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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미돋][판] 15년 짝사랑한 동성친구가 결혼했습니다

작성자샐러미|작성시간24.10.06|조회수12,563 목록 댓글 44

출처: https://theqoo.net/square/2072450630

 

 

 

 

 

 

 

15년 짝사랑한 친구가 어제 결혼 했어요. 진짜 재미없고 긴 이야긴데ㅋㅋ 술먹고 써서 두서없음 양해부탁드려요. 그동안 말할곳도 없고 답답했어요
처음만난건 고등학생때. 저는 선생님들 속썩이는 학생이였고 걔는 정말 모범생이였어요
입학식날 대표선서하는 거 보면서 쟤랑은 절대 엮일일 없겠구나 했죠.
1학년때 같은 반 이었는데 쉬는시간에도 책들고 교무실가고 선생님들도 다 이뻐하시고 전교 1,2등 했을거에요.
그때는 공부잘하는데 얼굴도 예쁜애 그게 다였어요. 생긴게 진짜 순진하게 생겼거든요. 하얗고 작고
항상 앞자리에 앉아서 시선이 가긴 했지만 그게 다였던 것 같아요.
2학년때는 다른반이었는데 이상하게 생각이 계속 나더라고요
괜히 친구 보러온 척 하면서 걔반에 가보고, 없으면 조금 아쉽고.
걘 그때 내 이름도 몰랐을텐데...ㅋㅋ

어쨌든 그렇게 지내다가 2학년 체육대회가 시작이었죠
전부 다 사복인데 혼자 학교 체육복을 입었어요. 그 더운날 동복을.
줄다리가 하는데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ㅋㅋ 아무도 관심없었는데 열심히 하더라고
그리고는 혼자 구석에 서있더라고요. 그 애가 공부만 하는 재미없는 애로 유명했거든요.
근데 전 그때 제 감정도 자각못했고, 쓸데없는 자존심(?)에 말 안걸었어요.
그렇게 체육대회 끝나고 다 집가는데 그애가 학교로 들어가는 거에요.
선생님도 다 퇴근하고 없는데.
이상하네 생각하면서 친구랑 집 가다가 정말 충동적으로 말했었어요.
나 교실에 뭐 놔두고 온거 있으니까 먼저가라고,
그러고 학교로 다시 뛰어갔는데 그애가 빈교실에 혼자 앉아 있었죠.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나요.
창가에 해는 지고 있고 온통 붉어진 교실에서 멍하니 있던 그애가 문을 여니까 놀라면서 돌아보던 장면이.
저도 엄청 놀랐었어요. 당황하다가 뭐 놔둔거 있어서 왔다고 했는데 진짜 멍청했죠ㅋㅋ
제 반도 아니었는데ㅋㅋ...
그 애는 웃더니 더 안 물어 보더라고요.

어쩄든 그게 계기가 되서 고등학교때는 말도 간간히 하고 시험끝나면 같이 놀러도 몇번 가고...
또래 애들이랑은 다르게 어른스럽고 차분한 모습에 서서히 빠졌던것같아요
자연스럽게 원래 친했던 애들이랑은 멀어지고 저도 공부에 흥미를 붙여서 어찌어찌 같은 대학에 붙었어요.(지금 생각해보면 같은 대학가고싶어서 죽기살기로 공부한듯ㅋㅋ 학과도 최대한 낮은데 넣고ㅋㅋ)

그리고 대학 붙은날 놀래켜주려고 그 애 집 앞에서 전화했는데 울고있더라고요.
놀라서 왜그러냐 나 지금 너네집앞이다 나와서 얼굴보고 얘기하자 그러니까 얼굴이 퉁퉁부은 채로 나와서...
알고보니까 아버지가 엄청 가부장적인 분이시고 딸 학비대줄 돈은 없다, 집 근처 전문대면 충분하지 무슨 서울까지 가느냐...
친구는 집 나가서라도 대학가겠다고하다 손찌검 당하고.
그동안 집얘기를 전혀 안해줘서 몰랐어요.

펑펑우는 애 달래서 저희집에서 재우고, 그때 나란히 누워서 여러얘기를 했는데
오빠하나 남동생 하나. 능력없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들만 귀한 어머니. 흔한 일이었어요.
저는 운좋게도 돈걱정안해도 되는 집 외동으로 태어나서 오냐오냐 자랐는데 그땐 그게 참 부끄럽더라고요.
그때 껴안고 울면서 서울가서 나랑 같이살자, 생활비 걱정은 하지말아라. 같이 가서 부모님 설득하자.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말했는지...
결과적으로 그애와 가족들은 절연 비슷하게 끝났어요. 같이 갔는데 저보고는 들어오지 말라데요. 문 앞에서 그 애가 맞고 나올까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몇 십분이 몇 시간같았어요.
한참 옥신각신하더니 그애는 가방 덜렁들고 나오고 집안에서 들리던 남자의 쌍욕...
벌건 눈으로 눈물을 뚝뚝흘리는 그애를 그냥 무작정 집에 데려왔어요.
다행히도 부모님은 사정을 들으시더니 그럼 우리집에 있어라 대학가서도 같이 살아라 흔쾌히 말하셨죠. 첫등록금도 내주시고...
불효가 따로없네요. 내색은 안하셨지만 엄청 당황하셨겠죠... 항상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같이 대학가서 과외며 식당일이며 얼마나 열심히 하던지. 같이 살면서도 얼굴 보기 힘들었어요.
그렇게 괜찮다 했는데 집세랑 생활비라면서 번돈 대부분을 주고...
그와중에 학비는 장학금 받아서 다니고. 자랑스럽고 안타까웠어요.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는데 정말 철없었던게 제가 그 애의 보호자라는게 얼마나 좋았던지... 걱정되서 죽을 것 같다가도 보호자님~하면 괜히 웃음만 나오고...
대학생때 같이 여행가고 싶었는데 한번을 못갔네요. 힘들어하는게 눈에 보여서 말을 못꺼냈었어요. 방학때는 공장가서 일하고...
생활비 그냥 내(부모님)돈으로 쓰자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자긴 너무 죄송해서 그렇게는 못하겠대요. 동등한 친구관계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그 후론 말도 못꺼냈어요.
과가 달라서 학교에서 보기도 어렵고, 집에오면 잠만 자고... 전 그렇게 노는 거 좋아했는데 대학가서는 강제 아싸였죠. 걔 얼굴이라도 한번보려면 내가 집에 붙어있어야 하니까...ㅋㅋ
그 와중에도 주말에 영화보자고 하면 따라 나서고, 꾸벅꾸벅 졸고는 미안해서 오늘은 내가 요리랑 설거지 다한다 그러고. 별거아닌 일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그래도 돌아보니 추억이 참 많네요...

졸업할때쯤엔 둘다 취업한다고 바빴고, 취업후엔 결국 따로 살게 됐어요.
친구는 회사 근처에 월세 구해서 나가고, 저는 원래 집에...
이사 도와주고 텅빈 집에 들어왔을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 애 앞에서는 간신히 참았는데 집 현관에서 주저앉아서 울었어요
아 부모님이 내주신 학비는 칼같이 갚더군요ㅋㅋ... 첫월급을 저한테 다 준다는걸 제가 뜯어말렸어요.
몇달 힘들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도 그애도 직장이 바빠서 만나긴 커녕 연락도 힘들었죠. 그 때 저는 제 마음이 다 정리된 줄 알았어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싶었어요. 다시 보면 그냥 친구이자 가족으로, 그렇게 지낼수 있을수 있을 것 같았죠,

그리고 친구가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줬어요.
번듯한 직장의 사내커플. 잘생기고 매너좋고 그 애를 아껴주는 게 눈에 보였죠.
그때 장난스럽게 오~사내커플 이랬는데 진짜 숨이 턱턱 막히더라구요.
친구가 내 언니이자 여동생이자 하나뿐인 친구라고 저를 소개시켜 줬는데 전 그때 그 남자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때 깨달았죠.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구나. 그냥 덮어뒀던거구나.
근데 질투한게 부끄럽게 남자도 지같은거 골라서ㅋㅋ 남이 보기에도 사랑스럽고 예쁜 커플이었어요.
그리고 걔가 너무 밝게 웃어서 질투도 오래 못갔어요ㅋㅋ
그 후로 무심결에 고백할까봐 일부러 연락도 안하고 정말 몇달간 아무것도 손에 안잡힐 정도로 힘들었는데 또 시간이 흐르니 덤덤해지고, 힘든걸 내색하지 않을 정도는 되더라고요.
그냥 체념한거 같아요. 어차피 못 말할거면 내색도 말아야지... 하면서.
한 1년쯤 연락도 무시하고, 만나자고 하면 바쁘다 하고 지내다가 그 애 생일에 만나자고 먼저 연락했어요.
만나자마자 자기가 뭐 잘못했으면 미안하다고 펑펑우는데 제가 더 미안했죠. 어쨌든 사회통념상 이상한 감정을 갖고 있는 건 나니까...
근데 그 애가 그렇게 우는 걸 보니까 웃긴게 친구로 지내자는 결심이 서더라고요.
그 애한테 가족은 나밖에 없는거나 마찬가지니까. 내가 멀어지먼 얘는 친구도 가족도 잃는 거구나싶어서.
그냥 회사때문에 슬럼프랑 우울증이 겹쳤다 이런식으로 설명하고 그때부터 친구랑 예전처럼 지냈어요.
뭐 특별한 것 없이 그냥 평범한 친구들처럼... 술마시면 회사욕도 하고 국내여행도 몇번 가고...

그리고 이 애가 어제 결혼을 했네요.
그때 소개해줬던 남자랑... 첫연애로 결혼...
15년 세월을 허투루 보낸 건 아닌지 마지막까지 표정관리는 잘한것 같아요.
여러 사정으로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만 하고 간단히 친구, 친구남편, 남자쪽 부모님, 저희부모님, 저 이렇게 밥만 먹었는데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 애가 너무 예뻤어요.
반지까지 교환한 친구가 저를 안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줬는데 아마 평생 못잊을 것 같아요.
식당을 나오면서 둘이 팔짱끼고 걸아가는 걸 보는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뭔지 알겠더라구요.
그러고 집에와서는 술퍼먹고 이 글이나 쓰고 있네요ㅋㅋ 이럴줄 알고 미리 연차내서 다행이지...
아무한테도 못한 이야기 인데 결국 익명성에 기대는 제가 한심하네요...
sns는 커녕 인터넷도 잘안하는 애라 이 글을 볼리는 없겠지만
자랑스러운 내 친구야. 꼭 행복하게 살아. 힘들땐 언제나 내가 있다는 걸 기억해줘.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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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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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맘에든다 | 작성시간 24.10.06 진짜 사랑 ㅠㅠ
  • 작성자돌아가고싶다제발 | 작성시간 24.10.06 그사람을 자기자신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포기하고 숨길수 있는거구나 싶네ㅜㅜ
  • 작성자굿바디굿정신 | 작성시간 24.10.07 사랑이야...이건
  • 작성자스위프트테일러 | 작성시간 24.10.13 이게 사랑이다..
  • 작성자코코우리애기 | 작성시간 24.11.07 이런 게 진짜 사랑 아닐까 ㅜㅜ 눈물 난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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