 그게 애초 둘이 기획한 사업이 아니었나. “연예인이 그런 사업을 얼마나 알겠어요. 아니죠. 그건 우리 사업이 아니었죠. 러닝개런티도 요즘은 효력이 없어요. 그러니까 전 이미지 모델만 딱 한 거죠. 날짜 잡히면 가서 방송 하고.”

 

 6) “그 즈음 나 돈 없어서 세금도 못 낸다고 성질내고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 해결이 됐다는 거예요. 미안했죠. 그리고 촛불발언 이후 제 코가 석자였고 내 일에만 몰두했어요. 근데 그 기간에 얘는 혼자 시름시름 가고 있었던 거예요. 8월 중순쯤 강화도여행을 갔어요. 처음으로 이상한 모습을 보였어요. 취해서. 난폭하게. 욕하고. 다 끝났다고. 휘청휘청 논두렁 막 가고. 붙잡고 몸싸움하고. 잡아 일으키고. 무섭고. 미치겠고. 그러다 8월21일. 오전 열시에 나갔어요. 아침도 안 먹고. 식욕이 남달랐는데. 그게 마지막이에요.”

 

 7) “처음엔 걱정은커녕 너무 열이 받는 거예요. 생방하고 있었는데 펑크 나니까 기자들이 잠적설 도박설 사업실패설 막... 이거 어떡해요. 이미지 어떡해요. 실종신고 해야 되나. 언니(안미선)는 안 된다고. 기도원 같은데 들어가 다이어트 한다고 그러라고. 시어머니한텐 당뇨도 있고 하니 잘 있다고 하자고. 얼마 후 언니한테 전화가 다시 와요. 나도 손들었다. 실종신고 해야겠다. 그땐 제가 찾을 데 다 찾아보고 하자고 했어요. 왜냐면 전 진짜 재환이가 그런 식으로 나타날 거라고는, 정말, 사람이, 어떻게.(울음) 어떻게, 하루아침에, 날 버릴 수 있나.(울음) 비밀리에 찾아야 된다. 그땐 그게 당연했어요. 재환이 명예가 있잖아요. 방송해서 어떻게든 돈을 갚아야지. 실종신고 하면 끝나잖아요. 채권자들이 경제사범으로 몰아 신고하면. 끝나잖아요. 그게 나중에 제가 실종신고를 막은 게 됐더라고.“

 

 8) “을지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자살이어서도 안 되고 하는 안미선씨 문자 받고 너무 무섭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여기 내가 발을 담구면 영 헤어날 수 없겠다. 그 와중에 나한테 추석 차례 지내라고. 며느리로서 의무를 다하라고. 소름이 끼쳤어요.”

 

 9) “하도 별 소리 다하니까. 그런 생각한 적도 있어요. 내 통장내역을 63빌딩서 확 뿌려버릴까. 하지만 남편 잃은 슬픔이 아무리 커도 자식 놓친 슬픔에 비할 수는 없다. 자식 잃었는데 죽일 년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우리나라에선 남편이 먼저 죽으면 응당 남편 잡아먹은 년이 되요. 그냥 교통사고로 가도. 나라고 변호사 안 만나 봤겠어요. 근데 시댁이잖아. 바지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해. 하지만 진실을 쥐고 있는 사람은 나니까. 이제 괜찮아.”

 

 10) “노원경찰서에서 이거 처벌 원하시는데 애매합니다. 뭐가요? 한 사람 한 사람 불러다 일이 커지고 끝도 없는 싸움 될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근데 감당할 수 없겠더라고. 그때는 너무 힘들고 너무 지치고. 그리고 재환이에 대한 원망이 생겨났어요. 슬픔 뒤에 오는.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그리고 시댁과 사채업자들 인터뷰 듣고 까무러치고 하다가 정이 후두둑 떨어져 나갔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왜 내 인생을 걸고 이렇게 대신 싸워줘야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나 참고인 진술 4번째 받는 거 같아. 인터뷰가 무슨 취조야.(웃음)”

정선희. 한겨레 박미향 기자
<정선희> 한겨레 박미향 기자
 

 11) “난 동정을 받는 게 싫어. 그렇다고 죽일 년 소리 듣는 게 나은 건 아닌데. 하여튼 그냥 신파가 싫고 동정도 싫어. 근데 <그것이 알고 싶다>나 〈PD수첩〉 같은 거 보잖아요. 30년 죄 없이 감옥 간 사람도 있데. 그런 거 예고만 봐도 그 억울한 심정이 느껴져 막 울어요.”

 

 12) “유품 정리하다 보면 구석구석 유서가 나와요. 내가 아직도 갖고 있는 게 앨범껍데기에서 나온 거예요. 난 거기서 화가 난거야. 미안해 미안해 사랑해 사랑해 나 하나 가는 걸로 다 해결 됐으면 좋겠어. 너한테 받기만 하고 간다. 너만큼은 정말 살아줘. 내가 왜 그걸 갖고 있냐?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13) “이제 케이블까지 매체 다양해지면서 연예인 너희들은 우리가 원하는 건 밝힐 의무가 있단 식으로 가더라고요. 근데 원하는 게 정말 있는 그대로 진실이냐 이거죠. 사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답을 듣고 싶은 거잖아요. 나만해도 내 안에 그런 끔찍한 호기심을 봐요. 내 일이 아닐 땐 기웃거리고 걱정하는 척하며 더 파고드는. 그런 흉악한 게 나한테도 있어요. 그런데 내가 사람들을 어떻게 원망해.”

 

 14) “힘들었어요, 난 이렇게 말하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안 불편하게 해 드릴 게요,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내야죠. 내가 할 줄 아는 거 하면서 살아내다 보면 좋은 쪽으로 그렇게 바뀌어 가겠지 하는 바람 가지고. 해답이 있겠어요?”

 

 15) “예전엔 나 싫다는 댓글 하나에도 민감했어요. 그냥 코드가 안 맞을 수도 있는 건데. 저 사람이 나한테 화났나. 내가 실수 했나. 그런데 이제 대한민국의 100%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니까. 나한테 조금이라도 좋은 글 있을까봐 내가 찾고 있더라고. 그러다 그런 글 어쩌다 하나라도 찾으면 너무 고맙고 막 눈물이 나는 거야.“

 

 16) “진심이 있었어요, 재환이한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나는 그거를 확실히 알아. 그거는 연기로 꾸며 낼 수가 없어. 자기가 절박했고 눈물을 흘렸던 건 거짓이 아니었어요. 그거를 아니까. 적어도 벌떡증은 없어졌어요.“

 

 17)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 쓸 거야.(웃음) 쓴다고 나한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야. 그럼 자기 살려고 시댁 치는 년이 되겠죠. 그저 김어준씨가 이해했으면 족해요. 이제 방송 이야기해요. 내가 기사 쓸 거리 이야기해 줄 테니까.”

 

물론 안다 나도. 이건 어디까지나 어느 일방의 버전일 뿐이란 걸. 그러나 몇몇 사실관계 체크하곤 이제 한 가지는 확신한다. 여기에 그의 입장은 담겼을지언정 술수나 음모는 없단 걸. 그는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사실을 말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는 몇 번이나 당부했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 원치 않는다. 그냥 버티겠다. 난 알겠다고 답했다. 그게 옳다 여겼다.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순 없으니까. 당사자가 그냥 가겠다는데. 내가 무슨 권리로. 게다가 애초 대중과 연예인의 권력관계에 대한 잡설이나 풀어보려 이 인터뷰 작정한 터였다. 대중의 알 권리는 절로 공공의 이익이 되는가 하는.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다 집어치웠다. 왜. 너무 한가한 소리라서.

 

 피 뚝뚝 흐르는 사건 현장 목격하고는 헬모글로빈 정상수치에 관한 이론 따위나 주워섬길 순 없는 일 아닌가. 그에게도 나름의 흠결이나 실수 어찌 없었겠나. 근데 말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한 인간을 이 지경으로 취급할 권리는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거잖아. 사람이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있는 그대로의 그의 사연보다 더 절박하게 거기 항변하는 건 없겠더라. 해서 그의 이야기, 아주 일부, 옮겼다. 그렇게 약속을 어겼다. 한 가지 두려운 건 혹여 이것이 그에게 새로운 고통의 단초가 될까봐.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그만 잔인했으면 한다. 우리, 사람의 마지노는 지키고 살자.

 

PS - 여전히 그의 팬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편이 되었다.

글 딴지일보 총수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