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세요
오늘도 속 없는 김밥을 먹는다. 바쁜 스케줄 사이에 짬을 내어 끼니를 해결할 때, 채식을 하는 내게는 김밥이나 떡볶이 말고 별다른 대안이 없다. 김밥집에 들를 때면 가장 기본적인 원조김밥을 주문하고는 햄과 달걀, 단무지는 빼달라고 한다. 채식을 하는 터라 햄과 달걀은 빼는 것이고, 짜지 않게 먹으려고 단무지까지 빼달라 한다. 어김없이 김밥집 아주머니의 웃음 섞인 핀잔이 돌아온다. “그러려면 김밥을 왜 먹누?” 설명하기엔 길고 복잡하기에 그냥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지만 당근 몇개만 송송 박힌 김밥을 먹을라치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진정한 육식광이었다. 소, 돼지, 닭, 오리 등등 개고기 빼고는 모든 고기를 다 좋아했다. 머리, 껍데기, 발, 내장 등 부위도 가리지 않고 먹었다. 그러던 내가 김밥 속 햄 한줄까지 발라내고 있는 걸 깨닫는 순간이면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변하나 싶지만, 그럴 수밖에 없기에 나 자신을 잘 타이른다. TV에 나와 동물 보호를 외치면서 고기를 먹고 가죽옷을 입는 게 영 찜찜하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개와 고양이는 가족처럼 대하면서 거대한 공장식 축산업에 학대당하는 동물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사는 것보다 고기를 덜 먹는 게 지구환경에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은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기르는 가축의 트림과 방귀다.
그런 고민에 채식을 시작했는데, 웬걸,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고기의 맛을 완전히 끊기 위해서는 아주 힘든 결단이 필요했다. 채식주의자는 콩으로 만든 채식주의자용 고기를 먹는다. 인터넷 채식 사이트에 가면 콩고기, 콩소시지, 콩어묵 등 별의별 걸 다 판다. 고기와 맛이 똑같다길래 콩고기를 샀더니…그냥 콩 맛이었다. 혹시나 싶어 돼지불고기 양념에 볶아서 쌈을 싸 먹고, 양념치킨 양념에 발라서 맥주와 함께 ‘치맥’인 양 먹어보기도 하고, 콩소시지를 부대찌개에 넣어서 먹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단을 내려놓고서는 돼지불고기 양념에 콩고기를 볶아먹는 내 모습이 참으로 서글프게 느껴졌다. 어차피 이 세상에 고기를 대체할 식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고, 그 순간부터 콩고기로 고기를 대신하려는 열망도 끊어낼 수 있었다.
채식을 하면서 가장 힘든 건 밥을 먹을 때마다 “왜 채식을 하는 거야?”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대답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욕에 차서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요즘은 그냥 “속이 안 좋아요”라거나 “콜레스테롤이 너무 높대요”처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답으로 간단히 대꾸할 때가 많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배려가 점점 많아진다. 요즘은 화보를 찍을 때도 채식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한국 채식주의자들의 짐을 함께 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그 때문에 나 역시 공식적인 자리에서 좀더 자주 채식을 이야기하고, 실생활에서도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해진다.
물론 여전히 그리운 것들이 있다. 아직도 멋진 가죽 재킷은 쿨해 보인다.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구워 먹던 막창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채식은 음식 습관을 넘어서서 처음으로 지켜보고 싶은 나와의 약속이 됐다. 나를 위해, 동물을 위해, (좀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 방법이 채식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채식은 엄격한 규칙이나 딱딱한 철학이 아니다. 채식은 사랑이다.
엣지와 에코 사이
스타일의 완성은 가방이다. 얼마 전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 행사에 초청을 받아서 갔다. 요즘 그런 행사에는 포토월이 설치되어 있다. 나 역시 사진에 잘 찍히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들여 빼입고 포토월에 섰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 액세서리, 신발까지 나름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는데, 뭔가가 허전했다. 가방, 그것이 문제였다.
동물보호 활동을 시작한 이후 가죽가방을 들지 않겠다고 내 자신과 약속을 했다. 그 탓에 공식적인 자리에 갈 때마다 그날의 의상과 어울리는 가방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제일 듣기 싫은 건 “이효리, 동물보호하더니 요즘 스타일이 밋밋해졌어”라는 소리다. 동물보호 활동을 하고 채식을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멋지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행사에는 드레스에 어울릴 만한 에코백을 발견하지 못한 터라 그냥 맨손으로 가야 했다.
솔직히 아쉽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나 역시 20~30대 또래 여자들처럼 가죽으로 만든 가방에 열광했다. 잇 백(It Bag)이라며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저거 하나쯤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며 지갑을 열었다. 남들보다 비싼 가방을 들고 잘난 척 으스대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겠지만, 특히 부드럽고 질 좋은 가죽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양질의 가죽은 송아지가 태어나자마자 모공이 채 열리기도 전에 벗긴다는 사실을 안 뒤 생각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런 가방들을 볼 때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겠는가. 나도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여자다. 이런 글에서라도 ‘인조가죽도 진짜 가죽 같아요’ 혹은 ‘요즘은 인조가죽이 더 잘 나온다’ 이런 말을 해야겠지만, 좀더 솔직해지자면 아직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다. 희생의 대가로 얻은 진짜 가죽의 아름다움은 아직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에코백, 그러니까 친환경 가방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재와 디자인이 다양한 에코백들은 가격이 저렴하고 동물과 환경에도 미안하지 않으니 일석이조다. 그런데 요즘 들어 많은 기업에서 앞다투어 에코백을 출시하는 걸 보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다. 에코백이 정말로 친환경적일까? 사실 폴리에스테르가 섞인 천가방은 환경에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재활용 에코백도 소재가 100% 재활용품이 아닌 경우가 있고, 재활용품을 수집해서 세척하는 과정에서도 환경에 유해한 물질이 많이 발생한단다. 에코백의 또 다른 단점이 하나 있다. 쉽게 살 수 있고, 또 쉽게 버려진다는 거다.
에코백은 원래 트렌디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값비싼 가죽가방에 대항하는 착한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에코백이 트렌드가 되자마자 모두가 가져야 할 패션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많은 기업은 극히 일부분만 환경친화적이면 뭐든 ‘에코’라는 이름을 붙여 새로운 패션 아이템을 원하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에코라는 단어는 진정한 환경보호의 의미를 떠나서 점점 트렌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요즘 나는 소비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에코와는 멀어지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맞다. 소비를 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줄일 수는 있다. 좀더 따져가며 똑똑하게 소비를 할 수도 있다. 오늘따라 어깨에 멘 에코백이 유난히 무겁다. 아니, 내가 지금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이 진짜 에코를 위한 백이 맞는 걸까?
진짜 다이어트, 내 손 안에 있소이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더운 날씨가 계속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옷차림이 얇아지고 짧아진다. 날씨가 이럴 땐 나를 비롯한 주변 친구들, 특히 여성들의 화두는 다이어트다. 옷차림이 간소해지는 만큼 날씬하고 예뻐 보이는 게 중요해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질문을 쏟아낸다. “니가 광고하는 다이어트 보조식품 정말 효과있니?” “채식하면 정말 살이 빠져?” 13년간 연예계에 몸담은 나도 다이어트라면 박사가 될 만큼 많이 해봤다. 작정하고 굶기도 했고 하루 8시간씩 미친 듯이 운동도 했고, 그때그때 유행하는 다이어트법에도 도전해봤다. 덴마크 다이어트라거나 원푸드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등 정말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다.
다행히 선천적으로 몸매 유지가 잘되는 체질을 타고났지만, 예전엔 폭식과 폭음을 일삼다가 늘어나는 뱃살과 사라져가는 허리선의 공포에 시달린 적도 있다. 그래서 앨범을 내놓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땐 수험생 벼락치기하듯 몸도 벼락치기로 급조해야만 했다. 일주일씩 굶어도 여의치 않을 땐 발전해가는 포토숍 기술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몸도 마음도 참 힘이 들었다.
사실 다이어트의 핵심은 딱 하나다. 먹는 열량보다 쓰는 열량이 많으면 살은 빠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단순한 원리를 실천에 옮기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좀더 쉽게 살빼는 방법을 찾느라 바쁘다. 한약을 먹거나, 침이나 주사를 맞거나,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경락 마사지를 받거나, 다이어트 식품이나 음료를 마시기도 한다. 심지어 다이어트 음악도 있단다. 그런 여러 가지 방법들이 보조적인 역할을 해줄 수는 있을 테지만 오로지 그것만으로 원하는 몸매를 갖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뒤 내가 터득한 방법은 하나다. 식습관과 생활습관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안 좋은 습관으로 혼란스러워하던 내 몸의 밸런스를 다시 맞춰주고, 내 몸 스스로 불필요한 것을 바깥으로 배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기상과 취침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등 사소한 것들을 습관화하면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되어 헬스클럽에서 두어 시간 운동하는 것보다 더 큰 열량을 소비할 수 있다. 먹는 습관도 마찬가지다. 열량은 높은데 영양소는 적은, 섬유질이 적고 기름기가 많아 소화와 배출이 어려운 음식들보다는 신선하고 영양소가 많은 음식을 적당하게 잘 먹어주면 우리 몸의 순환계가 깨어나 자연스럽게 잉여의 살들이 빠져나간다. 그런 다음 다이어트 보조식품 등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더한다면 정말로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내 몸을 믿고 적절히 도와주는 것이다. 내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가 힘들어하고 어디가 막혀 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조금씩 조금씩 내 몸을 위로해주고 편들어주자. 몸은 더 움직여주고 장기들은 조금 더 쉬게 해주자. 이런 다이어트는 시간이 걸리고 인내심이 필요하다.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더 오래오래 적당한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시작하는 순간 결과를 보고 싶어 한다. 조급증에 걸린 사회의 풍토가 뭐든 쉽고 빠르게 결실을 얻어야 한다고 우리를 몰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층빌딩 꼭대기에 위치한, 전망이 끝내주는 헬스클럽에 가입한 뒤 오고갈 때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면 과연 살을 뺄 수 있을까? 조금 속도를 늦춰서 천천히 가보자. 삶도 슬로하게, 푸드도 슬로하게, 그리고 다이어트도 슬로하게.
보양식 드세요?
여름이면 어김없이 그날이 다가온다. 복날이다. 동물보호단체에선 ‘복날의 눈물’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복날에 개를 먹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거리 한쪽에는 잔인한 개 도살 과정을 담은 사진을 붙여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애써 불편한 진실을 봐달라고 노력한다. 참 복날은 많기도 하다. 한번도 모자라서 초복, 중복, 말복까지 모두 세번의 복날이 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잔인한 달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예부터 복날이 되면 개나 닭 등을 잡아먹으며 더위를 이겨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처럼 에어컨이나 냉장고도 없었던 시절의 더위는, 어딜 가나 한기를 느낄 만큼 에어컨이 빵빵한 이 시대의 더위와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푹푹 찌는 햇볕 아래 고된 논일과 밭일을 감당해야만 했으니, 저칼로리 채식 식단으로 매끼를 해결하던 선조들에게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복날의 음식은 몸에 반짝 기력을 안겨주는 말 그대로 보양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음식들이 지금 우리에게도 보양식이 될까. 시대도 변하고 우리 몸도 변했다. 생활방식과 식습관이 모두 변한 지금, 보양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솔직히 우리의 문제는 영양결핍이 아니다. 과한 단백질, 지방 섭취와 줄어든 운동량으로 인한 비만과 성인병이다. 이런 시대에 한끼 2000칼로리에 육박하는 삼계탕이나 보신탕을 먹는 건 어째 좀 이율배반적으로 보인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풍습이라며 무턱대고 먹는 보양식 때문에 불어나는 살과 튀어나오는 배는 대체 어쩌려고…(그런 건 섹시하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더운 계절엔 평소에 잘 먹지 않는 과일이나 채소를 많이 먹어 땀으로 빠져나간 수분을 채우고 비타민과 미네랄 등을 충분히 섭취해주는 것이 더 낫다. 그게 훨씬 보양식에 가까운 식단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에 거는 기대치가 유독 높다고 한다. 음식으로 예뻐지고 건강해지고 오래 살려는 염원이 강하다. 건강식품의 소비는 날로 증가한다. 몸에 좋다는 건 뭐든지 먹는다. 녹용, 웅담, 곰발바닥, 쓸개즙 생산량의 80∼90%가 한국에서 소비된단다. 그런데 음식에 대한 기대치와 다르게 생활습관과 건강에 대한 기대치는 유독 낮은 게 한국 사람이다. 술과 담배는 과도하게, 운동은 부족하게, 그런데 몸에 좋다는 보양식은 뭐든지. 이거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복날이 다가온다. 초복은 지났으나 중복과 말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동료들의 손에 이끌려 보양식을 먹으러 갈 것인가, 아니면 과일과 채소를 위주로 한 식사를 하고 가벼운 산책을 할 것인가. 둘 중 어떤 것이 지금 우리 몸을 위한 진짜 보양식일까?
아이돌, 아니 아이들에게
우리는 아이돌 공화국에 살고 있다. 1세대 아이돌 핑클의 리더 출신인 나조차도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아이돌 그룹이 쏟아지듯 나온다. 요즘 아이돌은 내가 활동하던 때와 달리 영화, 드라마, 예능,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게다가 K-POP 열풍으로 전세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나로서는 이게 기쁘기도 하지만 속사정을 알고 있는 탓에 안쓰럽기도 하다. 분신술을 쓰는게 아니라면 그들의 스케줄은 살인적일 것이다. 얼마 전 만난 한 아이돌 후배 말로는 아시아권은 당일치기로 갔다온단다. 하루에 두세 국가를 다니기도 하고, 유럽이나 미국처럼 먼 나라도 1박2일이나 2박3일로 후딱 다녀와야 한단다. 맙소사. 인기도, 돈도 좋지만 그 스케줄을 대체 어떻게 지탱할 수 있는 걸까. 그 이야기를 해준 아이돌 후배의 표정도 그리 밝아 보이진 않았다.
한국 아이돌의 평균 나이는 21살이다. 대부분이 10대다. 평균 연습 기간은 4∼5년이다. 이들은 친구, 가족과의 시간들을 뒤로한 채 또래 연습생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그중 0.001% 정도만이 운좋게 데뷔에 성공한다. 성공한 뒤에는 더 치열한 경쟁을 시작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팀은 소속사에서 만들어준다. 운이 좋으면 맘이 맞는 친구를 만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전혀 자신의 취향이 아닌 사람과 24시간 함께해야 한다. 내가 활동할 당시엔 다행히도(정말 다행히도!) 숙소가 없었다. 요즘 아이돌들은 숙소 생활을 하는 탓에 먹고 잠자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도 누군가와 함께해야만 하는 것이다. 거기에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평균 수면시간이 2∼3시간이라면…. 사랑하는 부부도 그런 상황에 놓이면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칼로 물 좀 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음악적 색깔도 소속사에서 정해준다. 출연하는 방송, 입는 옷, 말하는 것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입지를 굳힌 팀들은 어느 정도 선택권이 주어지겠지만 대부분은 자기와 맞지 않아도 시키는 대로 참고 할 수밖에 없다. 가끔 후배 아이돌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면 제일 힘든 건 사생활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일이 끝나도 매니저의 감시로 숙소 밖을 나가기가 어렵다. 어렵게 숙소 밖을 나가도 사람들의 눈 때문에 갈 곳이 별로 없다. 그들은 여러 스트레스를 안으로 쌓아가고 있다.
아이돌은 그저 청년들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받지 않는 것도, 둘 다 감당할 준비가 안된 어린 10대들이다. 화려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스타들이지만 아직 숙성할 시간이 필요한 보통의 청년들이다. 이렇게 어린 친구들이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덜 성숙한 나이에 학교와 친구와 부모와 떨어져 최소한의 개인생활도 보장받지 못한 채 꿈이라고 불리는 것을 향해 달리고 있다. 많은 기획사들은 아이들에게 춤과 노래, 연기 등 스펙을 쌓아주려고 열중한다. 그런데 사회와 떨어져 생활하는 이 친구들의 인성교육은 누가 담당하고 있는 걸까? 이 친구들이 아이돌로 성공하지 못할 경우 사회로 다시 돌아가 적응하며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장치는 마련되어 있는 걸까? 눈앞의 돈을 위해 아이들의 스케줄을 마구 돌리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장기적으로 보자면 그건 아이돌뿐 아니라 기획사에도 훨씬 도움이 되는 일이다. 올해는 아이돌과 관련된 사건과 사고가 잇따라 터져나온다. 사람들의 질타가 쏟아진다. 포털 사이트에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계속 올라온다. 그 밑으로는 말로 옮기지 못할 댓글들이 달린다. 아이돌 개개인의 도덕성에 잣대를 들이댈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돌 선배인 나로서는 그들의 진짜 마음을 한번 헤아려보고 싶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의 외양 속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의 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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